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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꽁장

D급 파이터 독심술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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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ob002
작품등록일 :
2019.12.09 16:12
최근연재일 :
2020.03.02 09:17
연재수 :
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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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44
추천수 :
781
글자수 :
304,802

작성
19.12.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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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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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2쪽

펜던트, 그리고 알약

DUMMY

“날씨가 너어무 거시기 하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던 조칠수. 신도림역의 횡단보도는 그날따라 무척 신호가 길었다.


우산도 없는데 비까지 쏟아졌다.


칠수는 사람 하나는 기가 찬 놈이었다.


대소사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고, 힘든 일이 있으면 팔을 걷어붙인다.


정작 자기 분야에선 실속 없었다.


34살인 칠수는 한 중소단체 소속의 종합격투기 선수다.


프로 전적 5승 5패, 아마 전적까지 합치면 15전 정도가 된다.


종합격투기 선수는 먹고살기 힘들다. 투 잡 파이터가 많다.


칠수는 투 잡도 하지 않고 물려받은 재산을 까먹으며 격투기에 ‘올인’하고 있다.


타격도 괜찮고, 그래플링도 수준급이다. 주짓수 갈색띠 정도면 국내 무대에선 꿀린단 소리는 듣지 않는다.


하지만 심리전에 약했다. 그냥 ‘약하다.’ 정도가 아니라 ‘너어무’ 약했다.


최근 경기에선 상대의 전략에 그냥 말려들었다.


토너먼트 참가 자격을 놓고 겨루는 중요한 경기였는데, 2라운드 중반 카운터펀치에 쓰러졌다.


“왼손 훅 카운터가 필살기인 놈인데 왜 계속 오른쪽으로 도냐”


중간 중간 코치가 조심하라고 얘기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여유도 없었다.


“한 방만, 한 방만 들어가면 할 만한데”


공격 하나하나가 괜찮지만 속임 동작도 없었고 흐름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방금 술자리에서 친구가 도배 업체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지인의 도배 업체에 따라 다니며 기술을 배우라 했다.


“격투기 그거 계속해봐야 골병만 들고, 비전도 없잖아”


친구의 말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칠수가 변변찮은 파이터라는 전제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비가 더욱 거세졌다.


비를 피하고자 계단을 달음질쳐 내려갔다.


개찰구를 통과해 모니터를 올려봤다. 강남 방면 2호선 막차가 5분 남았다.


플랫폼으로 내려가 벤치에 앉으려는데 오른쪽 끝이 소란스러웠다.


한 남자와 노인이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서른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고함을 치고 있었다.


“죽을래? 죽을래?”


복싱하듯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노인을 위협했다.


노인은 양팔을 앞으로 내민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저, 저런”


칠수가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서는데 순간 남자가 노인의 얼굴을 때렸다.


노인이 사시나무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저씨! 뭐하는 거예요!”


칠수가 달려가자 남자가 그를 바라봤다.


가까이 온 칠수를 향해 남자가 두 주먹을 내밀었다.


“우씨, 맞을래?”


꽤 매서워 보이는 주먹이었지만 일반인 주먹 정도야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주먹을 몇 번 더 휘두른 남자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영감님, 괜찮아요?”


쓰러진 노인은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정신적 충격이 더 큰 거 같았다.


“잠깐만요. 제가 저 새끼 잡아 올게요”


칠수가 남자의 뒤를 쫓아 계단 위로 올라갔다.


“아저씨! 사람 때리고 그냥 가면 어떡해!”


칠수가 소리쳤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아저씨, 뭐하는 거예요?!”


몸을 돌린 남자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손쉽게 몸을 뒤로 피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칠수가 쫓으며 남자가 달아났고,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면 다시 칠수가 피했다.


가만 보니 남자의 눈빛이 이상했다.


한쪽 눈은 왼쪽을 보고, 다른 눈은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사시.


남자의 행동과 말도 어딘가 이상했다.


정신지체자였던 것이다.


친지 중 비슷한 사람이 있는 칠수는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았다.


칠수가 주먹을 피하며 외쳤다.


“아저씨, 빨리 경찰 아저씨한테 가자. 잘못 했습니다 하면 돼”


칠수의 말에 남자가 갑자기 멈췄다.


“사람 때리면 아프니까, ‘아야’ 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면 돼”


남자의 두 눈이 약간 정도 가운데로 움직였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반대편으로 달렸다.


“누가 신고 좀 해줘요! 이 사람 노인 때리고 도망가요!”


계속 목이 터지라 외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모니터를 올려다보니 막차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아오, x발! 누가 신고 좀 해줘요!!”


