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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꽁장

D급 파이터 독심술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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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ob002
작품등록일 :
2019.12.09 16:12
최근연재일 :
2020.03.02 09:17
연재수 :
78 회
조회수 :
51,748
추천수 :
781
글자수 :
304,802

작성
19.12.26 16:30
조회
816
추천
17
글자
11쪽

완벽한 전략

DUMMY

경기 전날 저녁. 계체를 마치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데 이상한 장면이 포착됐다.


하야토의 얼굴 상태가 그 어느 때보다 별로였기 때문이다.


<배고파 죽겠다>


감량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하야토 쟤 금방 쓰러질 거 같네. 끝나고 바로 뭐 좀 먹여야겠다.>


이건 하야토의 코치 생각이었다.


감량고, 감량문제.


감량은 선수들이 언제나 달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다.


무대를 내려온 칠수가 정 관장에게 말했다.


“관장님, 재 얼굴 이상해 보이지 않던가요?”


속마음을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응, 딱 봐도 감량고야. 감량고”


“베스트 컨디션일 때 싸우고 싶었는데”


컨디션이 나쁘다는 건 상대인 칠수에게는 아주 좋은 찬스. 하지만 격투기 선수라면 누구나 강한 자와 맞붙어 쓰러뜨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대기실로 걸어가다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우승 후보. 10전 10KO 기록을 가진 라이트급 최강자 고구라 다카노미였다.


“고, 고구라 선수!”


놀라 잠시 멈춰 있는 칠수에게 고구라가 다가왔다.


“치루수 센슈, 감바레”


까칠하게만 보이던 고구라가 보인 부드러운 모습에 순간 칠수 일동이 모두 당황했다.


<좋겠네. 조칠수는. 상대가 감량고라>


순간 고구라의 속마음이 보였다.


겉으로는 친근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얻어걸린 행운에 대해 비웃고 있던 것이다.


물론 비웃음, 비난, 견제 모두 파이터들의 세계에선 감량고와 마찬가지로 항상 따라다니는 장식들이다.


고구라가 최 대표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아, 경기 어떻게 준비했냐고 하네?”


그때 고구라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전략을 알려주진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


고구라의 말에 일동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해줘도 되나?”


정 관장이 고민하는 눈치였다.


“살짝 알려주는 거 정도야”


칠수가 고구라의 앞에서 펀치와 킥을 날리는 시늉을 했다.


“타게키”


타격이라는 뜻이었다.


“오~ 타게키! 스고이네”


타격 달인에게 타격으로 상대한다는 전략, 대충 생각하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전략이다.


사실 이번 전략은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플링으로 승부하고 싶어도, 하야토의 그래플링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


칠수가 퍼플 벨트 이상의 실력만 갖추고 있어도 뒹굴어볼 만한 상대였다.


이언규의 레슬링이 좋고, 정 관장이 퍼플 정도의 실력이라고는 하나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복도 반대편을 보니 하야토와 코치진이 보였다.


표정이 역시 전혀 좋아질 생각이 없었다.


마음을 굳힌 칠수가 갑자기 하야토 쪽으로 다가갔다.


“야, 너 어디 가?”


칠수의 손엔 작은 PET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하야토 센슈?”


칠수가 다가가자 하야토가 반색을 했다.


“아, 칠수 센슈. 감바레. 굿 게임 구다사이”


예절 바르기로 소문난 선수답게 감량고에도 인사만은 잊지 않았다.


“고레...”


칠수가 손에 들고 있던 홍삼 엑기스를 내밀었다.


“eat”


칠수가 주머니에서 엑기스를 한 포 더 꺼내 입구를 뜯었다.


하야토도 칠수를 따라 홍삼 봉투를 뜯었다.


“very delicious”


<재미있는 친구네>


하야토도 상황이 웃긴 모양이었다.


홍삼 한 팩에 갑자기 가까워진 두 선수였다.


계체가 끝나고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오늘의 주인공인 칠수가 사는 거였다.


“야, 이 비싼 걸 맘대로 먹어도 되나?”


심동연의 입이 찢어질 정도였다.


“일단 배 터지게 잘 먹겠습니다~”


이언규가 말이 끝나자마자 초밥 접시 세 개를 가져왔다.


칠수는 관비를 내고 생활비를 쓰면서도 통장에 1천만 원이나 쌓아 놨다.


과소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쓸 땐 화끈한 사람이었다.


“미안해하지 마. 얘 나중에 우승 상금 타면 더 뜯어 먹어야지”


정 관장의 말이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바라고 있었다.


