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5)
나는 잽싸게 환기통의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었다. 옥상에 올라온 경비병 두 명은 주변을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녀석들 경비가 아니라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에 올라온 것이다. 내부 영상이 끊겼다.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살짝 조바심이 났다.
마인인 것 같으면서도 마인이 아닌 검은 슈트의 사내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저 둘을 제압할 수도 있으나 발각되면 곤란해진다. 녀석들에게서 아직 알아내야 할 정보가 부족하다.
들어 보니 내가 가진 서류도 놈들에게 치명상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짧은 시기에 놈들은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듯 보였다.
그때 건물의 정문으로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한 대의 차량이 들어왔다. 담배를 물고 잡담을 하던 녀석들이 담배를 던지고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나는 다시 영상 화면을 틀었다.
세 사람. 허장우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뒤 한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봤을까 눈에 익다.
"어이쿠, 어려운 걸음 하셨소 진필현 부사장"
진필현? 저 사람 불사의 회람 길드 부사장이다. 일전 마인 사건으로 길드 고위급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불회의 부사장이다.
정말 큰 물건 하나가 낚여 들었다.
"요즘 분위기가 그렇지 않습니까? 함부로 나돌아다니기에 위험한 시절이죠. 그래 부탁한 일은 어찌 잘 처리되었습니까?"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건은 이미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임테의 머저리 박사들이 눈치채기 전에 도착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보안도 철저히 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걸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저희 쪽 전투 요원을 상당수 잃을 만큼 말이죠."
진필현은 검은 소파에 앉아 있는 문상길을 내려다봤다.
"의원님은 요즘 골치 아픈 일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골치 아플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사업하다 보면 비 오는 날도 있지요. 일 년 내내 햇볕이 쨍쨍한 날만 있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것 또한 사대 길드 힘의 균형을 바꿀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저희 회장님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이번 일이 세상으로 터지면 저희는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문상실의 안색이 꺼림칙하게 변했다.
"꼬리 자르기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라도 무시했다가 연못의 물을 흙탕물로 만드는 걸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때 검은 슈트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오신 김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최우신씨 무슨 일입니까?"
"한 사람의 눈을 좀 막아 줬으면 해서요."
"그게 누구요?"
"파인드 아이라 불리는 친구요."
"파인드 아이? 그 사람은 요즘 임테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임테에서요? 그것 골치 아프게 됐네요. 하필 임테라니."
"이번 일에 파인드 아이가 무슨 관계입니까?"
"관계라기보다 녀석의 두 눈을 봉쇄할 필요가 있는 일이 있어서요. 도시에 사냥개를 좀 풀어야 하는데 주십에서 당장 파인드 아이를 이용할 게 뻔합니다."
"사냥개? 그걸 사용할 정도로 급한 일입니까?"
"데드 페이스라는 사냥감을 잡아 죽이려면 사냥개뿐입니다."
"알아는 보겠습니다. 장담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웬만하면 소리소문없이 처리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데드 페이스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사람입니까?"
"그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습니다. 저는 혹 네크로폴리탄의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검은 슈트가 한 발짝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이쪽으로 나선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큰 불문율을 깨고 나올 만큼 간 큰 인간도 없습니다."
노상군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도 못 미더워서 그런 말을 꺼낸 건 아니야. 놈의 실력이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 서고 있어서 하는 말이네. 강길식이 그 친구 난다 긴다 하는 A급 헌터일세 이 바닥에서 싸움 경험도 많고 잔뼈가 굵은 사람이야. 그 강실식의 목을 간단히 꺾어 버렸어. 그건 S급 레벨도 하기 힘든 짓이라고."
"임테 소문이 좀 나돌더군요. 인간병기니 뭐니 하면서 일전에 사고도 있었고 내 그쪽을 한번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사장님이 중간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괜한 염려만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죄송스러운 만큼 일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눈도 있고 하니 일찍 자리를 뜨겠습니다."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진필현이 나가고 나자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가 그 말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이곳까지 왔다는 게 의문이다. 그는 분명히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입을 다문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바쁠 때 웬 거지 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애를 먹이는지 모르겠구먼."
"사냥개를 풀까요? 주십의 신부들이 바로 눈치챌 듯한데."
