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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반사회성 인격장애 염력왕이 지구정복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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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D)
작품등록일 :
2023.02.26 15:32
최근연재일 :
2023.06.10 18:30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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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230

작성
23.03.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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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 선호의 각성

DUMMY

* * *


깡패에게 당한 뒤로 정우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눈에 띌 때마다 괴롭히던 한영과 철현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고, 마치 빈 껍데기처럼 힘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호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으로 학교를 굴복시킨 정우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기분이 상하면 교사들에게조차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학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폭력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종일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있어야 했다. 그런 정우를 무서워하지 않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정우가 나타나면 움찔 놀라며 자릴 피하는 학생, 교실에서 숨죽이고 눈치만 보는 급우, 학생 식당에서도 정우가 들어서면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소리에서부터 식판에 수저 닿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우는 그 상황을 즐겼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앞에서 설설 기는 것을 보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깡패에게 당한 뒤로 자신을 두려워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지만, 무시와 혐오의 대상이었을 때 받던 눈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옆에 있던 선호는 그 눈빛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 미안.”


정우는 학생 식당에서 나오던 중 어깨를 부딪친 한영의 얼굴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화들짝 놀라며 사과하던 한영은 축 늘어진 정우의 어깨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X발. X 될 뻔했네.”


철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영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정우가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노려봤다.


“뭐해? 밥 먹으러 가자.”


“저 새끼 이상하지 않냐?”


“왜? 뭐가? 오타쿠 돼지 새끼가 초능력 생긴 뒤로 이상하지 않은 날 있었냐?”


“그게 아니라 요즘 심할 정도로 얌전하지 않아?”


“그런가? 하긴··· 그러고 보니 요 며칠은 우리한테 시비 안 터네? 깡패한테 처 발린 게 충격이 컸나?”


“그렇지? 그때부터지?”


“또 뭐가?”


“저 새끼 얌전해진 거 말야. 그때 깡패가 찾아와서 발라버린 뒤부터잖아.”


“움··· 그런 것 같네. 근데 그게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저 새끼는 원래 X신 찐따 새끼였잖아. 너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찐따는 죽었다 깨어나도 찐따잖아. 고작 이상한 초능력 하나 생겼다고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철현은 도무지 한영의 말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같은 놈들하고 다르잖아. 한 번 꺾여도 죽으라고 덤빌 깡다구가 있겠어? 저 새끼 분명 그날 이후로 기가 팍 죽은 거야. 또 당할까봐 무서워서 벌벌 떠는 중이라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지금이 기회잖아. 이참에 다신 못 일어나게 밟아버려야지.”


“미친놈.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럼 너 저 새끼 이길 자신은 있어? 다시 찐따가 됐더라도 우리가 저 새끼 상대가 되겠냐고?”


정우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초능력이다. 한영의 말이 제법 설득력 있었지만, 초능력을 어쩌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예측이었다.


“알게 뭐야. 저런 X밥 새끼한테 언제까지 숙이고 있을 수 없잖아.”


“그만둬. 미친놈아. 괜히 객기부리지 말고 밥이나 먹어.”


철현은 식판 하나를 한영의 가슴팍에 밀었다. 반사적으로 식판을 쥔 한영은 정우가 사라진 복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에 나도 저랬는데······.”


매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정우의 출현으로 단번에 갈라져 길이 열렸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매점을 나올 때까지도 그 줄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운동장 구석에 앉아 멍한 눈으로 축구 하는 학생들을 보던 정우의 허탈한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무슨 소리야?”


운동장 전체를 사용하던 학생들은 정우를 피해 반대쪽으로 멀어지거나 교실로 사라졌다.


“한영이나 철현이 볼 때 나도 저런 눈빛이었다고. 항상 긴장했어. 언제 불려가 맞을지, 어떤 심부름을 시킬지, 내일은 또 얼마를 가지고 오라고 할지 두려움에 떨면서 항상 마음 졸이고 있었어. 그러다 이름이라도 불리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더라. 죽을 것처럼 무서웠어. 그리고 끌려가서 또 맞고··· 그때 걔들을 보는 내 눈빛이 지금 나를 보는 애들 눈빛이랑 같더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의 입장은 선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 정우의 마음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한영과 철현에게 매일 괴롭힘 당하던 정우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미안. 난 잘 모르겠어······.”


