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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3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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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프롤로그. 편지


-14년 전-


겨울의 바다는 외롭고 사나웠다. 바다의 차가운 물살을 피해간 피서객들에게 분노하는 듯, 거의 어린아이 키 만한 파도가 모래사장에 기세좋게 몸을 던지면서 새하얀 거품으로 부서졌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래사장 위에 젊은 남자 한 명이 해가 저물어가는 수평선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따금씩 특히 높은 파도가 몰려오면 털 부츠의 코를 겨우 스칠락 말락하면서 지나갔지만, 젊은 남자는 위협하는 파도를 피하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목을 둘둘 감싼 빨간 목도리 위로 빼꼼 비치는 커다란 갈색 눈이 몇 번 깜빡거리는 것 이외에는 미동도 없었기에, 지나가던 사람은 굉장히 잘 만든 설치미술 작품으로 오해할지도 몰랐다.


수평선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붉은 기운이 가시자, 갑자기 바다에서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거의 어른 키의 두 배가 되는 파도로, 그 남자를 향해 성난 황소처럼 몰아쳐왔다. 하지만 그 젊은 남자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그 파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파도의 허리가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모래사장 위로 대가리를 박아버렸다.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파도는 모래사장 위로 덧없이 흩어졌고, 그 자리에는 또다른 남자가 비단 보자기에 싸인 두 개의 꾸러미를 든 채 홀로 서 있었다. 겨울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없이 평안해졌다.


파도에서 걸어나온 젊은 남자는 굉장히 지친 듯 하품을 하더니, 등에서 솟은 거대한 흰 날개를 파닥거렸다. 턱 언저리까지 기른 덥수룩한 까만 머리와 뾰족한 얼굴, 깡마른 체구는 굉장히 지친 대학생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날개와 금색 눈이 아니었다면 길에서 스쳐지나가도 두 번 돌아보지 않을 정도의 평범한 이목구비였다.


“제사장님.” 해변에서 기다리던 젊은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네요.”


파도에서 걸어나온 남자는 목을 둘둘 감은 두꺼운 아이보리색 목도리를 손으로 당기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한참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기묘하게 선명한 금색 눈으로 젊은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젊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이해해요. 아이들은요?”


대답 대신 파도에서 걸어나온 남자는 두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그것을 풀어냈다. 보자기 안에 감춰졌던 물건의 정체는 두 개의 빛의 덩어리로, 하나는 나팔꽃의 타오르는 자주색, 또 하나는 물망초의 가녀린 파란색이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노출된 빛의 덩어리는 아롱거리는 방울로 스러져 바다를 향해 떠내려갔고, 그 자리에는 얇고 흰 천옷만을 몸에 두른, 대여섯살 정도 되는 두 아이가 나타났다.


“이게···그 아이들인가요? 왜 이렇게 어리죠?” 해변가의 남자가 모래사장에 두었던 천 가방에서 옷을 꺼냈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입을 법한 길다란 패딩은 두 아이에게 도무지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패딩을 입히는 대신 포대기처럼 두 아이를 꽁꽁 싸매는 수밖에 없었다.


해변가의 남자가 서둘러 두 아이들을 패딩에 감싸는 동안, 날개 달린 남자는 무언가 말하는 듯이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해변가의 남자는 깜짝 놀란 토끼눈이 되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도둑이요? 그런데 왜 하필 기억을 가져갔을까요?” 물음에 날개 달린 남자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해변가의 남자는 새근새근 자는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앳된 얼굴에 슬픔이 내려앉아, 몇 년은 더 늙어보이게 했다.


“몇 살까지···안 말할 수 있을까요?” 해변가의 남자가 물었다. 날개 달린 남자는장난하냐고 면박을 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해변가의 남자는 서둘러 손을 저었다.


“알아요, 알지만···아는 순간부터 결국 이런 세상에 휘말려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바실라니, 에얼링이니, 마법이니···애초에 이 길을 걷지 말았어야 했는데.”


날개 달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갑자기 움찔거리더니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만 해도 날개 빼고는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남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점점 불투명 유리 마냥 형체가 흐려지고 있었다. 해변가의 남자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서둘러 두 아이들을 팔에 품었다.


“어쨌든, 출생신고서와 그런 건 이미 갖고 있으니까, 이제 가보셔도 돼요···아, 이름이요?” 해변가의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남자아이는 이가인이고···여자아이는 이세민이에요. 아무래도 제 먼 친척에서 입양했다는 설정이라, 성씨를 바꿀 수는 없는 건 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친생자 입양으로 성씨까지 바꿀 수 있는데···”


파도에서 나온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해변의 남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 서둘러 말을 정정했다. “알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면 안된다는 걸. 그래도 저희 둘 다 박씨면 친부모가 아닌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릴 텐데···” 해변의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제 와서 손을 쓸 길은 없겠죠.”


해변의 남자는 품에서 자고 있는 두 아이를 조금 더 안정적인 자세로 고쳐안은뒤, 파도에서 나온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조심히 가세요.”


파도에서 나온 남자는 바다를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 아이들에게 다가와 양손을 이마에 얹더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손바닥에서 나온 옅은 초록색 빛이 이마 안으로 스며들더니, 몸속을 통과해 심장 부근에서 동그란 구체로 모여 사라졌다.


“만약을 대비해서···인가요.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어릴 때 마력을 발동시킬 지도 모를 텐데요?” 해변가의 남자는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듯 가만히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력이 존재해야 발동된다면···그렇군요. 그나마···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날개 달린 남자는 두 아이에게 서글픔과 애정이 가득한 미소를 보이면서 머리를 마지막으로 쓰다듬더니, 그제서야 세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한 바다에서 마치 짐승이 아가리를 벌리듯 거대한 파도가 일었고, 날개 달린 남자 위로 철썩 하고 내려치자 그 남자는 바다 속으로 녹아내린 듯 사라졌다.


해변의 남자는 여전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내려보더니, 깊게 한숨을 쉬었다.


“참···27살에 아빠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해변의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야 바다에 등을 돌려, 차를 세운 주차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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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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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0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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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3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3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0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0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3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4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8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8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7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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