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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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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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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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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출항

DUMMY

대중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 고대에 축제만큼 신나는 것이 있을까. 안티오키아 시민들은 오랜만의 축제를 한껏 즐겼다.


어딜 먼저 가야 할지 모를 만큼 다양한 축제 행사가 열렸고, 그 많은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나는 해뜨기 전부터 캄캄한 밤까지 뛰고 또 뛰어야 했다.


여덟살 아이에겐 벅찬 일정이었다.


축제가 끝난 저녁 에우메네스 저택.


빨갛게 충혈된 눈의 에우메네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왕자님.”


“에우메네스가 더 수고했어. 에우메네스가 없었다면 이런 규모로 신전제의를 열 수 없었을거야.”


“하하 하아. 솔직히 역대급 규모를 언급하셨을 때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시더군요.”


“에우메네스의 실행력을 믿었지. 내 말을 따라줘서 고마워 에우메네스.”


“별말씀을요.”


“재정 상황은 어때?”


“아직 장부 정리가 끝나지 않았지만 올림피아드 복권과 전차 경주와 검투사 도박 수익이 개최 비용을 많이 메울 것으로 보입니다. 음지에서 도는 돈이 그리 많을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올림피아드, 검투사 시합, 전차 경주··· 수백년 간 지속된 시합은 자연스레 도박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나는 어차피 음지에서 행해질 도박을 양성화하였다. 광장과 경기장 입구에 커다란 부스를 설치하고 스포츠 복권을 판매했다.


-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후원해주세요 -


파피루스 복권에 선수 후원금으로 일부 사용된다는 문구를 삽입하여 시민의 도박 죄책감을 희석하였다.


여기에 무명의 풀로가 공식 올림피아드 챔피언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1: 10,000 초대박 사례가 나타났다. 시민들 눈이 뒤집혔다.


이후 복권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신전의 조력이 컸습니다.”


“대사제께서 신전고용인을 축제 관리 인력으로 내주셨지.”


“확실히 사람 다루는 일은 종교인이 잘하더군요. 상단이 재정을 맡고, 신전이 인력 관리를 맡으면서 역할 분담이 잘되었습니다.”


“예술 후원도 성공적이었어.”


이번 축제는 신탁 수행에 동행할 예술인 선발을 겸했다.


나는 조각가, 미술가, 시인, 음악가, 연극인, 무용가 등 각 분야의 예술가를 심포지움(그리스식 술연회)에 초대하였다.


예술가에게 신탁 수행 동행 제안은 견문을 넓힐 기회였고, 로마 정착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였다.


많은 예술인이 동행을 수락하였다. 그중 특출난 재능은 내 개인교사로 따로 계약하였다.


예술은 내 외모에 세련미를 더해줄 강력한 무기였다.


에우메네스가 소개한 하프 선생님이 내 연주를 이렇게 평했다.


“왕자님의 음악 재능은 우수합니다. 기교는 평범하나 박자 감각이 천재적입니다. 박자를 갖고 논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전생 전 리듬 게임을 즐겼던 영향일까··· 나도 모르게 그루브를 탔더니 하프 선생님 눈이 뒤집어졌다. 신탁 수행중에도 하프는 꾸준히 연습할 생각이다.


로마 단독 콘서트를 열 날이 기대된다.


여러 예술인 가운데 핵심 측근도 뽑았다.


아르고스.


라틴어 공연 의도를 알아챈 아르고스는 단지 눈치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훌륭한 극작가로 이번 경연 대회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나는 아르고스를 끌어들여 아폴로니스 극단을 창설했다. 아르고스는 극단책임자로 총연출을 맡기로 했다.


내가 연극을 중시하는 이유는 연극이 말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행동 예술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대사 한 마디만 살짝 바꿔도 정치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다. 작품에 내 의도를 슬쩍 섞어 공연하는 것이 로마 귀족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작품 하나하나 강도를 높여 섞어버리면 천천히 독을 주입받는 것처럼 물들어갈 것이다.


“아르고스, 서사시 시인과 협력해서 그럴듯한 로마 건국 서사시를 만들어봐. 내용은 트로이 후손이 아폴론 신의 예언을 받아 로마에 정착하는 걸로 하고.”


“로마 사람 입맛에 딱 맞는 내용이 되겠군요.”


“서사시 완성도는 높일 필요없어. 극본을 쓰기 위한 밑바탕이니까.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극본까지 1년 반이면 충분합니다.”


“다 쓰면 알려줘. 대사 수정 작업은 나도 참가할거야.”


“알겠습니다.”


“공화국 수립, 포에니 전쟁, 동방 원정··· 로마 사람이 좋아하는 역사적 사건 위주로 계속 써. 최소 1년에 한 편 새로운 연극을 공연한다는 생각으로 임해.”


쥐어짜겠다는 말에 아르고스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할 수 있지?”


“... 해보겠습니다.”


“아르고스, 난 애매한 말을 싫어해.”


“하,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보이겠습니다.”


“좋아 가봐.”


모든 정리가 끝났다. 나와 에우메네스는 벌개진 눈으로 서류를 정리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네.”