“네가 미안해할 건 아냐. 그냥··· 요즘 마음이 그래. 꼭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잖아. 그저 내가 당한 만큼만 갚고 있는 것뿐인데.”


“악당은 아니지. 그저··· 네 힘이 너무 강하니까··· 그래서 무서운 거겠지.”


“지난번에 찾아왔던 깡패가 그러더라. 괴롭힘당하다가 괴롭히면서 신이 된 것 같지 않았냐? 우월감에 빠져 즐겁지 않았냐고. 생각해 보니까 맞는 말인 것 같아. 즐거웠어.”


순간 정우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짧게 스쳤다.


“걔들이 왜 우리 같은 애들을 괴롭히는지 알겠더라. 만만하니까.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너도 알지? 걔들도 선배들 앞에선 고개 숙이고 한마디도 못 하는 거? 감당할 수 없는 힘 앞엔 비굴하게 굴복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에 취했던 거야.”


“그건··· 걔들이 양아치라······.”


“나도 그랬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즐거움을 주체 못 하겠더라. 그런데! 그 깡패는 너무 무서웠어. 내 힘으로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한테는 상대도 되지 않았어.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서워. 지금도 교문 밖에 그 사람이 찾아왔을까봐 두려워.”


교문 밖을 응시하는 정우의 눈빛이 심하게 떨렸다.


“결국··· 나도 걔들이랑 똑같았던 거야. 감당할 수 없는 힘 앞엔 겁먹은 개새끼처럼 꼬리 말고 떨면서, 약한 애들 앞에서 으스대는 양아치였어.”


“아, 아니··· 내 말은······.”


“괜찮아.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냐. 그냥···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그래. 그 깡패가 나한테 찾아오라고도 하더라.”


“응?”


“깡패 해 볼 생각 없냐고.”


“너 설마?”


“아니야. 나도 인생 망치고 싶지 않아. 아마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살면 언젠가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놈이 됐겠지만···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니까 예전에 내가 보이더라. 그저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던 불쌍한 놈이 보이더라.”


여드름투성이 볼은 터질 듯 빵빵하고,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촌스러운 각진 검은색 뿔테 안경까지··· 전형적인 오타쿠 얼굴이 짐짓 어른처럼 보였다.


“너무 자책하지마. 그래도 네 덕에 난 지금이 너무 좋아. 더 이상 괴롭힘당하지 않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


빠악!


부러진 각목 조각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 뒤를 무수히 많은 핏방울이 따랐다. 얼굴에 따뜻한 무언가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선호의 눈에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정우가 들어왔다. 그 뒤엔 부러진 각목을 들고 있는 한영이 있었다.


“하하하. 개자식! 별것도 아닌 게 뒈질라고 까불고 있어.”


의식을 잃은 정우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한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쓰러진 정우의 몸에 각목을 휘둘렀다. 각목이 정우의 몸을 때릴 때마다 끔찍한 소리가 요동쳤다.


“또 까불어봐. 어디 또 까불어봐!”


반쯤 정신 나간 눈으로 한영은 쓰러진 정우의 몸을 후려쳤다.


“그만! 그만해!”


급히 선호가 한영에게 매달렸지만 돌아온 것은 잊고 있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주먹과 발에 맞는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통증이 온몸에 쏟아졌다.


“어디서 병신 찐따 같은 새끼들이 개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머리를 감아쥐는 것 말곤 한영의 폭력에 저항할 무엇도 없었다. 아니, 한 가지 있었다.


‘어떻게 하지? 고작 식탁이나 겨우 드는 힘으로? 들어? 밀어?’


물건을 움직인다. 더 큰 물건을 움직인다. 선호가 지금까지 염력을 이용한 건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물체에 타격을 주는 실험은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의식을 잃은 정우의 뒤통수에선 계속 피가 흘렀고, 온몸을 가격하는 통증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에잇! 될 대로 되라.’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소파를 밀 때처럼 한영을 향해 힘을 집중했다.


쾅!


‘쾅?’


