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진성하의 서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터널 엘리시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진성하
작품등록일 :
2019.04.01 14:52
최근연재일 :
2024.05.08 23:00
연재수 :
1,091 회
조회수 :
2,023,621
추천수 :
46,441
글자수 :
6,871,459

작성
19.04.01 15:05
조회
28,171
추천
269
글자
20쪽

정크 보이(1)

DUMMY

서기 3023년 태양계 목성과 토성 사이

UN 섹터 알파, 인류 공동 거주 지역 파인 유토피아.


작전구역 유토피아에서 25만 2천 킬로 밖. 스페이스 스톰 영향권 내.


"시계 양호. 시공 폭풍과의 거리 300km. 모든 기기 정상 작동 중. 코드네임 퍼시벌 다음 지시 사항 유도 바람. 오버."

"퍼시벌, 여기는 DM 컨트롤 센터. 100km 이내로 접근할 수 있는가?"

"메시지 리시버 오버. 기기의 벨런스는 이상 없습니다. 퍼시벌 메인 부스터 점화."

"나머지는 귀하의 판단에 맡기겠네. 김현성 중령."

"예스 로저. 현 거리 220km 접근 중, 200km, 180km."


거리 측정 센서 표시기에 찍힌 숫자가 130을 넘기자 데이터 모니터 위쪽에 있는 경고등이 붉은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김현성 중령님 시공의 조각이 기체에 닿았습니다. 시간 왜곡장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김현성 중령의 코스 모니터링 오버 이어 헤드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퍼시벌호의 메인 AI다.


"해당 부위 내부 섹터 격벽 폐쇄. 나노 수리 로보 사출."


[긴급 진단 시스템 기동합니다. 선제 외부 A#E, B#Z 구역 데미지 산출, 오차 한계 범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나로 로보 리페어 사출합니다]


김현성 중령은 이미지 시퀸스에 떠오른 지시기에 따라 메인 컴퓨터를 통해 사출 코드를 입력했다.


"DM, 여기는 퍼시벌, 더 이상 접근은 무리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더 이상 접근은 무리다. 기체 손상 레벨 E급"


파시벌의 Al가 기계적인 보이스를 방출했다.


[모니터 로스트, 데이터 링크 소실, 광학 조준 목표 로스트, LCS 두절]


"여기는 DM. 김현성 중령님. 저기 저 유미리입니다. 사출 각도만 확보되면 발사하시고 이탈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유미리 박사님. 성공을 빌어 주십시오."


김현성 중령의 앞에 어지럽게 구현된 네거티브 화면이 사라지고 표적이 그려진 단 하나의 시뮬레이선 모드가 작동됐다. 김현성 중령은 이미지 모듈이 만들어낸 가상의 방아쇠 위에 손을 올려놓고 호흡을 다스렸다. 사격 통제에 관한 모든 진행 과정과 그에 따라 산출된 오차는 Al가 수정 보안 교정해 줄 것이다.

자신은 그저 발사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끝낼 일이다.


-크르릉


기체가 시공의 역장을 뚫고 진행하는 탓에 심각한 진동이 조종석 내부를 뒤흔들었다. 중령은 산소압력 조절기를 사용해 우주복의 가압을 올려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외부 진동에 대비해 몸의 잔 떨림을 바로잡았다.


[좌표 입력 수정 중, 시공의 폭풍 감마선 올 클리어. E2 포인트 산출, 입사각 각도 계산 완료. 중령님 포인트까지 18초 진행 중, 사출 시간까지 포함하며 최소 2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초면 충분해. 카운트다운 개시."


[8,7,6,5....2.1 포인트 구역 접촉]


중령은 잠시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AI 언노운 사출 완료. 포인트로 강하 중. E2 포인트 진입 확인 완료. 수고하셨습니다. 중령님 미션 미지와의 조우 클리어. 미션 클리어]


-휴


사격 시뮬레이션 고글을 끈 김현성 중령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기체 데미지 레벌 d급으로 상승. 나노 로보 리페어 사출합니다]


중령은 조종간을 힘차게 우측을 꺾었다. 역장을 벗어나자 지진을 만난 건물처럼 떨리던 조종석의 흔들림이 점점 잦아 들어갔다.


