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과 사냥(2)
[60%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감히 네임드 몬스터에게 덤비는 일 따위.
손에 쥔 도검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오전에 고블린을 베었던 무사시의 검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검을 잡았던 칼잡이처럼 편하게 느껴졌던 검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60%라는 수치 또한 나의 도전 의욕에 불을 지폈다.
"3023. 강화 모드 발동"
[알겠습니다. 근력 강화. 피부 세포 가압 중합체로 전환, 동체 시력 반응 속도 강화, 민첩 반사 신경 극대화, 에테르 –50 소요. 전투능력 극대화]
선공 필승.
2m라 체고는 크지 않지만, 몸무게가 300kg에 육박하는 초거대 덩치다. 그 덩치에서 대쉬 기술을 사용하니 엄청난 파괴력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한 번 당해본 경험이 있으니 그 기술 하나만큼은 조심해야 한다.
듬직한 뱃살 위로 검을 휘둘렀지만, 워낙 살집이 단단해 무딘 검은 깊은 상처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넝마 남작은 슬레지 해머로 대지를 두들기며 흥분했다.
[대쉬 스킬 사용 정황 포착 2초 후 스킬 발동]
하나, 둘! 나는 둘을 세고 잽싸고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배쉬 스킬을 사용한 넝마 남작은 커다란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고 멈췄다.
나는 넝마 남작의 등 뒤로 잽싸게 붙어 뒤꿈치 관절을 잘라냈다. 아킬레스건을 의도적으로 노린 거다. 내 팔목의 강화력은 넝마 남작의 근육을 끊어낼 만큼 파워를 발휘했다.
"캭, 캭"
징그러운 비명을 지른 넝마 남작은 슬레지 해머를 지켜 들고 무섭게 내려쳤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동작마저 슬로우 모션으로 비쳤다. 동체 반응력이 워낙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첩성의 도움을 받은 나의 팔 근육은 해머가 떨어져 내리기 전에 2합의 검을 떨쳐 냈다. 가슴에서 복부까지 엑스자를 그어 놓았다.
두꺼운 뱃살은 출렁거리며 내장을 보호했다. 검 날이 너무 무뎌 깊숙한 상처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검은 검이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째로 가르면 그뿐이다.
나는 검흔으로 벌어진 비계 덩이 사이로 다시 한번 검을 그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복부가 갈라지고 무언가 울컥 튀어나왔다.
징그러운 창자와 함께 짙고 어두운 썩은 내가 진동했다.
넝마 남작은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핏발이 곤두섰다. 놈은 흉포하게 괴성을 지르며 슬레지 해머를 휘둘렀다. 도저히 맞을 수 없는 느린 속도로 말이다.
그 공포의 넝마 남작이 이 정도였나? 나는 순간 작은 의아심을 가졌다.
검은 슬레지 해머를 든 넝마 남작의 오른팔 관절을 정확히 끊어냈다. 한순간 팔이 힘없이 밑으로 처졌고 슬레지 해머는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승리할 확률 60%짜린가? 100%가 아니었나? 점수가 너무 후했군.
정크 보이 수명이 달라붙어도 이렇다 할 상처하나 못 낸 넝마 남작이다.
지금 내 손에 피곤죽이 되어 가고 있는 이 녀석이 그 녀석이다.
살이 두터워 나는 주요 관절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아킬레스건이 잘려서 대쉬도 사용하지 못했다. 흘러내린 내용물 때문에 움직임이 방해됐다.
결국, 넝마 남작은 비명을 지르며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도망이라니.
땅을 박차고 사뿐히 몸을 띄운 나는 착지하며 넝마 남작의 목덜미에 검을 쑤셔 박았다. 검은 놈의 목을 관통하고 앞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동시에 검을 수평으로 눕히고 좌로 비틀어 베어냈다.
"쿵!"
거대한 덩치는 주인을 잃고 모로 쓰러졌다.
"정말 잡았군. 잡았어."
[적 제압 완료, 강화 모드 수복 모드로 전환]
나는 잠시 사냥감을 내려다보며 승자의 여유를 만끽했다.
넝마 남작의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를 살폈다. 색이 조금 짙은 엘리시움 광석이 2개 나왔다. 그리고 작은 단검 하나.
자색이 짙은 것으로 봐서 최하급보다는 상급의 엘리시움 광석이다.
나는 미련 없이 두 개 다 깔끔하게 흡수했다.
