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치
언노운은 스내치라는 정보창을 띄웠다.
도마뱀의 몸통에 5m 길이의 뱀 목이 달려 있다. 고탄력의 뱀 대가리는 움직일 때마다 바닥을 긁어 대는 소리를 냈다.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는 이제 눈까지 따갑게 했다. 스내치는 물리 내성과 원소 내성으로 둘둘 뭉쳐진 몬스터였다.
"최대한 빨리 잡는 게 이득이겠어. 각자 뱀 대가리 하나씩 맡자."
이석중은 그렇게 외치고 맨 왼쪽의 뱀 대가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으로 박우람이 뛰어들었고 나는 오른쪽 뱀 대가리를 향해 각성도를 휘둘렀다.
녀석의 호흡에서 뿜어지는 냄새는 끔찍했다. 다행히 독은 없었다.
[후각을 차단하겠습니까?]
"말이라고! 당장 차단해줘."
[후각 시신경 차단하겠습니다]
냄새가 가시니 정신이 후딱 들었다. 내 머리 위에서 혀가 날름거리는데 엄청 징그러웠다.
각성도를 추어올리자 뱀 대가리는 민첩하게 반응했다. 생각보다 민감한 반사신경을 가진 놈이다.
스내치가 검의 사거리를 벗어난 곳에서 이상한 액체를 쏟아 냈다. 싸이킥 베리어를 켜고 몸을 보호했다.
"조심해 놈의 타액은 염산을 능가하는 부식물질이야."
바닥에 떨어진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반월륜이 날아오르자 놈은 정신없이 목을 흔들었다. 타액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데몬의 거울 스킬의 반사 데미지 효과가 그대로 놈에게 전해졌다.
"조금씩 뒤로 물러서면서 싸워야 해. 놈이 타액을 뿜을 때마다 뒤로 이동해야 해."
이석중의 말이 공감이 갔다. 타액 때문에 발 디딜 곳도 없다. 놈이 타액을 뿌릴 때마다 뒤로 이동해 공간을 확보했다.
반월륜은 엄청난 물리 내성 때문에 뱀의 비늘을 잘라 내지 못했다. 엄청난 고강도의 탄력 있는 고무를 치는 느낌이랄까. 내 정신에 들어오는 반발력이 생각보다 묵직했다.
놈이 고개를 쳐들고 각성도의 범위를 벗어나서 근접전은 무리였다. 이석중과 박우람의 처지도 비슷했다. 근접으로 붙으면 고개를 쳐들고 검의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없는 릴레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놈 공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파티에 원소 데미지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나마 편해. 신체 각성자들끼리 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래서 아까 하필 쓰리 헤드라고 화냈던 거야."
이석중의 말을 풀어 보면 탱커가 어그로 끌 동안 원거리 딜러가 내성을 깎아 내야 한다는 소리다.
최대한 빨리 내성만 깎아 내면 된다는 소리다.
반월륜을 30개로 분리했다.
"언노운 반월륜 제어 부탁해"
[알겠습니다. 공격 대상 파악 스내치. 대상 공격 시작합니다]
반월륜의 속도가 단번에 수배는 빨라졌다. 말벌이 곰을 폭격하듯 스내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뱀 대가리의 반사 신경이 아무리 좋아도 반월륜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빠르게 날아드는 반월륜을 피해 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언노운이 제어하는 반월륜의 움직임은 나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섬세함을 지녔다.
반월륜의 공격으로 보유 내성이 미친듯한 속도로 깎여져 나갔다. 눈앞에 찍힌 스내치의 내성이 초 단위로 떨어져 내렸다.
반월륜이 스내치의 두 눈을 공격하자 몸부림치며 몸통을 마구 뒤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통로에 꽉 끼는 몸체를 지녔는데 몸부림을 치니 통로 자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석중과 박우람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근접들이 붙어서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놈과 일대일의 싸움이 시작됐다. 반월륜은 말벌처럼 '왱, 왱' 거리며 날아다녔다.