"DM 여기는 퍼시벌, 미지와 조우 미션 클리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겠습니다."

"여기는 DM. 유미리 박사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령님. 귀환 후 뵙죠."


광활한 우주의 어둠이 퍼시벌호 위로 내려앉는다.

자색 전자기장을 발산하는 스페이스 스톰속으로 사라진 것은 인류의 미래를 수복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의 한 조각이다.


***


서기 2178년 이모탈 시티 외곽 제3 섹터 권외 배틀 필드 지역.


"헉, 헉, 헉···."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빨래 짜는 것처럼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정신 하나만은 날 선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곤두서 급변하는 주변 환경을 예의 주시했다.


애절한 비명과 기괴한 가래 끓는 소리, 뭇짐승의 울부짖음이 뒤범벅되어 푹푹 빠지는 개흙이 들썩거렸다.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는 이곳 배틀 필드에서는 아주 흔한 풍경이다.

무엇이 흔한 풍경이냐고?

지옥이 현세에 도래(到來)하는 것 같은 이 현장을 말하는 거다.

여기는 인간과 코볼트, 고블린이 뒤섞인 추악한 전장 속이다.


오후 네 시 이 섹터에서 몬스터 웨이브 마지막 회차.

나는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호흡을 붙잡고 몸을 숨기고 있던 갈대밭에서 기어 나왔다.

오른손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어야 했을 검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볼품 사납게 변해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고 삼 회차에 이를 동안 겨우 코볼트 일곱 마리. 그것도 목숨 걸고 잡았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 속 갈대밭에서 몇 시간째 쪼그려 있었더니 쥐 난 종아리가 푸들푸들 떨렸다. 이럴 때 고블린이라도 불쑥 튀어나온다면 개 같은 일이 벌어진다.


동료 아니 인간들과 따로 떨어져 홀로 있을 때 고블린과 조우(遭遇)하면 똥줄 빠지게 개흙을 내달려야 한다.


"제기랄, 제기랄, 개 같은 세상"


분노와 억울함이 공존하여 가쁜 호흡 속에 스며 나오지만 크게 고함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비굴함에 스스로 웃음이 났다.


개 같은 세상 타령하는 내 앞에 정말 개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고블린 두 마리.

멧돼지 같은 송곳니를 반짝이며 확실히 나를 노려보고 있다.

놈의 손에 들린 것은 나무뿌리로 만든 몽둥이다.

저거 한 대라도 스치면 피가 틘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뼈가 부러진다.

이곳에서 그런 상처를 입으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한 마리도 버겁다. 그런데 두 마리.

순간 내 눈동자는 수많은 사고회로 가동으로 끔찍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살고 싶다면 튀어라.


머리통 속에서 울린 메아리는 목소리를 타고 튀어나왔다.


"씨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쏟아 내며 대며 푹푹 빠지는 진흙뻘을 내달렸다.


야생짐승들은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먹잇감을 보면 돌아 버린다. 이 고블린 두 마리도 지금 그런 흥분에 빠져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나를 쫓기 시작했다.


"이봐 누구 없어?"


무섭게 차고 오르는 호흡을 가까스로 누르고 일발 고함을 내질렀다. 주위 원군을 요청하는 꼴사나운 외침이다.


진흙탕 속에서 움직임은 고블린이 한 수 위다. 다부진 체격, 가벼운 몸무게 그리고 야생에서 단련된 근육은 미련한 내 몸뚱이 따위 비교 수준이 아니다.


금세 따라 잡히고 있었다. 놈들은 허공으로 몸뚱이를 휘두르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한창 내달리다 등 뒤가 써늘해 힐긋 돌아봤더니 이미 코앞까지 쫓아왔다.


"제기랄!"


나는 마음을 다잡고 획 뒤돌아섰다. 이렇게 도망쳐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

선공해서 한 놈이라도 상처를 내야 한다.

하지만 놈은 나의 이러한 행동을 예측이라도 한 듯 거칠게 몽둥이를 휘둘러 왔다.


