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떡집(1)
다음 날 서창명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나오라고 신신당부하더니 하기야 엘리시움 광석 2개체에 보스 몹까지 잡았으니 며칠 쉬고는 싶겠지!
난 서포트를 신청했으나 아무도 지목해 주지 않아 공치는 신세가 됐다.
이럴 때는 정보관에 들러 또 죽치고 있는 수밖에 없다.
엘리시움 광석 미노핵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모든 정보를 다 뒤졌으나 아예 엘리시움 핵이라는 정보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길드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특급 정보라는 창이 뜨고 불사의 회람 길드에서 뭔가 특보를 발표한다는 소식이 떠 있었다.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사항을 발표할 모양이다.
여러 가지 정보 검색 또 던전 공략 영상을 보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너무 조용한 게 하루하루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정크 보이 시절과는 이질적인 삶이다.
235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내가 만약 이모탈 시티 내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리에 오른다면 정크 보이들을 꼭 구제하겠다고 다짐했다.
사흘째 되던 날 서창명이 모습을 보였다. 나는 반가워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나도 사흘 동안 공쳤으니.
그러나 서창명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오늘은 동기끼리 파티가 이미 정해졌다고 아쉬운 소릴 한다. 끼워 줄 수 없냐고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파티 안에 정신계 두 명이나 있다고 난 낄 자리가 없단다.
서창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침 눈에 띄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듯이 입을 손으로 둥그렇게 말고 크게 외쳤다.
"어이 안칠현이 이리 좀 와봐."
"와?"
"너 오늘 혼자가?"
"아니 동료 한 명 대기 중."
"글면 혹시 서포트 필요하나?"
"서포트? 글시 있으면 좋고 없어도 뭐 별반."
"그라면 이 애 데리고 가라. 진짜 서포트 확실하다. 내가 100% 보증한다."
"얘?"
안칠현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기분 나쁜 눈초리는 아니지만 역시 못 미덥다는 느낌은 확실히 느껴진다.
"서포트? 너 레벨이 어떻게 되노?"
"F입니다."
"아니 F가 뭔 서포트고?"
"이 친구 그 있잖아? 길드에서 소문 있던, 친구 정크 보이에서 넘어온."
"아, 아, 그래 그 친구가 이 친구가?"
"그래 사흘 전에 한 번 뛰어 봤는데 정신계로는 B급 수준이다."
"허, B급 참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같이 뛰어 봤다니까."
안칠현이 뒤로 돌아보며 외친다.
"어이 성덕아 우리 서포트 한 명 델꼬 가도 되나?"
"맘대로 하기라."
이 구수한 사투리를 써 대는 사람은 안칠현과 박성덕으로 서창명의 동기생들이라 한다.
둘 다 신체 강화형으로 방패와 검이 주 무기다.
불회 길드 앞에서 구경하다 보면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는 헌터가 있는데 총 따위의 화기류는 상급 애들이 주로 들고 다니고 F나 E급은 대부분 근접전용 투박한 무기가 대부분이다.
총기류는 탄환 대신 에테르를 응축해서 에너지 탄을 발사하는 시스템인데 원거리 공격으로 발군이긴 하지만 역시 너무 비싼 고농축 엘리시움 광석을 써야 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박봉들에는 어림없는 무기류다.
게이트를 타고 김해 던전으로 이동한다. 보면 김해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이트도 많지만, 하급 헌터의 주 무대는 오직 김해 던전이다.
던전의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 F나 E급은 거지는 김해로 모여든다.
"이름이 모꼬?"
"정동혁입니다."
"그래 동혁이, 이야 정크 보이라. 고생 많았겠네."
"아닙니다. 뭐 다 그렇게 사는 거죠."
"허이구 애 늙은이 다 돼버렸네. 나이는 몇이고?"
"올해 19살입니다."
"근데 F 레벨 던전 안 가고 왜 서포트 뛰니?"
"제가 아직 수습이라. 헌터증은 받았는데 아카데미 수료가 안 돼서 못 간답니다."
"아, 그렇지 수료는 해야지."
안칠현과 박성덕도 모두 40대 아저씨다. 서창명의 동기동창으로 하루 밥 벌어 먹고사는 고만고만한 헌터다.
"던전 한 번 뛰어 봤다니까 분위기는 알 거고. 오늘은 좀 빡세게 뛸 건데 괜찮겠나?"
"네, 문제없습니다."
안칠현은 던전 입구에 서서 헌터증으로 체크하고 들어간다. 같이 던전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빨리 들어가려고 서두른다.
빡세게 뛴다는 그 말은 그만큼 위험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크 보이 정도는 아니지만, 이곳도 어떤 돌발변수가 있을지 모르는 환경이다.
아무리 자신의 레벨에 맞는 던전을 돌더라도 위험요소 인자는 항시 주변을 맴돈다.
