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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503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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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장. 뱀 눈의 남자(1)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세민은 입이 완벽한 동그라미로 벌어진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우습기까지 했지만···웃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최근 쓸데없이 익숙해진 기분이었다.


“아니···그러면 왜 말을 안 했어? 처음 30분이 골든 타임인 거 알잖아?” 세민이 취조하는 듯한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


“너라면 멀쩡한 애가 벽 사이로 녹아들어갔다고 경찰한테 말할 수 있겠냐?” 가인이 받아쳤다. 세민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노트와 펜을 집어들었다.


“됐으니까, 처음부터 말해봐. 정확히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난 거야? 녹아들어갔다니?”


가인은 눈을 감았다. 비록 그때 이예나를 구해줄 수는 없었지만···적어도 지금이라도 행동을 취해야 했다. 그때와는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조그마한 기억이라도 안 놓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


하늘이 유난히 시뻘갰던 것이 기억났다.


가인은 평소 다니는 헬스장에서 없는 복근을 만드느라 천근만근이 된 몸뚱아리를 끌고 집을 향해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처음 헬스장을 나설 때에는 샤워를 하고 대충 말린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가 겨울바람에 마르면서 개운한 느낌을 주었지만, 집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어 지금은 머리카락 자체가 얼어붙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추웠다. 귀끝이 빨갛다 못해 새하얗게 식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평소라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가인은 큰길을 따라 세워진 가게들의 윈도우 쇼핑을 즐기면서 집으로 향했을 테지만, 당장 다음주부터가 학생회장 선거였고 가인은 감기에 절대, 절대 걸리면 안됐다. 할 수 없이 가인은 구경을 포기하고 다음빌라 뒷골목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택할 수박에 없었다.


다음빌라의 뒷골목은 언제나 그랬듯, 더러웠다. 항상 재개발이 된다, 된다 그런 지가 거의 8년째였는데, 왜 아직도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군데군데 깨진 아스팔트, 아무렇게나 퍼질러진 쓰레기 종량제 봉투, 말라빠진 개똥, 담배꽁초와 갖은 쓰레기들에 숨막힌 화단의 잡초와 민들레들···외관만으로 판단하고 싶진 않았지만, 여기는 항상 무기력하고 삶 자체를 포기한 듯한 음침한 아우라를 풍겼다. 심지어 어둑어둑해지면서 가로등도 거의 없어, 가인은 괜스레 뒤에서 발걸음 같은 환청이 들리는 듯해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자칫하면 “리얼 다큐멘터리”의 첫 5분의 가엾은 출연자라도 되기 전에 그곳을 빨리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하이페리온 하이츠의 익숙한 로고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인이 뒷골목을 빠져나와,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찰나였다.


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이 방향을 향해서 뛰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놓친 모양이었다. 가인은 아무 생각 없이 신호등을 응시했다.


그렇지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분명 지금 횡단보도는 빨간색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친 가인은 홱 뒤를 돌아보았다. 발소리와 함께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가까워지면서 허연 형체가 어둠에서 점점 솟아나왔다.


여자아이는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마치 집에서 잠을 자다가 당장 뛰쳐나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가까이 오자 단박에 그런 느긋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형연 못할 공포를 보자, 몸의 모든 피가 심장으로 몰려 사지가 차갑고 뻣뻣해졌다. 모든 이성적인 생각이 지워진 채, 오로지 도주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도무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저 여자아이 뒤에 있는 것에게 잡히면—


하지만 가인이 달아나기도 전에 여자아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줄에 당겨진 마리오네트 마냥 그대로 골목의 벽을 향해 질질 끌려갔다. 여자아이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더 이상 성대를 울릴 공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벽은 부드러운 갯벌처럼 여자아이의 왼쪽 손, 팔, 머리까지···눈 깜짝할 사이에 버둥거리는 여자아이를 통째로 삼켰다. 마지막으로 삼켜진 오른손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애처롭게 뻗어 허공을 휘저었지만, 결국 벽의 흡입력에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골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너무 어안이 벙벙해져 오히려 다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단단한 벽 안에 여자아이가 사라질 수 있는가. 그 여자애는 왜 그토록 익숙해 보였는가.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온 까만 형체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것은···아마, 인간이었다. 가로등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는 인간처럼 보였다. 머리에다가 팔 두 개, 다리 두 개. 한쪽 손을 앞에 뻗은 채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 손이 가로등 불빛의 동그라미 안에 들어오자, 가인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두뇌가 당장 달아나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다리가 풀리자마자 가인은 달렸다. 신호등은 빨간색이었고 차들이 경적을 마구 울려대고 욕설마저 오갔지만, 가인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저 그 손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고, 뛰고, 뛰어서 하이페리온 하이츠의 현관문 안에 들어갈 때까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물내음 나는 로비에 들어서자 가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인간조차 아닌 듯한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관지가 항의하는 듯 타올랐지만,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가인은 힘겹게 눈을 뜰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못 따라잡았겠지?


