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사람의 마음을 사다.
“ 송구합니다.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쉘이었다.
“ 애초에 페이가에서 왔다는 것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어. ”
대공 앞에서야 얼마든 혀를 놀려도
상관없다 실세만 차지하면 그 뿐이니까
그랬기에 자신과 척을 지고 싶지 않단
뜻으로 받아들여 페이가의 세작을
도왔던 것인데.
“ 당분간 작업에만 몰두하도록
하겠습니다. ”
“ 나더러 실수를 인정하라는 건가? ”
“ 그..그럴 리가.. 전 그냥... ”
“ 잘못을 안다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할 생각부터 해야지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으니 쯧. “
“ 핏셔가의 이름으로 열 전시회부터가
의미 없는 목소리들로 채워질 텐데... ”
“ 울대를 베지 않는 한 새는 어떻게든
지저귀게 되어 있어. ”
쉘은 그래도 불안하다. 당연 자신을
버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백작의
얼굴이 여유로웠기에.
“ 그대가 나를 보고자 했다고. ”
“ 황실연회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나
사교계에 나선지 꽤 오래되어 동향을
여쭈고자 이리 만남을 청하였습니다. “
“ 뭐 모든 걸 살피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 ”
‘ 기가 막혀. 먼저 보자고 해도 될까
말깐데 자존심이 뭐라고. ’
헥터백작이거나 하다못해 후계구도에
위인 장남이 함께 동행할 줄 알았는데
고작 게일공의 출현에 자존심이 상한 듯
대 놓고 비꼬다니 이에 난 게일공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살피는데
“ 제 눈이 안목에 주로 치중하다 보니
정치에는 다소 어두운 탓인가 봅니다. ”
“ 글쎄. 이번에 제법 눈에 띄는 행보가
들리던데. ”
내심 게일공의 마음이 궁금한 듯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록 말을 아끼는
욕심쟁이 귀족 할아버지 핏셔백작을
향해 난 가볍게 훑어 내렸다.
‘ 아직 쉘을 그냥 뒀네? 우리가 뭐
옆에서 살랑거릴 거라 생각한 건가? ’
어이없는 속셈을 고스란히 본 난
게일공을 향해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저야 사교계는 두문불출이라 딱히
드러나는 이야기가 없을 텐데. ”
“ 흠흠... ”
썩은 미소만으론 눈치를 줄 수 없었는지
난 헛기침으로 시선을 고정 시켜
잔소리를 기억나게 했다.
“ 혹여 대공가에 있었던 일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
“ 안타까운 일이지. 어여삐 지켜 온
꽃이 채 피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저버렸으니. ”
“ 온전하지 못한 탓이라며 자책을 하던
아이가 제게 말도 없이 나선 것이라
부끄럽게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
“ 다행히 대공께선 너그러이 용서
하셨더군. ”
“ 원망을 받아야 한다며 찾아간 제 아들
녀석을 탓하시긴 커녕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오히려 위로를 해주신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 공사가 분명하신 분이니 무엇보다
탓을 한다 해서 어린 공녀가 돌아올
수도 없는 것이니. ”
“ 게다가 일을 그르친 사용인에게도
크게 죄를 묻지 않으시고 내치는 걸로
마무리 하셨다고 합니다. ”
“ 그 자가 괜히 일을 크게 키웠다고
들었는데. ”
세작이었던 파이가 대공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뱉었을지
궁금한 핏셔백작은 말끝을 흐리며
재촉했다.
“ 대공가에 들어 온 지 얼마 안 된
자가 눈에 들기 위해 없는 말까지
지어낸 것에 그 어떤 말이 귀에 들어
가겠습니까. “
핏셔가의 일은 아에 꺼내지 않았으니
듣지 못했다는 게 맞으려나. 내게서
받은 충격 탓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개 취급을 받았다 여겼던 건지
자신을 버린 페이가에 대해서만
꺼냈을 뿐 쉘의 비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어찌 되었든 핏셔백작은
드러내진 않았어도 마음속으로 한숨을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 이리 주거라. ”
핏셔백작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며
조금 전과 달리 제대로 게일공에게
집중하려는 듯해 난 가면을 쓰고
게일공의 시선을 찾아 미소를 흘렸다.
이에 그는 알겠다는 듯 내게 맡겨
두었던 선물을 달라 지시했다.
“ 지금입니다. ”
그렇게 선물을 게일공 손에 쥐어주며
재빠르게 속삭였다.
----- 핏셔가로 향하는 마차 안
“ 게일공의 방문 요청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 할 것입니다. 허나 쉽게
드러내실 분이 아니니 담소를 가볍게
즐기시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신호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백작의 심기라도 짚어보겠다는
소리냐? ”
“ 제가 그냥 눈치만 빠른 게 아닙니다. ”
‘ 마음의 소리를 훔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
“ 페이가의 세작이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쉘과의 만남에 대해선
대공각하께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
“ 그걸 어떻게? ”
“ 세작이 대공각하의 저에서 내쳐
진 것을 우연히 사용인들에게서 듣게
되었는데 페이가의 이야기만 나올 뿐
핏셔가의 대한 건 꺼내지 않더군요.
마치 듣지 못했던 것마냥. “
“ 그럼 많이 궁금하겠군. ”
“ 아마도 그 일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게일공께 집중하지 못하실 테니 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흘리십시오. “
“ 그런다고 태도가 바뀔까. ”
“ 그건 두고 보시면 아실 것이니 제가
대화 도중 솔직하지 못한 표정을
짓는 걸 보시면 곧장 선물을 달라
말하시면 됩니다. “
완벽한 귀족 가문이 아닌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헥터가의 보석 세공기술은
외국에서도 탐낼 만큼 굉장히 유명하다.
