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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최근연재일 :
2022.08.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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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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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처녀신의 도시

DUMMY

철썩 철썩.


순풍을 받은 배가 파도를 가르며 거침없이 북진하였다. 배 오른편으로 이오니아 해안지방(오늘날 터키 서부 해안)이 보인다.


푸른 하늘 아래 하얀 석회석으로 지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초록 언덕에 한가로이 풀뜯는 앙떼도 보인다.


풍요로운 이오니아.


온화한 기후는 농사짓기 적당하며, 주요 강줄기를 따라 우거진 삼림에서 질좋은 목재가 생산된다. 얕은 구릉지에서 포도와 올리브가 자라며 내륙 고원 초지는 가축 방목이 이뤄진다. 인류 최초 철기 문명이 탄생한 곳답게 광산이 일찌감치 개발되어 필요한 금속 자원은 언제든구할 수 있다.


60년 전 페르가몬 왕국 땅이었던 이오니아는 이제 로마 아시아 속주로 바뀌었다. 에우메네스가 말없이 육지를 바라봤다.


한 때 자신의 왕국이었던 땅을 타인이 되어 방문하는 기분은 어떨까?


“.... 괜찮아?”


“괜찮습니다.


“이오니아 분위기는 어때? 폰투스 침략에 큰 피해를 입었다 들었어.”


로마가 내전으로 정신없을 때 폰투스 왕국이 옛 페르가몬 왕국땅 아시아 속주를 침략해왔다. 무려 8만 명을 학살했는데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라틴계 이주민이 큰 피해를 입었다.


로마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내전을 수습한 로마는 곧바로 보복을 감행했다.


루쿨루스의 동방 원정.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쿨루스의 업적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에 뒤지지 않는다.


해전, 상륙전, 공성전, 야전··· 루쿨루스는 고대 전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오늘날 터키 지방을 정복하였다.


2년 전 카비라 회전은 루쿨루스의 진가를 보여준 전투였다. 루쿨루스는 로마 군단 중보병 2만으로 그리스 카타프락토이(중기병) 1만이 포함된 10만 폰투스군과 맞붙어 대승을 거두었다. 풀로가 루쿨루스를 구한 전투가 바로 이 전투였다.


루쿨루스는 군사 능력만 뛰어난게 아니었다. 아시아 속주민의 속주세를 감면하고, 피해 복구를 도와 민심을 수습하였다. 옛 페르가몬 왕국민이 로마의 속주 통치를 빠르게 받아들인 것은 루쿨루스의 공정한 전후처리 덕분이었다.


“아시아 속주는 전쟁 피해를 완전히 복구했습니다. 현재 주도 에페수스는 이오니아 물산 집산지이자 수출항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작정하고 키우는 도시라 했지···”


에페수스의 건설붐.


로마는 기존 석재 건축 대신 로마 콘크리트를 이용해 빠르게 도시 건물을 올리는 중이다. 내륙 수운을 통해 운반되는 금속 자재도 풍부하다.


에페수스는 건설 자재를 조달하기 가장 좋은 도시였다.


“철근 수급은 어떻게 할까? 필룸(로마식 투창) 5배 길이로 뽑아야 하는데···”


“에페수스는 동방 원정 보급기지도 겸하고 있습니다. 대형 대장간은 충분하니 주문 제작에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제작하는 동안 아르테미스 신전을 방문하면 되겠네.”


고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수스 주신 아르테미스를 모신 신전으로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신전으로 꼽힌다.


길이 130미터, 너비 70미터. 건물 하나가 축구장만한 사이즈다. 신전을 떠받치는 기둥이 127개인데, 이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2배가 넘는 숫자다.


안티오키아 아폴론 신전도 커다랬는데 아르테미스 신전은 얼마나 웅장할까? 발만 남은 로도스 거상이 아닌 제대로 된 고대 불가사의를 볼 생각에 가슴이 뛴다.


“아도니아, 헬레네. 아르테미스 신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지?”


“아르테미스 여신을 주신으로 섬기는 도시는 에페수스가 유일해요. 다른 도시는 주택 크기의 작은 신전밖에 없어요.”


“섬기는 도시가 하나라고? 명색이 올림푸스 12신인데 너무 초라한 걸.”


“왕자님, 아르테미스 여신은 어떤 분이죠?”


“아폴론 신의 쌍둥이 여동생. 달의 여신. 사냥의 여신. 순결의 여신.”


“순결의 여신을 모시는 신전답게 신관은 여사제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신도는 처녀인 소녀와 예비 신부가 대부분이에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성인 남성 신도가 없으면 교세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정절과 금욕을 강조하는 교리도 낮은 인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시스 여신을 보라. 다산과 사랑, 풍요와 의술, 마법··· 인기있는 요소를 다 갖추니 지중해 전역에서 러브콜이 쏟아지지 않던가.


“에페수스만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거야?”


“에페수스는 아르테미스 여신께서 선택한 도시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연에서 뛰놀며 사냥하기를 좋아한다. 나를 섬길 도시는 하나면 충분하니 대신 멋진 활과 화살을 달라.