눈앞에서 몽둥이가 휙 지나가며 내 발등 앞 진흙 속에 푹 박혔다.

양 귓등으로 싸늘한 소름이 솟아났지만 그걸 느낄 틈이 없다. 이런 기회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놈은 너무 흥분에 미처 거리를 정확히 재지 못하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놈의 패착은 나에게 천금과 같은 기회로 다가왔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놈의 상체 아무 곳에나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느껴진 감촉. 뭔가 먹먹하고 묵직한 저항감이 검 자루를 쥔 손바닥에 확실히 느껴졌다.

됐다. 내 눈가와 입술을 비집고 회심의 미소가 흘렀다.


-키아악


귓구멍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놈의 가슴에 반쯤 박힌 검을 뽑아냈다. 흙투성이 검에 빨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나왔다.

놈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재차 확인사살을 위해 검을 치켜들었으나 내려찍지는 못했다.

다른 놈이 근접해 몸을 날리듯이 자세를 잡으며 몽둥이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이 진흙에 붙잡히는 바람에 역시 이놈도 사거리 에러가 일으켰다.


-획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 안면에 미풍이 불었다. 근소하게 몽둥이가 비켜나갔다.

녀석은 빠진 발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내 두 다리는 이미 단단히 진흙뻘에 고정된 상태여서 그 자세 그대로 검을 도끼 내려찍듯이 놈의 대가리를 겨냥하고 찍어 내렸다.


-끼약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은 놈의 대가리 깊숙이 박혔다.

코끝으로 피 냄새가 확 풍겼다. 이 냄새는 승자만이 즐길 수 있는 향취다.


쓰러지는 놈의 대가리에서 검을 뽑아는 든 나는 바닥에 엎어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또 다른 놈의 등에 검을 쑤셔 박았다. 확인사살.


재수 좋군. 도망치기 힘들었던 진흙뻘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물론 놈들의 미련한 지능도 한몫했겠지만.

마른 땅이라면 고전했을 터였는데 행운이 넘치게도 너무나 쉽게 고블린 두 마리를 요리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키만 한 고블린은 덩치가 그렇다고 해서 쉽게 얕볼 수 있는 마물은 아니다.

야생으로 단련된 딴딴한 근육은 묵직한 나무뿌리 몽둥이를 쉽게 휘두를 정도다.

그 몽둥이에 두어 번 맞아 본 적이 있으므로 그 무서움을 누구 보다 잘 안다.

물론 헌터 F등급만 돼도 문제는 아니지.

나 같은 등외 규격품들은 목숨을 내걸고 싸워야 하는 존재다.


그렇다. 나란 존재. 흔하디흔한 고블린에게 조차 쫓기는 절망적인 인간이다.

일명 정크 보이. 등외 규격품. 흔한 말로 폐기물이다.


진흙 발로 검에 묻은 피와 진흙을 비벼 털어냈다. 몬스터 웨이브는 다 지나갔다.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갈대밭 속에 몇 시간을 몰래 숨어 있었기에 주변에 동료 아니 다른 정크 보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집결지까지 무사히 가야 한다. 샛길은 피하고 잡초가 우거진 지역을 골라 걸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두 번 보는 장면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거북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벌써 냄새를 맡은 슬라임들이 더덕더덕 시체에 붙어 있다.

저 정크 보이는 머리가 터져 뇌수가 뻘겋게 쏟아져 나와 있다.

흉한 몰골의 죽음이지만 묻어 줄 필요도 없고 사체 수습할 이유도 없다.

슬라임이 깨끗이 소화 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같은 폐기물의 사체를 수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세상에 온 흔적을 깔끔히 지워 주는 슬라임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따름이다.


얼마쯤 수풀을 헤쳐나가자 드문드문 살아서 복귀하는 정크 보이들이 보였다.

오늘 하루도 어찌 어찌해 목숨을 부지했다.



***



이모탈 시티 외각. 도시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방어진지 서쪽 3 섹터.

도시의 부산물이라 봤자. 널브러진 폐자재를 쌓아 만든 대 몬스터 방어진지였다.

