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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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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7
최근연재일 :
2021.06.09 23:15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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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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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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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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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수업(2)

DUMMY

소녀와 함께한 지난 일주일은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이걸 다 이해했다고?”

“적정량의 마나를 회로를 통해 보내고 W.514.129 좌표에서 생성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답이다.”

“에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풀어내는 모습을 본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놀라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색을 넣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마법의 위력이 낮아지나요? 아니면 커지나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군.”

“헤헤! 제가 그럴 줄 알고 어젯밤에 실험해봤는데 붉은색에서 파란색으로 색 변화를 주니까 위력이 조금 줄어들었어요. 대신 범위가 커졌죠!”

“내가 밖에서는 마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핫!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이처럼 소녀는 생각하지도 못한 발상을 마구 쏟아냈다. 사람을 식물로 바꾸는 마법. 신체 부위 하나를 붙였다 떼어내는 기이한 마법. 완벽한 이론으로 보일지라도 위험해 보이는 마법들은 내 선에서 처리했다. 그렇다고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는 상상력이 무기였으니까. 물론 마을을 지키는데 이런 기괴한 이론들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면 마법 이론이 무척 쉬워 보일 수 있다. 어린 소녀도 쉽게 마법을 배운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마법 이론은 평생을 연구해온 마법사들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학문이다. 마법 연구에만 매진하는 학자들도 많았지만, 모든 마법 이론은 불완전했다. 내가 가르치는 마법 이론도 정답에 가까운 것일 뿐 결코 진리는 아니었다. 마법은 인간이 만들어 낸 학문이 아니니까.


“스승님, 마나 회로가 마나의 이동 경로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생각해본 건데 사람마다 마법 구현 속도가 차이 나는 가장 큰 이유가 마나 회로 길이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영창 속도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마나 저장소와 발현 지점까지의 길이가 짧으면 짧을수록 구현이 빨리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위 마법사들이 고민하는 구현 속도 이론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마법을 구현할 수 있을까. 속도와 가장 관련이 깊은 건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실험이 이뤄져야 했지만, 소녀는 이론만으로 최단 시간 안에 결과를 도출해냈다.


“스승님, 밀크 쿠키 없어요?”


말없이 쿠키를 내어주자 소녀는 행복한 얼굴로 해치웠다. 손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입으로 가져가며 또다시 제 생각들을 풀어냈다.


“원소 마법은 화, 수, 토. 풍, 광, 암. 6가지 속성으로 나뉜다고 하셨는데 얼음 마법인 아이스 스피어는 어디에 속하는 걸까요?”

“원소 마법뿐만 아니라 타 마법도 완벽하게 이해해야 얼음 마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 수 있다. 아직 네가 배울 단계는 아니지.”

“으음, 제가 생각한 걸 말해 봐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큼은 배우지 않고 말하기 어려웠다.

이 이론은 아직 완벽하게 확립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소녀는 거침이 없었다.


“으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수 속성과 풍 속성이 결합하여 구현되는 마법 같아요. 더 파고들자면 온도를 조절하는 마법도 함께 생각해야 더욱 단단한 얼음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말이 맞나요?”


완벽하진 않지만,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다. 소녀는 빙 속성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가 적은 이유를 아주 잘 설명했다. 그리고 원소 마법을 주력으로 익히는 마법사가 적은 이유도 말이다. 원소 마법은 속성 마법을 완벽하게 이해해도 고위 마법으로 올라갈수록 속성 마법 이외에 여러 마법을 요구했다. 예시로 ‘파이어 스톰’을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이러했다.


[화 속성]+[풍 속성]+[가속도]+[형태 유지]+[크기]+[장소]


최소 6가지 마법을 결합할 줄 알아야 구현됐다. 보통 마법보다 훨씬 많은 결합 마법을 요구했다. 마법사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원소 마법을 포기하는 이유였다.

이렇듯 소녀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빛을 발휘했다. 물론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해올 때도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스승님, 사실은 저 고대 종족인 용족의 후손이 아닐까요?”

“그랬다면 내게 마법을 배울 일은 없었지.”

“왜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가. 소녀는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맑고 순수한 눈빛, 금색의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거린다.


‘그런가.’


하긴 이곳은 마수의 숲에 만들어진 유랑민들의 마을이다. 살기도 바쁘니 상식이 뒷전으로 물러나는 건 당연했다. 마도 가문의 혈육인 소녀일지라도 말이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용족을 얼마나 알고 있지?”

“마나를 잘 다루는 도마뱀이요!”


녀석이 들었다면 소녀를 죽였을지도.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소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인간에게 마법을 전수해줬지?”

“에이! 신께서 주신 선물이잖아요. 어라? 아니에요?”


소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대충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소녀가 비하했던 용족은 나약했던 인간에게 마법을 알려준 고마운 존재였다. 몇몇 마법사들은 경외를 넘어서 그들을 열렬히 숭배했다. 대륙을 떠난 용족을 신으로 모셨던 거다.

마도 가문 마르세린도 용족을 신으로 모신 가문 중 하나. 소녀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이 믿은 신이 용족이라는 건 모른 채 말이다.


“네 할아버지가 알려준 것이군.”

“네! 신께서 마법을 전수해주셨다고 하셨어요.”


나는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 신이 용족이다.”

“도마...아니 용족이? 진짜요?”