자기 자신도 모른 체 이승 길 하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번 던전은 입구에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혀 있었다. 저번 서창명과 같이 들어갔던 입구 크기보다 서너 배는 넓은 던전이다.
던전 입구 오픈 시간은 정각 6시.
6시 땡 되자마자 시이렌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린다.
[던전을 스캔합니다]
[던전 맵을 로드 하시겠습니까]
"물론"
눈앞이 확 밝아지고 입체 지도가 형성됐다. 나는 힐긋 안칠현과 박성덕을 바라봤다. 이들을 어떤 길로 이끄는 게 이익을 더 챙길 수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눈앞에 엘리시움 광석 자생 군이 번쩍이고 있으니까. 이 던전에는 총 다섯 군데의 자생 광석이 있다.
"저기, 오늘 길잡이 제가 해도 될까요?"
안칠현과 박성덕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으쓱한다.
"뭐 상관은 없지 않나? 어차피 리셋되서 새로 길 뚫어야 하니까."
"길 찾는 거는 저한테 맡겨 주세요. 확실히 일러 드릴 테니까요."
"하하, 알았다. 오늘은 너한테 맡겨 보지."
됐다. 생각 보다 일이 쉽게 풀린다.
난 언노운이 로드한 맵을 살피고 방향을 잡았다. 이번 던전은 정말 거미줄같이 복잡한 미로형 던전이다.
"오른쪽으로 갑니다."
초반엔 역시 홉고블린 위주로 등장했는데 저번 던전보다 개체 수가 더 많다.
안칠현과 박성덕은 서창명과 마찬가지로 방패로 일단 방어를 그리고 찬스에 검을 휘두르는 방법으로 몹을 격살한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다. 효율 면에서 서는 좋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굳이 힘자랑할 필요 없이 두 사람이 사냥하는 거만 묵묵히 지켜봤다.
한 한 시간 정도 들어가자 슬슬 오크가 한두 마리씩 모습을 보인다.
오크도 탄탄하고 홉고블린과 비교되지 않는 몸뚱이를 가졌지만, 신체 강화형 E급 헌터에게는 크게 위협되지 않았다. 물론 한 마리일 경우의 이야기고 수 마리 이상 뭉쳐 있으면 고생깨나 하며 잡아야 한다.
여덟 마리가 튀어 나와서 난전이 벌어졌는데 서포트를 해야 하는 처지에서 오늘 처음으로 반월륜을 끄집어냈다.
오크의 팔뚝이며 다리며 반월륜에 스치면 여지없이 잘려나갔다.
"크으, 아예 피곤죽을 만들어 놨네. 서포트로서는 완전 대끼리인데."
안칠현은 목이 짤린 오크를 뒤집으며 엘리시움 광석을 빼냈다.
박성덕도 나에게 엄지를 세워 주며 웃어 주었다.
두 사람이 몸짱서고 내가 서포트를 하자 순식간에 진도가 죽 죽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이끈 대로 가다 엘리시움 광석을 발견하고 환장하듯이 달려들었다.
"이 던전이 이리 쉬운 던전이 아니었는데 이거 완전히 동혁이 네 능력이 크다."
"창명이 말 듣길 잘했네. 우리끼리 왔으면 아직 반도 못 왔을 낀데···."
그들은 두 번째 엘리시움 광석을 발견하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와, 오늘 진짜 끝내주네. 진도 제대로 뽑고 엘리 자생 2개에 대박 치네 이거."
오전 일과 끝내고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다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이 세 번째 엘리시움 광석을 발견하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복덩일 데리고 왔구나. 진짜네 이거 진국이야."
안칠현과 박성덕은 내가 서포트 하는 거나 길 안내 때문에 대박을 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캔 광석을 삼 분의 일로 쪼개더니 하나를 나를 준다.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나는 일당 번 거다. 광석 삼 분의 일이 어디냐? 이거 흡수하면 한동안 움직이는데 걱정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또다시 내 맵에 로밍 보스 몹이 점등된다. 거의 가까이 왔다. 이놈도 잡을 수 있을까?
"여기 보스 몹은 어느 정도입니까? 두 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둘은 힘이 부치지. 가만 동혁이 네가 확실히 서포트 해 주면 어찌해 볼만 할 낀데 어디 보스몹이라도 발견했나?"
"아마도 저쪽 길로 가면 만날 거 같아서요?"
"그래? 신기하네! 우째 그리 잘아노?"
"하하, 제가 약간의 초능력이 있나 봅니다."
"성덕아 어때 할까? 도전해 볼까 아니면 접을까?"
"오늘 대박 쳤는데 무리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까. 뭐. 일단 그리로 가보자 있으면 싸워 보고 없으면 뭐 어쩔 수 없고."
코너를 돌고 얼마 가지 않아 그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보스 몹과 만났다.
오크 마스터라고 언노운이 알려 왔다. 돌진과 두 주먹을 맞잡고 풍차 돌 듯이 회전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유닉 몬스터다.