숨바꼭질이 15분쯤 지난 순간, 앞쪽에서 공익과 역무원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죠?”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아니, 이 아저씨가 할아버지 한 분을 주먹으로 때리고 도망가서요”


숨을 몰아 내쉬며 칠수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2호선 플랫폼 쪽에 계실 거예요”


일행 중 둘이 남자를 역무실로 데려가고, 공익 하나가 칠수와 같이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어디 계시다고요?”


“저기 저쪽······. 어?”


칠수가 가리킨 쪽엔 아무도 없었다.


술에 곯아떨어져 대자로 뻗은 남자뿐이었다.


“저분이에요?”


“아뇨, 나이 많은 노인 분이었는데···.”


그러자 공익이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 분 없으면 우리도 처벌 힘들어요”


허탈해하는 칠수의 어깨를 공익이 두드렸다.


“저희가 처리할 테니까, 돌아가세요”


지갑엔 5천 원 지폐 한 장.


신용카드는 부러뜨려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


부모님에게 받은 재산도 이제 까먹고 까먹어 500만 원이 전부였다.


입구를 빠져나온 칠수의 머리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신도림에서 신림까지 택시비만 만 원은 나온다.


좋은 일 한 번 하려 했다가, 오히려 생활비만 축내게 생겼다.


“아, 미치겠다”


지하철 입구 기둥에 쓰러지다시피 기대는 그 순간, 앞쪽에 사람 하나가 보였다.


아까 그 노인이었다.


“영감님, 아니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칠수가 다가가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힘은 없어 보였지만 괜찮은 거 같았다.


“저랑 같이 역무실에 가요. 그 사람 신고하러”


옷 끝을 실찍 당겼지만,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 그 사람 장애인이야.”


장애인은 이런 사건에 휘말려도 보통 훈방 처리되곤 한다.


칠수가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혹시 5천 원만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남은 염치를 긁어모아 노인에게 말했다.


“집이 어디야···.”


노인이 물었다.


“신림이요. 만원이면 가는데 5천 원밖에 없어서요”


그러자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 재워 줄게”


“네? 영감님 집으로요?”


노인은 벌써 집으로 가려는 듯 계단 쪽으로 걷고 있었다.


“총각 잘 곳 정도는 있어. 줄 것도 있고”


남의 집에 가서 잠을 자다니.


하지만 집까지 가는 귀찮음, 거기에 1만 원이라는 거금의 택시비.


또 ‘줄 게 있다’는 말이 칠수를 혹하게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할아버지를 따라가기로 말이다.


영등포 쪽으로 10분을 더 걸어갔는데도 집은 나오지 않았다.


“저 영감님, 많이 걸리나요?”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외투로 노인의 비를 막아주고 있어 움직이기 힘들었다.


또 방금 노인이 한 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말 말이다.


“기다렸네”


골목으로 접어들 때쯤이었다.


“네?”


“자네 같은 사람을 말이야.”


힘없는 노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려 있었다.


“아휴, 다른 사람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골목으로 들어서고도 5분을 더 걸었다. 쪽방촌을 한참 들어갔다.


“이름이 뭔가, 자네”


노인은 호흡 하나 가빠지지 않았다.


“아, 저요? 칠수예요. 조칠수요”


5분을 더 걷자 노인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곤 왼편에 있는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당기자 바로 열렸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될 정도라니 세간이 어느 정도인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방이 좀 어지러워”


내부는 노인의 말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바닥에 깔린 이불, 안쪽의 테이블, 구석에 서랍 세 개가 달린 옷장이 있었다.


뒤쪽에 보이는 문으론 낡은 부엌이 있는 거 같았다. 아마 화장실도 그쪽에 있는 듯했다.


노인이 옷장 위의 이불을 힘겹게 챙겨 부엌 쪽으로 갔다.


“난 이곳에서 잘 테니 자네가 이 방을 쓰게”


“어휴, 어르신.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부엌에서 잘게요”


칠수가 노인의 이불을 뺏듯이 잡아챘다.


부엌으로 넘어가자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보였다.


바퀴벌레가 있는 듯 곳곳에 바퀴 약이 깔려 있었다.


“궁금하겠지”


“네?”


“왜 내가 자네를 이리 데려왔는지 말이야.”


“하하하···. 그러게요”


그때 칠수의 눈에 노인이 무언가를 잡고 꼼지락대는 게 보였다. 가죽 끈에 달린 하얀 펜던트 같아 보였다.


“그래, 자네는 여기 왜 온 건가?”


