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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반사회성 인격장애 염력왕이 지구정복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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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2.26 15:32
최근연재일 :
2023.06.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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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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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5. 뭐 어때? 친구잖아

DUMMY

* * *


“네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래도 아쉽다. 벌써 6개월이나 같이 일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만둔다니 서운해서 어떡하니.”


“죄송해요. 미리 말씀드리고 사람 구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아니야. 어머니께서 갑자기 그렇게 되실지 누가 알았겠니?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어머니 병간호나 잘 해드려.”


‘엄마 미안.’


아침까지만 해도 1주일의 말미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300억이라는 큰돈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알바로 1주일을 허비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당분간 병간호 한다는 핑계를 댔다.


“감사해요. 지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자주 놀러 올게요.”


선호는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을 짓는 매니저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에구··· 우리 선호 힘든데도 이렇게 활짝 웃는 착한 학생인데··· 이건 얼마 안 되는데 엄마 맛있는 거 사드려.”


사장은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선호 손에 쥐여줬다.


“아, 아니에요. 이러시지 않아도 돼요. 보험 들은 거 있어서 병원비도 걱정 없어요.”


“그래도 내 마음이 그런 게 아니야. 부담 갖지 말고 받아둬. 어허!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어서!”


몇 번의 거절 끝에 선호는 더는 사양하지 못하고 봉투를 받았다. 가게를 나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사장님에게 연거푸 뒤돌아 허리 숙여 인사했다.


“쩝··· 그냥 사람 구할 때까지 할 걸 그랬나?”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들처럼, 동생처럼 챙겨주는 정말 ‘가족’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의 마지막을 거짓말로 마무리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 건 당연했다.


“하아··· 지금 다시 돌아가서 사람 구할 때까지 일한다고 해도 안 써주실 거고, 그렇다고 300억이나 있는데 시급 1만 원도 안 되는 알바를 계속하고 싶지도 않고··· 300억··· 아~ 300억······.”


보물창고에 쌓여있는 300억을 떠올리자 미안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다려라. 내 사랑아. 오빠가 간다!”


택시와 버스를 연달아 타고 한적한 시골길에 내린 선호는 주변을 살폈다. 이따금 지나는 자동차와 밭일에 열중인 노인 몇 명이 있었다.


‘밤까지 기다렸다 날아가면 편한데··· 아니야. 당장 보고 싶은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오빠가 간다. 아가야.”


눈에 띄지 않게 주변을 살피며 숲길에 들어섰다. 사방을 가득 메운 나무 틈 너머로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힘을 집중해 지면에서 살짝 몸을 띄웠다. 곧이어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숲을 헤쳐나갔다.


환하게 불을 밝힌 보물창고 안엔 어제와 똑같은 300억··· 아니, 500만 원 빠진 299억 9천 5백만 원이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와하하! 부자다! 부자야! 나는 부자다!! 하하하!”


다음날도,


“백만장자다! 내가 바로 백만장자야! 아하하하!”


다음날도,


“평생 일 안 해도 된다! 평생 일 안 하고 놀고먹어도 된다고! 하하하.”


또 다음날,


“와~ 300억이다. 300억. 평생 모아도 못 모을 돈이다.”


그리고 또 다음날···


“쩝··· 이제 그만할까? 이 짓도 지겹네.”


돈은 그대로다. 가지고 갔던 500만 원도 도로 가져왔다. 은행에 넣기는 찜찜하고, 현금으로 가지고 있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게다가 알바로 모은 돈이면 당분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처음에만 좋았지 별 의미 없네. 집에 가서 맥주나 마시자.”


* * *


쌍둥이가 다녀간 다음 날부터 바로 수금이 시작됐다. 학생 한 명당 하루 15,000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10만5천 원이었다. 마치 기업이 인수합병 하듯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무서운 놈들 아니냐? 벌써 중간책하고 수금책이 생겼어. X발 난 뭐 수업료 내는 줄 알았다니까. 뭐가 이렇게 자연스럽냐?”


“조폭이 뒤에 있다는 말이 진짜 아냐? 그럼 앞으로 2년 동안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 하나?”


“몰라. 나도 답답해 죽겠다. 그거 아냐? 요즘 그 새끼들 때문에 알바 구하는 애들이 엄청 늘었대. 해도 좀 적당히 해 처먹어야지. 고등학생 용돈으로 그게 가능한 돈이냐고.”