제우스는 흔쾌히 딸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아르테미스는 에페수스를 택하였다.


여신의 선택을 받은 도시 시민들 기분은 어떨까?


국뽕 한 사발 거하게 말아먹은 것처럼 여신뽕이 차오를 수 밖에 없다.


아테네 사람이 아테나 여신의 선택 받은 도시임을 자랑스러워하듯, 에페수스 사람도 아르테미스 여신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했다.


아테네에서 아테나 여신께 봉헌할 파르테논 신전을 짓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에페수스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짓기로 결정했다.


도시국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였던 아테네는 동맹 비자금을 파르테논 신전 건축에 투입했지만, 이오니아 지방의 평범한 도시였던 에페수스에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에페수스 사람들은 노력을 선택했다.


“에페수스 사람의 여신 사랑은 지극합니다. 저들은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같은 대도시도 짓지 못한 세계 최대 신전을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올렸습니다.”


신전 건설기간 120년.


대를 이은 헌신과 자부심이 없었다면 고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지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신화속 배경을 이해하니 아르테미스 신전이 달리 보였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깨닫는 지식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 맛에 여행을 가나 보다.


“왕자님, 우리 데려오기 잘했죠?”


“응.”


“아르테미스 신전에서의 활약을 기대하세요. 이래뵈도 처녀랍니다.”


컥!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 신전 사제는 처녀로 이루어져 있고, 정절을 교리로 삼는다. 신체적으로 보면 둘의 말은 옳다. 정신적으로 보면 정반대지만···


“둘다 조심해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믿어주세요 왕자님.”


아르테미스 여신을 주신으로 섬기며 로마의 지배를 받는 곳.


에페수스에서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 * * * * * * * * *


항해 사흘째 되는 날 에페수스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로마 콘크리트로 지은 튼튼한 방파제, 부두 가득 찬 로마 화물선, 선적과 하역 작업에 분주한 노예들. 항구부터 로마 냄새가 짙게 묻어나왔다.


이제 내 신탁 수행을 모르는 그리스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배를 정박시키자마자 환영 인파가 몰려나왔다. 로마 사람도 날 알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라틴어 인사도 들린다.


도각 도각.


로마 경기병 백인대(equites Romani 에퀴테스 로마니)가 마중나왔다. 번쩍이는 은빛 흉갑을 착용하고 백마를 탄 의전 부대였다.


기병대장이 말에서 내려 정중히 인사했다.


“아폴로니스 왕자님의 로마 아시아 속주 방문을 환영합니다. 내일 저녁 총독 각하께서 환영연을 베풀 예정입니다. 왕자님께서 자리를 빛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머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저택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수행 비서가 왕자님을 안내할 것입니다.”


총독은 의전 부대를 보내 공식적으로 나를 맞이하였고, 저택과 수행 비서를 내줘 편의를 도왔다. 환영연을 늦춰 신전을 먼저 방문하도록 나를 배려했다.


보호국 꼭두각시 왕족에 베푸는 의전치고 과분한 대접이었다.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는 촉이 왔다.


붉은 사각 방패가 강가의 거대한 성벽을 넘으리라.


승리의 계시를 받은 로마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한다.


지휘관은 사기를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신께 제사 지내고, 점성술사에게 점도 치고, 술 먹이고 약탈을 약속하고, 거짓 소문도 퍼뜨리고···


내 말 한마디에 총사령관 루쿨루스는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는 법.


루쿨루스가 후방 보급을 담당하는 로마 속주에 내 편의를 봐달라는 서신 한 장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 노예 출신 수행 비서가 인사를 올렸다.


“셀레우코스 제국 아폴로니스 왕자님을 뵙습니다. 총독 각하께서 왕자님의 신탁 수행에 불편이 없도록 도울 것을 명하셨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도시 대장간과 로마 콘크리트 사업장을 방문할 수 있겠는가?”


“저··· 그곳은 냄새와 소음이 심합니다. 방문을 권하기 부담스럽습니다. 구매량을 알려주시면 사업장에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 주문이라 직접 설명해야 한다.”


직접 갈 것을 고집하자 수행 비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말과 가마를 준비하고 나를 안내하였다. 가는 도중 사업장 방문 소식을 들은 사업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로마인은 복장에 따라 신분이 구분된다. 나는 그의 복장을 살폈다.


귀족이었다면 자줏빛 줄무늬가 새겨진 토가를 입었을 테고, 평민이었다면 간단한 튜닉을 입었을 것이다.


그는 평범한 하얀색 토가를 입고 있었다.


제2계급 에퀴테스(기사계급)였다. 에퀴테스는 상공업과 해외 교역에 종사하여 부를 쌓았는데, 돈은 있지만 권력은 부족한, 부르주아와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신분이었다.


나를 본 사업가가 굽신굽신 인사하였다.


“헉 헉 아폴로니스 왕자님을 뵙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오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업가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수행 비서가 경고한대로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석회 성분이 든 유럽 수돗물 비린내 열 배쯤 되는 비린내가 풍겼다.


“로도스 청동 거상 재건을 위한 일이다. 신께 봉헌드리기 앞서 건설 재료를 직접 확인하고자한다. 시설을 견학할 수 있겠는가?”