“네?”


노인이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말해 보게”


“그냥···. 어르신 편찮으신 거 같아서요. 그래서 왔죠”


선물을 준다는 말에 왔다고 말하는 것도 어딘가 솔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솔직하네 그래. 솔직해”


계속되는 칭찬에 발가락이 꼬이는 칠수였다.


“선량하고 솔직해. 자네 같은 사람에게 줘야지”


노인이 손에 든 목걸이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노인이 칠수의 손을 펴고 목걸이를 건넸다.


“받게. 자넨 자격이 있어.”


칠수는 노인이 준 선물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가죽 끈에 하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끈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끈이 매듭지어져 아주 단단히 뭉쳐 있었다.


펜던트는 화살촉과 같은 모양이었다. 상아인지 플라스틱인지로 된 펜던트엔 검은색으로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능력 때문에 힘들 때 이 알약을 먹게. 지금 먹어도 상관은 없네만”


능력···?


무슨 말인지 이해 가지 않았다.


목걸이를 준 노인이 캡슐 한 알을 내밀었다.


반쪽은 빨갛고 반쪽은 녹색인, 흔히 볼 수 있는 캡슐이었다.


피로회복제 같았다.


“그럼 난 자겠네”


노인은 용건이 끝난 거 같았다.


“아, 예. 주무세요”


칠수가 부엌으로 건너가자 문이 닫히고 불이 꺼졌다.


몇 시인지 보려고 핸드폰을 켰으나 배터리가 다 되었다.


충전할 정신도 없이 달린 하루다.


불편한 자리였지만 등을 대고 누우니 피로가 몰려들었다.


자려다 말고 받은 알약이 생각났다.


피로회복제로 보이는 알약을 입에 넣었다.


사라져 가는 의식 뒤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이면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거야. 재미있게 살아 보게”

.

.

.

.

.

잠을 더 자고 싶었지만 햇살이 얼굴을 때렸다.


평소와 다른 감촉에 자리에서 ‘벌떡’ 하고 일어났다.


잠시 어찌 된 영문인지 생각했다. 전날 일이 떠올랐다.


칠수의 손엔 어제 일이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듯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목걸이를 무심히 목에 건 채 건넛방으로 갔다.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불도 가지런히 옷장 위에 올려 있었다.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x발년, 다 죽여 버리겠어.”


신발을 꺾어 신고 밖으로 나갔다.


골목 벽에 한 남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남자는 술을 마신 듯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길을 되짚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보긴 뭘 봐, 새파란 새끼가”


귀가 의심스러운 칠수였다.


“방금 뭐라 하셨어요?”


그러자 남자가 눈을 떴다.


“예?”


공손한 대답이었다.


“저한테 한 말이에요?”


풀려 있던 남자의 동공이 더 넓어졌다.


“하······.”


바로 옆에서 들었는데도 거짓말하는 게 기가 찼다.


<뭐래는겨, 미친놈이>


남자가 입도 벌리지 않고 얘기했다.


“뭐? 미친놈?”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아저씨, 말조심하세요!”


칠수가 남자 앞으로 걸어가 소리쳤다.


“왜 그래, 이 새끼···?”


남자는 또 입도 벌리지 않고 말했다.


이빨이 부들부들 떨렸으나 참는 게 남는 일.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핸드폰이 이상했다.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분명 오래전에 사용하던 폴더폰이었다.


황당한 마음에 폰을 열었다.


날짜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2007년 9월 10일 목요일>


당혹스러움에 큰길로 달려 나간 칠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이, 20대 시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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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완벽한 전략 19.12.26 815 17 11쪽
17 빰클린치 니킥 +2 19.12.25 856 15 10쪽
16 산 넘어 산, 하야토 19.12.24 882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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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크라이드와의 계약 19.12.19 1,050 14 8쪽
10 카운터 앞차기 19.12.18 1,046 14 10쪽
9 야쿠자의 제안 19.12.17 1,114 14 12쪽
8 원펀맨 마사토 19.12.16 1,158 15 9쪽
7 근성의 기무라 19.12.15 1,176 16 8쪽
6 정 관장의 보물 19.12.14 1,256 14 10쪽
5 역습을 위한 역습 19.12.13 1,303 14 10쪽
4 레슬러를 넘어뜨리다 +2 19.12.12 1,417 16 11쪽
3 KO같은 무승부 19.12.11 1,500 17 8쪽
2 주먹은 살아있다 19.12.10 1,616 16 8쪽
» 펜던트, 그리고 알약 +4 19.12.09 2,153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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