“... 아쉽진 않으십니까? 신전제의도 성공적으로 치루셨고, 지금 왕자님 인기와 명성이라면 안티오키아를 쉽게 취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어할 군사도 없는데 안티오키아를 차지해봤자지. 당장 로마군이나 아르메니아군 한 부대만 와도 와르르 무너질 걸.”


“... 그건 그렇죠.”


“지킬 힘도 없는데 욕심내봤자 로마 개선식 조리돌림 신세만 될 뿐이야. 원래 계획대로 가자구.”


로마가 내전을 겪을 때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나는 로마로 갈 것이다.


에우메네스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지중해 해적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력이 필요하여 해적과 손잡는다면 왕자님 명성에 큰 흠집을 남길 것입니다. 정말 그들을 만날 생각입니까?”


“교화한다는 의도로 포장해야지.”


“사람 잡아파는 악마들입니다. 그들에게 교화가 먹힐까요?”


“쉽지 않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계획에 해군은 반드시 필요해. 카르타고 해적은 해군 출신인만큼 즉시 전력감이야. 로마에 맺힌게 많은 놈들이니 설득이 먹힐거라고 봐.”


······


“답신은 받았나?”


“안티오키아 노예상이 연락했습니다. 대화를 원하면 킬리키아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축제 정리가 끝나는대로 출발하겠다고 전해.”


“바로 가실 겁니까?”


“안티오키아 바로 위가 킬리키아잖아. 가는 길인데 안들를 이유가 없어.”


다음날 나는 신전 조각가에게 축제 기념 석상을 주문했다. 신전 앞에 황소 석상을 세워 빈민 구제를 홍보했고, 스타디움 앞에 풀로의 플라잉 니킥 석상을 세워 우승을 기념했다.


알릴 것은 확실히 알려야 하는 법.


이제 안티오키아를 떠날 때가 왔다.


* * * * * * *


열흘 뒤 안티오키아 항구.


궁전에 들러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광장으로 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신탁 수행에 나서는 나를 환송하기 위해 항구에 모여들었다.


“왕자님께 아폴론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왕자님 무사히 돌아오세요.”


나는 풀로를 불렀다.


“풀로, 목말을 태워줘.”


2미터 풀로 어깨에 올라타 시민들을 향해 손흔들었다. 안티오키아에 돌아올 때는 왕이 되어 귀환할 것을 다짐했다.


세 척의 배가 일제히 닻을 올렸다.


선단은 3단 노선 호위함 한 척, 여객용으로 개조한 상선 두 척으로 구성했다. 유모와 시녀, 여신관은 나와 함께 타고, 동행하는 예술인 일행에게 한 척을 내줬다.


“꺄아악! 왕자님 배가 움직여요.”


돌고래 비명을 지르며 여신관 둘이 나를 껴안고 난리를 친다. 그다지 높지 않은 파도인데 호들갑인 걸 보면 일부러 껴안는 것이 분명하다.


“저기 배가 지나가요.”


여기 40만 항구 도시야. 배가 보이는 건 당연해.


“바다다. 왕자님, 지중해가 보여요.”


“어 음··· 한 번도 바다 본 적이 없어?”


“안티오키아 성밖은 태어나 처음이에요.”


둘의 설레발이 이해되었다.


실은 나도 배 타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돛으로 움직이는 2천년 전 배를 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 배 탄다고 했을 땐 개인 요트만한 크기를 예상했다.


그런데 웬 걸.


길이 40미터 커다란 배가 항구에 떡 서있는게 아닌가. 400톤을 나르는 화물선이라 한다.


커다란 사각돛을 펼치니 등바람을 안고 돛이 가득 부풀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중해 파도를 가르며 북상하였다.


잠시 후 낭만적인 바다 여행을 꿈꿨던 나, 아도니아, 헬레네가 시무룩해졌다.


슈발··· 배가 안나간다.


지렁이도 이보단 빠를 것 같다. 이놈의 사각돛이 바람을 뒤에서 받지 않으면 나가질 않는다. 바람이 역풍에 가까워지자 부푼 돛이 평평해지면서 배가 멈췄다.


“아놔, 역풍 제대로네.”


“지중해는 풍향이 수시로 바뀝니다. 느긋하게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럴 순 없지. 삼각돛은 왜 안쓰는 거야?”


삼각돛과 사각돛.


삼각돛의 역풍 항해가 가능한 이유는 지그재그로 배를 움직여 역풍을 거스르는 태킹 기술 덕분이다.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든 전진이 가능한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삼각돛은 배 방향을 전환할 때 돛 방향을 함께 바꿔야 하는데, 태킹이라는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하다.


범선 프라모델을 보면 돛마다 밧줄이 주렁주렁 걸려있지 않던가. 전부 필요한 밧줄이다. 돛줄 이름 수십 개를 외우고 순서대로 당겼다 풀어야 돛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에우메네스가 황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삼각돛은 나일강 파피루스선 같은 조그만 배에서 쓰는 돛입니다.”