정크 보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우리의 거주지이기도 하다.


"이 새끼 또 죽지 않고 살아왔냐? 야 138번"


다 식은 옥수수죽과 삶은 감자 두 덩이를 받아가는 나를 보고 푸줏간 주인이 외쳤다.

멍한 시선으로 그놈을 올려 봤다.

정크 보이를 감독하는 조교 중 한 명이다.

한정학. 42세. 헌터 F등급. 능력 물질계 신체 강화형. 정크 보이 관리 감독 조교.

별명 푸줏간 주인.

전형적인 꼰대 기질이 얼굴에 다분한 인간형이다.


"씨발, 좀 뒈지지 그러냐? 밑에 애들 보기 미안하지 않냐 이제?"


폐품은 빨리 처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폐품이 들어올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게 한정학의 신조다.

정크 보이를 지옥 속으로 갈아 넣는 놈이다. 그래서 별명이 푸줏간 주인이다.

한정학은 그 별명을 알고 있으며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하는 변태 새끼다.

놈은 폐자재로 쌓은 언덕 위에서 썩은 시체 보듯 나를 내려다봤다.

난 썩은 동태 눈깔로 대응했다.

만에 하나 개기는 눈빛을 했다가는 놈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날아들 수 있다.


"김 조교. 개목걸이 체크 끝났냐? 오늘 몇 명 죽었어?"

"138명"

"어? 138명? 씨바, 야 138번 네 번호만큼 뒈졌네. 넌 뭔 재주로 매번 살아오냐?"


대답 없이 묵묵히 구석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언제 먹어도 물리는 더럽게 맛없는 삶은 감자를 입안에 처넣었다.


138번이 나의 넘버다. 정크 보이는 이름을 가지지 못한다.

그저 죄수복을 닮은 국방색의 군복 앞뒤로 넘버가 큼직하게 박여 있어 서로 이름을 외거나 하는 불편 없이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그리고 생사를 확인하고 코인 저장용 개목걸이 하나가 유일한 소유물이다.


정크 보이는 이모탈 시티 외곽을 경비하는 좋게 말하면 도시 최외곽을 사수하는 경비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모탈 시티의 이면에서 보면 식량만 축내는 쓸모없는 폐기물이다. 헌터 F등급에도 한창 못 미치는 무능한 폐품들.


개성이 각성한 자이긴 하지만 무개성과 같은 등급의 인류. 그것이 우리다.

각성자, 뉴타입 휴먼, 울트라 호모 사피엔스라 칭하는 부류에서 도태된 자들.

철저한 능력제 사회에서 가장 말단인 무개성자 보다 더 한 취급을 받는 자들

이모탈 도시 운영에 있어 전혀 필요가 없는 인적 자원이다.


개성은 각성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개성을 받은 자들.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들.

그런 쓰레기들을 모아 집단 운영하는 곳이 도시 외곽 방어진지다.

한 달에 두세 번 많게는 한 주에 한 번꼴로 있는 몬스터 웨이브를 방어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몬스터 웨이브라고 해서 딱히 도시에 큰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F등급의 헌터 몇 부대만 투입해도 사망자 없이 충분히 막아 내는 수준이다.

웨이브라고 해도 기껏 몰려오는 수준은 쥐새끼 코볼트 수백 마리에 몽둥이 든 고블린 떼거지가 대부분이다.

간혹 오크 몇 마리 섞여 있는 예도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문 편이다.

코볼트와 고블린은 다른 종이라도 같이 뭉치는데 거리낌이 없지만, 오크는 타 종족에 대한 배척이 강해 잘 뭉치지 않는다.


그런 몬스터 웨이브지만 정크 보이는 몬스터와 싸우다 전사 아니 갈려 나가는 것이 태반이다. 도시에서는 쓸모없는 정크 보이를 처리하기 위해 섹터 별 방어진지를 운영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지옥 속에서 2년을 죽지 않고 버텼다. 2년 생존확률은 내 기수 대비 10% 미만이다.

그러니 정크 보이를 관리하는 조교들은 우리를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이름도 없고 단지 넘버로만 불리며 내일이 없는 자들.


