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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4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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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닫힌 미닫이문 앞에서 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가인은 점심시간 때마다 세민을 데리고 함께 밥을 먹었을 테지만, 세민은 단 한 번도 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핑계는 거기서 거기였다—니 친구들이랑 난 친하지도 않는데 뭘 같이 먹냐, 난 빨리 먹고 선생님에게 뭐 물어봐야 한다, 오늘 급식 맛없어서 매점에서 빵으로 때우겠다—


거짓말이었다. 전부, 빠짐없이 거짓말이었다. 세민은 중학교에 들어온 이래로 단 한 번도 가인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한 적이 없었다. 운이 좋으면 오늘처럼 그나마 학교 내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평소에는 아예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이는 것 자체를 부정할 정도였다. 물론 애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나마 외모라도 어느 정도 닮았으면 몰라, 아무리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세민과 달리 가인은 외형만큼은 금발에 벽안인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한국인이라고 할 만한 구석은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당연히 애들은 가인을 외동이라 생각하기 일쑤였다.


가인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창문으로 세민이를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애들에게서 떨어진 채 혼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가인은 사람을 만나면 활기가 충전되면서 평소보다 더욱 방방 뛰었지만, 준이나 세민처럼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고 기빨리는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세민은 그 날 이후로 내향적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함께 있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않고, 가까이 오려 하면 더 멀리 떨어지고, 누군가가 말을 걸 때마다 경계심 어린 눈으로 몸을 움츠렸다. 애처로움에 가슴이 찌르르 울려왔지만, 가인은 마음 편히 아파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마음 아파할 자격조차 없는 주제에.


“가인아 안녀엉!”


생각의 흐름을 비집고 들어온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가인은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거기에는 여자애 두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한 쪽은 엄청 크고 한 쪽은 엄청 작은 게 뭔가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개그맨 콤비 같았다. 키 큰 여자애 쪽은 약간 놀라울 정도로 유명한 축구 선수와 닮았는데, 명찰을 보니 최소연이란 이름이었다. 아. 이게 세민이 그토록 욕하던 걔인가. 그렇다면 옆은···


작은 여자애는 명찰을 안 달고 있었고, 큰 눈을 더욱 강조하려는 듯 아이라이너를 진하게 바르고 옅은 코코아 아이섀도우까지 바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손길이 미숙한 탓인지 군데군데 마스카라가 뭉쳐 있고, 아이섀도우에 그라데이션을 주지 않은 탓에 약간 멍 같았다. 흔한 초보자의 실수였다. 뭐, 본인은 신경 안 쓰는 듯 했지만.


추측이 맞다면, 이게 김예원이었다. 참···작았다. 어떻게 이런 애가 반을 휘어잡는다는 거지.


“앗, 미안, 내가 길을 막고 있었네. 너희들, 여기 반이지?” 싱긋 웃어보이며 가인이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아니?”작은 여자아이가 기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눈깔이 달렸기 때문이 아닐까?


“아···괜히 미안하네. 너 얼굴은 기억났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어. ”가인이 무안한 듯한 미소를 흘리면서 대답했다. 이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또 안다고 하면 김칫국부터 마시던 일이 몇 번 있어서···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작은 여자애는 약간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긴. 너가 내 이름을 알 리가 없지. 너 같이 인기 많고 잘생긴 애가···”


“아, 아냐 아냐! 나 같은 게 뭐.”부끄러운 듯 손을 내저으며 가인이 말했다.


“내숭은. 너 이가인이지? 잘생겼다고 소문 난 걔잖아.”소연이란 여자애는 잇몸까지 드러나는 미소를 지으며 가인의 어깨를 툭 쳤다. 순간, 작은 여자애의 얼굴에 말로 형연하기 힘든 정도의 분노가 지나쳐갔다. 마치 작은 토끼가 갑자기 늑대의 송곳니를 드러낸 것 같은 이질적인 모습에 어쩐지 아까의 질문의 대답을 알 것만 같았다.