안칠현과 박성덕이 조금 긴장하며 무기를 뽑고 맞붙었다. 상당하다. 오크 마스터는 헌터 E 레 레벨급의 능력을 지녔고 그 신체 능력이 강화 능력을 지닌 헌터보다 살짝 웃도는 느낌이었다.
뭐 그렇다 해도 내겐 반월륜이 있었다. 이 사기 스킬은 금세 오크 마스터의 주요 관절을 잘라 냈고 안칠현이 심장에도 일격을 박아 넣으면서 공략이 싱겁게 끝나 버렸다.
막 안칠현이 오크의 심장에서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오크 마스터 막타 확인되었습니다. 드랍템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행운력을 올리시겠습니까? 현재 에테르 +1760포인트 사용 가능]
"그래? 그럼 500포인트만 사용해봐"
[행운력 +503포인트 할당되었습니다]
"으차, 하하, 동혁이 있으니 이놈도 거저네 거져."
안칠현이 막 심장에 박은 검을 뽑아냈다.
박성덕이 검을 검집에 넣고 오크 마스터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검이네? 화 좋다. 날이 잘 서 있어."
"오, 검이 다 나오네. 오크 마스터가 검을 드랍한 적이 있었나? 신기하네."
"잠깐 여기 하나 더 있다."
박성덕이 꺼낸 것은 손목과 팔뚝을 덮을 수 있도록 팔목에 착용하는 방어구인 건틀렛이었다.
"어라? 어라? 이거 셋템이네. 셋템!"
"뭐라꼬? 진짜가?"
두 사람이 EEA로 장비 체크를 해 보더니 탄성을 지른다.
"오크 마스터의 검과 건틀릿이다. 셋트 효과가 체력 +300, 근력 +30 보정인데"
헐, 내 체력이 지금 380인데 이거 두 개 차면 단번에 680이 돼버리네.
"이야. 진짜 오늘 도대체 무슨 날이고? 한 개도 뱉어내기 힘든데 한 번에 2개를 동시에 뱉어낸다고?"
난 조금 성급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몬스터 드랍률을 올린 것은 언노운이다. 내 소유 에테르 500이나 소비해서 드랍률 높여 놓았는데 정작 드랍템은 안칠현이 가진다.
서운한 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난 서포트로 왔으니 뭐라 말하지도 못한다.
괜히 에테르 500이나 날렸다.
그날도 4시까지 빡빡하게 사냥하다 던전을 나왔다.
안칠현하고 박성덕은 나에게 고맙다며 중 하급이 섞인 광석을 더 줬다. 흡수하면 행운력 사용한다고 쓴 500은 금방 보충하고도 남을 양이다.
불회 길드 게이트에 도착하니 5시 가까이 되어 간다. 두 사람은 오늘 습득한 엘리시움 광석 접수하고 장비 정리하고 나왔다.
"동혁아 가자. 올 우리 대박 쳤는데 너 어찌 그냥 보내겠냐. 술 한잔 사줄게. 너 삼겹살 무봤나?"
난 삼겹살이란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처음 여기 온 날 김동우가 사준 눈물의 삼겹살 맛이 떠올랐다.
"사주심. 감사하지요."
"그래, 가자. 하하."
난 두 아저씨를 따라 삼겹살집에 들어갔다. 우오. 냄새만 맡아도 그냥. 입에서 침이 질질 고인다.
내가 고기를 굽는 사이 두 아저씨는 벌써 술잔을 오고 가며 '캬'하는 감탄사를 뽑아냈다.
"니도 한잔해라."
나는 공손히 술 한잔 받아서 입에 틀어넣었다.
오메 왔따리. 크, 죽인다. 안주로 삼겹살 한 점. 크아, 크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크, 진짜 일 빡세게 하고 소주 한잔에 삼겹살은 세상 시름이 그냥 잊히는 것 같다.
정크 보이 때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아저씨 칭찬받아 가며 한 잔씩 따라 주는 소주의 맛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삼겹살아, 삼겹살아 이제부터 너 없으면 무슨 낙으로 세상사냐.
배 빵빵하게 먹고 입가심으로 담배 한 대씩 쭉 땡기는 아저씨를 보니 이곳이 세상 사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다 들더라.
"니도 한 대 해 볼래? 자고로 식후불연초는 장생불로초라고 하는 거라."
"네. 넵"
엉겁결에 담해 한 대 받아 들었지만 처음 피워 보는 거라 조금 어색했다.
한 모금 땡겨 보니 메케한 냄새에 텁텁한 연기가 기도를 훅 때린다.
내가 쿨럭쿨럭 기침을 해되자 두 사람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니도 헌터 생활 이제 시작할 건데. 한번 해봐라. 담배 없시면 뭔 재미로 세상사나 할끼다. 몹 한 무리 때리 잡고 한 대 피우는 맛에 사냥한다고 하는 놈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날 저녁 나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정크 보이 3년 동안 악몽만 꿨는데 이런 행복한 꿈은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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