“요즘 같을 땐 차라리 정우가 그립다니까. 그래도 그 새낀 돈은 안 뺏었잖아.”


“내 말이. 철현은 능력자가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정우라면 그 X밥 새끼들처럼 쉽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학교에 능력자 또 없나?”


“두 명 더 있어. 1학년에 벽에 달라붙을 수 있는 짝퉁 스파이더맨이랑, 2학년 잠 안 자는 도깨비.”


“뭐야, 그게? 그게 다야? 싸움 못 해?”


“벽에 붙을 수 있는 능력하고 잠 안 자는 능력으로 무슨 싸움을 하겠냐? 그 새끼들도 참 불쌍하지. 초능력자라고 사람들이 색안경 끼고 보는 것도 서러운데 가진 능력이라곤 그런 쓸데없는 능력뿐이니.”


평범에서 벗어난, 일반적이지 않은 소수는 배제되기 마련이다. 능력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면서 능력자에 대한 인식은 날로 나빠졌다. 그 와중에 직관적으로 장점이 부각되지 못하는 능력은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학생들의 대화 속에 나온 두 능력자가 딱 그 입장이었다.


‘확실히 싸움에 적합한 능력은 아니지만··· 잠을 자지 않고 피로가 회복된다면 엄청난 능력 아닌가? 공부를 해도 남들 몇 배는 할 테고, 일을 해도 최소 남들 두 배는 더 할 수 있잖아.’


지금까지 알려진 상식으로 할 수 없던 일이 가능한 게 능력자다. 활용도가 적은 능력은 있을지언정 불필요한 능력은 없다는 게 선호의 지론이었다.


방과 후 능력 훈련을 처음으로 땡땡이쳤다. 대신 정우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똑똑


문을 열자 쓸쓸하게 놓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정우가 눈에 들어왔다. 선호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정우의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정우가 의식을 차린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기억에 혼돈이 있지만, 의식이 또렷하다는 사실은 담임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연락 한 번 못 했다. 그날 일이 죄스러워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괜찮냐?”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 돌린 정우에게 어색한 미소로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다행히 정우의 표정은 밝았다. 선호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반응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나야 늘 똑같지. 넌 어때? 얼마나 더 있어야 퇴원할 수 있는 거야?”


“한 달 정도 경과 보고 괜찮으면 퇴원해도 된대. 학교는 어때? 괴롭히는 애들은 없고?”


“네 친군데 누가 날 괴롭히겠냐? 내 걱정은 말고 네 몸이나 신경 써.”


다소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는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불과 몇 달 전 이야기, 새로워진 학교 분위기, 쌍둥이의 출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쌍둥이의 과도한 수금 소식을 들은 정우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는 나은 걸지도 몰라. 그때처럼 매일 맞을 걱정은 하지 않으니까.”


선호의 농담에도 정우는 웃지 않았다. 대신 통증을 참는 듯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나 몸 좀 돌리고 싶은데 도와주라.”


선호의 도움을 받아 과도할 정도로 크게 몸을 돌리던 정우의 몸이 그만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선호는 급히 팔에 힘을 줬지만, 정우의 뚱뚱한 몸을 지탱하기엔 다소 부족했다.


‘안돼!’


무의식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정우의 몸을 붙잡았다. 주변에서 보기엔 선호의 팔이 정우의 몸을 부축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 팔엔 거의 힘을 주지 않았다. 정우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힌 선호는 일부러 과장되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 큰일 날 뻔했잖아.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선호야.”


“왜? 고마워서 눈물이라도 나냐?”


“역시 너였구나.”


너무 놀라 그만 소릴 지를 뻔했다. 정우가 속삭이듯 말했지만 선호는 황급히 주변을 훑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의식을 차렸을 때 경찰한테 들었어. 한영이 어떻게 됐는지. 그건 내 능력이 아닌 줄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내가 힘을 쓴 줄 알았어. 그런데 아무리 다시 해 보려고 노력해도 안 되더라.”


선호는 대답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던 노력이 이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들킬 줄 몰랐다.


‘의식을 잃어서 그때 상황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어. 어떡하지? 정우를 믿을 수 있을까?’


“그때 옆에 있던 건 너밖에 없었으니 네가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알겠네. 그거··· 염력이지?”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근데 왜 숨긴 거야? 지금도 나를 거뜬히 들고, 한영을 날려버릴 정도라면 마냥 당하지 않아도 됐잖아.”


