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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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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7
최근연재일 :
2021.06.09 23:15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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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7
추천수 :
282
글자수 :
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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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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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진리의 탑으로(1)

DUMMY

‘세라 마르세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다. 세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마법사였다. 에우리스를 뛰어넘을 재능을 지녔다 해도 단 몇 주 만에 수백, 수천 개의 마법 결합을 요구하는 창조 마법을 펼친다고?

무리다. 나나 이리스도 이 정도 창조 마법을 펼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대륙 전체에 망각의 저주를 걸어버린 이리스도 오랜 기간이 걸렸었으니까.


“에드.”


이리스의 부름에 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며 그에게 물었다.


“세라 마르세린이 확실합니까?”

“본인을 그렇게 소개하더군요.”

“머리는 붉은색이 맞습니까?”


아벨은 안경을 벗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네, 확실히 마르세린 가문의 특징인 적발, 금안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세린 가문은 국가반역죄로 멸문되었을 텐데.”

“그래서 본인을 일라에르 마르세린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더군요. 일라에르의 후손들은 권력에서 밀려나 귀족 지위를 박탈당해 처벌을 면한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마법 학계에서는 이 근거를 토대로 그녀를 마르세린의 후손으로 인정해주었죠.”


아벨은 다시 안경을 쓰며 말했다.


“저는 그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늙은이의 주책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루티아님께서 지상에 강림했다면 이런 외모를 지니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렇습니까.”

“예, 정말 아름다우셨죠. 그래서 진리의 탑 입구에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청년들로 가득했습니다. 제 둘째 아들놈도 그 중 하나였죠. 하하하!”


세라가 무사히 자라만 준다면 미인이 될 상이긴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이리스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멈췄다. 위험했다. 이리스의 붉은 눈동자에서 끈기라는 촛불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아벨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우리에게 말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소문이 있었죠.”

“재미있는 소문?”


이리스가 반문하자 아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낮에는 어두운 장소에서 깊은 수면에 빠지고 밤에만 왕성히 활동한다고 하여 한동안은 최후의 뱀파이어라는 소문이 돌았지요.”

“뱀파이어는 아직 있는데.”

“응? 아직 있다니 무슨 말이니?”


이리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 내 상상 속에 있다구.”

“하하하! 그런 말이었구나.”


뱀파이어. 아벨의 말대로 가능성은 충분했다. 뱀파이어도 마법에 능한 종족이었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데 능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인간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워낙 수도 적고 음지가 강한 지대를 좋아하여 양지로는 나오려 하지 않았다. 물론 이리스라는 존재가 가장 클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소문일 뿐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믿는 사람도 없거든요.”

“왜?”

“뱀파이어는 인간을 증오하는 종족인데 인간을 이롭게 하는 마법을 만들 리는 없잖니.”

“그렇구나. 그래도 걔들 착한데.”

“이리스의 상상 속에선 말이지?”

“응! 엄청 착해! 막 선물도 줘!”


뱀파이어 입장에서는 선물이 아니라 조공이겠지. 그들의 삶도 기구했지만, 이리스가 아벨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사이 나는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먼저 세라 마르세린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일라에르 마르세린의 후손이 맞다. 홀로 가상현실 이론을 해독하고 실현할 수 있는 천재마법사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밤에만 활동한다. 정보를 부합해봐도 의문부호가 따른다.


‘정말 세라가 맞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세라 마르세린은 어린 소녀지 어른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변화,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정보를 더 모아야 해.’


아벨에게 더 묻는다면 의심을 살 수 있다. 지금도 충분히 의심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나는 이리스에게 눈빛으로 부탁했다.

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일으켜 아벨의 기억에서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삭제시켰다. 부분 기억 삭제 마법, 고도의 마법이었음에도 이리스는 별 어려움 없이 해냈다.


“어? 두 분이 여긴 어떻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벨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딸아이가 유람선을 타고 싶다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벨 씨라면 유람선을 타는 장소를 아실 것 같았거든요.”


이리스는 내 의도를 눈치채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난 얼굴로 소리쳤다.


“응! 응! 나 아빠랑 둘이 유람선 탈 거야! 와! 신난다!”


다행히 아벨은 이리스의 연기에 속아 넘어갔다.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군요. 유람선은 샤바스 레스토랑에서 오른쪽으로 세 블록 가면 선착지가 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리스 양, 아빠랑 좋은 시간 보내다 오렴.”