허겁지겁 삶은 감자와 멀건 옥수수죽을 들이켠 나는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아직 마르지 않는 진흙 따위 털어낼 신경도 쓰지도 않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웠다.

2년 동안 단 한 번도 씻어 본 적이 없다.


15살에 강제 개성 각성을 강요당했고 결과 신체 강화형 능력을 각성했다. 하지만 기대 이하였다. 결국, 최종 정크 보이로 낙인 찍히며 섹터 삼으로 끌려 왔다.


물질계인 신체 강화형이라고 해도 근육과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자가 있지만 아무런 쓸데없이 세균 면역이라든지 병원균 면역, 이따위 것도 나온다는 것이다.


내가 씻지 않고 2년 동안 똥통 속을 뒹굴어도 세균 감염 하나 없고 감기 한번 안 앓은 것은 바로 내가 각성한 개성인 면역강화 때문이다.


전투에는 하등 쓸모없는···.


하지만 이곳에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흔한 코볼트의 이빨이나 손톱에 상처가 나면 즉시 곪게 된다.

정크 보이를 위한 치유는 없다.

고통 속에 신음하다 뒤지면 시체 트럭이 수거해 섹터 외곽에 버린다.

그러면 슬라임이 깔끔하게 처리해 준다.


드러누워 망상을 즐기고 있을 때 짜증 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붙어 있지 마라. 둘 다 내일 아침 점호 때 매달리고 싶지 않거든."


슬쩍 고개 들어 보니 엉켜 있는 남녀 두 사람을 보고 235번이 심드렁하게 외친 거였다.


돌연한 소리에 붙어 있던 남녀는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웃기지도 않는다.

정크 보이는 남녀 구분이 없다. 남녀 비슷한 비율로 들어오긴 하지만 몇 달 안에 갈려 나가는 것은 나약한 여성이 먼저다.

웃기지도 않은 이유가 배틀 필드에 올라서면 여자 챙겨줄 여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교 몰래 물고 빨고 해봤자 필드 위에서는 손잡고 달릴 수 없다는 거다.

성관계하다 조교에게 들키면 매달린다. 교수형이란 소리다.


정크 보이는 2세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한다. 개성의 대물림 때문이다.

그 자식도 100% 부모 개성을 물려받는다.

폐품이 폐품을 만드는 꼴은 도시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정크 보이 평균 수명은 17세다.

16세에 입영해 잘 버틴다고 해도 2년이 한계치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연애 한번 하겠다고 간혹 죽음의 사다리를 타고 있는 커플도 있으나 잘못하면 시범 사례로 언제든 아침 점호 때 매달리게 된다.


참 도망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물론 도망가는 수도 적지 않다. 다만 생존확률은 제로다.

이 세계가 이렇게 된 것은···.


235번이 또 내 망상의 즐거움을 끊어 낸다.


"너희들 몇 기냐?"

"네? 저희는 98기입니다."

"햐, 98기? 이거 올해 신삥이잖아. 이것들 정신 못 차리고 있네."


정크 보이는 년 단위로 보충된다. 매년 3월.

올해 벌써 98년째라는 소리다.

지금이 4월이니 이놈은 한 달 채 안 된 신선한 것들이다.

등 번호 461번과 466의 여자아이.


"신삥치고는 많이 가깝네. 너 신의 아이들 때부터 아는 사이냐?"

"네."

"어쩐지 찰싹 붙어 있더라니. 임마 니 여자친구 절대 못 지킨다. 내가 조언해주랴?"

"네, 넵?"

"동반 자살해. 최고의 조언이다. 이게."

"···!"

"아니면 괜히 붙어 있지 마라. 조교 눈에 띄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고 보니 자살률도 엄청나다. 매일 아침 점호가 끝나고 꼭 시체 수거 트럭이 들어오곤 한다.


"아, 죽으려면 곱게 죽어야 한다. 똥오줌 다 싸 갈기고 죽으면 치우는 사람 고역이거든."


낄낄거리는 235번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망상에 잡힌다.


신의 아이들이라···.

길드 소유 공동 탁아소, 보육원의 거창한 이름이다.