나는 소녀에게 5살 먹은 꼬맹이도 알 상식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알려주었다. 소녀는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천천히 풀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용족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도마뱀이 아니라 아인이라는 거죠?”

“그래. 용족은 태어날 때부터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마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스승님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셨던 거군요.”

“대륙에서는 상식이지.”

“윽! 저 상처받았어요.”


하지만 나는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마법 이론서를 덮었다. 소녀가 살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오늘 마법 수업은 여기까지.”

“아직 1시간 남았는데요?”


마법 수업은 하루에 3시간으로 정했다. 소녀도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나도 오랫동안 가르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3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소녀는 마법보다 먼저 배워야 할 공부가 있었다. 명색이 마법산데 이대로 둘 수 없었다.


“앞으로 내 수업은 마법 수업 2시간, 교양 수업 1시간으로 하겠다. 불만 있으면 나가도록.”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내 심성이 못된 걸까. 소녀의 미소보다는 저런 반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상식의 기초가 될 고대 역사부터 가르치기로 했다. 본래 교양이라 함은 역사가 기본이니까.


“첫 번째 수업은 역사다.”

“으엑!”


소녀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 하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풀 죽은 강아지처럼 얌전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


털썩.

소녀는 지친 얼굴로 탁자에 널브러졌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역사 싫어요. 마법 좋아요. 차 맛없어요. 밀크 쿠키 먹을래요.”

“마나의 길을 걷는 자는 마법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전 그저 마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인데.”


그런 녀석이 괴상한 마법을 생각해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말이다.


“껍데기만 남은 마법사는 마나의 길이 아니라 마도의 길을 걷게 된다. 힘만 추구하는 마도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의 나침반 역할 하는 역사는 무척 중요하다. 바른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이지.”

“알겠어요. 열심히 배울게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발랄한 얼굴로 소리쳤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챙겼다. 슬슬 먹거리가 떨어져 가니 도시로 가서 장을 봐야 했다. 특히 쿠키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매일 한 통씩 해치우는 생물이 내 앞에 있었으니까.


“저어, 스승님.”

“아직도 안 갔나.”

“오늘 도시로 나가실 거죠?”


소녀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내 앞에서 숨겨도 소용없다는 듯 말이다. 나는 빠르게 포기했다. 소녀의 집요함이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도시로 가세요?”

“이 마을에 상점이 있었던가?”

“있기야 하죠. 있긴 한데.”


소녀의 말대로 있긴 있다. 잡품 상점, 약초 상점, 옷 상점, 무기 상점. 끝이다. 이것 말고는 상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규모도 구멍가게보다 작았다. 상점이라고 부르기 모호했다. 물론 급할 때는 이곳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된다지만, 꺼리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가격이다. 도시 물가보다 몇 배나 비쌌다. 금전에서 자유로운 나였지만, 손해는 내키지 않았다.


“나가봐야 하니 이만 가라.”

“스승니이이임.”


나는 소녀의 간절한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눈빛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속아 넘어가는 순간 손해는 고스란히 내가 본다.


“안 돼.”

“저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요!”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겠지.”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헤헤. 들켰네요.”

“웃어넘기려 해도 소용없다.”


딱 잘라 말하자 소녀는 다급히 소리쳤다.


“한 번 만요! 딱 한 번만 보고 싶어요! 저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건 불행한 일이었지만, 소녀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촌장님께 허락받고 와라. 그럼 얼마든지 같이 가주지.”

“스승님 치사해욧!”

“어쩔 수 없다. 아직 네게 텔레포트는 독이다.”

“마나 과부하 때문이죠?”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상식은 부족하면서 마법 이론은 잘도 때려 맞추는군.”

“에헴! 제가 누군가요? 훌륭하신 스승님의 제자잖아요.”


나는 이미 소녀의 얄팍한 수를 꿰뚫고 있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을 메며 말했다.


“아부해도 소용없다.”

“쳇. 알겠어요. 다녀오세요.”


문을 닫자마자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쫌생이.”


원래라면 들리지 않겠지만, 누가 벽을 부숴놔서 그런지 아주 잘 들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쫌생이가 다녀올 때까지 복습 철저히 하도록.”

“헤헤. 다 들었어요?”

“내일은 역사 시험을 볼 테니 그리 알도록.”

“헉! 스승님! 안 돼요! 한 번만 봐주세요!”

“떼를 써도 소용없다.”


나는 소녀의 절규를 들으며 마을 밖으로 나섰다.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작가의말

오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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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진리의 탑으로(1) +2 21.05.28 68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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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알면 다쳐 +4 21.05.26 71 8 13쪽
16 유물(2) 21.05.25 69 7 13쪽
15 유물(1) +6 21.05.24 76 10 12쪽
14 지상 최후의 용(2) +4 21.05.23 91 10 14쪽
13 지상 최후의 용(1) +4 21.05.22 100 10 15쪽
12 비극적인 이야기(2) 21.05.21 89 9 13쪽
11 비극적인 이야기(1) +4 21.05.20 112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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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축제(2) +2 21.05.18 108 12 14쪽
8 축제(1) +2 21.05.17 127 11 11쪽
7 운명론 +1 21.05.16 142 12 11쪽
6 야외수업 +6 21.05.15 152 14 11쪽
5 대접 +4 21.05.14 162 13 13쪽
4 과거 인연 +2 21.05.13 187 16 14쪽
» 수업(2) +1 21.05.12 194 14 11쪽
2 수업(1) +2 21.05.12 251 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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