‘어떻게 말을 꺼내지? 적당히 둘러댈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약점이 될 수 있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


깊게 한숨을 쉬며 겨우 생각을 정리했다.


“너한테 미안해서 그래.”


“나한테?”


“네가 처음 능력을 사용했을 때 기억하지?”


“학교에 폭발 일어났을 때 말이지?”


“그래. 그날 나도 너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어. 이 혼란을 틈타 날 괴롭혔던 그 자식들을 혼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땐 내 힘이 말도 못 하게 미약해서 직접적으로 그 자식들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계단에서 밀기만 해도 크게 다칠 거라 생각했어.”


“근데 왜 가만히 있었어? 내가 당할 때 네가 조금만 도왔어도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르잖아.”


“무서웠어.”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했다. 어떻게 얘기해도 정우의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네 모습에서 날 봤어. 섣불리 나섰으면 나도 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얻었겠지. 그래서 완벽해지기 전까지 힘을 숨기자 마음먹었어. 너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네가 조폭에게 당하고, 한영에게 당할 때도 그 생각을 먼저 했어. 완벽하지 못한 힘은 약점이 될 수 있다. 약점이 들키면 표적이 될 수 있다.”


정우는 대답이 없었다. 선호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얘길 나한테 해줄 수도 있지 않았어?”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사실 그때 너는 무서웠어. 네 도움으로 내 학교생활이 편해졌지만, 무서웠어.”


“하아··· 내가 그랬구나. 친구한테도 무섭게 보일 짓을 했구나. 근데 선호야······.”


정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선호는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우의 능력에 당했다.


‘실수다. 정우 상태만 보고 너무 방심했어. 내 약점을 내가 먼저 드러내다니. 친구라고 생각한 게 실수였어.’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제 정우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기분이 어때?”


답답했다. 힘을 빼고 있으면 느낄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려고 힘을 쓰면 짓누르는 압박에 기운이 빠질 정도였다.


“네 염력으로도 못 움직일까?”


‘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한 번 해봐.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정우의 말이 아니었어도 이미 염력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염력의 힘만큼 몸에 부담이 왔다.


“안 돼? 역시 내 능력은 물리적인 힘을 막는 거구나. 그럼 몸을 한 번 띄워봐. 몸 전체를.”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선호는 다시 힘을 집중했다. 병실 안에 다른 사람들도 있어 천천히 바위를 들 때처럼 몸을 들었다.


‘어?’


거짓말처럼 몸이 살짝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능력을 쓸수록 몸은 조금씩 떠올랐다.


“그만. 더 뜨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거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시 천천히 몸을 내렸다. 의자에 체중이 실리는 게 느껴지자마자 몸을 묶었던 정우의 능력이 사라졌다.


“미안. 놀랐지?”


정우의 표정에 악의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런 거야?”


“네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어.”


“왜? 나도 네 적이 될까봐?”


“아니. 이렇게 한 달이 넘도록 병실에 누워만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 복수심을 가라앉혔으면 어땠을까? 그동안 당한 게 있으니 쉽지 않았겠지만··· 좀 더 어른스럽게 그 애들을 대했으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 같더라.”


선호도 비슷한 생각한 적 있다. 정우가 조금만 더 현명하게 능력을 사용했다면, 적이 그렇게 늘어나진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왕따가 되기 전, 평범했던 시절로 돌아가 남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능력에 취해 너무 일찍 드러낸 것도 후회되더라. 조폭 아저씨는 아마 순간이동 같은 능력이었을 거야. 조금만 조심했으면 내 약점을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았을 거야. 그럼 한영이도 뒤에서 공격할 생각을 못 했겠지. 그럼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지 않아도 됐을 거고.”


불과 두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정우는 제법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뭐냐? 왜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얘기하는 거야? 이거 완전히 아저씨가 다 됐네.”


농담으로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지만, 정우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똑같이 했을 거야. 능력이 생기기 전에 난 너무 비참했거든. 매일 죽고 싶었고, 매일 죽이고 싶었어. 뭐라도 좋으니 힘이 생기면, 걔들보다 강한 힘이 생기면 더 잔인하게 복수하고 싶었어. 그래서 후회는 없어.”


말과 달리 정우의 얼굴엔 후회가 가득했다.


“조만간 퇴원한다며? 앞으로 잘하면 되잖아.”


“앞으로? 그래 앞으로 잘 해야지.”


살짝 미소 짓는 정우의 표정에서 날카로운 어둠을 본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우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그런데 아까 나한테 능력을 사용한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 거야?”


