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501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30
조회
14
추천
0
글자
12쪽

3장. 사랑의 학교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네, 오늘 서울 날씨는 26도, 아주 맑고 쾌청한 날이 되겠고요, 전국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배경에 아침 일기예보가 낮게 깔려 있는, 평범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아침 식사 자리였다. 세민과 가인은 소령중학교의 흰 와이셔츠와 녹색 넥타이 위에 크림색 조끼를 입고, 가인은 까만색 남자 교복바지, 세민은 주름 잡힌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준은 법정에 걸맞은 곤색 쓰리피스 정장과 핑크색 넥타이 차림이었는데, 앳되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어쩐지 어엿한 사회인의 옷차림보단 그저 또다른 교복처럼 보였다.


식기 소독기의 온기가 남아 있는 짝 안 맞는 그릇 위로 숟가락과 나이프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민 앞에는 식빵 두 조각과 버터와 잼, 가인 앞에는 저지방 우유와 뮈슬리, 준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호박죽이 놓여 있었다.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 가족의 마지막 구성원인 주성은 형 손에 들려 보낼 점심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가인아, 너 어제 못 잤니?” 준이 물었다.


가인은 신음하면서 이마를 문질렀다. 평소대로 일어나서 씻고 깔끔하게 다린 교복을 입었지만, 어제의 악몽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둔한 큰아빠가 눈치챌 정도였으면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 선거 유세도 있었는데···야단났네.


“으응···그냥 좀 안 좋아.”


“병원 다녀오지 그래? 진단서 내고.”


“아냐···오늘 학생회 선거 유세도 있고.” 붓기를 빼려 얼굴의 혈을 꾹꾹 누르면서 가인이 대꾸했다.


세민은 토스트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준을 바라보았다. “아빠, 오늘 늦게 와?”


“응? 어, 아마 그러겠지.”


“또 그 이사이쿠란 사람이랑 만나러 가는 거야?” 평온하게 호박죽을 먹고 있던 준은 눈이 동그래졌고, 가인도 의아한 눈길로 세민을 바라보았다. 세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준을 응시했다.


“그, 그래. 그 사람하고···만나야지.” 준은 그 말을 끝으로 호박죽을 반 이상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혹시 그 사람이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해서도 알아? 그거 물어봐줄 수 있어?”


순간 부엌에 정적이 흘렀다. 준은 여전히 세민을 보지 않고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세민아, 미안한데 이 얘긴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아빤 좀 일찍 가야 하거든.” 준이 고갯짓으로 거대한 나무 모양의 벽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준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서류가방을 집어들고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세민은 총총거리는 발걸음을 말없이 눈으로 좇았다.


“야, 가자.” 가인이 세민에게 말했다. 그릇에 남은 우유를 꿀꺽 마신 뒤 세민이는 손등으로 입을 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면서 세민은 주방으로 달려가 주성에게 허리를 굽히게 하고 까치발을 들어 겨우 뺨에 입을 맞췄다. 가인은 그런 세민을 지켜보면서 가방에 노트북을 밀어넣었다. 자신에게도 비슷한 의식을 치렀던 시절이 있었지만, 3학년 이후로 남들이 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그만둔 지 오래였다.


“가자!” 가방을 들쳐메고 가인과 세민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봄 하늘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기분이 들뜨고, 같은 지옥 같은 등교길이라도 조금은 더 견딜 만한 날씨였다. 익숙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며 가인은 기지개를 쭉 피며 맑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지만, 세민은 그저 눈부신 햇살에 눈을 깜빡이며 반응하지 않았다.


“갑자기 부모님 얘기는 웬일이야?” 가인이 물었다. 세민은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은 별 관심 없어. 그렇지만 그 이사이쿠라는 사람이···진짜 존재하는구나.” 갑자기 마지막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세민이 말했다.


“이사이쿠라니?”


