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아카데미(6)
"같이 가지"
"제가 왜요?"
"말했잖아. 홉고블린 소환수."
"증거 있으신가요? 무슨 확신으로 절 몰아붙이시죠?"
"같이 가보면 돼."
나는 결국 김영좌의 차를 탔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무조건 오리발 전법으로 나가서 죽어도 나는 모르쇠라고 잡아떼리라 생각했다.
차는 헌터 아카데미가 있는 섬을 벗어나 시내로 달리기 시작했다.
"왜 밖으로 나온 거죠? 아카데미 안에서 해도 될 일을 전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가보면 알아. 널 만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상황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조금 시내 외곽 외진 곳에 있는 건물이었다. 외관에 간판도 아무런 표식도 없는 건물이었다.
김영좌를 따라가면서 내내 불안한 기색이 엄습했다.
늘 경험해 보는 작은방. 출입구 하나. 탁자 하나와 마주 보고 있는 의자 둘. 벌써 이런 곳에 몇 번째 들어오는지.
나는 조용히 누가 들어올지 기다렸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김영좌였다.
그는 내 앞에 털썩 앉더니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아무 말 없이 담배 연기만 뿜어내던 그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김경수 학생이 그러더라 밤마다 훈련하러 간다고."
"네 조깅하러 갑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새벽 1시에 조깅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네가 나간 날에 어김없이 홉고블린이 나타났어. 우연치고는 그렇지 않나?"
"우연이죠. 저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어요."
"길드 조사관들은 너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더군. 위험 요소 인자로 너를 지목했어."
"왜 생사람 잡습니까? 너무들 하시네요."
"후후, 난 베테랑 수사관이야. 너처럼 햇병아리 다루는 방법은 잘 알지 크게 나가 볼까?"
"네?"
"일단 위험 요소로 지목되었으니 헌터 아카데미 퇴소는 물론 24시간 감시 체제가 돌아가는 곳에 감금될 거야. 만약 네가 아카데미에 없는데도 홉고블린이 소환된다면 무죄겠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갇혀 살게 될 거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전 진짜로 홉고블린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홉고블린이 한달 사이 5번이나 나타났어. 네가 여기 있는 동안 홉고블린이 또 소환될지 모르지 그럼 넌 자유니까 당당히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어때 쉽잖아. 잠시 여기서 쉬고 있으라고"
"수업은요. 그동안···"
"어쩔 수 없어. 최대한 홉고블린이 빨리 나오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그럴 수가!"
"근데 말이야.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더 좋은 방법이 있어."
"그게 뭡니까?"
"네가 홉고블린 소환사라고 인정하면 되는 거야."
"길드 고위 관계자들만 알고 너는 아무런 제재 없이 다시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거지."
"홉고블린 소환은 심각한 범죄행위고 말 그대로 위험 요소인데요. 어떻게 그 약속을 믿을 수가 있죠?"
김영좌는 일어나 벽면으로 가더니 손으로 노크하듯 벽을 툭툭 쳐 댔다.
그러자 잠시 후 네 명의 인물이 들어 왔다.
"소개하지 각 길드에서 파견된 이번 사건 조사관들이다."
"네, 안녕들 하세요."
나는 너무 긴장해서 목이 잠겼다. 이 정도까지 나를 몰아붙인 거로 봐서 이들은 이미 홉고블린 소환의 범인을 나로 확정하는 분위기였다.
"불사의 회람 조현우. 이터널 엘리시움의 천상길.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의 주영훈 주두의 십자가 김성진이다."
김영좌가 한 명씩 설명하는데 진짜 이모탈 시티 사대 길드가 다 모였다.
조현우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정동혁 군은 우리 불사 길드원이라서 우리 보호 아래 있는 게 맞습니다."
"주두의 십자가 길드원이기도 하지요. 잊지는 않으셨지요? 보고 받자마자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 간 것을."
"두 사람 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 친구가 아카데미에서 일으킨 사건은 중범죄입니다."
천상길이 두 사람을 제지하며 나를 바라봤다.
"인정하는 거냐?"
"···."
나는 잡아떼서 될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입에서 '내가 범인이오'라고 하기에는 왠지 두려웠다.