[에테르 충전 +930]
[적 스킬 분석 완료. 대쉬 앤 배쉬 스킬을 카피하겠습니까. 에테르 –100 소비]
"뭐라고? 스킬을 카피한다고?"
[그렇습니다. 에테르 –100을 소비하여 적 스킬을 카피할 수 있습니다]
"미쳤네. 3023 너 완전 만능이잖아."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탐색도 놀라운데 적 스킬 카피까지 가능하다니
"무엇이든 한 번 보면 카피 가능하니?"
[대상의 스킬을 완벽하게 해독 가능할 때만 카피 가능합니다]
"카피하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에테르만 충분하다면 언제든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할 때마다 에테르가 소비됩니다]
"결국, 끊임없이 엘리시움 광석을 보충해 줘야 하는 거군. 카피해봐"
[대쉬 앤 배쉬 스킬 카피 시작합니다. 소요 시간 5분 49초 에테르 -100]
넝마 남작이 들고 있던 슬레지 해머는 상당히 묵직해서 나에게 별 효용성이 없는 무기였기에
수풀 속으로 던져 버렸다.
단검은 무슨 짐승 뼈로 만든 것인가 본데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기념으로 품속에 간직한 후 자리를 벗어났다. 슬슬 날도 저물어 가는 것 같고 본진으로 합류해야 하는 시점일 듯싶었다.
본진이 머문 건물로 돌아와 보니 난리도 아니다.
녀석들은 코볼트 고기의 섭취에 대해 설왕설래 중이었다.
778번 여성과 724번은 확실히 코볼트 고기를 섭취했으니 자신들은 먹었다고 난리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긴가민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주인공 오시네. 확실히 저 녀석이 요리했다고."
724번은 나를 가리키며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진짜냐?"
336번은 아직도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목도했다.
"진짜면 어떻고 아니라면 어떻냐?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왜 그딴 식으로 말하지? 먹을 수 있냐 없느냐를 묻는 거잖아."
"먹을 수 없어."
"그것 봐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677번이 콧방귀를 뀌며 헛웃음을 흘렸다.
"야, 138번. 분명 네가 준 코볼트 고기를 먹었어. 왜 아니라고 하지?"
778번 여자애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죽긴 죽지. 생고기를 먹으면 다만 내가 요리하면 먹을 수 있어."
"거봐, 거보라고 분명히 먹을 수 있다잖아."
724번이 확신 찬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나를 봐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336번은 고개를 꺄우뚱거렸다.
"어떻게 우리도 줄 수 없냐? 꼭 네가 요리를 해야 해?"
"내 개성중 하나다. 다른 사람은 요리할 수 없어."
"개성이라고?"
"그렇다.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개성이라 말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야."
"별 희한한 개성도 있구나. 어떤 개성인데?"
"몬스터 포식자."
"솔직히 기가 막힌 맛이었어. 또 먹고 싶어지는걸!"
724는 엄지를 척 올리며 나에게 찡긋해 보였다.
"우리도 맛볼 수 없을까? 젠장할."
조용히 지켜보던 296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먹고 싶음 코볼트 한 마리와 고블린 한 마리를 사냥해 와 요리는 해 줄 테니."
나는 그리 말하고 방구석에 주저앉았다.
괜히 녀석들에게 언노운의 존재를 자랑삼아 떠들 이유가 없다.
어차피 고기 먹는 것은 들켰으니 개성이라고 대충 거짓말을 해 버렸지만···.
저희끼리 쑥덕댄다. 요는 코볼트와 고블린을 사냥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거다. 몇 놈이 손을 드는 것을 보니 찬반 토론을 벌이는 모양이다.
"정말이지? 코볼트와 고블린을 잡아 오면 요리 해 준다는 거"
"난 빈말 안 한다. 잡아 오기나 해. 여기서 북쪽을 바라보고 10시 방향으로 가면 몇 마리 있을 거다. 아까 오다가 봤어."
"그래, 알았어. 야. 다들 나가자."
8명이 모두 우르르 몰려나갔다. 고기라는 것에 다들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정찰조로 뽑혀 나오는 정크 중 비실이는 없다. 전부 고블린 한두 마리는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녀석들로 최소 몬스터 웨이브 10번 이상은 경험해 본 녀석들이다.
8명 정도면 코볼트와 고블린 수 마리는 정도는 쉽게 사냥할 것이다.
혼자 남게 된 나는 언노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언노운만 잘 이용하면 이 지옥을 벗어날 수도 있겠지. 엘리시움만 충분히 모으면 스킬이나 신체 강화를 조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끌어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일시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한 레벨 개화지 어정쩡한 신체 강화가 아닐 거다.