세민은 누가 듣기라도 할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잔뜩 목소리를 낮췄다. “들어봐. 어제 큰아빠가 방에 왔는데···”


아빠의 이상행동과, 이예나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가인의 눈은 점점 커졌다. 아빠가···세민을 잡고 입을 막았다고? 세민이한테 그러다니···“도대체 왜 그런 거지? 아빠가 장난을 치는 타입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진짜인 거 같긴 한데···왜 그 단어를 ‘말하지’ 말라고 한 걸까?” 세민이 골똘히 생각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답이라면···우리 집이 도청되는 거겠지?” 세민이 천천히 말했다. 세상이 너무나도 명확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밝은 햇살 속에서 그런 말을 하니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최근 연달아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니 도무지 웃음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마지막으로 집에 들어온 외부인은 주현이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가 설마 스파이짓을 하겠어? 그냥 아빠가 최근 스트레스를 받아서···환각이라도 보는 게 아닐까?” 가인이 말했다.


세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도 아닌 거 같고, 보통 너가 말하는 정도가 되면 조현병이라는 건데···그러면 아빠가 오늘처럼 멀쩡하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게. 하지만 도청도 아닌 것 같아. 만약 그렇다는 의심이 들었으면 아빠도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거야. 상식적으로 누가 우리 집을 도청하고 싶었으면, 가장 먼저 할 곳이 아빠 서재인데.” 가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거 자체가 문제라는 건가? 왜지?” 세민이 중얼거렸다.


“음···글쎄. 일단 이건 학교 끝나고 좀더 생각해 보자. 나르샤 어때?” 가인이 물었다.


카페에 갈 생각에 세민은 씨익 웃었다. “나야 좋지.”


가인은 미소로 대답하면서 학교 앞의 벚꽃길에 들어섰다.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된 지 겨우 1달이 지난 시점이었고, 여린 새순 사이 망울망울 부풀어오르던 꽃봉오리들에서 어느 순간 새하얀 꽃잎이 팝콘 마냥 터져나왔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명을 다한 꽃잎들이 우수수 머리 위로 쏟아지며 화려하게 종말을 맞았다. 비록 도로 주변에는 아스팔트 갈아엎기로 인한 오렌지색 주차 콘과 도로와 비슷한 색의 새까만 캔버스 커버가 널부러져 있었지만, 하늘만 보면 거의 그림 동화 같은 곳이었다.


“우리 학교가 좀 그래도 이런 건 이쁘다니까.” 뜻밖의 꽃잎 소나기에 가인이 감탄하듯 말했다. 하지만 가녀린 분홍빛 감성에 젖으려던 찰나 퉤퉤거리며 길바닥 위에 침을 뱉어내는 세민이 있었던 감흥조차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꽃잎이 실수로 입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우리 학교는 왜 이딴 걸 심어놓은 거야? 감옥 주제에 예쁜 감옥이 되기를 바라는 건가?” 세민이 툴툴거렸다.


가인은 꽃잎을 뱉어낸 세민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넌 문과 주제에 감성이 나보다 더 메말랐냐.”


“그럼 그 농약투성이 벚꽃을 그냥 삼키랴? 내가 이 학교를 폭파시키기도 전에 죽는 건 너무 아깝잖아?”세민이 깐죽거렸다.


“왜, 죽지 그래. 여기서 지박령이 되어서 평생 이 학교를 저주할 수 있잖아.”


“꺼져. 난 이 지옥 같은 곳을 사서 불태우기 전까진 안 죽을 거야.”


가인과 세민은 티격거리며 학교로 올라가는 학생들의 무리에 자연스레 섞여들어갔다.


“쨌든, 잘 가.” 정문 앞에서 세민이 먼저 가인에게 말했다.


“응. 나중에 봐.”


재빠른 발걸음으로 먼저 신관에 도착한 세민은 나무 문이 주루룩 늘어서 있는 3층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가인은 한 층 더 위로 올라가 자신의 교실로 향했다.