“무, 물론입니다.”


넓은 작업장 중앙의 고로에서 전해지는 열기가 뺨을 스쳤다.


석회석을 나르는 노예, 고로에 석회석을 투입하는 노예, 불을 지피는 노예, 발풀무를 밟아 산소를 공급하는 노예··· 수십 명의 노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나는 시큰거리는 코를 부여잡고 작업 공정을 눈여겨 보았다.


쿵.


환기구를 청소하던 노예가 힘없이 쓰러졌다. 당황한 감독관이 재빨리 노예를 치우도록 명령했다.


“필론, 저 노예가 왜 쓰러졌는지 알아?”


“생석회(구운 석회석)를 만들 때 노예가 쓰러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석회석을 가열할 때 나오는 공기(이산화탄소)때문이야. 무색무취에 공기보다 무거운 놈이라 계속 들이마시면 생명이 위태로워.”


“무색무취··· 상당히 위험하군요.”


“다음 공정도 잘 봐둬. 생석회는 물과 반응해 끓어오르거든. 피부나 눈에 닿으면 몸의 수분과 반응해 화상을 입게 돼. 지난 번 알려준 산과 염기 반응 기억하지?”


“기억합니다. 염기성 물질은 물과 반응하여 열을 발산한다고 하셨습니다.”


“환기나 소석회 제조처럼 위험한 공정은 기계가 대신해야 해. 망치로 석회를 깨는 단순 반복 노동도 마찬가지야. 수차 동력으로 자동화할 수 있어야 해.”


“로마 콘크리트를 직접 제조하실 생각이군요.”


“이집트 운하, 교역항 도시 건물··· 지어야 할 게 많아.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가장 주목해야할 건 로마 콘크리트의 비밀이 숨겨진 마지막 공정이야.”


2천년을 견디는 로마 콘크리트 내구도는 현대 지질학계의 관심거리다. 지속된 연구 결과 생석회 가루, 소석회 가루, 화산재, 바닷물··· 재료는 다 밝혀졌다.


문제는 배합비였다.


정확한 배합비를 몰라 로마 콘크리트 강도를 완벽히 재현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나는 태연한 척 마지막 공정의 비밀을 물었다. 놀랍게도 특별한 비밀이 아니었나 보다. 수고한다는 격려 한 마디에 감독관이 배합비와 제조 노하우를 술술 불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인심을 썼다.


“친절한 안내에 보답하는 의미로 매입가는 3할 높게 책정하겠다. 물건을 빨리 봤으면 좋겠군.”


“왕자님 물건은 최우선으로 공급하겠습니다. 닷새면 충분할 겁니다.”


어차피 로도스 돈인데 아낄 게 뭐 있겠는가.


대형 대장간을 견학하고 철근 특별 주문도 마쳤다. 이번에도 웃돈을 얹어주니 대장간 길드장이 연신 허리를 굽힌다.


역시 돈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우리는 저택에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코의 시큰거림과 망치 소리 이명이 잦아들 무렵 시종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왕자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아도니아와 헬레네 사제가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뭐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신성 재판에 휘말린 듯합니다.”


느낌이 쌔했다.


혹시라도 사고칠까 조심할 것을 당부했는데···


“보레누스,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간다. 서둘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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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로마 쩔더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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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오벨리스크 건립 +9 22.06.02 4,047 181 14쪽
22 코미테스가 되다 +7 22.06.01 4,117 171 13쪽
21 신성 재판 +8 22.05.31 4,167 170 13쪽
» 처녀신의 도시 +8 22.05.30 4,372 181 13쪽
19 이시스 여신전 +19 22.05.28 4,439 189 13쪽
18 로도스 청동 거상 2 +17 22.05.27 4,418 206 13쪽
17 로도스 청동 거상 +14 22.05.26 4,526 169 13쪽
16 절름발이 천재 필론 +14 22.05.25 4,742 180 13쪽
15 비밀 동맹 +17 22.05.24 4,836 190 13쪽
14 타르수스 노예 시장 +7 22.05.23 4,953 204 13쪽
13 출항 +7 22.05.21 5,172 200 13쪽
12 반칙왕 풀로 +16 22.05.20 5,181 214 14쪽
11 연극과 전차 경주 +8 22.05.19 5,547 224 12쪽
10 처녀 빗치 여신관 +13 22.05.18 6,064 231 14쪽
9 왕자님의 그건 큰가요? +22 22.05.17 6,124 252 13쪽
8 신전 제의 준비 +12 22.05.16 6,153 240 13쪽
7 보레누스와 풀로 +25 22.05.14 6,288 251 13쪽
6 아키우스 클로디우스 +11 22.05.13 6,603 254 14쪽
5 페르가몬 상단 2 +13 22.05.12 7,042 260 14쪽
4 페르가몬 상단 +15 22.05.11 7,380 279 13쪽
3 델포이 신탁 +9 22.05.11 7,905 276 13쪽
2 잘생겨서 엉덩이가 위험하다 +14 22.05.11 9,156 335 13쪽
1 프롤로그 +13 22.05.11 10,024 318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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