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2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36
조회
15
추천
0
글자
17쪽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나르샤는 불과 일주일 전에 찾은 곳이었지만, 세민과 가인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작고 개성 넘치는 카페였다. 커피, 음료, 분위기, 서비스까지 전부 따져대는 세민의 취향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카페 탐방의 대부분은 세민이 피곤하고 다리 아프니 가인에게 맞춰주는 식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그 세민조차도 일주일간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하면서 나르샤에 다닌 결과, 별 흠결을 찾을 수 없다며 만족하고야 만 것이었다.


음식점과 옷가게, 문방구와 병원이 한데 뒤섞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은은한 노란색으로 빛나는 바탕에 붓글씨로 휘갈겨진 “나르샤”라는 간판이 꽤나 평범해 보이는 가게 입구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히터와 각종 커피 내리는 기계가 내는 따스함에 볶은 원두의 쌉싸름한 향이 실려와 볼과 손에 얼어붙은 쌀쌀한 4월의 저녁을 녹여주었다. 카페는 한옥 마냥 벽과 바닥이 모두 어두운 원목으로 덮여 있었지만, 곳곳에 장식된 밝은 색깔의 의자들과 가느다란 다리의 커피 테이블, 그리고 거대한 디저트 진열장은 그런 어둠을 음침하기보단 포근하게 느껴지게 해주었다.


세민은 곧장 제일 좋아하는 구석진 자리의 남색 1인용 소파를 찜해, 무거운 책가방을 쿵 하고 내려놓았다. 세민의 머리 위에는 카페 이름부터 묻어나는 사장님의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대변하듯 하회탈이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진짜, 허리야.” 신음하면서 털썩 주저앉은 세민이 1인용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가는 동안 가인은 그 맞은편 자리, 수줍게 웃는 각시탈 밑의 팔걸이 달린 가죽 의자에 앉아 어중간한 자리에 놓인 가방을 자신의 의자 옆으로 끌어놨다. 아니, 정확히는 끌어놓으려 했다. 가방을 벽돌로 꽉 채우고 다녔어도 이것보단 더 가벼웠을 터였다.


“야, 뭘 이렇게 넣은 거야?”


“응? 수학하고 사회하고 한국사 교과서, 메인 문제집 두 개, 학교에서 못 끝낸 보조 문제집 두 개···그 정도. 중간고사 2주 전이긴 하지만 오늘은 좀 쉬려고.”


가인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 정도가 “쉬는 것”이란 건 둘째치고, 세민은 평소에도 보면 문제집을 풀고 있었는데···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 까.


“고작 중학교 중간고사잖아. 뭘 그리 열심히 하는 거야?”


“바보. 내신을 잘 받아야 외고 가지. 지금 여기서 과고, 외고 준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방심하면 바로 떨어져.” 세민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너 진짜로 외고 목표로 하는 거야?” 가인이 물었다. 세민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몇 번을 말해, 난 너와 달리 문과 나부랭이라고. 넌 적당히 가도 먹고 살 길이 있지만, 난 최고가 아니면 굶어죽는다고.”


“뭔 말을 그렇게 해! 너도 외국어도 많이 하고 얼마나···”


“외국어 잘 하는 게 자랑이냐. 티비에 못 봤어? 부모 잘 만나서 태어날 때부터 5개국어씩 하는 애도 있는데. 에휴···나 뭐 먹고 사냐. 나도 이과 머리로 태어났으면···” 세민은 머리를 감싸고 나지막이 신음했다. 갑작스레 무거워진 분위기에 가인은 짜증이 뜨겁게 뱃속을 태우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한숨을 내쉬어 불길을 잠재웠다. 세민은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니···어찌 하리.


“됐어.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 넌 도대체 왜 중학교 때부터 그러냐.” 가인이 말했다. 자신도 모른 사이 말에 날이 서버렸는지 세민은 급격히 밝은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죄책감까지 더해져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 가인은 벌떡 일어났다. “내가 사올게. 너 뭐 먹을래?”


“몰라. 나도 볼려고.” 세민도 일어서면서 대답했다.


은은한 노란 빛이 나오는 진열장에는 케이크도 몇 종류 안 남아 있었다. 원래 열일곱 가지는 넘는 다양한 케이크와 무스, 샌드위치들이 아기자기하게 나열되어 있었지만, 근처 직장들의 점심 시간이 지나고 보니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녹차 크림과 얇은 팬케이크를 층층히 쌓은 녹차 크레페 케이크, 잘린 딸기와 새하얀 생크림으로 새까만 속을 가린 초콜릿 케이크, 그리고 앙증맞은 유리병에 담긴 샛노란 커스터드 푸딩이었다.


