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힘든 과제 후 진짜를 얻었다.
“ 흠흠, 계약서를 모두 확인
하셨습니까? ”
“ 좋아. ”
“ 나도 동의 한다. ”
칼과 2왕자의 짧은 대답에 신부님 역시
가볍게 끄덕였다.
“ 아슬란은 다이아스포어 채굴 시
최상품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채굴간섭권을 포함한 수입독점권을
10년 지속할 것을 약속한다.
이에 던컨은 수입으로 인해 벌어 들일
수익의 3%를 아슬란에 상납 하여야
하며 만에 하나 계약 기간 중 아슬란의
허락 없이 계약권을 양도하거나 몰래
매도하였을 시 즉시 계약이 파기 되는
것은 물론 그에 합당한 위약금을 배상
해야 할 것이다.
자, 이 계약에 더 이상 이의가 없으시면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최종 확인이 끝나자 칼과
2왕자는 서면에 사인하였고
그 아래로 나의 이름이 새겨졌다.
“ 우선 알다시피 계약은 3왕자에게서
완전히 소유권을 이전 받게 된 직후
발생하게 되니 그 시일을 감안해
주었으면 하네. “
“ 확실한 답을 주신다 하셨으니 우선
기다리도록 하지요. ”
그렇게 계약은 마무리 되었고 이로서
칼에게 내야 할 대가의 절반이 줄어
들었다. 혹여 변덕이라도 부리지
않을까 해 신부님을 사이에 둔 건
확실히 잘한 것 같다.
“ 아펠이라고 하였나? ”
“ 네 왕자님. ”
계약이 끝나고 칼은 곧장 떠났지만
2왕자는 나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 청하였다.
“ 큰 소란이 될 수도 있던 걸 중간에서
잘 마무리 해주었다고. ”
“ 제가 아무리 설득하였다 해도
선택 하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 베이경의 말이 맞구나. ”
“ 맹랑하기 그지없다 하셨을까요? ”
“ 후후,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식견이나 지혜는 어리지 않다고
그래서 더 궁금했었다. “
“ 역시 제가 잘 보았네요. 다른
이였다면 곧장 건방지다며 제 말을
무시하였을 텐데. ”
“ 솔직한 건 내게 전혀 문제되지 않아.
오히려 예를 취하면서 뒤로는 날 속이려
애쓰는 인간들보다 훨씬 나은 걸. 믿고
싶었던 내게 거짓을 알려 망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어 고맙구나.
아슬란의 왕자로서 맹세하니 네가
내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오면 전적으로
나서 돕겠다. “
“ 그 말씀 깊이 새겨둘 것이니 나중에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
“ 당연하지. ”
“ 저기 왕자님 ”
“ 말하거라. ”
“ 만약 파디샤에 오르게 되시면 제일
먼저 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
“ 아직 3왕자에 대한 본국의 처결이
전달된 것도 없는 상황에 섣부른
판단이다. “
형제의 죽음과 배신으로 상처 받은
마음이 아직 마르기도 전이라
내 말이 부담으로 느껴졌겠지만
난 확인하고 싶었다.
‘ 아직 세상을 모르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살고 싶진 않아. ‘
지금도 충분히 마음이 무거우니.
“ 안타깝게도 형님이신 왕태자님께서
이른 나이에 서거하셨고 마음
아프게도 3왕자님이 2왕자님에게
칼을 겨눈 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제국에선 불미스러운 일이라 본국으로
추방 명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
“ 파디샤의 의중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왕위를
원한 적이 없다. “
“ 그렇기에 주어진 운명이라
여겨집니다. ”
“ 무슨 말이냐? ”
“ 욕심 내지 않았기에 왕위 승계의
기회가 왔다고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어떤 자리임을 알기에 신도 선택을
하려 고심하지 않았을까요. “
“ 하...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
“ 신은 어리석지만 한편으로 순박한
인간들에게 미련을 좀 더 두기로
한 것일 테죠. 힘으로 거두기보다
한 번 더 행복해질 기회를 주려고. “
“ 너를 만나게 한 것 역시 신의
계획이라면 작은 울타리부터
튼튼히 만들고 싶다. 처음부터
너무 크게 지으려고 욕심 내지
말고 우선 악습부터 없애야겠지. “
“ 그 말인 즉 3왕자님을 용서
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
“ 그럴 리가 3왕자가 가지지 못한 걸
내가 가지고 있으니 새겨서라도
만들어 다신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진즉에 형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제라도 해야 내
자식들도 보고 배울 테니. “
‘ 다행이다. ’
그렇게 2왕자와 즐거운 담소를 마무리
한 뒤 난 제일 궁금했던 성당의사
도리스선생님을 만나러 의무실로
향했다.