“소연, 혹시 내 책상에 그 당근 펜 있는지 찾아볼 수 있어?”


“그거? 이미 찾아봤잖아?” 소연이 못마땅한 듯 대답했다. 하지만 독기 서린 눈길을 다시 받자 소연은 마지못해 교실 안으로 향했다. 작은 여자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며 가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참 가까이 하기 싫은 아이였다.


“그나저나, 넌 왜 이쪽으로 왔어?” 혼자 남겨진 예원이 물었다.


“아···친구랑 얘기하러 왔어.” 가인이 얼버무렸다. 마음 같아서는 세민이와 남매라고 온 동네에 떠벌리고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그 사실만으로도 이 애의 해코지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세민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가인은 이미 저지른 것 이상으로 세민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진짜? 누구?” 그 애가 물었다. 아이씨, 더럽게 귀찮네···


“어···그, 음···성훈. 성훈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내뱉었다. 성훈은 같이 축구를 몇 번 한 적 있는 남자아이였다. 굉장히 잘하는 걸로 기억했다. 걔랑 엄청 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뭐, 친구란 말은 본래 굉장히 가볍게 쓰는 단어 아니었던가.


“그랬구나. 부럽네.”


“응? 뭐가?”


마지막 말은 의도치 않게 튀어나온 건지, 예원은 잠시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아-아니, 뭐···그냥···친해 보여서. 난 아직 다들 덜 친해져서 그런가, 좀 어색하거든.”


“맞아, 그건 그래. 하지만 다들 착하니까, 조금만 더 지나면 다들 친해질 거야!” 가인이 밝게 말했다. 알맹이 하나 없는 가식에 자괴감이 약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과도기에서 가인이 연기하기로 정한 이미지는‘소년 만화 주인공’이었다. 현실감이 없어보일 정도의 긍정심과 밝은 미소. 너무 다방면에 뛰어나서 거리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시는 못할 정도의 분명한 특기. 세민을 상대로 여름 방학 동안 아주 조심스럽게, 치밀하게 연습했던 이미지였다. 벌써부터 무너지면 안되지.


예원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겠지.”


그 순간, 짧은 종이 울리면서 점심시간의 끝을 알렸다. 이쯤이면 좋은 인상을 남겼겠지, 생각하면서 가인은 손을 흔들었다.


“잘 가!” 가인은 그 인사만을 남긴 채 서둘러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갔다.


6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고 가인은 서둘러 세민의 교실 앞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이미 종례를 마치고 반 안의 친구들을 기다리며 기웃거리는 아이들로 반쯤 차 있었다. 몇 명은 가인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인아, 너 누구 기다려?” 리나가 물었다. 초등학교 때 함께 도서부원을 하며 친해졌던 키 크고 마른 여자아이였다. 트레이드마크인 흰 스카프는 오늘도 목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아···그, 어, 로하. 선거단 때문에 좀 할 말이 있어서···” 가인이 재빨리 얼버무렸다.


“그렇구나. 난 너 뽑는 거 알지? 도서부 선배들도 전부 너 뽑으라고 해놨어.” 리나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빨 위에 철로처럼 놓인 은색 교정기가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가인은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손을 내저었다.


“하하···고-고마워. 그래도 역시 선거인단 설명을 듣고 뽑는 게 낫지 않을까?...나보다 더 나은 후보도 있을 수 있고···”


“겸손하기는. 너 아니면 3반의 소영인데, 걘 연체 기간이 벌써 3주째야. 그 전에 빌린 책도 음료수를 흘렸는지, 찐득찐득해져가지고 아예 폐기처분해야 했잖아. 책 하나 감수 못하는 애한테 우리 학교 축제를 맡기다니···” 리나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는 모습에 가인은 입꼬리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리나는 도서관 책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는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연체에다 주스였다면···아마 동물 학대범이나 연쇄 살인마와 동급이겠지.


“그나저나 뭔 일일까? 보통 세헌 선생님은 되게 빨리 끝내주시는 편인데. 우리 반도 다 끝났는데 얘네만 안 끝났어.”


