추적(2)
붉은 털과 날카로운 송곳니 두 발로 선 늑대 같은 모습의 레서데몬은 인간의 냄새를 맡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박해진은 내 앞을 막아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넌 이놈들 처음이지? 내가 막을 테니 서포트 부탁해."
"···."
이 사람 정말 웃긴다. 자기가 뭔데 날 보호하려 들어?
붉은 갈기의 레서데몬은 오랜만이다. 추억이 돋는다. 내가 정크보이 때 잡았던 녀석과 비슷하게 생겼다.
박해진은 방패로 레서데몬의 발톱을 막아내고 옆구리에 검을 쑤셔 박았다. 그래도 나름 A 레벨 헌터가 아닌가?
데몬 수십 마리가 뛰쳐나오자 방패를 올리고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해진은 전력을 다해 데몬의 공격을 몸으로 방어했다. 데몬의 수가 훨씬 많았지만 노련한 경험은 그가 적절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홀로 맞서니 방어에 치중해 공격의 실마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나는 뒤에서 멍하니 해진을 바라봤다. 난 레서데몬을 학살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앞으로 나선 줄 알았다.
레서데몬 열댓 마리에 저리 쩔쩔맬 줄은 몰랐다. 그가 파티를 구하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하. 정말. 저런 실력에 나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은 성격이 그러한 것인지 오지랖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해진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데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본다. 내가 공격을 하지 않고 서 있으니 도와 달라는 무언의 눈빛이다.
나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반월륜을 꺼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날려 보는 반월륜이라 느낌이 산뜻하다.
-쉬잉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반월륜은 긴 휘파람의 여운을 통로에 남기고 날아갔다.
-팍! 팍! 팍!
해진의 귀 옆으로 날 선 날카로운 바람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로 무언가 진득한 것이 튀었다.
그것은 레서데몬의 피였다. 미친듯한 반월륜의 속도와 움직임은 레서데몬 따위 다져진 육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 초 동안 벌어진 움직임에 레서데몬 수십 마리가 바닥에 토막이나 뒹굴었다. 일방적인 학살. 그것의 묘미가 벌어진 것이다.
더는 벨 것이 없는 반월륜이 내 등위에 윙윙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해진은 나와 토막이 난 데몬의 잔해를 번갈아 쳐다봤다.
"···."
"가요.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아니면 여기서 되돌아가시던지요?"
"그, 그래? 그런데 너 진짜 A 레벨인 거냐?"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그냥 가요."
해진은 토막이 난 데몬의 잔해 위를 걸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입이 뭐하게 벌어져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난 드랍된 엘리시움을 끌어모아 재빨리 흡수했다. 그동안 움직여 대느라 엘리시움 소비가 심했다.
"뭐? 뭐 하는 거니? 엘리시움 광석이 왜 그렇게?"
하, 귀찮은 놈일세. 왜 따라와서는,
해진은 내가 엘리시움 광석을 흡수하는 것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에테르 보충하는 거예요. 아까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엘리시움의 에테르가 필요하니까. 보충하는 거죠."
"그렇군, 아까 그거 정말 대단했어. 그놈들을 단번에 잘라 내다니 밖에 나가서 누구한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거야. 보지 않는 이상 믿지 못할 정도야."
"자. 갑시다."
레서데몬이 나왔지만, 해진은 이번엔 내 앞을 막아서지는 않았다. 반월륜이 진한 빛무리를 뿌리며 달려오는 데몬의 무리 속으로 날아가 지그재그로 움직여 댔다.
"와, 작살이네. 이건 정말!"
해진은 내 뒤통수에다 대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는 잽싸게 드랍된 엘리시움을 끌어 모아왔다.
"자! 흡수해. 흡수해야 한다며?"
나는 어이없어하며 엘리시움을 받아 들었다. 기회가 있을 때 흡수하는 것이 좋다. 나는 한 개도 놓치지 않고 깨끗하게 흡수했다.
"와, 엘리시움의 에테르를 흡수하는 헌터는 처음 보네 이거 신기술 아니야? 임테에서도 아직 엘리시움에서 에테르를 분리 못 한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뭐, 별거 아니에요. 개인적인 능력일 뿐입니다."
"너, 정신각성자지? 그렇지?"
"뭐, 그렇죠."
미로는 복잡했다. 언노운이 길을 밝히지 않았다면 벌써 길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걱정되는지 해진은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주변의 벽을 그어 댔다.
그럴 것 같으면 따라오지나 말지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을 하면서 얼굴빛은 이미 흑색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 흔들며 해진을 내버려 두고 과감히 앞으로 나갔다. 그는 깜짝 놀라 내 꽁무니를 죽어라 쫓아 왔다.
레서데몬의 종류는 다양하다. 저 세계의 데몬인자가 우리 세계의 야생동물에 기생하면서 변형을 일으킨 몬스터인데 가장 많은 부류가 들쥐의 파생형 데몬이다.