예상하지 못한 묵직한 충돌음에 선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한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각목만 먼발치에 떨어져 있을 뿐 주변에 한영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꺄아아악!


한영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반응이 없던 운동장에서 갑자기 비명이 터졌다. 선호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학생들의 시선이 머문 곳에 한영이 있었다. 기껏 밀어 넘어뜨리려던 한영의 몸은 20m도 넘게 떨어진 학교 건물 3층 벽에 짓눌리듯 붙어있었다. 한영의 주변 벽돌은 얼음 깨지듯 사방으로 갈라져 있었다.


‘아차!’


이제야 아직도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힘을 거두자 벽에 붙어있던 한영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쿵!


풀밭에 떨어진 한영 주위로 학생들과 교사들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선호와 정우를 향해 뛰어왔다.


뛰어오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선호는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한편으론 두려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기껏 소파나 밀던 힘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다행히 선호의 부상은 심하지 않았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보건교사는 한사코 병원에 가길 권했지만, 이 사실이 부모님에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마다했다.


“걔들은요?”


겨우 보건교사를 설득하고 던진 첫 질문이었다.


“둘 다 의식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야?”


보건교사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선호의 상처를 치료했다. 옆에서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학생주임이 참지 못하고 선호를 다그쳤다.


“네가 옆에 있었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그런 일이 생겨?”


“그만 하세요. 아직 치료 끝나지도 않았어요!”


보건교사가 소리쳤다. 그러나 학생주임은 다시 닦달했다.


“정우는 두개골이 깨지고, 한영··· 한영인··· 뼈가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어. 구급대원이 목숨이 위급하다고 할 정도였다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선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정우랑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영이 각목으로 정우를··· 정우 머리를 뒤에서 내리쳤어요. 정우는 그대로 쓰러지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서로 맞잡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쓰러진 정우를 계속 때렸어요. 큰일 날 것 같아서 한영이를 말리는데 이번엔 절 때렸어요. 각목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서 맞고만 있었어요. 아무것도 못 하고 막고만 있었는데······.”


선호는 허리까지 깊숙이 숙여 얼굴을 팔에 묻었다.


“얘도 지금 당장 병원 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예요.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참다못한 보건교사는 학생주임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선호의 상태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학생주임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보건교사는 얼굴을 파묻고 떨고 있는 선호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하아··· 난감하네. 교감 선생님은 뭐라고 하세요?”


“뭐라고 하셨겠어요? 단순 사고로 처리하자고 하시죠.”


“네? 그게 말이 돼요? 그럼 경찰에 아직 안 알렸다는 말이에요?”


“저라고 무슨 수가 있었겠어요? 학생들 입단속이나 잘 시키라는데··· 저도 난감해 죽겠습니다.”


“안 됩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일을 숨겨요? 우리끼리 입을 맞춰도 결국 구급대원이나 병원을 통해서 경찰이 알게 될 거예요. 그 사실이 매스컴에라도 알려지면 어떡합니까?”


“제 말이 그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학교나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경찰에 알려야죠.”


“그래야죠. 그래도 일단 상황 파악부터······.”


교사들의 설왕설래 속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치료를 받으며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선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아직 아무도 몰라.’


대화 내용상 선호를 의심하는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운동장에서 상황을 지켜본 학생들의 증언과 그간 정우의 행태를 목격한 교사들은 선호를 그저 애꿎은 피해자로 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할 게 뭐 있습니까? 답은 나왔잖아요. 옆에 있다 봉변당한 이 학생 말하고 운동장에서 목격한 학생들 말이 일치하잖아요.”


“그럼 한영이는요? 그 아이가 당한 일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학생 수십 명을 눈썹 하나 못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학생이었잖아요. 그런데 건물에 내동댕이치는 게 대수겠습니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잖아요.”


“의식을 잃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냥 쓰러졌다고 했지. 저 학생을 때리는 사이에 공격했을지 모르잖아요.”


“그건 선생님 생각이죠.”


“예. 맞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가 경찰이나 검찰도 아니고, 초능력까지 쓰는 학생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요.”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그만! 그만 하세요!”