리나의 중얼거림에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확실히 반 안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가인은 세민을 찾으러 교실 안을 훑어보자, 빈 책상이 세···아니, 네 개 눈에 띄었다. 하나는 확실히 세민의 것이었다. 맨 앞이라서 기억이 났다. 그리고...창가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책상과, 그 바로 뒤의 한 개. 누구 것이었을까? 어디 땡땡이 친 놈들이려나.


혹시 벌써부터 싸움을? 생각 만으로도 몸 안의 피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제발···


그때 복도 끝에서 모퉁이를 돌아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세헌 선생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세민이였다! 세민이 평소 학교에서 장착하는 지루한 표정인 걸 보아, 딱히 큰일은 아닌 듯 했지만···


세민이는 교실 안으로 향해 책상 옆에 걸린 책가방을 어깨에 들쳐메었다. 굉장히무거웠는지, 등에 멘 순간 무릎이 굽혀질 정도였다. 세헌 선생님은 상반신을 미닫이문 사이로 밀어넣었다. “늦어서 미안, 얘들아. 빠진 사람 없지? 그럼 오늘 늦게 온 사람들 없으니까···잘 가!” 그리고선 선생님은 다시 몸을 빼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순식간에 교실은 웅성거리고 “고작 그걸 위해 기다린 거야?”와 “그래도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가 뒤섞인 거대한 소음의 파도가 차올랐다.


“정문에 있을게.” 조용한 목소리가 가인의 귓가를 스쳤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세민은 재빠른 발걸음으로 정문을 향해 빠져나가고 있었고, 가인은 놓칠새라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다.


“야, 너 뭐하다 쌤이랑?—” 겨우 세민을 따라잡은 가인이 물음을 끝맺기도 전에 세민은 걸음을 더 재빠르게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아, 맞다. 학교에선 모르는 척이지. 가인은 체념과 짜증이 반쯤 뒤섞인 콧김을 내뿜으며 애써 발걸음을 늦췄다. 자신의 앞의 길고 곧은 생머리에 꽂힌 나비 머리핀을 따라 학교를 나갔다.


학생의 바다는 정문에서 세 갈래의 강으로 나뉘었다. 근처에 살지 않는 아이들은 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엄마나 아빠가 차를 갖고 데리러 온 아이들은 옆의 학교 주차장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인처럼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갈 길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가인은 세민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세민은 온데간데 없었다. 정문 앞에 있겠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곧 올 터였다. 가인은 정문을 뚫고 나가는 학생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정문을 호위하는 두 해태 석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밀물에 쫓겨 쫑쫑걸음으로 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 손바닥만한 공간은 망망대해 속의 섬 같았다. 가인은 그곳에 서서 잠시나마 숨을 돌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세민은 오지 않았다. 혀를 차며 가인은 핸드폰을 꺼내 세민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원이 꺼져 있다는 핸드폰의 친절한 안내가 귀에 울렸다. 아마 배터리가 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였다. 분명 여기서 만나기로 했던 세민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학교. 가인이 지나치는 사이 세민이 화장실에 들렀다 오느라 늦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세민이 그 정도로 급했다면 아까 계단으로 내려가는 대신 그 앞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가인이 보았을 터였다. 학교 구조는 거의 비슷하게 되어 있었고, 이미 4월 중순이었기에 거기에 있는 걸 몰랐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선생님에게 교복이든 뭐든 잡혔다. 그렇지만 지금 선생님들은 거의 다 교무실에 있는 데다가, 세민은 기본적으로 모범생이라 옷차림으로 지적받을 일은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헝클어져도 어쨌든 다 갖춰입긴 했으니까. 무엇보다 백 보 양보해 세민이 조끼를 갑자기 벗는 스트립 쇼를 선보였고 그 모습이 운 나쁘게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해도, 하교 시간이 되면 복도는 아이들로 꽉 차 있어 누구인지 식별하기도, 직접 잡기도 터무니없이 어려웠다. 누군가를 뚜까패지 않는 이상 세민이 잡힐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쨌든, 학교에는 일단 없다. 그러면 남은 곳은?