“우승 상금 얼마죠?”


이언규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칠수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 관장이 초밥을 입안 가득 물고 손가락을 하나 펼쳤다.


“1천만엔”


한국 돈으로 무려 1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

.

.

.

.

하지만 링에서는 경기 전의 친절함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심판이 주의사항을 알리는 와중에도 하야토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부순다!>


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건 일단 쓰러트리고 본다는 일념. 바로 일본 최고의 베테랑이라 불리는 하야토의 투지였다.


하야토는 특유의 스텝을 밟으며 링 중앙을 차지했다. 게을러 보일 정도로 뚜벅뚜벅 걷는 스텝. 바로 하야토의 버릇이다.


스텝이 무거운 파이터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타격에선 유리하다.


하야토의 장기는 바로 두 발을 딱 붙이고 벌이는 ‘난타전’이다.


칠수가 스텝을 살려 링 주위를 돌자 하야토가 양손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였다.


호승심을 보이는 몸짓이기도 하지만, 거리 싸움을 할 경우 하야토는 불리해진다. 둘의 리치 차이는 거의 10cm 가까이 났다.


“칠수야, 준비한 대로만 해! 흥분하지 말고!”


칠수가 준비한 전략, 페이크에 이은 니킥이었다.


전략을 수행하기 전에도 사전 단계가 필요했다.


일단 다른 전략을 보여주며 상대를 유인하는 것이다.


칠수가 준비한 것과 가장 거리가 먼 것, 바로 그래플링이다.


원투 페이크를 준 칠수가 고개를 숙여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는 척했다. 그러자 하야토가 재빨리 뒤로 점프했다.


하야토 또한 그래플링에서 자신이 앞선다는 걸 아는 게 분명한 상황. 하지만 이렇게 기습을 들어가면 레슬링 챔피언이라도 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하야토는 30초가 지난 상황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칠수의 공격에 맞춰 그때그때 전략을 수정하려는 거 같았다.


<들어와, 들어와. 카운터 먹여줄게>


정확히 카운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상대에 들어가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 칠수는 트리그 전에 하던 것처럼 허리를 뺀 채 원거리에서 로킥을 시도했다.


왼발로 발목에 한 방, 오른발로 허벅지. 다시 오른발로 발목.


모두 막혔지만, 다리를 드는 하야토의 표정이 꽤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경기 직전 관장과 나눈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감량고의 선수가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를 말이다.


“감량고가 있는 선수는 어떻게 싸우죠?”


“그런 선수들은 체력이 안 돼. 그래서 판정까지 가면 진다고”


“그러면 판정 싸움을 노릴까요, 차라리?”


“아냐, 그러니까 아마. 하야토가 1라운드에 들어올 거라고. 들어오는 걸 잘 보고 피하면 체력이 더 떨어지겠지? 그때 전략을 걸라고”


하야토와 칠수의 간 보기가 무려 1분이나 이어지는 상황. 라운드는 4분밖에 남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


간 보기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야유가 쏟아졌다.


스타는 관중을 다룰 줄 아는 법, 기다렸다는 듯 하야토가 전진 스텝을 밟았다.


<일단 잽으로>


하야토가 잽을 툭툭 던지며 조금씩 시동을 걸었다. 왼손으로는 잽을 던지고, 오른손은 배 쪽까지 내린 채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잽은 사실 최고의 공격 기술 중 하나다. 가장 빠르기도 하고, 직선으로 날아오기에 공격 거리도 짧다.


그래서 아무리 칠수가 속마음을 읽는다고 하지만 모든 잽을 피할 순 없었다.


거의 10번을 날린 하야토의 잽. 첫 다섯 방을 피하려다 두 방이나 맞은 칠수가 그 이후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막았다. 코에서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세하다고 생각한 하야토가 링 중앙에서 좌우로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하마드 알리의 ‘문워크 스텝’까지 따라 했다.


하야토의 퍼포먼스에 다시 관중석에서 환호가 흘러나왔다.


“말리지 마, 침착해!”


<들어오라고>


스텝도 미끼였다. 라운드 초반의 전략은 카운터가 분명했다.


갑자기 칠수는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카운터가 맞는지 말이다.


왼손으로 원, 다시 잽을 한 번 더 날린 칠수가 라이트훅을 뻗었다.


하야토는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잽을 피한 하야토의 오른손이 복부 쪽에서 머리로 올라왔다.


‘펑!’


준비하고 들어간 거라 가드에 막혔지만, 너무나도 매서운 카운터였다.


“오오오오오!!”