특히나 공녀의 5살생일 기념으로 진상
받은 다이아스포어도 이 곳에서 가공
되어진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을 리 없다.
“ 그리고 백작님께 개인적으로
감사하단 말씀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
“ 뭘 말인가? ”
“ 제 아들 녀석이 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
“ 응? ”
“ 이번 대공가의 사건 재판에서
갑작스레 증언을 믿게 하려 쉘의
서신이랍시고 꺼낸 것을 두고 진위
여부를 아직 모르실 백작님께서
혹여 쉘을 저버리시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
“ 기분이야 좋을 순 없지. 허나 가볍게
움직일 자가 아니란 걸 오랜 세월이
증명하고 있고 이번 일을 개의치 않고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다시금
확인 하였지. “
‘ 하? 제일 먼저 의심했으면서. ’
“ 낙마 사고 이후로 소심해진 아들의
활력을 되찾아 준 것이 쉘이라 그의
부재가 아들에게 영향을 끼칠까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인 터였습니다. “
가벼운 만남을 요청한 게 아니라 혹여
쉘에 대해 모르고 그를 내칠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알리려 했단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니 핏셔백작은 안심과
동시에 대공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들을 가까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성미가 급한 게 좋을 때도 있네.
자린이랑 신부님한테도 변명할 수
있는 게 하나 더 늘었어. 큭큭 ‘
급한 성질일수록 치밀하고 계산적일 수
없다. 즉흥적인 것에 더 반응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 동향이란 게 듣기만 해선 알 수가
없는 법이지 이참에 대공각하께도
면을 보였으니 아들과 함께 황실
연회에서 보도록 하지. “
“ 제 아들 녀석까지 챙겨주시다니
더 없을 영광입니다.
역대 황태자님들의 스승이 배출된
가문이니만큼 제 아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되 주시길 고대 하겠습니다. ”
‘ 됐어~!! ’
헥터백작과 게일공에 이어 나와 루이도
연회에 줄줄이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제대로 간지러운 것을 긁어주니
이 정도의 선심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마치 베푼다는 느낌마저 들어 아니꼬
왔지만 지금 내겐 황실을 드나들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 삐져나온 입술을
곧장 집어넣었다.
“ 마음에 들 순 없지만 핏셔백작님과의
관계는 분명 게일공께 득이 될 것
입니다. 일을 하시는 것에는 더더욱
헥터가에 투자자가 많아진다면
헥터백작님께서도 아마 남다르게
보실 테니까요. “
“ 앞서가긴 고작 말문을 텄을 뿐이다. ”
“ 그것이 지금의 헥터가를 있게 한
시작이었습니다. 헥터백작님께서는
굉장히 노력을 하셨을 겁니다.
그건 저보다 게일공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모를 리가 있나 다른 자식들과 달리
아버지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그이니
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 어릿광대를 자처하라니 원. ”
“ 의미 없이 흔드는 꼬리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배만 보이지 마십시오. ”
그런 내 잔소리가 짜증 난다는 듯
투덜거림에 난 모른 척 무시하고
다음 계획을 준비했다.
“ 이래서 싫은 것인데. ”
“ 불편한 건 곧 적응하실 테지만
조금은 가지고 있으시는 게
긴장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오랜만에 나서는 연회 자리에 그의
취향은 아무 쓸모없다. 돋보이진
못해도 뒤쳐질 순 없는 노릇 그리고
자존심 강한 핏셔백작이 자신 곁을
초라하게 만들도록 놔둘 리도 없고.
“ 이런~~ ”
* 연회 전날.
“ 루이, 게일공이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드려. “
“ 그러다 적당한 때를 봐서 중간에
널 부르란 거지? ”
“ 어. 불편한 몸 때문에 전담할 시종이
딸려가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
“ 최대한 빨리 부를 수 있게 할게. ”
“ 아직 거처가 황실 안 내빈을 위한
별궁에 마련되어 있을 테니까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좀 즐겨
황실 연회에 나오는 음식들은 진짜
진귀한 것들일 테니까. “
“ 누가 보면 내가 진짜 귀족인 줄
알겠네. 네 대신에 들어와 놓고
불편한 여유를 즐기라니 쯧. “
“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
태어나 처음 보는 황실의 화려함은
루이의 정신을 빼앗기 충분했기에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음료를 쏟은 루.. 아니 비네
“ 갈아입으실 옷을 준비해 드릴까요? ”
“ 아니 혹시나 하고 여벌옷을 준비한
것이 있으니 내 전담 시종을 불러주게. “
“ 네 알겠습니다. ”
“ 어이~ 촌뜨기~ ”
“ 뭐라는 거야. ”
“ 큭큭 내가 뭐랬어 실수 할 수
있다 했지? ”
“ 입맛에 안 맞아서 던져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은 거거든? ”
“ 으휴~ 어쨌든 제가 도와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련님. ”
“ 하여간에 주인 머리 위에 오르려는
요 맹랑한 녀석 같으니라고. 쯧
그보다 괜찮겠어? “
“ 괜찮을 리 있겠냐? ”
“ 많이 위험할 것 같은데. ”
“ 여차하면 주인 닮은 바보 연기 좀
하지 뭐. ”
“ 그게 쉽겠어? 다른 곳도 아닌
황실인데. ”
“ 넓고도 넓은 황실에 바보가 길을
잃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니까. “
“ 아무튼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도록
할 테니까 조심해. ”
그렇게 난 루이에게 옷을 전해준 뒤
조심스레 대기실을 빠져나와 별궁에서
대기하고 있을 누군가를 찾으러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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