“ 다행히 열은 잡힌 듯합니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니 제가 알려 준 처방대로
약재상에서 약재를 구입하여 달인
물을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에
먹이도록 하세요. “
“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
“ 별 말씀을요. 신의 가호가 있기를. ”
“ 도리스 선생님~ ”
환자가 나가고 조심스레 부르니
돌아서는 아아.
“ 낯선 이국에서 이름을 선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라서일까 몇 번이고
불리는 데도 의식하기까지 꽤 시간이
드는구나. “
“ 그래도 돌아서실 때 너무 편안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마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마냥. “
“ 고맙구나. 내가 살기를 바라고
기대해주어서. ”
“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질문이었을 뿐 그 답은 늘
선생님에게 있었습니다. 용기 내어
얻은 삶이니 지금부터라도 선생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세요. “
“ 그래. 너로 인해 깨어나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으니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내가 받은 걸
돌려주며 살 생각에 벌써부터
벅차는구나. 내게 가장 감사한 너의
앞날에 신에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마. “
생각지도 못한 인재로 이것 하나는
만족하신 신부님도 조금은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질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 네? ”
“ 주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평소와 달리 진지한 말투로 신부님이
아닌 주인으로 대하는 자린의 태도가
낯선 지금
“ 혹여 리비에르에서 주인님을
찾기라도 하신 건가요? ”
“ 백부께서 기력이 많이 쇠하신 듯
하구나. ”
“ 믿어서는 안 됩니다. 몇 년을 이리
떠돌게 하고서 이제와 돌아오라니. ”
“ 자린, 너무 앞서갔다. 돌아오라고
해도 가진 않아. 단지... ”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던 신부님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 재판도 외국인들의 싸움도 그렇고
아직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펠을 계속 지켜볼 수만은 없어. “
“ 신부님 전 괜찮아요. 이번 일만
끝나면. ”
“ 그 자가 여태 우리를 잡을 수
있음에도 지켜만 본 게 고작 목숨
값을 벌 목적이라 생각한 거냐? “
“ 칼은 이제 거기에 별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아요. ”
“ 그래서 걱정인 거야. 혹시라도
네게 나와 같은 운명을 타고 난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게 둘 순
없다. “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걸
아펠에게서 듣고 난 뒤 오랫동안
고심했다.
“ 그는 언제고 너의 능력을 알아낼 테고
결국 너에게 집착하게 되겠지. ”
솔직히 나도 그 부분에서 고민하던
차였다. 재판에서와 달리 샤말과의
일에서부터 소름 끼치게 다정해진 것도
그렇고 심장이 없는 자가 달콤해지는 건
욕심이 생겼다는 것.
“ 제가 리비에르가문의 성을 가진다
해서 그가 두려워할까요? ”
“ 그럴 거란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않아. 단지 너를 욕심 내려할 때
한 번이라도 고민 하게 만들 순 있을
거야. 리비에르가가 어떤지를 안다면. “
황족의 방계인 리비에르는 비록 4대
가문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그들 못지
않은 세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 리비에르 가문에서 이를 받아
들일까요? ”
“ 일전의 백부님이라면 길길이
날뛰겠지. 하지만 할머니도
안 계시고 이미 지워지고 난 뒤
새로 만들어진 기억이라 내가
조금이라도 잘 말한다면
혼란스러워 할 거다. 그리고 지금
후계가 없으니 딱 적당하지. “
“ 주인님은 미워도 조카는 어여삐
보시지 않을까 하는 말씀이신데
글쎄요. “
자린은 걱정하고 있다. 매번
도망치기만 해선 답이 없을 것
같아 모엘 몰래 칼의 뒤를 밟았다가
도착한 리비에르에서 본 리비에르
백작의 눈빛은 변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있기에.
“ 그래도 리비에르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
후계가 없다는 건 그랬다.
가문의 존망을 위해 다른 가문을
흡수하던지 아니면 흡수되던지
욕심 많은 리비에르백작이 어딘가에
귀속되려 하진 않을 테니
“ 아펠 네 생각은 어떠냐?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겐 이 두 사람이
부모나 마찬가지였긴 해도 실질적인
보호자가 된다는 건 다른 문제다
하지만.