개성이 발현되기 전 6세에서 15세까지의 아동을 모아 놓은 집단 사육 시설이다.

미성년이 끝나고 성년 기념일인 15세에 개성 각성이 없는 자들은 모두 강제 개성 각성 시술을 받는다.


물론 그 이전에 개성이 발현되면 즉시 길드에 섭외 당하기도 하며 각 해당 길드마다 추첨을 통해 각성자를 배당받기도 한다. 소위 천재들이란 소리다. 일찍 발현되는 개성은 그만큼 무섭고 진절머리나게 강하다.


15세를 넘길 때까지 개성이 발현되지 않는 자들은 강제 각성을 받게 된다.

신의 아이들 소속 70%가 대부분 강제 각성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F등급 이상은 50% 내외고 나머지는 모두 쓸데없거나 너무 미약한 각성 때문에 폐품 취급받게 된다.


알짜배기 다 건져내고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엑기스 한 방울까지 다 빼버린 후 남은 찌꺼기가 정크 보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터널 엘리시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4 추적은 추적을 낳는다. +12 19.07.06 5,758 123 13쪽
93 신이 되려는 자 +16 19.07.05 5,718 129 14쪽
92 박해진과 김창운 +12 19.07.04 5,703 122 15쪽
91 스킬 카피너 +16 19.07.03 5,691 122 14쪽
90 추적(2) +10 19.07.02 5,800 124 14쪽
89 추적(1) +12 19.07.01 5,898 122 13쪽
88 카피너 +4 19.06.29 6,155 134 13쪽
87 시크릿 나이트 +8 19.06.28 6,143 126 13쪽
86 부당거래(11) +10 19.06.27 6,017 126 13쪽
85 부당거래(10) +12 19.06.26 5,976 142 14쪽
84 부당거래(9) +10 19.06.25 6,130 138 15쪽
83 부당거래(8) +8 19.06.24 6,407 137 14쪽
82 부당거래(7) +19 19.06.22 6,409 146 13쪽
81 부당거래(6) +12 19.06.21 6,404 148 13쪽
80 부당거래(5) +26 19.06.20 6,537 146 14쪽
79 부당거래(4) +7 19.06.19 6,585 148 13쪽
78 부당거래(3) +10 19.06.18 6,549 145 13쪽
77 부당거래(2) +6 19.06.17 6,694 143 13쪽
76 부당거래(1) +14 19.06.15 6,825 148 13쪽
75 김영좌 소령 +9 19.06.14 7,054 150 13쪽
74 밤의 사냥꾼(2) +7 19.06.13 7,050 137 14쪽
73 밤의 사냥꾼(1) +16 19.06.12 7,152 150 14쪽
72 리턴 오브 스피링 +18 19.06.11 7,307 163 13쪽
71 쉐도우 이펙트(2) +14 19.06.10 7,426 161 14쪽
70 세도우 이펙트(1) +8 19.06.08 7,521 165 13쪽
69 독대 +6 19.06.07 8,117 162 13쪽
68 거래 +20 19.06.06 7,935 157 13쪽
67 매드 사이언티스트 +12 19.06.05 7,766 166 13쪽
66 실험체 X +8 19.06.04 7,888 164 13쪽
65 천성임 +8 19.06.03 7,939 164 13쪽
64 아티팩트 +17 19.06.01 8,042 177 13쪽
63 고트맨 +16 19.05.31 8,075 182 13쪽
62 스내치 +10 19.05.30 8,313 180 12쪽
61 데몬의 던전 +8 19.05.29 8,817 186 13쪽
60 겨울의 길목 +17 19.05.28 8,709 182 14쪽
59 문정 vs 동혁 +22 19.05.27 8,713 188 13쪽
58 마인은 마인인가? +10 19.05.25 8,773 185 14쪽
57 엘리엄의 문고 +12 19.05.24 8,842 190 12쪽
56 언노운 +17 19.05.23 9,017 191 13쪽
55 C 레벨 던전(2) +19 19.05.22 9,158 180 13쪽
54 C 레벨 던전(1) +6 19.05.21 9,269 195 14쪽
53 엘리시움의 씨앗 +7 19.05.20 9,127 199 13쪽
52 악마는 항상 내 주변에 있다 +14 19.05.18 9,009 191 13쪽
