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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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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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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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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장. 폭풍의 언덕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저녁을 먹은 뒤, 세민은 냉장고에서 디저트가 담긴 종이 박스를 꺼내 접시 위에 옮겨담았다. 바깥에는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따뜻한 집 안에서는 세찬 빗소리조차 그저 포근한 배경음악일 뿐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별 일 없었어?” 케이크를 한 점 집으면서 주성이 물었다.


“응? 아, 뭐, 딱히. 어떤 애가 토한 것 말고는. 그것보다 아빠, 나 물어볼 게 있어.” 세민이 말했다. 주성은 질문을 기다리며 또 케이크를 한 점 집었다.


“최근에 이사이쿠라는 사람, 큰아빠가 맡았던 사건 중에 있어?” 작은아빠라면 알 터였다. 큰아빠의 서면이나 고소장, 위임장, 기타 서류는 전부 작은아빠가 관리했으니까.


주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음···글쎄, 내 기억에는 없어. 그런 이름이었다면 기억했겠지. 근데 왜 이사이쿠란 사람에 그리 관심을 가지니?”


세민은 케이크를 씹는 동안 이 새 정보를 고려했다. 그렇다면 이사이쿠가 손님이라는 말은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그냥. 보육원에 관계된 사람이라길래···애기 사진이 있나 알고 싶었어.” 세민이 능청스럽게 얼버무렸다.


“그래? 그거라면 나중에 큰아빠한테 말해볼게. 그런데 도대체 형은 어디 있을까? 전화를 해도 안 받고...”


그 순간 갑자기 쾅 하고 엄청난 굉음이 울리더니, 방 안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놀란 세민이 창으로 달려가 커튼을 열어젖히자, 바깥의 세찬 비는 아예 폭풍으로 돌변해, 정전 때문에 가로등이 전부 꺼지고 바로 건너편의 집의 윤곽조차 안 보일 지경이었다.


“히익. 엄청 퍼붓네. 오늘 태풍이 온다는 말은 없지 않았어?” 난생 처음 보는 굵은 빗줄기를 입이 떡 벌어진 채 바라보며 세민이 물었다.


가인은 거실의 스위치를 몇 번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했지만, 불은 다시 들어오지않았다. “정전된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 보여.”


그 사이에 주성이 가져온 어둠 속에서 커다랗고 하얀 양초 세 개가 흔들리는 불을 내었다. 미약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불빛에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핸드폰 불빛은 되도록 안 쓰는 게 좋을 거야. 신호는 가니까, 큰아빠나 서로랑 연락할 때 필요하잖아. 오늘은 촛불로 버텨야 할 것 같은데.” 촛불 몇 개를 종이컵에 집어넣고 불을 붙이면서 주성이 말했다.


“우와. 아빠, 이건 또 어디서 났어?” 세민이 감탄했다. 종이컵의 불빛이 비추는 세 갈래 촛대는 반짝이는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온갖 동식물이 그 표면에 새겨져 있었다. 이렇게 고풍스러운 촛대는 어쩐지 한국의 아파트가 아닌, 중세 유럽의 식탁 위에서 돼지 통구이를 빛내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 그거 형 방에 있더라고. 형 향초 태우는 거 좋아하잖아. 새로 샀나봐.” 세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향초를 태우려고 큰아빠가 이걸 샀다고? 참다 못한 작은아빠가 당장 버터로 바꾸라고 난리를 피우기 전까진 돈 아끼려 마가린밖에 안 먹던 큰아빠가···이거, 의외로 중국산이었나.


가인도 관심이 끌렸는지 촛대를 이리저리 훑어보기 바빴다. “게임 같은 데서 보면 상대방의 뒤통수를 이걸로 후려치지 않아?” 가인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건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후려치는 거잖아. 멀쩡한 세민이 뒤통수를 후려갈기면 못 써.” 주성이 핀잔을 줬다.


“왜 세민이 뒤통수라고 단정짓는 거야?”


“이노무 후레자식이.”