"진퇴양난이구나."
문상길이 와인을 다 비우고 일어섰다.
"그쪽에서 안 나타나면 나타나도록 만들면 되지 않겠소?"
"무슨 좋은 대안이라도 있습니까?"
"소문을 흘리는 거지. 녀석이 물기에 좋은 소문 말이요."
"사냥꾼의 활동 폭을 좁히면 되지 않겠소. 그러면 신부의 눈도 최대한 피할 수 있고."
"그럼 이번 일 한 번 맡아 보시겠습니까?"
"성공하면 이번에 말 많은 GHB 완전히 넘기시겠소?"
"그건 뒤에 논의하기로 합시다. 박사들 그거 안 좋은 쪽으로 나간다고 하면 물량 바로 끊을 수 있어요. 함부로 손을 댈만한 곳이 아닙니다."
"제길, 그놈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꼬여 가는 것 같소. 나도 이만 일어서리다."
문상길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실제로 내가 일으킨 파장이 여러 곳으로 튀었고 생각보다 큰 거물들이 일일이 미끼를 물고 나오고 있다.
나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거대한 고름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걸 혼자 짜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살짝 났다.
뒤 세계의 어둠은 생각보다 진하고 탁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말이다.
난 임페에서 들고 온 화염 수류탄을 하나 까서 환풍기에 처넣었다. 내일 뉴스에 기사가 실리도록 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다. 내가 한 일이 미래에 그대로 일어나게 하려면 언노운이 말한 타임라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내 미래를 쫓아가야 한다.
나는 미래에 내가 한 짓을 그대로 흉내 내며 따라간다. 이것 우습지만, 생각외로 재미있기도 했다. 미래에 일어난 일을 죄다 꿰고 있다는 것은 녀석들이 아무리 발버둥 처 봐야 내 손바닥 안이라는 이야기다. 언노운 도대체 너란 녀석은···.
이제부터 정보 전쟁이 된 거다. 누가 더 빨리 정보를 습득해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언노운은 의식적인지 아니면 정말 록다운 때문이지 이틀 상간의 미래만 보여준다.
더 먼 미래의 일은 모조리 록다운 됐다는 말을 계속 반복할 뿐이다.
아침 뉴스에서 노상군 중장의 저택에서 커다란 불이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동네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화면에서 불타는 저택과 피신하는 노상군 중장의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불회의 부사장 진필현 놈은 과연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까?
어느 선까지 부정의 고리가 얽혀 있을까?
어쩌면 불회 길드 자체가 부정의 꼭대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나는 사대 길드 중 하나와 정면으로 싸우는 꼴이다.
물론 내 추측이지만 꼬여진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가장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기로 했다.
그 대상은 사문위원회와 직접 얽힌 놈들부터 추려 나가는 것이다.
이제 게이트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게이트로 이동하면 사용 내용이 모조리 전산망을 통해 공유된다. 전상망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위군에 나의 위치가 항시 표시될 것이다.
그들은 파인드 아이인 나의 위치를 항상 주목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 시내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정문의 다리밖에 없다. 물론 이곳도 출입을 검사하긴 하지만 어둠과 약간의 민첩성만 주어진다면 들키지 않고 건널 수 있다.
언노운이 민첩성을 강화해주자 이 정도 다리는 몇 초안에 주파할 수 있었다. 오늘 나선 것은 대량 유통되기 직전의 GHB를 불태우기 위해서다.
강길식이 죽고 난 다음 그가 관리하던 모든 GHB를 한곳의 물류 창고에 쓸어 담아 두었다. 그 건물은 철두철미하게 보안이 유지 되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떠들어 댄 것이 사문위원회의 소속 상원 물류의 합병 개통식이 있어 주변 인사를 초청한다는 뉴스였다.
강길식이 죽고 사문위원회에서는 발 빠르게 상원 물류를 인수하고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물류 센터의 오픈을 알렸다. 그곳은 이모탈 시티의 외곽 어느 한곳에 자리 잡았고 임테에서 출발한 GHB가 처음으로 입고 됐다.