“아, 맞다! 엉뚱한 얘기만 했구나. 별거 아니야. 너랑 나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불과 3분 전, 정우의 능력으로 옴짝달싹 못 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 없었다. 그러나 능력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완벽한 능력은 없어. 능력마다 약점은 분명히 존재하더라. 하지만 그 약점을 보완할 방법도 존재해. 그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이건 네 약점을 내게 알려주는 거잖아.”


“뭐 어때? 친구잖아.”


친구··· 어색한 단어다. 한영의 타겟이 되어 왕따가 시작된 날 친구라 서로를 부르던 동급생들이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중학교 때부터 어울렸던 친구의 선택도 다르지 않았다.


친구(親舊),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친분에 신뢰가 동반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친구였고, 이젠 친구가 아닐 뿐이다. 친구란 관계가 유지될 때만 사용하는 사회적인 단어일 뿐이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친구가 아니다. 18살 선호의 결론이었다.


이후 선호에게 친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존재였다. 그런데 정우가 먼저 친구라 표현하며 자신의 약점까지 드러냈다. 선호의 기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친 새끼··· 오글거리게 그게 뭐냐? 고백하냐? 그만해라. 토 쏠린다.”


“좀 그랬나? 근데 넌 여기 어쩐 일이야?”


친구의 안부 인사라는 거짓말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랑 얘기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지금 내 힘이라면 쌍둥이를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하는 일인지 판단이 안 서더라.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안 나오고 네 생각만 나더라고. 왠지 너랑 얘기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뭘 그런 걸로 고민하고 그래? 어려운 것도 아니네.”


“그래? 난 아직도 모르겠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닌지, 내 정체가 들통나서 주변 사람한테 피해 주는 건 아닌지, 혹시 내 능력이 부족해서 당하는 건 아닌지 겁부터 나더라.”


“답은 간단해. 뭘 선택하든지 확실히 해. 뒤탈 없을 정도로 확실히.”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이었다.


“무슨 소리야?”


“아, 아까 내가 한 가지 얘기 안 했구나. 내가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 안일함이야. 좀 더 확실히, 철저하게, 다시는 고개도 들지 못하게 짓밟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그 개자식한테 당한 거야.”


조금 전 정우 얼굴에 스쳤던 어둠이 이번엔 확연히 드러났다.


“너도 똑똑히 들어. 절대 적당히 하지 마. 적당히 누르면 다시 일어나서 네게 덤빌 거야. 그러니까 네 얼굴만 봐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아니, 차라리 죽여!”


잔뜩 일그러진 선호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며 점점 커졌다.


“차라리 죽여버려! 그런 쓰레기 새끼들은 절대 반성하지 않아. 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죽여버려! 두 번 다시 세상에 피해 주지 않게 죽여버리라고! 죽여! 개X끼! 이한영 XX끼!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정우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소리쳤다. 붉게 충혈된 눈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했고, 입에선 하얀 침이 줄줄 흘렀다.


“야!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냐고!”


놀란 선호가 달려들어 정우를 잡았지만,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정우는 선호를 메단 채 허공을 향해 소리치며 손을 휘저었다.


“나와! 당장 나오라고! XX끼야! 나와서 덤비라고!”


정우의 소란을 들은 의사와 간호사가 거칠게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물러서세요!”


간호사가 선호를 잡아당겨 정우에게서 떨어뜨렸다. 그사이 의사는 노련한 손놀림으로 정우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정우가 진정될 때까지 더 날뛰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빠진 정우를 침대에 눕혔다.


“수술 후유증입니다. 그래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뇌를 다쳤으니 이전과 완전히 같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보통 이 정도 발작을 보이진 않는데······.”


간호사의 설명과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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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Z시 중앙대교 붕괴 사고 23.04.04 53 0 11쪽
» 15. 뭐 어때? 친구잖아 23.04.02 50 0 19쪽
15 14. 서부 고등학교 쌍둥이 23.03.31 54 0 13쪽
14 13.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ㅠㅠ 23.03.29 52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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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젊음이란 다 부질 없는 것 23.03.24 54 0 12쪽
11 10. 선호의 각성 23.03.22 55 0 17쪽
10 9. 짜잔! 선호의 보물창고를 소개합니다. 23.03.20 6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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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양심 없는 놈이 양심 없는 놈한테 양심 운운하는 게 가장 비양심적인 거 몰라? 23.03.10 7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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