51 악마 vs 악마 +5 19.05.17 9,039 189 13쪽
50 첫 번째 속삭임 +8 19.05.16 9,235 195 12쪽
49 대면 +11 19.05.15 9,366 181 12쪽
48 마인을 보는 아이 +17 19.05.14 9,357 217 12쪽
47 외통수(2) +15 19.05.13 9,212 214 13쪽
46 외통수(1) +21 19.05.11 9,351 213 13쪽
45 아이템 강화 +14 19.05.10 9,735 224 15쪽
44 창원 던전(3) +16 19.05.09 9,513 215 13쪽
43 창원 던전(2) +9 19.05.08 9,525 205 13쪽
42 창원 던전(1) +14 19.05.07 9,966 220 13쪽
41 자유 시간 +32 19.05.06 9,871 214 15쪽
40 마인 +31 19.05.05 9,856 221 14쪽
39 미래 뉴스 +26 19.05.04 10,068 218 13쪽
38 헌터 아카데미(6) +9 19.05.03 9,984 204 14쪽
37 헌터 아카데미(5) +22 19.05.02 9,907 202 12쪽
36 헌터 아카데미(4) +19 19.05.01 10,031 211 14쪽
35 헌터 아카데미(3) +18 19.04.30 9,980 204 13쪽
34 헌터 아카데미(2) +6 19.04.29 10,169 215 14쪽
33 헌터 아카데미(1) +23 19.04.28 10,455 220 14쪽
32 12월의 마지막 주 +26 19.04.27 10,311 218 14쪽
31 주두(柱頭)의 십자가 +10 19.04.26 10,387 218 13쪽
30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3) +30 19.04.25 10,411 226 14쪽
29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2) +21 19.04.24 10,589 219 13쪽
28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다(1) +26 19.04.23 10,784 231 15쪽
27 줄다리기(?) +11 19.04.22 10,660 229 14쪽
26 히든 몹 +10 19.04.21 10,700 221 13쪽
25 D 레벨 던전 +23 19.04.20 11,055 222 16쪽
24 아이템 감정사(2) +31 19.04.19 11,219 230 13쪽
23 아이템 감정사(1) +30 19.04.18 11,367 223 16쪽
22 소문난 떡집(2) +25 19.04.17 11,414 236 15쪽
21 소문난 떡집(1) +16 19.04.16 11,582 237 14쪽
20 던전 초출(2) +21 19.04.15 11,697 248 13쪽
19 던전 초출(1) +26 19.04.14 11,833 240 15쪽
18 헌터 아카데미 입소 +22 19.04.13 12,273 236 14쪽
17 불사(不死)의 회람(回覽) 길드 가입 +19 19.04.12 12,237 252 14쪽
16 지루한 대기(待機) +15 19.04.11 12,269 240 13쪽
15 섹터 3(2) +25 19.04.10 12,363 248 14쪽
14 섹터 3(1) +32 19.04.09 12,493 260 13쪽
13 데드 오어 라이브(2) +14 19.04.08 12,612 244 13쪽
12 데드 오어 라이브(1) +29 19.04.07 12,554 226 12쪽
11 히든 던전 +11 19.04.06 12,718 249 15쪽
10 체력단련 +14 19.04.05 12,735 248 16쪽
9 정찰과 사냥(2) +8 19.04.04 12,960 235 13쪽
8 정찰과 사냥(1) +15 19.04.03 13,076 237 14쪽
7 언노운(3) +20 19.04.03 13,489 240 14쪽
6 언노운(2) +14 19.04.02 13,700 247 13쪽
5 언노운(1) +14 19.04.02 14,585 250 12쪽
4 정크 보이(3) +24 19.04.01 15,094 218 14쪽
3 정크 보이(2) +26 19.04.01 17,073 259 16쪽
» 정크 보이(1) +27 19.04.01 28,172 269 20쪽
1 프롤로그 +15 19.04.01 32,305 251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