둘이서 옥신각신하는 동안 세민은 표면의 각인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촛불을 받치는 접시 부분이 그림자를 드리운 부분에 종이컵 양초의 불을 갖다대었다. 자세히서 보니, 각인은 생각 이상으로 세밀하고 정교했다. 양초를 담는 컵 비슷한 부분도 전부 식물과 잎으로 덮여 있었고, 그 컵을 받치는 기둥들에는 사슴 비스무리한 동물들이 그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런데 위에만 해도 평화로웠던 각인들은 어쩐지 점점 밑으로 갈수록 더 난해해졌다. 세 갈래의 가느다란 팔들이 하나의 큰 중심 기둥에서 만나는 부분에는 사슴들이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뜯기고 있었고, 밑으로 가면 그 육식 동물 또한 더 몸집이 크고 난폭한 동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중앙 기둥의 제일 밑단에는 마침내 날이 선 칼과 무기가 동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아빠가 이런 취향이었다니. 이제 생일 선물을 뭘로 사줘야 하나.


“어? 뭐지···”


다른 각인도 살피려 촛대를 돌리자, 중앙 기둥의 중간에 장미 덩굴로 만든 직사각형 테두리 안에 이상한 선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 그리고 점이 들어간 것이 마치 중세 한글 같았지만···있어야 되는 나머지 자음과 모음은 온데간데 없고 꾸불꾸불한 줄들이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세민이 공부한 어떤 고전 시가도 이런 글자를 쓴 적은 없었다.


“이거, 무슨 언어인 것 같아?” 뒤에서 다가온 가인이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며 세민이 물었다. 가인도 눈살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불을 비췄다.


“중세 한글···아니야?”


“근데 자음이랑 모음이 뭔가···없지 않아?”


“그냥 필기체 아냐? 광재가 필기하면 이렇게 보이던데.”


“뭔데, 뭔데?” 두 아이의 등 뒤에서 기웃거리던 주성이 물었다. 세민과 가인은 말없이 옆으로 물러나 주성에게도 그 도형들을 보여줬다.


“···허어···이상하네. 그림의 일부분이라고 하기엔, 너무 주변의 분위기랑 어긋나는데.” 주성이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덩굴의 바깥 부분은 전부 동물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게다가 장미 덩굴로 테두리까지 그려가면서 그 부분만 따로 분리시켜 놓은 것도 고려하면···아무리 봐도 그림의 일부분은 아니었다.


“얘들아, 너희들이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니? 불 좀 키고 살아.” 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셋은 일제히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준은 벽의 전등 스위치를 딸깍거리고 있었다.


“어? 정전이야? 세상에···이걸 어떡하면 좋아? 핸드폰 보조 밧데리도 없는데···” 준이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뭐가 걱정이야. 박 변호사님한테서 빌려. 바로 옆집인데.” 주성이 대꾸했다.


“그건 너무 민폐인데···소장님도 쓰셔야 할 거고.” 준이 중얼거렸다.


“형 내일 구속적부심 때문에 대기 타야 하잖아. 좀 빌려 그냥. 뭘 그렇게 사람 눈치를 봐, 안되면 마는 거지.” 주성이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줬다. 준은 한숨을 쉬었다.


“너가 좀 갔다와주면 안되···겠지.”


“알면서.” 주성이 약간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준은 말없이 식탁에 다가와, 촛대를 본체만체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웬일이야? 늦게 들어온다더니. 밥 좀 줄까? 닭갈비는 다 먹었지만, 냉장고에 불고기 좀 남았으니까···”


“아, 아냐. 난 저녁 먹고 왔어. 그래도 이렇게 촛불도 키고 있으니 좋네.” 준이 웃었다. “이거 손님이 선물로 들고 왔는데, 솔직히 우리 집이 촛대에 불 키고 먹는 집은 아니잖아? 평생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거 어디서 사온 거야? 촛대 말고 다른 것도 만들려나?” 가인이 물었다. 액세서리 중에서도 은 액세서리에 특히 환장하는 가인다웠다.


“아···글쎄? 그 분이 만든 모양이던데.” 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연락처 좀 줄 수 있어?” 가인이 물었다.


“응?”


“나, 다음에 촬영할 때 펑크족 컨셉이거든. 새 은 악세서리가 필요한데···”


“그건 그냥 너가 갖고 싶은 거잖니.”


“뭐 어때, 모델 해서 번 돈인데.” 가인이 대꾸했다.