묵묵히 듣고 있던 보건교사는 더 참지 못하고 그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나가세요. 그런 말씀은 나가서 선생님들끼리 하세요. 이 학생은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요.”


보건교사에 밀려 쫓겨나는 교사들의 뒷모습을 보며 선호는 바쁘게 머릴 굴렸다.


‘적어도 선생님들은 의심하지 않고 있어. 그럼 아이들은? 항상 약자였던 내게 초능력이 생겼을 거라 의심할까? 아니야. 그럴 확률은 희박해. 그래도 만약 그 희박한 확률이 벌어지면? 경찰이 나도 의심하면 어쩌지?’


약자는 궁지에 몰려도 맞서 싸우지 못한다.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할 도피처를 찾는 게 약자다. 언제나 쫓기고 사냥당하면서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도망에 특화된 약자는 빠져나갈 틈을 찾는데 특화돼 있다. 평생 약자로 살아온 선호도 마찬가지다.


‘한 번 쯤 떠보긴 할 거야. 내가 한 게 아니냐고. 그러나 내겐 합리적 알리바이가 있어. 한 번도 반항하지 못하고 당한 약자라는 껍데기가 있어. 나만 우기는 게 아니야. 다행히 반 애들은 아직도 날 한심하게 내려보고 있어. 절대 날 의심하지 않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황을 지켜본 증인들이 있어. 난 마냥 맞고 있었고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어. 의심이 커질 일은 없어.’


정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상황은 한영과 정우 사이의 일로, 선호는 어쩌다 휘말린 피해자로 남아야 했다. 그러나 아직 변수가 한 가지 남았다. 정우가 의식을 찾을 경우다. 의식을 찾은 정우가 한영을 공격한 게 자신이 아니라고 밝힌다면 의심의 화살은 선호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학생주임한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그때 분명 정우는 의식을 잃었어. 무의식중 발휘된 능력. 합리적일까? 그래. 날 의심하는 것보다 그게 더 합리적이야.’


생각을 정리한 선호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움튼 작은 어둠을 발견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정우가 무사히 깨어나지 않으면 더 확실할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우와 한영은 깨어나지 못했다. 사건 당사자의 증언을 들을 수 없는 사건은 비교적 빨리 종결됐다.


정우를 괴롭혔던 한영, 능력을 갖게 된 정우의 복수 같은 자잘한 이야기는 수면 위로 나오지도 못했다. 그저 규제되지 못한 또 하나의 초능력 관련 사건, 10대 청소년들의 과도한 폭력 성향 따위로 세상에 알려지고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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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 얼씨구, 이것들 봐라? 23.04.06 47 0 13쪽
17 16. Z시 중앙대교 붕괴 사고 23.04.04 53 0 11쪽
16 15. 뭐 어때? 친구잖아 23.04.02 50 0 19쪽
15 14. 서부 고등학교 쌍둥이 23.03.31 54 0 13쪽
14 13.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ㅠㅠ 23.03.29 52 0 17쪽
13 12. 어떻게 된 학교가 괴물 천지야? 23.03.27 53 0 13쪽
12 11. 젊음이란 다 부질 없는 것 23.03.24 54 0 12쪽
» 10. 선호의 각성 23.03.22 56 0 17쪽
10 9. 짜잔! 선호의 보물창고를 소개합니다. 23.03.20 60 0 15쪽
9 8. 조폭이 학교에 왜 와? 23.03.17 66 0 15쪽
8 7. 뻔뻔하지만 착한 도둑놈 23.03.15 69 0 18쪽
7 6. 왕따의 복수 23.03.13 66 0 13쪽
6 5. 양심 없는 놈이 양심 없는 놈한테 양심 운운하는 게 가장 비양심적인 거 몰라? 23.03.10 77 0 14쪽
5 4. 님들, 공감 능력 부족? 사회 부적응자? 23.03.08 83 3 15쪽
4 3. 쓸모없는 초능력 23.03.06 85 4 18쪽
3 2. 왕따의 하루... 딸깍? 23.03.03 110 4 14쪽
2 1.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 욕실에 불 켜놓고 왔단 말이야 23.03.01 158 3 25쪽
1 프롤로그 : 지구정복을 선언하다 23.02.27 237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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