일단 데몬류는 모두 이족 보행인데 이 레서데몬은 들개보다는 화력이 떨어지지만 떼거리로 모여 있어 성가신 편이다. 송아지만 한 몸체에 기다린 꼬리 쥐 대가리를 가진 데몬은 보기에는 추악하고 두렵다.
하지만 반월륜의 앞에서는 도마 위의 생선 그 이상은 아니다.
"으아, 정말 말이 안나온다. 와! 던전에서 무쌍 찍는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해진은 내 뒤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설레 흔든다. 검은 아예 검집에 박아 두고 팔짱을 끼며 내 반월륜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서 있지 마시고 엘리시움이나 모아 오세요. 하, 정말"
"어, 그래, 하하, 알았어."
나는 해진이 모아 온 엘리시움을 흡수했다.
"근데 말이야. 조금만 구경하고 만다더니 이렇게 깊숙이 온 것은?"
"볼 일이 있어서요. 이 앞에 먼저 간 팀이 있거든요. 그놈들 때문에."
"그래? 여긴 헌터가 지나간 곳이 아닌데?"
"뭐 설명해도 모르실 테지만 그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랑 달라요. 전 최단 루트를 뚫으면서 가는 거니까."
해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최단 루트? 허, 이 길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하네?"
"그럼 아니까 이렇게 움직이죠. 모르면서 어떻게 전진해요?"
해진의 눈이 눈알이 흐를 만큼 크게 떠졌다.
"아니, 이 미로를 안다고 길을 안다고? 매일 리셋 되는데 무슨 수로? 에이, 억지도 억지만 하게 부려야지. 이건 말도 안 되잖아."
"아, 정말, 이왕 여기까지 따라 왔으니 그냥 있어요. 지금 되돌아 가봐도 길을 잃을 것 같으니."
"나, 너만 믿고 있어. 네 실력이면 몬스터에게는 죽지 않을 것 같아. 정말 길 알고 있는 것 맞아?"
"그렇다니까요. 그러니 저 따라 다니며 엘리시움이나 주워 오세요."
"그, 그래 그것 정도는 할 수 있어."
A급 헌터가 졸지에 엘리시움 쫄쫄이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쥐새끼 데몬은 투쓰 커터라 부른다. 놈들의 앞니 두 개는 면도날보다 날카롭다. 놈에게 물리면 무조건 토막이 난다.
뭐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반월륜이 날아다니니 근접하는 놈들이 거의 없다. 이건 학살이 아니라 그냥 밟아 죽이는 수준이다.
"저기 아무리 봐도 A 레벨이 아닌데. 이건요. S 레벨인데요?"
참다못한 해진이 한마디 던진다.
"맞아요, S 레벨.'
"어쩐지. 우와 근데 S 레벨이나 되는 분이 어찌한 일로 이런 던전에?"
"말이 많아요, 아저씨 그냥 가요."
"네, 넵."
귀찮아서 S 레벨이라고 말해버렸지만, 솔직히 길드에 정식 등록된 것은 아니다. 아직 A 레벨로 되어 있을 것이고 아카데미 졸업 전이라 정식 헌터도 아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상황이 그렇다.
울프 헤드는 들개형 레서데몬을 부르는 말이다. 울프 헤드와 투쓰 커터는 사이가 안 좋은가 보다. 가끔 녀석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면 싸운 흔적이 많고 시체도 더러 보인다. 대부분 투쓰 커터의 시체로 울프 헤드가 상위 데몬인 것 같다.
그러나저러나 반월륜에 썰리는 것은 매 마찬가지다.
상위 던전이라 그런지 엘리시움의 농도가 매우 진하다. 고농축 엘리시움이라 몇 개만 흡수해도 일만이 훌쩍 넘어간다.
그동안 소비한 에테르가 상당수 되고 거의 밑바닥을 치는 수준이어서 전진하면서 계속 흡수했더니 단번에 수십만이 넘어갔다.
귀찮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 에테르 확보를 해놔야 한다.
지도상 11인이 머무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라? 이 팀도 접근하고 있네?"
나는 11인이 모인 곳에 접근하는 다른 또 한 팀을 보았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전진하면 11인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이 던전은 매일 리셋된다. 11인이 이곳에 며칠 머물렀다고 치면 매일 새로운 길이 뚫린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라 50년 동안 단 한 번도 공략되지 않은 던전인데 무얼 믿고 여기에 숨어들었을까? 앞뒤 계산이 나오지 않는 행동이다.
영원히 이곳에 갇혀 버릴 심산인건가?
물론 추적을 따돌리는 데는 이만한 장소가 없다. 추적대도 감히 이곳은 들어오지 못할 테니까.