그 생각이 나자, 공포가 다시 엄습해와 서둘러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도 바로 문이 열렸고, 가인은 돌덩어리로 변해버린 다리를 끌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기어가, 어찌저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어둡고 조용했다. 큰아빠는 없는 것 같았고, 세민은 어디에 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작은아빠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어둠. 그 골목길과 같은 어둠. 또다시 공포가 등골을 타고 올라와 가인은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주성은 두 개의 모니터 뒤에서 까만 헤드폰을 쓴 채, 키보드로 무언가를 치고 있었다. 잠옷 바지에다가 마블 코믹스 티셔츠를 입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빠였지만, 가인은 한동안 거기 서서, 이 안전한 공간 안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따뜻한 담요처럼 몸을 감싸도록 놔두었다.


주성은 가인을 눈치채고 의아한 얼굴로 헤드폰을 벗었다. “가인아? 왜 거기 서 있어, 무섭게—”


생각하기도 전에 가인은 주성에게 다가가 목을 꼭 껴안았다. 티셔츠 밑의 근육질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살아 있었다. 평범했다. 주성은 굉장히 놀란 것 같았지만, 머지않아 등을 토닥여줬다.


“괜찮아?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 하고선.” 귀신이라는 말에 팔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주성도 가인의 불안한 심리를 알아차렸는지 말없이 자신의 팔을 가인의 허리에 둘러줬다. 가인은 거기 서서, 주성의 듬직한 팔과 따뜻한 체온이 그 골목길에서의 불안과 공포를 녹이도록 했다.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가인은 주성을 놓아주었다.


“가인아, 괜찮아? 놀랐어?” 주성이 그제서야 다시 물었다.


“응···그냥, 어두워서.” 가인이 중얼거렸다.


주성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러게 일찍 다니래두.” 주성은 가인의 옷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찡긋거렸다. “윽, 땀냄새. 뛰다 온 거면 어서 씻어. 저녁 차려줄게.”


등이 떠밀린 가인은 땀으로 젖은 몸을 씻으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더러워진 손을 씻고, 얼어붙은 몸을 따뜻한 샤워와 불고기 덮밥으로 데우고, 보리차 세 잔으로 목을 축인 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배부르고 따뜻한 곳에서 있으니, 그 기억을 다시 짚어볼 엄두가 났다. 가인은 눈을 감고 그 골목의 차가운 어둠을 생각해냈다. 달려오는 여자아이와, 부드러운 벽과, 그 손—


꿈이었을까?


그렇게 믿고야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꿈이었다면, 양 다리와 몸통을 감싼 둔한 근육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가로등 밑에서 본 것은···진짜라고 단정하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의식적인 상태에서 본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의 손바닥 중간에는···뱀의 눈이 박혀 있었다. 빨간 바탕에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꿈틀대면서 깜빡이고 있었다.


*~*


가인은 이야기를 마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민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도, 망상을 보냐며 비웃는 표정도 아니었다. 어쩐지 그 사실이 더욱 무서웠다.


“왜 그래? 말이라도 해봐.” 가인이 재촉했다. 세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놀랐을 뿐이야.” 세민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뭐가?” 가인이 물었다.


“이예나도 메시지에다가 뱀 눈이 손에 그려진 남자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어. 그리고 나한테 그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고.“ 세민은 마치 하늘이 파랗다는 듯한 태연함으로 말하면서 수첩을 꺼내 또다시 무언가를 적었지만, 가인은 앉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 게 틀림 없었다. 그건···꿈도, 환각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날 밤, 만약 조금이라도 뛰는 게 늦었다면···


온몸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차가워져, 급기야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어둠에 그런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현실에 있는 공포는 그나마 기록될 수 있었다. 분석되고, 대책을 간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귀신이고 뱀 눈이 손에 있는 남자고 뭐고···이건 도대체 어떻게 대비하라는 거인지.


세민은 가인의 침묵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다. “야, 괜찮아?”


“아니···참.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 범죄자야 후추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고, 자연재해야 평소에 준비를 할 수 있잖아. 귀신은 도대체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 거야?” 전혀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띄우면서 가인이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감출 수 없었고, 둔감한 세민조차 그것을 눈치채고 말았다. 세민은 갑자기 일어서더니, 가인의 어깨를 어색하게 툭툭 쳤다. 동작은 서툴렀지만, 그 뒤의 걱정되는 마음이 느껴져 또다시 울 것 같았다.


“야, 내가 오컬트에 대해서 배운 게 한 가지 있다면, 아무리 귀신이라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다는 거야. 부적이든 뭐든 쓰면 되니까, 걱정 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 세민이 말했다. 가인은 웃었다.


“알았어.”


세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침대에 앉아 수첩을 가인에게 던졌다.


가인이 그 수첩을 열자, 세민의···음, 읽을 수는 있지만 절대 깔끔하다고 할 수 없는 글씨체로 이예나와 주고받은 메시지, 이예나를 찾는 글처럼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세민은 합장하듯 손바닥을 짝 쳤다. “자, 일단 우리가 알 수 있는 단서는 얼추 모인 것 같으니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너가 듣고서,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고쳐줘.” 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민은 눈을 감았다.




댓글과 선작, 추천을 먹고 살아요


작가의말

캐릭터 짜투리 설정: 주성은 향수를 굉장히 많이 뿌린다. 오죽하면 준이 작작 좀 뿌리고 다니라고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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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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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1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4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4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1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1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4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5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9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9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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