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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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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5.12 10:17
최근연재일 :
2021.06.0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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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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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진리의 탑으로(2)

DUMMY

우리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이었다. 무너진 성벽, 고대 유적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출입금지였기에 이리스가 이 장소를 택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여기는 여전하군.”

“그러게.”


저 멀리 도시 중앙에 우뚝 선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 푸른 하늘에 닿을 듯 말 듯, 회색빛 탑은 가슴을 웅장하게 했다. 이리스는 아련한 눈빛으로 진리의 탑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마나가 느껴져.”

“나도 느껴진다.”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칼로 쿡쿡 찔리는 기분이야.”


이리스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나는 이리스의 말에 어떠한 답변도 해줄 수 없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뿐. 이리스는 두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카일의 심장이 있는 진리의 탑 상층부를 바라보았다.


‘카일.’


카일은 참 독특한 친우였다. 오래전, 그는 스스로 용족임을 드러내며 이곳에 진리의 탑을 세우고 인간들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왕족이든, 평민이든 재능이 있다면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당시 노예였던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내게 잠재된 재능을 알아본 카일은 마나를 느끼는 방법부터 마법을 구현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내게 카일은 친우 이전에 좋은 스승이자 새 삶을 준 은인이었다.


‘벌써 1600년 전이로군.’


이 대륙 위에 인류가 세운 최초의 국가가 태동하지도 않을 때였으니 진리의 탑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진리의 탑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거짓이라 외쳐봤자 진리의 탑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고하게 남아 있을 뿐이고 시간과 함께 유유히 지나갈 뿐이다.


“에드, 내가 아빠의 심장을 회수하면 진리의 탑은 무너지겠지?”

“진리의 탑은 카일의 심장을 동력원으로 삼아 건축되었으니 신기루처럼 사라질 거다.”

“그럼, 아빠가 싫어할 테고.”

“카일은 자신이 죽더라도 진리의 탑이 후세에 빛나길 원했다.”


이리스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왜 인간들을 위해 죽어가면서까지 심장을...미안.”

“신경 쓰지 마라.”


나도 당시에는 이리스처럼 카일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타 종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법을 전수해주었을까. 그는 단순히 선의, 동정심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알고 싶었던 거지.’


카일은 용족에게는 없는, 다른 종족에게는 존재하는 그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지금도 카일의 붉은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카일을 신이 내려주신 사자라 부르며 신성시하고 숭배했지만, 생기를 잃어버린 붉은 눈동자에는 모든 감정이 마모되고 풍화되어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카일의 얼굴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아직은 내가 온전한 인간일 때 일이다.


‘카일.’

‘내게 할 말이 있나?’


음침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고저가 없고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무색무취의 목소리였다.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의 선의를 믿고 질문을 던졌다.


‘용족은 어떤 종족이야?’


그러자 카일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말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인간은 처음이군. 단순한 호기심인가?’

‘그럴지도?’

‘부럽군.’

‘뭐라고?’


카일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우선 네 질문에 대답해주자면 용족은 일곱 신의 뜻을 지상의 종족들에게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족이다. 과거 막시움처럼 신의 권능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마나에 친숙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 그래서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다. 또한, 용족은 타 종족보다 수명이 매우 긴 편이다. 인간이 120년을 산다면 우리는 그보다 100배는 오래 산다고 보면 된다. 물론 태어난 후로 자연으로 돌아간 용들은 없지만, 신들께서도 우리에게 죽음은 있다 하셨으니 곧 나올지도 모르지.’

‘...’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살아가는 시간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괴리감이 크지. 우리의 대화가 내 일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찰나...려나.’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찰나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은 방금 나눈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한 말과 목소리, 감정, 행동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지.’

‘그걸 다 기억하다니.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 돼.’

‘이제 대답이 되었나?’

‘어? 응, 충분히.’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눈동자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도 네게 물어볼 것이 있다.’

‘나한테?’

‘어쩌면 개인이 아닌 인간 전체에 묻는 말일 수 있겠지만.’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괜찮아.’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 에드, 감정이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지?’


공허한 붉은 눈동자에 담긴 절실함, 분명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일이 왜 인간들에게 마법을 전수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긴 고민 끝에 카일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카일은 감정을 가지고 싶은 게 맞지?’


카일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럼, 간단해. 지금의 지위를 내려놓고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는 건 어때? 그들의 삶을 이해하다 보면 언젠가는 감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그냥 내 의견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잊어버려도 돼.’

‘나는 망각이라는 걸 못한다만.’

‘미리 말하지. 괜히 말했잖아.’


내가 살짝 화를 섞어 말하자 카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군.’


나는 씁쓸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가. 조언해줘서 고맙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둥지로 돌아가겠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뿐이니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알겠어.’


놀랍게도 카일은 내 의견을 받아들여 유희라는 의무를 만들고 모든 용족에게 행할 것을 강요했다. 불만을 가진 용족은 없었다. 카일은 용족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로드, 그의 말을 거부하는 일은 죽음과도 같았다.

카일의 말에 따라 용족은 인간 사회에 적극적으로 스며들었고 놀랍게도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목각인형이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1년. 수천 년을 살아온 용족이 새롭게 탄생하는 데 걸린 기간이었다. 다시 만난 카일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에드! 오랜만이구나.’

‘카...일 맞아? 정말 카일이야?’


카일은 내 표정이 웃겼는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나타난 그가 낯설게 느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카일이 그토록 염원했던 감정을 손에 넣었다는 걸 말이다.


‘축하...한다고 말해야 하나.’

‘네 덕분에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딱히 한 게 없는데.’