"겁먹지 말고. 그럼 내가 말할 테니 잘 들어. 네가 다시는 홉고블린 소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카데미 복귀를 허락해 주지. 물론 또 홉고블린 소환한다면 영원히 퇴학 조치 되고 감금될 거니까 그리 알고."
"중범죄인데 왜 놔 주는 거죠?"
"사건은 해결되는 거고. 인명 피해도 없었고 네가 한 짓은 특정 인물을 선정해서 괴롭히기였지 그를 헤치려 했다는 것은 아니니까. B급 레벨에 홉고블린이면 충분히 상대 된다는 걸 알고 한 짓이지? 그래도 한 번에 40마리는 너무했었다."
"그건 그때 놈들도 네 명이었으니까."
"그럼 인정하는 거네?"
"···."
김영좌는 옆으로 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 이놈 오리발 내미는 거 봐서는 용서해주기 싫은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조현우가 눈에 빚을 반짝 내고 말했다.
"소환 기술은 어떻게 습득했지? 소환물은 홉고블린 말고 또 뭐가 있어?"
"이건 정말입니다. 홉고블린뿐입니다. 아. 아니네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 말에 다섯 사람은 바짝 긴장하고 눈을 크게 떴다.
"식물인데 말입니다. 넝쿨 줄기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덩굴?"
난 바닥에서 넝쿨 줄기를 소환해 냈다. 금세 넝쿨이 자라 나와 다섯 사람의 몸을 칭칭 감았다. 물론 그들은 반항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거 네가 100% 제어 가능한 거지?"
"네"
"그럼 풀어 줄래?"
난 즉시 다섯 명의 몸에 감긴 넝쿨을 풀었다.
주영훈이 단검을 꺼내 넝쿨을 줄기 하나를 잘라 냈다.
"음, 못해도 C급 이상."
"조금 아쉽긴 하네."
"김상현 씨 말대도 재미있는 아이네."
"아, 김상현 주십의 S 레벨 헌터."
"그래 이번 사건도 사실 그분이 전화해서 무마된 거야."
주영훈이 옷에 묻은 잎사귀를 털어 내며 말했다.
"불사하고 주십의 길드원이라 저네들은 어찌 무마한다고 해도 우리 임테하고 이엘 길드는 사정이 좀 달라."
천상길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좀 조사해 봤어. 너 불회 길드 코볼드하고 투쓰 플로그 요리 창안자라면서?"
"정크 보이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신기한 일들을 몸에 달고 다닌다지?"
"너 정크 보이 때 무슨 일이 있었냐?"'
"레벨 개화를 하고 나서 하나둘 뭔가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그게 해보니 진짜로 되더군요."
"그럼 이 모든 능력이 레벨 개화를 해서 이루어졌다는 거냐?"
"네, 그것 말고 달리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음, 이제부터 네게 일어나는 모든 정보는 사대 길드가 협의하에 공동으로 가지기로 했다."
천상길과 주영훈이 각기 주머니에서 길드증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엘 길드하고 임페 길드 길드원증이다. 넌 이모탈 시티 역사 이래 사대 길드 다 가입한 첫 번째 인간이다."
그들은 그 이후로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김영좌가 다시 나를 바래다주었다.
"이제 홉고블린 소환은 하지 마라. 봐 주는 것도 한 번뿐이고 장난도 한두 번이며 족해 여러 번 하면 그게 진짜 범죄야. 그리고 오늘 회담은 비공식적인 거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사대 길드가 항시 너를 주목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보고 해야 해 알겠어?"
"네. 네"
"내 호출 번호도 메모리 시켜놔.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연락을 하라고"
"알겠습니다."
김영좌는 기숙사 앞에 나를 내려 주고 갔다.
기숙사에 올라와서 영수에게 몇 가지 물었다.
영수는 아무렇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묻길래 형이 밤에 운동한다고 말했어요. 그게 뭐 잘못됐나요?"
"아니, 그냥, 하하. 역시나 김영좌가 넘겨짚기 한 건데 내가 옳다구나 하면 덥석 문 거였다. 김영좌 말 그대로 난 아직 그런 면에서 햇병아리였다."
서랍 안에는 길드증이 4개나 들어 있었다. 이 중 한 곳만 들어가도 대박이라고 말하는 사대 길드에 중복 가입이라니.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내가 지금 올바르게 생활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카데미 생활은 절대 없는 평온함이 묻어났다. 그 사건 이후 금동환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이제는 금동환 본인이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어찌 보면 안 돼 보이기도 했다.