모델이라는 아무 생각 없는 한 마디가 어느 곪아문드러진 곳을 건드린 건지, 속에서부터 더럽고 뜨거운 것이 울컥 하고 차올라 목구멍을 막았다. 세민은 서둘러 일어섰다.


“어디 가?” 주성이 물었다.


“공부. 곧 중간고사잖아.” 세민이 짧게 대답햇다.


“세상에, 그 불로 뭔 공부야, 눈 다 버리게. 오늘은 좀 쉬어.” 주성이 핀잔을 줬다.


“컴퓨터 배터리 있잖아. 그걸로 인강 들을게.” 세민이는 그 말을 끝으로 거실을 서둘러 떠났다.


다음날 아침, 세민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뻐근한 눈알을 문지르면서 어제 강의를 들었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냥 포기하고 잤으면 그나마 상쾌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1교시 동안 안 졸기만 하면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조례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오든 말든, 세민은 하품을 하며 졸린 눈을 깜빡였다. 오늘은···공부고 뭐고 가자마자 바로 자야지.


“보자···다들 있지? 음···전달 사항은···아, 맞다. 어제 성훈이가 발목을 심하게 다쳐서 한 사흘 동안은 수술하느라 학교에 나오기 힘들 것 같아.”


소신기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세민은 동참하지 않았지만,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의심이 뇌리에 박혀, 서서히 부풀고 있었다. 이예나. 최소연. 그리고 이젠 성훈. 겨우 2주 내에 이 작은 학교에서 실종과 독살(?)과 상해.


그저 단순한 비운의 연속이었을까?


“쌤, 왜 다쳤대요?” 특유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하루가 물었다.


“밤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고 돌아가다가 헛디뎌서 발목이 심하게 부러졌대. 얘들아, 진짜로 너희들 밤에 학교에서 돌아다니면 안돼.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그 뒤로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학교의 책임에 대해 설교를 했지만, 세민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그저 최소연의 평소 행실로 인한 업보라 생각할 수 있었다. 두 번은 굉장히 이상한 우연이지만, 더한 일도 이 세상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로 성훈까지?...


설마 그 메시지가...관련이 있는 건가?


이예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최소연은 갑자기 토했다. 그리고 성훈은···발목을 부러뜨릴 정도로 심하게, 학교 내에서 발을 헛디뎠다. 아니었으면 학교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대화 내용을 들은 사람은...이예나 이외엔 없었는데...


그렇다면 역시 범인이 이예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하지만 실종된 사람이 어떻게 이 아이들한테 해코지를...


“···그래서 우리 반에서 오늘 숙제도 알려줄 겸 병문안을 가볼려고 하는데, 가고 싶은 사람?”


듣고서도 세민은 가만히 있었다. 성훈이랑 친한 그 남자애들이 당장이라도 손을 들 게 뻔했다. 아니면 그 김예원도 갈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거기에 낄 바엔 차라리 서류 파쇄기의 입구에 끼어버리는 게 나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 뒤에는 침묵이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세민이 힐끗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손을 선뜻 들지 않고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세민은 그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민이 생각하는 성훈은, 가인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공부보다는 놀기를 좋아하고, 여자애나 남자애들과 무리지어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 없으면, 사람들이 찾는 아이.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생각에 직접적으로 모순되어 있었다. 이건···세민이 볼 만한 광경이었다. 성훈이 아니라.


왜 그 깨달음이 찾아오자마자 세민이 손을 들었는지, 한 마디로 잘라서 설명할 순 없었다. 그저···이런 일을 겪기엔 너무 순한 눈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찰력으로 세민의 반대되는 성별을 눈치챈 한두명이 소곤거리며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민은 그들을 무시했지만, 성훈이 걱정되는 건···어쩔 수 없었다. 역시 자신과 엮이면 또 이상한 소리를 들을 텐데···


하지만 세민은 그런 걸 고려해 짜져 줄 정도로 양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은 가능한 상황이었고, 성훈에게 사정 청취를 해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그때 명치를 맞았을 때, 성훈이 아니면 누가 도와줬을까.


그것만 해도 충분히 병문안을 갈 이유는 되었다.


선생님은 다행히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세민이는 이따 학교 끝나고 쌤이랑 같이 가자. 자, 화장실 다녀오시고 수업 준비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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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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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1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4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4 0 15쪽
»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9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1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1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4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5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9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9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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