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완벽한 자유를 위해 또 다시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 네 접니다. ”
“ 말...말도 안 돼. 분명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
오지 못한 게 아니라 오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니
거기다 신호로 쓰였단 것을 바니아스의
실언으로 알게 된 아아의 머리는 곧장
차가워졌다.
“ 조금이라도 망설였으면 알 수
없었을 테지만 평소 습관대로 감정
없이 밀어버린 탓에 무사할 수 있었나
봅니다. “
“ 흥, 2왕자의 잔당들과 이미 한통
속이었겠지. 그러지 않고 서야... ”
“ 저는 단 한번도 3왕자님을 배신한 적
없습니다. ”
“ 내 눈앞에 이리 멀쩡하게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감히 주인을 물다니. ”
“ 왕자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단 건
결코 배신하겠단 말이 아니었습니다.
파디샤가 된 샤말왕자님을 떠올려
봤을 뿐이었습니다. “
“ 거짓말 그런 걸 꿈꿨다면 이리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다. ”
“ 아니요~ 그런 건 꿈꾸고 싶지
않습니다. ”
“ 뭐? ”
“ 아슬란의 백성들을 산 채로 날개가
꺽이고 다리가 부러지는 앵무새들과
같은 삶을 살 게 할 순 없었으니까요. “
“ 사람은 모두가 잔혹함을 숨기고 있다.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일 뿐
3왕자는 아직 어리기에... “
“ 아니오~!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면
왕자님의 스승이자 외조부이신
마스하도프 재상께서 충분히
다스렸을 겁니다. “
왕자가 어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탓에
애꿎은 화풀이를 한 것이라 말하려던
바니아스는 마스하도프란 이름에서
멈칫했다.
“ 아버님께서 무얼 알고 있으신
것이냐? ”
“ 3왕자께서 행하시는 모든 폭력과
폭언에 있어 그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는다는 걸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도 분노조차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
“ 사람이 아니고 서야 그럴 순 없어. ”
“ 그런 이가 다스리는 아슬란은 공포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그런 파디샤에게 진심으로 충성할 자가
몇 이나 될까요. 전 그저 2왕자님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3왕자님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
“ 억측이다. 일어날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을 두고 몇이나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
“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주인만
살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제겐
문제될 게 아니었으니까요. “
허나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바뀐 건
창문 밖으로 떨어지던 그 날 숙소
입구에 쳐 놓은 천막의 기둥을
붙잡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구한
그 때부터였다.
‘ 허락 받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
그렇게 3왕자에게서 가까스로 독립한
아아는 안타까운 마음에 샤말의 계획을
알렸다. 자신은 신호탄에 불과했지만
바니아스는 2왕자를 잡기 위한
미끼였단 걸.
“ 그럴..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왕자의 숙부이거늘. ”
“ 제 말을 왜 새기지 못하시는 겁니까.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신께서 그 분을
만드실 때 감정을 잊어버리셨다고
지금이라도 벗어나셔야 합니다. “
아아의 계속되는 설득에 이성을 잃은
바니아스가 멱살을 잡고 날뛰니 취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급히
그를 제지하며 끌고 나갔다.
“ 하아... ”
참고인으로 참석한 난 이야기를 끝내고
나오다 이 광경을 보고 재차 확인하여
알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 주인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이 왜
주인을 잃은 것처럼 슬퍼 하냐고
진짜. ”
속상해진 난 상처 받은 아아의
마음이라도 달래야겠단 생각에
조심히 곁으로 다가갔다.
“ 어찌 머무실 곳은 정하셨습니까? ”
“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말을 익히고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지. “
“ 괜찮으시겠습니까? ”
아슬란으로 돌아간다면 주인을
지키지 못한 죄를 물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걱정이 앞섰다.
“ 죽기 전 누구의 허락이 아닌 내
스스로 선택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괘념치 말거라. “
“ 전 아아의 그 선택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여전히 샤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죄책감을 가지고 죽음을
당연한 것마냥 생각하는 게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 내가 안쓰러운 모양이구나. ”
“ 솔직히 화가 나요. 이제 겨우 벗어
나게 되었는데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신다 하니까. “
“ 아직도 믿기지 않은 지금이 어색해서
본능적으로 익숙한 곳을 정한 것인지도.
그럼 아이야 네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니. “
걸음마를 이제 배운 아기가 자박자박
걸음 수를 늘려가는 방법을 몰라 부모의
손에 의지하듯 아아가 내게 물었다.
“ 시작을 하셨으니 내딛으셔야지요.
저라면 신이 나서 내가 마음껏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할 겁니다. “
“ 이를 테면? ”
“ 의료에 능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 호기심에 어깨 너머로 몇 번 본 것이
다인 걸 능하다니 부끄럽구나. ”
“ 성당에 오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
민간요법을 잘못 취해 병이 도진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로 처방을 해주실 분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
성당엔 마음의 병을 가진 이들만
오지 않는다. 간간히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살핌을 받으려는 어려운
이들도 있고 루이와 꼬맹이들처럼
병원을 갈 수 없는 부랑아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냐? ”
“ 제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 청하는 게
맞지요. 저와 함께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
명령에 익숙했던 그가 태어나 처음 듣는
부탁의 말. 낯선 이국에서 만난 아이가
건넨 그 한 마디에 눈가가 촉촉해진
아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어떻게 부하들은 회수하셨습니까? ”
베이경으로부터 2왕자와 함께 던컨을
찾았다는 걸 들은 난 혹여 부하들을
이용한 것에 대한 대가까지 더할까
걱정이 들어 칼을 찾았다.