일단 세민은 가인이 따라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으니, 버스를 난데없이 탈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이 근처의 상점들···인가.


가인은 한층 한산해진 정문 앞을 두리번거렸다. 학교 바로 앞에 이어져 있는 횡단보도에는 아직도 교복 입은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앞에 있던 나비 머리핀의 여학생도 있었다. 세민이 자신을 뿌리치고 떠났어도 가인은 꽤나 가까이 뒤를 밟았었다. 분명 세민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면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터였지만, 가인에게 보이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은 모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즉 세민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다.


그렇다면 학교가 끝나고 바로 나르샤에 가기로 했으니,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제일 말이 될 것이었다. 가인은 서둘러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민은 딱히 어디 있는지 말은 안 해줬지만, 여기서 세민이 기다릴 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카페는 아니었다. 끝나고 카페에 들를 터였으니. 슈퍼마켓에서 무언가를 사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세민의 가방은 책으로 빵빵해진 데다가 준이 심부름을 시킨 것도 없었다. 게다가 오늘 케이크를 먹을 거였기 때문에 군것질을 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서점? 문방구? 세민은 귀여운 문구류라면 사족을 못 썼으니, 그 쪽에서 기다린다면 말이 되었다. 가인은 서둘러 학교 옆 오래된 문방구 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물건을 사고 있는 몇몇 선배들 빼고는 세민은 없었다. 혹시 몰라 건물 2층의 서점도 올라가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씨···”


서점을 나선 가인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하긴···곧 만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그걸 못 참고 문구류나 책을 보러 간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긴 하지.


슬슬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되삼키고 가인을 눈을 감았다.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교실 앞에 있었고, 세민이 귀에 속삭였지···


잠깐만, 그때 뭐라고 했었지? “정문 앞에 있을게?”


그 순간 뇌리를 스쳐지나간 너무나도 허탈한 정답에 가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줌과 동시에, 탐정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드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가인은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학교의 정문, 그러니까 건물 자체에 붙어 있는 유리 문을 나서면 거대한 기둥 두 개가 유리 현관문 앞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었다. 거기에서 세민은 왼쪽 기둥의 바깥 면에 기대어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세민처럼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 마치 등잔 밑이 제일 어두운 원리와 비슷하달까.


“어, 왔네. 뭐가 이렇게 늦었어?” 세민이 책을 가방 안에 쑤셔넣고 일어서면서 물었다. 가인은 “정문”이라는 말의 중의성을 깨닫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역시 옛 어르신들 말씀은 틀린 게 없구나.” 세민이 비웃었다. 그 정도의 장난은 서로 간에 흔히 오가는 말이었고, 가인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순화하여 말하면 방정맞은 오르막길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한 가인 입장에서는 이유 모를 짜증이 가슴을 쿡 찔러대고 말았다.


“애초에 너가 나랑 같이 갔으면 없었을 일이야, 알아?” 가인이 쏘아붙였다. 갑작스레 날이 선 말에 세민은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표정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넌 내가 왜 너랑 같이 다니기 싫어하는지 알면서 그래? 양심도 없냐?” 세민이 으르렁거렸다.


“그럴 거면 핸드폰이라도 좀 켜놓으라고!” 할 말은 없지만 지기는 싫었던 가인의 나약한 일침이었다. 세민은 한숨을 쉬면서 가방을 어깨에 메더니, 그 무게에 짓눌려 휘청거렸다.


“알았어. 가자.” 세민이 조용히 말했다. 가인은 말없이 세민을 따라 반쯤 헐벗은 벚꽃나무 밑을 걸어갔다.




댓글과 선작, 추천을 먹고 살아요


작가의말

캐릭터 짜투리 설정: 주성이 가장 좋아하는 마블 캐릭터는 캡틴 아메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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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0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3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3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1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0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3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4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8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8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7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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