이 물류 센터를 관리하는 것은 방위군 산하 2사단 2대대에서 맡았다. 대대장은 보란 듯이 허장우 대령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대 놓고 광고하고 있었다. 손님이면 언제든 찾아오란 듯이 말이다.
오늘 밤 내가 들른 곳은 그들이 대 놓고 광고했던 물류 센터가 아니다.
이곳은 도시의 남서쪽 외곽지역으로 이모탈 시티의 고물상들이 집결한 대규모 집화장이 있는 곳이다.
가로등 불 이외에는 불빛도 없고 골목길은 텅 비어 있어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쪽 동네가 원래 밤이 되면 적막하게 변하는 곳으로 유명한 동네다.
고물상 집화장 외에 다른 건물은 아예 없다. 무각성자의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무는 동네다. 날이 저물면 모든 인원이 빠지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자아낸다.
가로등 불빛보다 더 밝은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전방 어둠을 갈라 낸다. 수 톤의 화물차량은 뒤 칸 짐을 가득 실은 채로 야적장을 지나 한 건물 앞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셔터가 열리고 안에서 작업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화물트럭이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자 다시 셔터가 내려졌다.
번쩍이는 신물류 창고와는 대조적으로 낡고 곧 무너질 것 같은 철근 기둥이 비명을 질러대는 곳이다. 낡은 고철의 철 가루 냄새가 확 풍겨온다.
나는 물류 창고 천장의 H빔 아래 올라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물건이다."
화물차의 포장이 벗겨지고 GHB란 표식이 분명히 새겨진 상자가 모습을 보였다. 지게차가 화물을 들어 한 곳에 하차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상원 물류에서 관리하던 모든 GHB가 모인 곳이다. 녀석들은 나를 유인하기 위해 가짜 물류 센터를 오픈하고 그쪽으로 모든 인력을 동원했고 실제는 이곳에 GHB를 감추고 있었다.
여기 모인 것들은 상원 물류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이 파괴될 경우 사문위원회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안쪽 인원은 모두 해봐야 30여 명 정도
나는 쌓인 GHB 상자 위로 뛰어내렸다. 양손에서 화염 수류탄의 안전핀이 날아가고 있었다.
임테에서 대 몬스터용으로 연구 중인 시제품이다. 효과는 막강하다.
굉음과 함께 GHB 상자 위로 불덩이가 치솟았다. 순식간에 물류 센터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내 모습을 봤다. 악마의 가면을.
"데드 페이스다. 데드 페이스!"
놈들이 악을 쓰며 덤벼든다. 왜일까? 내 전투력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악은 악으로"
악마의 설교가 시작된다. 눈앞에 보이는 한 놈의 모가지를 꺾은 것을 시작으로 질펀한 설교의 한마당이 펼쳐졌다.
쓸데없는 살인은 피하는 주의였지만 이곳의 어둠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 것이 이놈들은 이 도시의 어둠조차 좀 먹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밟을 때 지대로 밟지 않으면 또 기어 올라올 것이다. 누구의 명령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내 설교를 들을 자격은 충분하다.
악마의 설교는 죽음과 비례한다.
녀석들은 비명은 지르며 쓰러져 갔다. 부나비처럼 불 속으로 뛰어든다. 어떤 놈은 치사량에 해당하는 GHB를 흡입하고 광전사처럼 돌변하여 달려들었다.
보니 대부분 C, B급 헌터들이다. 그들이 내게 상처를 줄 확률은 안타깝게도 제로다.
내가 손을 멈췄을 때 두 다리로 서 있는 놈은 없었다. 물류 센터는 검을 연기를 치솟으며 불기둥을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어둠 속에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모습을 보며 난 새벽 공기를 들이켜고 있었다.
야적장에서 한 참 떨어진 외딴 건물 옥상에서 화려하게 새벽 공기를 가르고 치솟는 불기둥을 지켜보면서 만족의 웃음에 흘렸다.
[S급 헌터 이상의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두 명의 인간이 있습니다]
"마인인가?"
[알 수 없습니다. 곧장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초당 30m의 속도입니다]
"어떻게 나의 위치를 알고 있지?"
[알 수 없습니다. 방향과 속도를 계산해 보면 정확히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헌터 S급의 속도면 거의 마인에 준하는 녀석들이다.
"혹시? 사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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