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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프로젝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지쟁이
작품등록일 :
2020.05.11 17:56
최근연재일 :
2020.08.21 09: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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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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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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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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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날의 기억 (4)

DUMMY

오한수가 뒤늦게 외쳤다.

“저, 저년을 죽여! 당장 죽여 버려!”

조금 전까지만 해도, 38번만은 가급적 살려두려고 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저 어린 소녀의 능력이 너무나도 두려웠던 것.

그의 명령에 멈춰 있던 실패작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38번이 마치 혼잣말을 하듯 소곤거렸다.

“멈춰.”

그러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마치 동심원이 퍼져나가듯이 어떤 기운들이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범위에 속해 있던 실패작들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그건 오한수를 비롯한 하얀 가운들도 마찬가지.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녀를 비롯한 생존자들 뿐.

생존자들의 눈동자에 경악이 어린 것도 잠시, 곧 19번이 말했다.

“됐어! 이제 놈들을 죽이자!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4번도 그 말에 동조했다.

“그래, 빨리 죽이고 탈출하자.”

그러나 놀랍게도 38번이 그 의견에 반대했다.

“안 돼요! 모두들 지금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무, 무슨 소리야?”

“이놈들을 살려두란 말이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그녀의 말에 4번과 5번이 거의 동시에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38번의 음성은 확고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지금 밖에 지원 병력이 도착했고 곧 안으로 진입할 거예요. 제가 놈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사이에 모두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그러자, 이번에는 10번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놈들을 죽이지 못한다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도 아무 소용없잖아. 차라리 복수를 하고 죽는 게 나아. 게다가 너는 어쩌고? 널 두고 우리만 가란 말이야?”

메인 시스템을 통제하며 놈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다는 것은 38번이 이곳에 남겠다는 소리였다. 10번이 그걸 지적한 것이다.

38번이 더욱 큰 소리를 냈다.

“제발요. 시간이 없어요! 저놈들을 죽인다고 우리의 복수가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저놈들의 위에 이 모든 것들을 지시한 놈이 있어요. 우린 아직 그 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을지, 개인일지 단체일지 조차도 모르잖아요. 난 그 놈들까지도 복수할 거예요. 하지만 혼자서는 힘들어요. 당신들이 살아남아서 도와줘야 한다고요!”

“하, 하지만······.”

다른 이들이 다시 한 번 38번의 말에 반박하려던 그때,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33번이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그만! 모두들 38번의 말에 따라.”

10번이 고개를 흔들었다.

“형··· 하지만······.”

그러나 33번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측은한 눈빛으로 38번을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놈들을 죽여 버리면 저들은 38번도 살려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이대로 탈출해야 해. 그리고 너는 이곳에 남아서 놈들이 배후를 캐려는 거지?”

“맞아요.”

38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33번이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꼭 살아남아라. 우리도 준비하고 있으마. 네가 죽어버리면 우리의 복수도 물거품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자신 있지?”

“네··· 꼭 살아서 만나요.”

그 대답을 끝으로 38번이 메인 시스템을 통제해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생존한 모두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홀로 그곳에 서 있는 38번을 두 눈에 꼭 담았다.


**


“그렇게 우리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 어린 38번에게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커다란 빚을 진 거지.”

강민호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오며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박태수는 강민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오 팀장이 오한수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38번이 최수현이며 10번이 강민호라는 것까지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도대체 혼자 남아 다시 잡혀버린 최수현은 어떻게 그곳을 탈출했을까. 왜 오한수와 함께 수박성형외과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왜 하필 나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민호 조차도 자신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최수현이 나타났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당시의 생존자들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왜 보톡스라고 속인 그 약물을 그들이 아닌, 박태수에게 투여한 것일까.

강민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엉킨 실타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박태수를 쳐다보며 강민호가 말했다.

“탈출에 성공한 우리는 여섯이었어. 자유를 만끽했던 것도 잠시 뿐이었고, 언제나 갑작스럽게 놈들이 들이닥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지.”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강력한 능력을 가진 그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적을 상대하기 수월하겠지만, 반대로 모두 한 번에 잡혀갈 위험도 있었으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 각자 생존해 나가기로 했던 것.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지금까지 놈들은 그들의 앞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그것이 38번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곳에 남은 그녀가 그들 생존자들에 대한 추적을 막았을 것이다. 아무 근거도 없는 믿음이었지만, 모두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잊지 않았어. 언제고 놈들에게 복수할 그 날을 기다리며 각자 힘을 기르고 있었지. 나는 이름을 바꾸고 고아원에 들어가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었어.”

따지고 보면, 38번을 제외한다면 전투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진 이가 강민호였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평화로운 현대사회에서 누군가 그에게 살기를 내비치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고작해야 조직 폭력배가 되는 것과 격투기 선수가 되는 것이 최선인 상황. 고민 끝에 그는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지. 아무리 격투기라고 해도 정말로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품는 상대는 잘 없더라고. 은퇴경기에서 만났던 놈 하나였나? 아무튼, 뭐 그 놈처럼 진짜 미친놈은 드물었으니까.”

그래서 강민호는 이종격투기도 관뒀다.

“체육관 회식이 끝나고 함께 운동하던 녀석들이 다들 취했을 때였어. 황철웅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녀석도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선수였지. 근데 녀석이 갑자기 그런 얘길 하는 거야. 천안에서 투기도박이 열리는데 해볼 생각 없냐고. 좀 많이 거친데, 아니 시합을 뛰고 나면 팔다리 중 하나는 꼭 부러지는데, 그래도 대전료가 병원비를 감안해도 두둑하다나 뭐라나.”