“ 쓸데없는 간섭은 어차피 쓸모없는
녀석들이었다. ”
“ 사람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물... 아니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도 괜찮은 이가
섞여 있었을 수도 있는데. ”
사람을 물건 버리듯 하는 것에 욱했다가
선을 넘는 것 같아 가까스로 말을
다듬었다.
“ 물이 썩지 않으려면 제때 제때 갈아
줘야지. 그보다 이 계약서에 사인은
언제 쯤 받을 수 있으려나. “
“ 2왕자님이 다녀갔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실 텐데요. 계약자들의
말을 입증할만한 제 3자가 보는
앞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걸. “
아무래도 아이인 내가 칼에게
협박이라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제 3자인 법적 증인을
내세운 것인데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 이게 진짜 실현되는 건 맞고? ”
“ 다른 이도 아니고 차기 파디샤가
되실 분이 직접 하신 말을 못 믿는
다는 것입니까? “
“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꿈은
약해 빠진 이들이나 꾸는 거고. ”
“ 현실이 반영되는 꿈이라면 좀 기분이
나아지실까요? 당장 시장 내 판매가
될 수는 없지만 지금 헥터가가 핏셔가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때
핏셔가에 계약 이야기만 꺼내도 곧장
다리가 되어 대공가를 지나 황실까지
쭈욱~~~~ 이어질 겁니다. “
“ 그리고 3자라면 그 누구와도 연관이
없어야 하는데. ”
‘ 아아~ 그럼 그렇지. ’
“ 지금 그들 특히 2왕자님은 납치와
감금에 불안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던컨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요. 만에
하나 던컨과 결탁해 3왕자를 쳤단
소문이라도 난다면. “
“ 됐다. 네가 확실하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황으로 보아도
자신에게 불리한 건 맞으니.
‘ 큭, 베이대장에게 던컨이 제일 믿을
만한 곳이라고 하길 잘했어. ’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욕심을 나한테 들킨 칼이었기에
망정이지 혹시나 청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들은 만났고
재미있는 그림을 만들었다.
“ 여기서 말이냐? ”
칼과 함께 계약을 위해 성당을
찾을 거란 말에 대놓고 싫은 티
팍팍 내는 신부님.
“ 지금이야 잠자코 있어도 신부님이나
자린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으니 언제든 우리를 못살게 굴 게
뻔하잖아요. “
“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라고. ”
“ 왜 상관이 없어요. 신부님이
제 3자로서 법적 증인이 되면 싫어도
신부님 눈치를 봐야 되니 함부로
못할 거란 소리죠. “
“ 여차하면 지워버리면 되는 걸. ”
“ 자린, 내가 그 인간 속은 안 들여다
봤을 것 같아? ”
“ 서..설마... ”
“ 그 사람 완전히는 아니라도 신부님이
보통이 아니란 건 진즉에 알고 있어.
아직 시험을 못했을 뿐이지. “
“ 맙소사, 가문에 알리지 않은 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몸값을 올리려고
그런 거네. ”
“ 그리고 던컨에서도 헥터가
별장에서도 보기가 그래. 지금
2왕자의 상태는 매우 불안정해야
하니까 성당에서 요양을 위한 안식을
핑계 거리로 삼기 딱 좋지. “
“ 하여튼 내 안식은 안중에 없고. ”
“ 에이~ 또 그런다. 내가 제일 걱정
하는 건 신부님이랑 자린의
마음이라구요. 그걸 꼭 대놓고
얘기해야 기분이 풀릴까. “
놀리 듯 하는 내 말투에 신부님은 들킨
티 팍팍 내며 잔소리고 자린은 지겹다는
듯 먹을 걸 가져오겠다면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 이제 여기서 나갈 일만 남았네? ”
“ 그게 맞긴 한데 당장은 좀 어렵겠다. ”
“ 아니 왜에~~ 여기 들어오려 했던 건
순전히 그 샤말인가 뭔가 하는 인간
떼 놓으려고 한 거잖아. “
“ 원래는 그런데 내가 한 말이 있잖아. ”
“ 아니~ 핏셔가랑 자리 마련해서
연결해줬으면 된 거 아니었어? ”
“ 그거 하나만 보고 어떻게 가주 자리를
줘. 그런 건 다른 형제들도 할 수 있는
일인 걸. 가족들 앞에서 공표할 수 있게
확실한 무언가를 만들어드려야지. “
“ 잠시라고 한 네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
“ 우선 내 목에 들어왔던 칼도
치웠겠다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조금만 진짜 조금만
기다려주라~ 응? “
“ 아~ 몰라~~!! ”
좋은 것도 한 두 번이지 귀족가의
일원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뼈저리게 느낀 루이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 잔뜩
부어올랐다.
“ 우리가 우리 볼일만 끝내고 도망치면
게일공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재수
없으면 던컨의 그 인간이랑 함께 날
잡으려고 혈안이 될 텐데 그래도
괜찮아? “
“ 못됐어. 너 없이 안 되는 걸 이렇게
이용하고. ”
“ 네 옆에 평생 붙어 있으려면
어쩌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기다려줘. “
그렇게 속상해하는 루이를 안아주며
약속 지키겠다 신신 당부했다.
“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
생각지도 못한 역할 놀이에 루이는
또 다시 날 잡아먹을 듯 째려봤다.
- 작가의말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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