“응! 고마워! 나중에 봐!”


우리는 아벨을 뒤로하고 빠르게 이리스의 둥지를 나왔다. 아이처럼 재잘거리던 이리스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가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며 다급히 물었다.


“에드, 아는 년이지?”


제 딴에는 살기를 숨기는 걸 테지만, 주삿바늘이 콕콕 찌르는 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이리스의 살기를 밀어내며 답했다.


“이름은 알지만 내가 알던 자가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일라에르 마르세린보다 뛰어난 마법 실력과 지식을 지녔다는 거다.”


다행히 이리스의 관심을 돌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낀 채로 가볍게 날아올라 내 품에 안겼다.


“응. 그건 인정. 일라에르는 내가 인정한 인간 마법사니까.”


하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던 이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에드, 나도 그 녀석이 쓴 논문을 이해하는 데 한세월이 걸렸어.”

“이론을 알았던 나도 완벽하게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우리 둘도 그런데 마르세린 후손이란 녀석이 2,000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며칠 만에 다 읽은 것도 모자라 논문을 이해하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고? 일라에르 녀석이 기억을 지닌 채 환생한다면 모를까. 어? 가능성 있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위대한 순환에서 벗어날 영혼은 정령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대마법사 지위에 오른 일라에르라 해도 그건 무리다.

한껏 망상을 펼치던 이리스도 아니라 생각했는지 자신의 가설을 폐기처분을 하며 물었다.


“세라 마르세린이란 얘가 일라에르 후손인 건 분명하지?”

“그럴 거다. 적발, 금안을 가진 이는 마르세린 가문뿐이니까.”

“그렇다면 에드에게 마르세린의 신물을 준 년이 혹시?”

“우연히도 그 아이지.”


이리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톱을 살짝 물어뜯었다. 그녀의 눈빛이 광기에 점차 물들여 가는 증상이 보이자 나는 재빨리 해명했다. 그리고 광기를 잠재우는 아티팩트를 슬쩍 꺼냈다.


“아직 10살밖에 안 된 소녀다.”

“에드는 꼬맹이들 좋아하잖아! 특히 재능을 가진 아이들만 보면 눈이 뒤집혀서 도와주려고 하잖아!”


나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단호히 말했다.


“보호하려는 것뿐이다.”

“거짓말!”

“속된 말로 알량한 동정심이지.”

“거짓말!”


이리스는 잔뜩 화를 내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감이다. 나를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두려운 걸 테지.

이건 전부 내 탓이다. 그녀가 나를 집착하게 된 이유는 모두 내게 있었다. 내가 용족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않았다면 이리스는 최후의 용족이 될 일도 없었을 테고 나에게 집착할 일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것이 인형의 삶일지라도.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입이 얼어붙자 이리스는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뜨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


이리스는 다시 차분한 얼굴로 돌아와 내게 물었다.


“에드, 찾아가 보는 건 어때? 잘 지내는지 확인해보면 되잖아.”

“...”

“안 죽인다니까!”


이리스의 외침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왔던 살기는 연기처럼 사라졌고 씁쓸함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지만, 결국에는 믿어준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이리스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진리의 탑부터 간다.”

“갑자기 진리의 탑은 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이리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 물었다.


“예약 시스템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지금은 예약시스템에서 머물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일라에르의 이론이 발전한다면 신들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세계가 변하겠지. 그렇게 된다면 인간들은 과거 용족처럼 멸족할지도 모른다.”

“역시 무로 되돌릴 생각이구나.”

“신들은 피조물이 통제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라에르는 자신의 이론을 숨길 수밖에 없었지.”


일생의 역작이라 자랑했던 일라에르도 알고 있었다. 논문에 적힌 마법들이 모두 구현되는 순간 용족을 뒤따르게 된다는 걸.

결국, 일라에르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이론을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숨겼다. 그런데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발견될 줄이야.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두자.”

“그러자. 좌표는 그대로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동부에서 수천 km 떨어진 장소였지만, 이리스는 산책이라도 하듯 콧노래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진리의 탑을 세운 존재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나의 친우, 카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리스는 유희를 나올 때면 어떤 신분이 되었든 항상 진리의 탑에 방문했다. 카일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리스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텔레포트!”


새하얀 빛에 삼켜진 우리는 토리누스에서 모습을 감췄다.


작가의말

이번 에피소드는 3화 내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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