1-1반의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어젖히고 가인은 안으로 들어섰다. 조례 10분 전이었지만, 책상의 과반수는 텅텅 비어 있었다. 뭐,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학생의 대다수는 댄스부나 온갖 스포츠부, 토론 동아리에 속해 있었고, 그 이외에 주번들과 수업 전 수다를 떨러 나간 애들까지 다 빼면 아마 그 정도는 되었을 터였다.


“가인아 안녕!”


“야, 이가인! 어제 화학 숙제 함? 나 안 했는데, 오늘 검사 하려나?”


“가인아, 네 노트 좀 보여줄래? 나 어제 한국사 시간 때 졸았는데.”


문에서 자리까지 이동하는 그 짧은 순간에 사방에서 가인을 부르는 목소리와 아침 인사가 날아들었지만 가인은 고작 이 정도로 흔들릴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한 손으로 한국사 노트를 건네고, 다른 손으로는 눈웃음을 곁들여 여자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입으로는 화학 선생님에게 정면으로 대적하고 살아남을 거라 예상하는 친구의 가상한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일일이 나열하니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가인은 기억날 때부터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익숙했기에 이 정도는 거의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다.


몇 분 동안 기분 좋게 가벼운 담소를 나누던 중, 천장에 박힌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계음이 파헬벨의 캐논을 무미건조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례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에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도 서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윽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가인의 담임이신 소다온 선생님은 30대 후반 정도 된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언제나 직접 제작한 문구가 적힌 후드티나 스웨터를 입고 오셔서 매일 어떤 디자인일지 기대하는 것 또한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오늘은 “삶은 달걀, LIFE IS EGG”라는 소소한 아재개그와 깨진 달걀 그림이 그려진 후드티였다. 아마 아재개그를 쳤다가 맞아죽은 달걀 컨셉인 것 같았다.


“자, 자리에 앉아. 인사말은 됐고, 안 온 사람?”


“이예나요!” 가인 옆자리에서 광재가 소리쳤다. 확실히, 가인의 앞자리는 종이 울렸는데도 비어 있었다.


“예나만 없어?”


“네!”


“흠···” 선생님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혹시 이예나 본 사람은 없지?”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확실히 이예나는···없어지기 전에도 겉도는 타입이어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몇 번 가인이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이예나는 항상 단말마로 말을 끝마쳐 아예 어울릴 생각이 없다는 인식을 주기도 했었다. 오히려 그 애의 부재가 더 존재감이 있을 정도라니···뭔가 아이러니했다.


선생님은 헛기침을 했다. “뭐, 일단은 그렇다 치고, 오늘 전달사항 있다. 시간표 바뀌었으니까 담당이 칠판에다 적어. 체육, 국어, 과학, 미술···”


평범한 조례가 끝나고 1교시를 기다려야 했다. 가인은 맨 앞줄의 창가 자리에 앉아,창 밖으로 봄날 아침의 학교를 감상했다.


소령중학교는 비록 세민의 저주와 노여움을 산 곳이었지만, 그 경치만큼은 세민이 아닌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아름다웠다. 학교 앞의 거대한 인조 잔디는 아침 햇살 아래 거대한 녹색 밍크 코트 마냥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1년 내내 풍성한 녹음을 자랑하는 소나무들 사이에서 톡톡 튀어나온 새하얀 벚꽃나무들, 맑은 하늘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폭신한 뭉게구름 한 조각···눈부시게 선명한 색깔로 새로이 칠해진, 뽀득뽀득 씻겨진 유리창 같은 풍경이었다.


뭐, 세민이 가진 학교에 대한 혐오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인은 공부를 게을리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세민은 공부에 정말 목숨을 거는 타입이었다. 배치고사에서 전과목 최고점을 받아 전액 장학금까지 받아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항상 다른 아이들을 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피곤한 절박함이 학교라는 단어 자체에 스며들어버린 것도, 가인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풍경도, 친구들의 장난도, 웃긴 선생님들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가인은 학교가 좋았다.




댓글과 선작, 추천을 먹고 살아요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0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3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4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1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1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4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5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9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9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8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