어쩌다 내게 달라붙은 언노운을 이용하면? 가령 탐색 기술이라든지, 잡다한 지식이라든지 그걸 빌미 삼아 조교를 설득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해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봐야 한다.
넝마 남작의 스킬도 배웠다고는 하나 사용할 때마다 에테르를 소비해야 하는 것 또한 문제점이다. 이건 내 스킬이 아니라 에테르를 소비해 그 힘을 카피하는 스킬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스킬을 카피하더라도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딱히 내세울 것도 못 된다.
아직 뭔가 한참 모자란다. 그건 내 기본 신체가 너무 허약하므로 신체 강화를 하더라도 크게 표시가 안 난다는 거다. 기본 신체를 강화해야 강화를 하더라도 그 파워가 월등히 증가하게 된다. 그것은 언노운이 항상 강조하는 거다.
몇 달, 아니 살아 있는 동안은 신체 강화를 위해 전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찾아온다.
잠시 눈을 감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래층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녀석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봐. 코볼트와 고블린을 구해 왔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미리 봐 놨던 욕조에 고블린의 시체를 옮기고 멱을 따 피를 받았다. 거기다 손질한 코볼트의 고리를 담갔다. 몇몇이 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보고 있지만 별다른 의문점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모닥불이나 피우지?"
336번은 그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뭐라고 건질 게 있냐는 듯이.
나는 얼추 3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욕조에 손을 담그고 주문을 외듯 혼자 쇼를 했다.
336번의 눈이 더욱 크게 떠진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혼자 구시렁거리며 피가 가득 담긴 욕조를 양손으로 휘저었다.
"됐다."
나는 코볼트 고기를 꺼내 고블린의 피를 짜냈다.
"가져가서 구워?"
모닥불에 모여 앉은 8명은 노릇하게 익어가는 코볼트 고기에 정신이 팔렸다.
"근데 코볼트 고기만 먹는데 왜 고블린이 필요하지?"
336번의 질문이다. 놈은 처음부터 나의 행동을 쭉 지켜 보고 있었으니까.
"오묘한 조화가 이루어져야 먹을만한 재료가 탄생하니까."
"흥, 너만 아는 비법이다. 이거냐?"
"나만 알아서 나쁠 건 없지."
"자, 자 그만하고 슬슬 먹어보자고 마침맞게 익었으니."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는 724번이 스스럼없이 한 점 베어 물었다.
778번 여자아이를 제외한 나머지의 눈빛이 모두 724번에 쏠렸다.
"크으, 죽여 주는 맛이다. 이거 정말 환상이다."
그 모습에 다들 고기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이런!"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연발한다. 도대체 고기를 언제 입에 넣어 보았던가?
야들야들한 육질의 향연이 모두를 천국으로 이끄는 중이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아니 코볼트가 이렇게 부드러운 육질이었나? 간도 되어 있어."
"미친 맛이다. 778번과 724번이 환장한 이유를 알겠군, 근데 난 이런 거 처음 보는데?"
336은 아직도 미심쩍은 듯 나를 바라봤다. 이런 능력이 있으면 왜 진작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에게 요리해 줄 정도면 말이다.
"당연히 이 능력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지. 새삼스럽게 뭘 그래?"
"그렇군."
태양은 붉디붉은 빛을 내며 저물어 갔다.
나는 천천히 코볼트 고기를 뜯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고열량의 단백질 보충이다.
저녁을 먹고 다들 자리 잡고 누웠다. 불빛 한 점 없는 곳에서 섣불리 움직여서 안 된다.
코볼트나 고블린의 야간 시력은 정크 보이를 월등히 능가한다.
특히 밤에는 소리가 훨씬 멀리 퍼지기 때문에 주변의 몬스터까지 엮일 수 있다.
야간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히 처박혀 있는 게 목숨 버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은 손님도 있다는 거다.
"어디 가려고?"
"옆 건물"
난 한마디만 던져두고 빠져나왔다.
이곳은 정찰 나온 정크들의 아지트와 같이 사용하는 곳이라 정찰을 많이 뛰었던 애들은 이곳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 아수리 뒷골목 개건달 네 명처럼.
밖에서 잠시 숨죽이고 숨어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네 명의 인영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야밤에 쥐새끼처럼 숨어드는 거냐?"
돌연한 나의 외침에 그림자들이 모두 정지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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