‘아니다. 넌 우리 종족의 은인이자 구원자다! 그러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그래도 뭔가 어색하네.’


내가 살짝 부끄러워하자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본 사이에 많이 성장했구나.’

‘네가 가르쳐준 마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익혔지. 인간들 사이에서 꽤 잘나가고 있단 말씀이지!’

‘다행이구나. 내가 대륙을 떠도는 사이에 네가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을까 걱정 많이 했었는데. 건강한 모습을 보니 좋구나.’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후후, 그런가. 에드.’

‘왜?’


카일은 미소를 거두고 진중한 얼굴과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자네를 내 친우로 맞이하고 싶은데. 괜찮겠는가?’

‘뭐? 나를 친우로?’

‘친우로는 부족한가? 그럼, 용족의 명예인 원로원직을...’

‘아니! 괜찮아! 친우로 만족할게!’


그러자 카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정말인가!’

‘그게 뭐가 어렵다고.’

‘하하하! 드디어 내게도 친우가 생겼군! 친우가 된 기념으로 오늘 밤은 먹고 죽어보세!’

‘마나로 술기운 밀어내기 없기?’

‘당연하지 않은가! 어서 가세!’


그렇게 용족은 감정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았지만, 그것이 자신들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은 나도, 그들도 알지 못했다. 왜 신들이 그들에게 감정을 부여하지 않았는지, 용족이 하나둘씩 광기에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일을 겪고 난 후, 모든 감정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과 용족이 함께한 역사를 지워버렸다. 후세에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에드.”


이리스는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무슨 일이지?”


이리스는 거대한 회색빛 탑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에드는 몇 년 만에 왔어?”

“51년 정도 됐다.”

“아아, 레테랑 같이 왔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스는

다른 여인들과 달리 의외로 레테와 사이가 좋았다. 레테의 활발한 성격과 이타심이 아닌 그녀가 보잘것없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급 정령들밖에 다루지 못했기에 이리스는 그녀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았던 거다.

그렇게 기나긴 감상이 끝나고 이리스는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바로 들어가서 알아볼 거야?”

“조용히 잠입한다.”

“정면으로 들어가도 되는데.”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지.”

“오랜만에 탑주나 괴롭히려고 했는데. 알겠어. 은둔자의 밤.”


이리스의 펼친 은둔자의 밤은 직접 은신하는 회색 망토와 다르게 사람들이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고위 마법이었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마법들이 결합하여 구현되는 것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구사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 차례 고위 마법을 펼쳤음에도 이리스는 숨 쉬듯 다시 마나를 일으켰다.


“유령의 발걸음! 요정의 장막!”


충돌 무효화 마법과 방음 마법까지 연이어 펼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가지.”


우리는 회색의 벽을 그대로 통과하여 마법사들의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진리의 탑으로 들어왔다. 진리의 탑 내부는 무척 평범했다. 1층은 중앙에는 원형 로비가 있었고 로비 주변으로 수십 개의 방이 존재했다. 모두 마법사들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나무로 만든 문에는 마법사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박혀 있었다.


“여기는 없네. 2층으로 가자!”


이리스는 앞장서서 원형 계단을 걸었다. 1층부터 10층까지는 수습 마법사들이 많았으니 세라가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꼼꼼하게 확인하며 탑을 올랐다.


“11층은 식당이니까 지나가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응?”


또각또각.

뒤에서 낯선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느껴지는 마나는 내게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떨리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어느 정도 진정되자 돌아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라인가.”

“늦지 않게 오셨네요.”


나는 세라의 달라진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벨의 극찬이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기 때문이다. 성숙해진 얼굴에는 어렸을 때 모습이 조금 남아 있었다.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매혹적인 금색 눈동자와 길게 기른 탐스러운 사과처럼 농염한 적발은 자신이 세라라는 걸 내게 증명하는 듯했다.


“...”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세라는 그리움이 담긴 눈빛을 지으면서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이곳에서 줄곧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가 약속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된 세라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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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초대 성녀(2) +2 21.06.04 47 7 11쪽
24 초대 성녀(1) 21.06.03 42 7 12쪽
23 방랑의 이유 +4 21.06.01 51 4 12쪽
22 엔딩(2) +2 21.05.31 65 7 16쪽
21 엔딩(1) +2 21.05.30 63 7 15쪽
» 진리의 탑으로(2) +3 21.05.29 58 7 12쪽
19 진리의 탑으로(1) +2 21.05.28 69 6 10쪽
18 뜻밖의 인물 +2 21.05.27 79 6 13쪽
17 알면 다쳐 +4 21.05.26 72 8 13쪽
16 유물(2) 21.05.25 70 7 13쪽
15 유물(1) +6 21.05.24 79 10 12쪽
14 지상 최후의 용(2) +4 21.05.23 93 10 14쪽
13 지상 최후의 용(1) +4 21.05.22 102 10 15쪽
12 비극적인 이야기(2) 21.05.21 90 9 13쪽
11 비극적인 이야기(1) +4 21.05.20 114 13 13쪽
10 끝맺음 +4 21.05.19 126 11 13쪽
9 축제(2) +2 21.05.18 110 12 14쪽
8 축제(1) +2 21.05.17 128 11 11쪽
7 운명론 +1 21.05.16 143 12 11쪽
6 야외수업 +6 21.05.15 152 14 11쪽
5 대접 +4 21.05.14 163 13 13쪽
4 과거 인연 +2 21.05.13 189 16 14쪽
3 수업(2) +1 21.05.12 196 14 11쪽
2 수업(1) +2 21.05.12 252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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