나는 각성도를 꼭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각성도로 원거리 공격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검이란 공간 제약이 있어 그 범위를 벗어나 버리면 공격할 방법이 없다.
검에서 광선이라도 나가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까지 했다.
답답한 마음이 이어졌다. 저번 문정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자꾸 생겼다. 각성도의 날은 바람 소리 스킬에 의해 절삭력이 월등히 상승했지만, 검이 닿아야 효과를 본다.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다. 각성도의 묵직함과 반짝이는 검신을 바라보다 문득 언노운에게 물었다.
"검으로 원거리 공격을 하는 방법이 뭐 없을까?"
[자료 검색합니다. 소요 시간 3분 20초]
자료 검색하면 뭐라고 나오나? 나는 검에서 검기라도 뻗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검색 완료. 공간 역장 에너지를 검에 집중시킬 방법을 조합했습니다. 로드 하시겠습니까?]
"물론!"
머릿속에 뭔가 들어 왔다. 나는 검신에 집중했다. 반월륜은 언노운이 제어하고 있어 온 신경을 각성도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새하얀 막이 각성도를 둘러쌌다. 언노운이 설명한 바에 의하면 공간을 이루고 힘, 공간을 형성하는 힘은 아주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고 한다. 반월륜을 형성하는 것도 바로 그 에너지다.
차원을 이동하는 힘을 이용해 이 역장 에너지를 검에 덧씌울 수 있었다. 매우 협소하지만, 이 무형의 에너지를 쏘아 내면 공간 자체를 자를 수 있다.
즉 검의 길이 정도 되는 공간을 잘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눈에 확신의 찬 빛이 뿜어졌다.
각성도에 모인 희뿌연 에너지는 완벽한 또 다른 검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힘차게 검을 휘두르자 뱀 대가리 아래 하얀 목 부분의 가죽이 갈라지며 붉은 피가 솟구쳤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충 내가 생각한 부분의 공간이 베어졌다.
처음 전개하는 것이라 아직 제어가 완벽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검의 길이 만큼 원하는 공간을 벨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묘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스내치의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공간 자르기는 스내치의 물리 내성을 과감히 뚫어냈다. 수백 번을 쳐 내니 조금은 손에 익은 듯했다. 뱀 대가리는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이 새로운 기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원하는 공간을 잘라 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대상을 막론하고 공격 대상이 이 공격을 알지 못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다.
이성중과 박우람은 공격할 기회를 놓치고 뒤에서 구경만 했다.
"형님들 이놈 내성이 바닥났어요. 지금이 찬스입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었다. 내성이 깎여 버린 스내치는 세 사람의 협공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공중으로 진득한 타액을 마구 흩뿌렸으나 방어막을 녹일 만큼은 되지 않았다. 발을 디딜 때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언노운 반월륜은 얼마나 크게 할 수 있어?"
[현재 길이 150cm. 최대 3m까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성능 반감은 있어?"
[최적의 크기 대비 최대속도 반감 –30%. 공격력 반감 –20%. 절삭력 반감 –10%. 파괴력 증가 +20%. 에너지 분산도 –10%. 집중력 반감 –12%]
"음, 확실히 최적의 크기가 가장 좋은 효율을 내긴 하네. 하지만 저놈 목을 잘라 버리려면 더 커야겠어."
스내치의 목둘레는 반월륜보다 훨씬 커 보였다. 공격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효율적으로 뱀 대가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3023, 반월륜을 2m로 만들어"
[알겠습니다]
반월륜이 살짝 더 커졌다. 날아가는 바람 소리도 약간 변했다.
내성이 깎여 버린 스내치는 평범한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반월륜은 짧은 궤적을 그리고 날았다. 단번에 뱀 대가리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석중은 발 앞으로 뱀 대가리가 떨어지자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두 개의 뱀 대가리가 더 떨어져 내렸다. 도마뱀답게 목이 잘린 상태에도 죽지 않고 몸통으로 돌진해 왔다.