“ 어딘가에 매여야 한다면 전 신부님의
아이로 사는 삶을 택할래요. 어차피
성격이나 말투, 식습관까지 모조리 닮아
있으니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에요. “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였기에 미루지 않았다.
“ 어우, 하나도 아니고 까탈스런 주인을
둘 씩이나 모셔야 하다니 내 팔자가
사나운 건지. ”
“ 무서운 여자들과 사는 나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엄살은. “
혹시나 거절하면 어쩌나 마음 졸이던
신부님은 나의 허락에 금세 얼굴을
피며 농담을 던졌다.
“ 자린, 신부님의 아이가 되었을
뿐이야. ”
오늘을 기념하고 싶다며 주방으로
가는 자린을 뒤쫓아 말했다.
주인이라는 말이 거슬렸기 때문에
확실히 짚고 가야 했으니까.
“ 아니요, 신부님의 아이가 아니라
모엘경의 아이가 된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제게 리비에르영애가
되시는 거구요. “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자린이
어색해진 난 속상했다.
“ 여기에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안돼? ”
“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야 그리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래 밖을
떠돌아서인지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이리 선 없이 대하는 걸 가문에서
본다면 아가씨를 가볍게 볼 것입니다.
전 그런 걸 원치 않아요. “
“ 너무해. 이런 거였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야. ”
“ 모든 게 달라질 거에요. 빈트도
도리스선생님에게도 기념 파티는
시작을 위한 자리니까. “
“ 그들에게까지 강요하지 마. ”
“ 아마 빈트는 순수해서 여전히
원하는 대로 해줄 테지 하지만
도리스선생님은 너를 주인으로
맞이하는 것에 기뻐할 거야. “
“ 알잖아. 자린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
“ 그래서 더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야. 제대로 아가씨를 지킬 수
있게 허락해줘서 감사합니다. “
달라진 태도가 속을 뒤틀었다.
화가 나려는 걸 참아서일까 눈에서
내리는 무언가를 본 자린이 날
꼭 끌어안아 달랬다.
“ 나 정말 기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 고민하거나 거절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었어. 어릴 적
받은 상처로 인해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신부님이
널 거두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랬던 것이 이제야
말을 하시다니 거절 당할까 겁이 나서
여태 미뤘던 거였어. “
“ 칫~어쩔 때 보면 어른들이 우리 같은
어린애들보다 더 약한 것 같다니까. ”
“ 지킬 게 많아지면 그런 거야. 그래도
칼에게 널 뺏길까 봐 용기 내서
말하는 거에 나 조금 감동 받았다니까.
아무튼 익숙해지길 바래요
아펠 아.가.씨.~ “
“ 하지 말래도오~~~!! 하지 마~
명령이다~!! ”
자꾸만 놀리는 자린 때문에 난 더
울지도 못하고 퉁얼거리며 자린을
쫓았다.
“ 축하해. 완벽한 가족이 생긴 걸. ”
“ 축하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
“ 왜? 무슨 문제될 게 있어? ”
“ 자린의 태도가 완전 바뀌었어. ”
“ 하기야 이젠 가족이니 마음 놓고
잔소리를 제대로 하겠네. ”
“ 아니, 온 몸이 간지럽게 아가씨,
아가씨 그러잖아. ”
“ 아... 아가씨 쳇, 난 도련님이란 소릴
듣는 마당에. ”
“ 야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
“ 어쩔 수 없는 습관이야. 귀족가에서
어릴 때부터 그리 자랐으니 당연한 거고
자린 말대로 돌아갔을 때 널 대하는
태도가 가볍다는 건 분명 문제될 거야.
가주는 몰라도 다른 친척들이 널 인정
하지 않으려 할 테니까. 괜한 꼬투리는
애시 당초 안 만드는 게 나아. “
“ 잘하는 건가 싶다. 칼이 이런다고
나한테 들이대는 걸 그만둘지 알 수도
없는 마당에. “
“ 그래도 눈치는 보겠지. 아무리 그래도
황족 방계면 함부로 못할 테니까.
그보다 신부님 대단한데~~ “
“ 이참에 너도 같이 양자로 입적 해 달라
그럴까? ”
“ 아서라. 종자면 모를까 택도 없는
이야기니까 너한테 아가씨 하는 건
자신 있어. “
“ 너까지 놀리기냐~ ”
그렇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다
게일공 소백작 만들기 작전을 위한
본격적인 계획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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