이번엔 박수갈채가 터졌다.


“얀마, 준비한 것만 해!!”


정 관장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들어간다!>


하야토는 이때가 찬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량고인 자기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찬스.


<원투쓰리 로킥>


하지만 칠수는 아무 데미지도 없었다. 생각도 읽는다.


양 가드를 단단히 세운 칠수가 네 번째 로킥 콤보를 정강이로 막았다.


<원 주고 달라붙어서 테이크다운>


속셈을 읽은 칠수가 왼쪽으로 빠지며 하야토의 몸을 밀었다.


순식간에 날아온 여섯 단계의 콤비네이션이 100퍼센트 막힌 것이다.


“잘한다!!!”


달아오른 정 관장과 달리 관중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 번 받아줬으면 돌려줘야 하는 법. 이번엔 칠수가 들어갈 차례였다.


그간 칠수가 보여준 것만으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달라붙어 니킥 전략이다.


마침 하야토도 코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왼손으로 원투 페이크를 주자 하야토가 오른쪽으로 피했다.


이번엔 오른손으로 페이크를 주고 스텝을 스위치해 왼손을 뻗었다.


스위치 스텝에 놀란 듯 하야토가 뒤로 ‘움찔’하고 물러섰다.


순간 하야토의 등이 링 줄에 닿았다.


칠수는 테이크다운을 노리듯 자세를 낮춰서 접근했다. 하야토도 공격을 막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모든 건 칠수의 미끼. 자세가 낮아진 하야토에 달라붙어 뒷목을 움켜쥐었다.


<속았다!>


하야토의 외마디 비명 같은 생각. 칠수가 격투기를 하며 들었던 모든 생각 중 가장 짜릿한 말이었다.


뒷목을 잡고 꾹 누르고 있으면 생각보다 할 게 없다.


두 손을 앞으로 교차해 안면 니킥을 막는 게 최선이다.


칠수와 정 관장은 거기까지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면보다 더욱 집중한 게 바디 니킥이었다.


복부에 정확히 한 방, 그리고 다음 방은 옆구리에 강력하게 꽂았다.


당연히 힘을 주고 있었겠지만 니킥의 위력은 맨몸으로 버티기 힘들다.


복부를 맞으면서도 하야토는 안면 방어를 잊지 않고 있었다.


급소인 간장도 신경 쓰이는 듯,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흔들어! 흔들어!”


또 한 가지 준비한 전략은 ‘흔들기’다. 뒷목 잡기에 성공할 경우 상대를 흔들고 빈틈을 찾는 방법이다.


키가 작은 하야토는 칠수가 흔들어 대자 거의 주저앉을 듯 몸을 굽혔다. 간장만은 죽어도 내주지 않겠다는 듯 오른쪽으로 꽤 많이 숙이고 있었다.


<아, 위험하다>


하야토의 생각과 칠수가 빈틈을 찾은 건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칠수가 보기에 왼쪽으로 숙인 얼굴. 왼발 니킥이 올라가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


<실수했어>


칠수가 뒷목 잡은 양손을 왼쪽으로 당기며 왼 무릎을 올렸다.


‘퍽!!!!!!!’

.

.

.

.

.

하야토의 마우스피스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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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급 파이터 독심술을 얻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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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전략 19.12.26 817 17 11쪽
17 빰클린치 니킥 +2 19.12.25 858 15 10쪽
16 산 넘어 산, 하야토 19.12.24 884 13 11쪽
15 어려운 퍼즐일 수록 푸는 맛이 있다 19.12.23 882 14 11쪽
14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19.12.22 923 15 9쪽
13 서양 파워를 느껴봐! +2 19.12.21 957 17 12쪽
12 노장의 여유 19.12.20 1,032 13 9쪽
11 크라이드와의 계약 19.12.19 1,054 14 8쪽
10 카운터 앞차기 19.12.18 1,049 14 10쪽
9 야쿠자의 제안 19.12.17 1,117 14 12쪽
8 원펀맨 마사토 19.12.16 1,163 15 9쪽
7 근성의 기무라 19.12.15 1,180 16 8쪽
6 정 관장의 보물 19.12.14 1,260 14 10쪽
5 역습을 위한 역습 19.12.13 1,306 14 10쪽
4 레슬러를 넘어뜨리다 +2 19.12.12 1,422 16 11쪽
3 KO같은 무승부 19.12.11 1,505 17 8쪽
2 주먹은 살아있다 19.12.10 1,621 16 8쪽
1 펜던트, 그리고 알약 +4 19.12.09 2,161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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