여하튼 조금 있으면 모든 것이 밝혀질 거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나가는 속도가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나보다 저쪽이 먼저 11인과 만날 것 같았다.
갑자기 데몬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한쪽 통로에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녀석들이 이곳까지 나와 주변 몬스터를 정리한 것 같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서성이는 김해진을 곤란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잠시 여기 있을래요? 여기 꼼짝 말고 있겠다고 약속해요. 금방 볼일 보고 올 테니 알았죠?"
"왜, 같이 가면 안 돼?"
"안됩니다. 위험할 거예요. 그러니 여기 있어요. 알겠죠?"
"무슨 일인데 그래?"
"후,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 여기 있으라고요."
"알겠어. 알겠어. 여기 있을게. 다시 돌아오는 거 맞지?"
"네, 네, 절대 버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해진을 남겨 두고 나는 총총걸음으로 코너를 돌아섰다. 저쪽 모퉁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들과 한 코너를 남겨 두게 된다.
기척을 지우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갑자기 들이치면 그들이 카피너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어라? 이건 또 뭐지?'
지도를 보니 9명의 점등과 네 명의 점등이 만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1명이 갑자기 9명으로 변했다. 둘은 어디로 간 거지? 무엇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숨죽이며 조금씩 전진했다.
"귀신같이 찾아오셨구먼"
"여기 숨으라고 한 건 잘한 일이지 안 그래?"
"그쪽에서 원하는 물건은 우리가 잘 모셔 두고 있어."
"잊었나? 교환은 직접 물건을 확인하고 넘겨 준다."
"물론, 그 전에 우리를 여기서 빼내 주셔야겠어."
"후, 그것까지 고려해서 우리를 유인한 건가?"
"유인이라고 하니 섭섭하군, 우린 단지 확인을 확실히 하자는 취지지."
"그래 물건은?"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그들의 모습을 봤다. 헌터의 복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정장 차림의 아홉 명과 헌터 복장이 아닌 이상한 복장의 사인이 모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한 바퀴 둘러 보았으니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장내에 공간 왜곡이 있습니다. 표시하겠습니다]
언노운이 가리킨 표시지점은 막다른 길의 오른쪽 모서리였다. 그곳에는 비밀공간이 있었다. 아마 보이지 않은 두 사람은 그 공간에 숨어 있을 것이다.
"물건을 보지 않으면 이걸 주기가 곤란한데?"
사내의 손에는 여러 장의 키 카드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빼내 주는 방법을 말하면 그를 넘겨 주겠소."
"후후,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하나뿐이야. 사냥개를 이용하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가르쳐줘 봐야 할 수 없을걸,"
[스캔 완료. 마인 한 명과 울프맨 두 명이 포착되었습니다. 확률 92%]
나는 침을 삼켰다. 마인 한 명과 사냥개가 두 명이다. 녀석들이 누구인지 대충 파악은 끝났다.
아홉 명은 사악귀라는 사문위원회 사람이고 네 명은 마인과 사냥개 두 명이다. 한 명은 평범한 사람? 헌터? 그건 알 수 없다.
"자네들은 물건을 넘겨받고 우리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러니 물건이나 제대로 확인시켜줘"
아홉 명 중 맨 앞에 있던 자가 손뼉을 치자 두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호오? 어디다 감추어 두셨길래 우리 감지망에도 안 걸렸지?"
"비밀공간이다. 차원이 다른 곳이라 모든 것이 차단되지."
"자 물건을 확인해 볼까?"
세 사람 틈에 섞인 인물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꽤 신사 같은 느낌이 드는 인물이었다. 그는 평범한 평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보아하니 이 자가 카피너인 것 같았다.
[이곳에 10분 이상 머무르면 울프맨에게 포착될 확률이 50% 증가합니다]
언노운이 내 모든 기척을 지워주고 있었다. 심장 박동도 최대치로 떨어뜨리고 숨소리마저 지워냈고 몸에서 나는 모든 채취도 모조리 막고 있었다.
그러나 사냥개의 날카로운 후각을 피할 수는 없다. 이곳에 머무를수록 사냥개에게 들킬 확률이 높아져 간다.
"자 이걸 카피 해봐."
그는 왼손바닥에 키 카드를 올려놓았고 빈 오른손을 펼치고 있었다.
검은 슈트의 사내는 카피너의 등을 밀며 말했다.
"어서 해, 가족이 무사하고 싶으면."
두터운 뿔테 안경 너머로 카피너의 시선이 복잡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아저씨다운 불룩한 아랫배와 퉁퉁하고 펑퍼짐한 몸을 움직여 사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을 키 카드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빈 오른손은 역시 사내의 빈 오른 손위로 올려놓았다.
그라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카피너의 빈 오른손 아래로 왼손에 올려진 카드와 같은 카드가 떨어져 내렸다.
"굿, 물건 확인."
[스킬 확인. 대상 스킬 카피너 복제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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