아마 김영좌 수사관으로부터 혹독하게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놈의 머리 위에 있는 자들이니까.
김영좌는 15살의 새파란 핏덩이를 어떻게 하면 효율 높게 다스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홀로그램을 상대하는 실전 훈련을 통해 헌터로써 점점 가능성을 보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이 후딱 지나가고 첫 번째 여름 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번 학기를 점검하는 두 번의 필기 평가 고점에서 최상위 만점을 받았다. 역시 2위는 정석우. 석우는 항시 나를 볼 때마다 이기리라 다짐하고 입술을 깨물었던 모양인데.
참 홉고블린 사건이 가장 회자하는 사건으로 우리 학년을 떠돌았는데 결국 범인은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고도 하고 사대 길드에서 범인을 몰래 데려나갔다고도 하고 소문은 한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가 떠났다.
난 우리 반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는데 물론 정석우에게는 견줄 수 없지만, A급도 당황하게 만드는 반월륜, 교사를 능가하는 지식수준. 아이들은 문젯거리가 생기면 교사를 찾는 게 아니라 나를 먼저 찾을 정도였다.
일요일 아카데미를 벗어나 몇 달이나 비운 불회 길드 기숙사에 있는 내 방에 갔다. 오랫동안 비워 놓았기에 청소라도 한번 해 줄 요령이었다.
내가 방문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방 안 공기가 묵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 눈이 크게 떠졌다.
저게 뭐야? 내가 놀라 바라본 것 그건 거대한 엘리시움 덩어리였다.
잠깐 '왜 던전에 있어야 하는 자생 엘리시움이 이곳에 있지'라고 생각했다가 그제야 옛날에 추출한 엘리시움 광석의 미노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녀석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미흡하게 커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냈는데 몇 달 비운 사이 폭풍 성장한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몰라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저번에 사대 길드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내 주변에 뭔가 정보 거리가 있으면 무조건 연락해야 한다고 그 정보는 사대 길드가 공동으로 하겠다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내 욕심이 그걸 앞질렀다. 지금 이 자생 엘리시움의 크기는 던전에서 캤던 것보다 무려 3배는 컸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엘리시움 광석에 손을 댔다.
"3023. 에테르를 흡수해줘."
[자생 엘리시움 광석에서 에테르를 흡수합니다]
내 손을 타고 에테르가 흡수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껏 엘리시움을 흡수하면서 느낌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흡수하는 게 느껴 질정도면 얼마나 많은 에테르를 가졌는지.
[현재 보유 에테르 +125300]
"십이만!"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십이만이라고? 대박이다. 초대박. 내가 아카데미 생활하면서 가장 걱정거리가 바로 에테르였다. 수업을 받으며 반월륜을 사용할 때마다 에테르가 푹푹 닳았다.
아카데미에서 정신 각성자에게 제공하는 에테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반월륜은 말 그대로 에테르를 먹는 괴물이었다.
그런데 십이만이라면 아카데미 1년 정도는 넉넉히 버틸량이었다.
엘리시움 광석의 찬란한 보라색 빛은 완전히 사라져 버려 텅 빈 유리잔처럼 변했다. 그러나 이놈을 그냥 두면 다시 에테르가 차오를 것이다. 무한 에테르 공급원이 된다는 것이다.
사대 길드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두꺼운 커튼을 구매해와 방안의 빛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신경 썼다.
아무래도 엘리시움 광석의 자색 빛이 새어 나가면 문제 될 수도 있으니.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여름 방학이라고 해서 마냥 자유 시간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정석우는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더욱 자기 계발에 집중할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우리 100기 중에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늘 타도 정동혁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카데미 기간 내에 필기시험을 꼭 이겨 보겠다는 거였는데 아마 영원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점을 맞으면 공동 1위가 되는 것이지 나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경수는 어느새 자신의 레벨 동기들 그러니까 F 클래스끼리 훈련한다고 나가 버렸고 혼자 기숙사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여긴 컴퓨터도 없고 혼자 심심해서 언노운과 잡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언노운은 기억의 단편을 지속해서 복구하고 있었다. 올해가 2180년이니 올해에 해당하는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다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이게 뭐지? 아카데미에?"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