살짝 뒤로 물러나 공간을 확보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달려들었다.
머리를 잃은 스내치는 타액을 뿜어낼 수 없으니 두 사람은 마음 놓고 공격했다.
나는 마지막 일격을 날리며 말했다.
"3023, 행운력 오천 포인트 할당."
[알겠습니다. 행운력 상승 5003포인트. 에테르 5만 소요]
"후, 생각보다 엄청 빨리 잡았다. 저번에는 세 명이 이거 잡는 데 세 시간 허비했는데 지금 이십 분 정도 걸린 것 같네."
"천상길씨한테 네 이야기 들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보니 엄청나구나. 그냥 A급 가도 문제없을 것 같이 보여."
이석중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스내치를 잡은 것보다 새로운 기술 하나를 익혔다는 것에 더 신이 나 있었다.
언노운에게 진작 물어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드랍템은 근력을 올려 주는 격노의 반지와 풀 차지 된 상급 엘리시움 광석이 30개, 방어구의 물리 내성을 올려 주는 강화 북이 두 권. 마지막으로 이상한 모양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아티팩트 하나가 나왔다.
행운력을 오천 가까이 올리고 난 다음 나온 것이 정체를 알수 없는 바로 이 물건이다.
은근슬쩍 이 물건만 챙기고 나머지는 생색내듯 이석중과 박우람이 불평 없이 가져가도록 내 버려두었다.
아무도 이 물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어링으로 페어링 해 봐도 아무 정보가 뜨지 않았으니까.
스내치를 잡고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니 고트맨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로로 세워진 동공에 '고르릉'거리는 울음소리가 특징이다.
생긴 거와는 달리 성격은 매우 포악하고 조금의 인정도 느껴지지 않는 모닝스타는 죽음의 형벌을 내리는 사신의 철퇴와 같았다.
완전한 근접전에서 공간 자르기는 별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효율적이지만 이렇게 바짝 붙어서 진행되는 근접전은 각성도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제 저 코너만 돌면 이 던전의 막다른 끝에 다다르게 된다.
고트맨을 쓰러트리고 나온 던전의 끝은 커다란 석벽으로 되어 있었다.
"벌써 던전의 끝에 다다랐다. 이 던전 공략 이래 가장 빨랐던 것 같아?"
"그런 것 같아. 확실히 오늘이 가장 빨랐어. 동혁이가 생각보다 엄청 낫다고."
"인제 보니 거의 A 레벨 수준인데. 동혁이 뭐하냐?"
나는 석벽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뒤에서 이석중과 박우람이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언노운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벽돌을 조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약속된 하나의 퍼즐이 석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단순한 문양 이지만, 언노운은 이것이 퍼즐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언노운이 알려 준 곳으로 벽돌을 옮기고 있었다.
"이건 일종의 퍼즐 같은 겁니다. 이걸 풀 수 있다면 뭔가 일어날 수도 있겠는데요?"
"이게 퍼즐이라고? 던전 안에 이런 게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인데?"
"아마 일정한 확률로 생기는 것 같아요. 여차, 다 풀었다."
"뭐라고? 다 풀었다고? 어?"
-그르릉
바닥과 좌우 벽이 진동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뭐지? 다들 조심해."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르르르릉
문이 열린 것처럼 거대한 석벽이 공중으로 들려졌다.
그리고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이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뭐지? 던전의 연장? 아니면 새로운 지역인가?"
이석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지하 통로를 바라봤다.
"석중아 어떻게 할래? 한번 내려가 볼래? 아니면?"
박우람의 말에 이석중은 나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와서 안 가보면 백 퍼센트 후회하겠지?"
나와 박우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람아 랜턴 꺼내라. 한번 내려가 보자."
이석중과 박우람은 ITB에서 랜턴을 꺼냈다. 불빛이 비치자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눈앞에 펼쳐졌다.
"상당히 깊은 것 같은데? 일단 조심해서 내려가 보자."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