“삼각돛을 대형선에 쓰지 못하는 이유는 돛조정이 어렵기 때문이야. 시간을 두고 숙련 선원을 키우면 돼.”


“선원 수를 늘리면 운송비 부담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대신 운송 기간이 줄어들잖아. 바다에 떠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재해 위험도 낮아져. 역풍을 거스르면 저기압 폭풍우로부터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어.”


에우메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고가의 보석을 실은 배가 난파하여 엄청난 손실을 입은 일이 떠올랐다.


나는 일전에 그려둔 세계 지도를 꺼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를 가르는 홍해를 짚었다. 홍해를 따라 오른쪽으로 죽 선을 그어 인도를 가리켰다.


“적응력이 높다는 말은 안정적 원양 항해가 가능하다는 말이야. 사각돛을 단 배는 1년에 두 번 계절풍이 불 때 왕복 1번의 인도 교역이 가능하지만, 삼각돛을 달면 1년에 여러 번 왕복할 수 있어.”


“인도 교역을 생각하고 계셨군요.”


“그냥 지중해에서 교역할 거면 페르가몬 상단을 이용해도 되잖아. 기왕이면 인도 항로를 오가야 돈을 벌지 않겠어.”


“잠깐! 카르타고 해적을 인도 교역 상단으로 써먹을 생각이셨군요.”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을 지중해 바깥에서 세탁하여 새사람으로 만들 참이야. 겸사겸사 인도 교역시 삼각돛 운용을 실전으로 배우게 할 생각이고.”


“처음 배우는 원양 항해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인도 항로가 지중해 항로보다 바람이 더 좋아. 그쪽 항로(북위 20 ~30도)는 계절풍이 일정하게 불거든.”


고대의 지중해 교역 네트워크는 아라비아, 인도까지 뻗쳐 있었다. 인도의 후추, 면직물은 로마의 주요 교역품이었다. 로마 사람들이 식사에 빼놓지 않는 것이 갈룸(생선 소스) 다음으로 후추다.


로마가 인도 교역에 지출하는 돈만 연간 수백만 데나리우스다. 인도 교역로를 내가 가로채면 로마 화폐 경제에 꾸준한 출혈을 강요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삼각돛을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는 먼훗날 해전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야. 삼각돛은 해전의 양상을 뒤집어버릴 수 있어.”


고대 해전은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1. 일자 진형을 갖추고 서서히 적 진영을 향해 다가간다.

2. 화살 사거리에 들어오면 불화살과 투석기 돌로 피해를 준다.

3. 좀 더 가까워지면 미친듯이 노를 저어 충각으로 상대편 옆구리를 들이받는다.

4. 노를 역추진으로 저으면 상대방 배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가라앉는다.

5. 백병전으로 마무리.


가장 중요한 것은 1번 전열 유지다.


살라미스 해전의 800척의 페르시아 함대도, 칠레 해전의 스페인 무적 함대도, 노량 해전의 10배가 넘는 일본 수군도 전열을 유지하지 못해 대패하였다.


패한 쪽이 바보라서 전열을 무너뜨린 것일까?


아니다.


바다는 바람과 파도, 밀물과 썰물, 해류의 흐름을 바꿔 시시각각 전장 변수를 만들어낸다. 이런 변수를 누가 빨리 알아채고 이용하는가로 해전의 승패가 갈렸다.


“범선을 해전에 쓰실 생각 같으신데 해전은 3단 노선이 대세입니다. 노선이 노를 저으면 범선의 속도를 능가합니다. 반대로 저으면 후진도 가능하니 기동력에서 상대가 안됩니다.”


“에우메네스 말은 단거리 기동력을 말하는 것이잖아. 장거리 기동력은 어떨까?”


작가의말

월요일에 뵐게요. 


편안한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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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도스 청동 거상 2 +17 22.05.27 4,413 206 13쪽
17 로도스 청동 거상 +14 22.05.26 4,520 169 13쪽
16 절름발이 천재 필론 +14 22.05.25 4,737 180 13쪽
15 비밀 동맹 +17 22.05.24 4,829 190 13쪽
14 타르수스 노예 시장 +7 22.05.23 4,948 204 13쪽
» 출항 +7 22.05.21 5,167 200 13쪽
12 반칙왕 풀로 +16 22.05.20 5,174 214 14쪽
11 연극과 전차 경주 +8 22.05.19 5,540 224 12쪽
10 처녀 빗치 여신관 +13 22.05.18 6,055 231 14쪽
9 왕자님의 그건 큰가요? +22 22.05.17 6,118 252 13쪽
8 신전 제의 준비 +12 22.05.16 6,142 240 13쪽
7 보레누스와 풀로 +25 22.05.14 6,282 251 13쪽
6 아키우스 클로디우스 +11 22.05.13 6,596 254 14쪽
5 페르가몬 상단 2 +13 22.05.12 7,035 260 14쪽
4 페르가몬 상단 +15 22.05.11 7,373 279 13쪽
3 델포이 신탁 +9 22.05.11 7,897 276 13쪽
2 잘생겨서 엉덩이가 위험하다 +14 22.05.11 9,139 33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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