당시의 강민호에겐 솔깃한 이야기였다.

그런 불법적인 격투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밑바닥 인생이다. 누구보다도 거친 삶을 살아왔으며 내일이 없는 놈들이었다. 시합 역시도 선수를 보호하는 룰 자체가 느슨했고, 그럴수록 과열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보면?

강민호가 원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능력을 길러야 했어. 언제고 38번이 나타나면 놈들에 대한 복수가 시작될 테고, 그때 제대로 싸우려면 힘이 필요할 테니까. 다행히 첫 시합에서부터 상대가 나에게 살기를 내보이더군. 기뻤지. 내 능력은 상대의 살기를 흡수해서 힘과 체력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니까. 아, 물론 대부분은 곧 사라져버려. 남는 건 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게 쌓이면 또 다르니까.”

박태수는 이미 강민호의 능력을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뒤늦게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헬스클럽은 왜 여신 겁니까?”

강민호의 쭈글쭈글해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 그 얘길 빠뜨렸군. 일단 투기장을 들락거리면서 생각보다 돈이 모였어. 그리고 내 능력과는 별개로 투기장의 시합이 그리 만만치는 않더라고. 일반인들 보다는 월등한 힘을 지녔지만, 이종격투기 선수였을 때도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을 때는 형편없이 지는 경기도 많았거든. 그런데 그 투기장의 산전수전 다 겪은 놈들을 상대하려니 좀 벅차더라고. 그래서 운동도 할 겸 헬스클럽을 열었지.”

처음에는 운동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자신의 몸을 만들고 힘을 길러서 시합을 대비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사업이라는 것이 뜻대로만,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한 번은 펑크를 낸 트레이너 대신에 강민호가 어떤 회원의 개인 트레이닝을 맡았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왔다는 여자였어. 얘길 들어보니 안 먹어 본 약이 없고, 한 해본 운동도 없더군. 그런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거야. 처음에는 적당히 시간만 때우려고 했는데 그 여자의 눈빛을 보곤 생각이 달라졌지. 뭐랄까? 이번에 실패하면 자살을 선택할 것 같은 꼭 그런 눈빛이었어. 이번이 마지막이다, 진짜 제대로 해볼 테니까 제발 성공하게 해달라는 그런 의지가 느껴졌었지.”

“그래서 성공했나요?”

박태수의 물음에 강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큰 깨달음을 줬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강민호는 이 현대사회에서 살기를 느끼는 것은 투기장과 같은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번화한 도심의 중심에 위치한 빌딩, 그 속의 평범한 헬스클럽에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좀 과하게 굴리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진짜 근처에 운동을 하는 다른 회원이 없었고, 만약 그녀의 손에 칼이 쥐여져 있었다면 그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날 찔렀을 거야.”

“······.”

아무튼, 그때 강민호는 깨달았다.

헬스클럽을 통해, 회원들의 개인 트레이닝을 통해서도 그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겠구나 하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헬스클럽이 꽤나 유명해졌던 것이다.

“뭐, 나중에는 그 여자가 일으킨 것이 백퍼센트 완전한 살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아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랐거든. 흡수하고 나서야 몸에 남는 힘이 진짜 살기를 흡수했을 때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생각했어. 어쨌든 능력을 발전시킬 수만 있으면 상관없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렇게 강민호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박태수는 비로소 강민호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된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과거의 생존자들을 제외하고는 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박태수를 바라보는 강민호의 분위기가 다시 침중해졌다.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충 설명을 한 것 같고··· 이제는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자네에게 해주기를 망설였는지에 대해 말해주겠네.”

“저도 이제는 짐작이 가네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야기가 쉽겠어. 아무튼, 한마디로 말해 지금부터 자네는 우리 생존자들과 한 배를 탄 셈이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몰랐다면 그저 좀 이상한 일이 자네에게 일어났었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단 걸세.”

“그··· 오한수를 비롯한 그 놈들 때문에요?”

“그렇다네. 놈들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어. 그 실험을 그만 둔 것도 아니고. 사실 벌써부터 우리를 노렸어야 정상인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38번이 그걸 막았을 거야. 그런데 지금부터는 또 상황이 변했어.”

“변하다니요?”

박태수가 그렇게 되묻자, 강민호가 검지를 뻗어 그를 가리켰다.

“자네, 바로 자네라는 변수가 발생했잖은가.”




모든 독자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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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실전감각을 키워라 (4) 20.06.11 145 4 12쪽
23 실전감각을 키워라 (3) 20.06.10 154 3 13쪽
22 실전감각을 키워라 (2) 20.06.09 164 3 12쪽
21 실전 감각을 키워라 (1) 20.06.08 1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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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날의 기억 (3) 20.06.04 188 3 12쪽
18 그날의 기억 (2) 20.06.03 195 3 12쪽
17 그날의 기억 (1) 20.06.02 21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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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민호의 능력 20.05.22 318 4 12쪽
9 미션을 받다 20.05.21 385 4 12쪽
8 오래된 영상 20.05.20 391 5 12쪽
7 메모리칩을 찾아서 (3) 20.05.19 395 5 13쪽
6 메모리칩을 찾아서 (2) 20.05.18 428 4 13쪽
5 메모리칩을 찾아서 (1) +2 20.05.15 46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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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나긴 했는데 20.05.13 524 7 12쪽
2 넌 누구니? 20.05.12 61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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