“뭐, 선택 장애는 안 걸리겠네. 뭐 먹을래? 난 라떼.”


“난 크레페. 아, 그리고 녹차라떼. 생크림 올려서.”


“더 사줄까? 쿠키라도 어때?” 진열장 옆 계산대 앞의 마들렌을 가리키면서 가인이 물었다. 아까 일에 대한 암묵적인 사과인 걸 단박에 눈치챈 세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게다가 오늘 아빠가 불고기 한대.” 세민이 가볍게 대꾸했다.


“아, 맞다. 우리 아빠 것도 사갈까?”


“그럼 남은 푸딩이랑 케이크를 다 사가면 되겠다."


“좋아, 좋아.” 세민은 큰 목소리로 사장님을 불렀다. 이윽고 주방과 카운터를 나누는 무궁화꽃 무늬 커튼이 벌어지더니 사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피부는 카페의 불빛을 받아 부드러운 광택이 흘렀고, 커다란 눈과 두툼한 입술엔 웃음기가 군데군데 어려 있었다. 오늘은 수십 갈래로 땋은 레게머리를 발레리나 같은 찐빵머리로 묶어 두었고, 양쪽 귀에서는 구부러진 와이어와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특이한 귀걸이가 흔들거렸다.


나르샤의 사장님은 겉모습으로만 보면 완전한 흑인처럼 보였지만, 남편이 한국인이라 한국에 자리잡은 지 20년도 넘어 한국말이 유창했다. 어쩌다가 여기서 카페를 차리게 된 건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지만, 가인은 불평할 수가 없었다. 최고의 케이크라고 하기엔 주현이 아저씨의 케이크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지만, 이 정도면 꽤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커피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


“우리 커플 또 왔네. 뭐 줄까?” 짓궂은 웃음을 머금은 사장님이 씩 웃었다. 커플이란 말에 세민은 마치 얼굴을 찡그렸고, 가인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사장님은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희고 가지런한 치아가 눈부시게 반짝였다.


자리로 돌아온 세민과 가인은 진동벨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세헌 쌤 왜 그렇게 늦게 오셨냐? 애들 한참 기다리던데.” 가인이 물었다.


“응? 아···그건 다들 모르는구나. 이야, 대단했는데.” 세민은 그 기억을 음미하는듯 눈을 감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기댔다. “정말···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어.”


“응? 뭘?”


“뭐긴. 우리 반의 암덩어리이자 소령중의 수치, 최소연인지 뭔지 걔 반 도중에 토해서 오늘 일찍 집에 갔어. 쌤은 그거 수습하느라 늦게 오신 거야.”


“토?” 관심이 끌린 가인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되물었다.


“응. 근데 그게 그냥 토가 아니라, 엄청났다니까? 걘 앞줄 창가 자리인데, 하필 안쪽 자리라서 제때 나가지도 못하고. 지도 뭔가 안 좋았는지 일어섰는데 그때 하필 토한 거야. 걔 옆자리 애 머리 위에다가.”


눈이 휘둥그레진 가인은 자신의 완벽한 머릿결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민은 그 반응에 더욱 신나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옆에 있는 라온이인가? 그 애는 당연히 엄청 빡쳤지. 걔도 너처럼 옷이나 머리에 신경쓰는 타입이거든. 이야, 오늘 제육볶음이었는데 그 고춧가루가···”


“어우, 야. 그만. 지금 디저트 먹을 건데 그딴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아.” 기겁하며가인이 말허리를 끊었다.


세민이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 미안. 어쨌든 그때가 국어 시간이랑 갑자기 바뀌어서 담임 선생님 시간이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토했는데 걔가 안 멈추니까 쌤이 구급차를 불렀어. 그래서 뭐 그것 때문에 늦어졌나봐.”


“왜 갑자기 토했대?”


“나도 몰라. 솔직히, 그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야.” 세민이 대답했다. 웬일인지, 세민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자, 생각해 봐. 보통 구토는 어떤 경우에 일어나지?” 세민이 물었다.


“뭐···아프거나. 상한 음식을 먹었거나. 술을 먹어도···그렇게 되겠지?”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가인이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최소연이 그런 것 때문에 토했을 거라 생각해?”


“응?...뭐, 술을 마셨을 리는 없겠지. 그러면 냄새는 날 테니까. 그렇지만 아프다던가, 상한 음식을 먹었다던가···그 정도는 있을 수 있잖아.”


“걔가 오늘 먹은 건, 전부 매점이거나 학교 음식 뿐이야. 학교 급식을 완전히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순 없지만, 모두 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걔만 그런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걸 고려하면 좀 근거가 빈약하지. 매점에서는 껌, 과자, 그리고 음료수밖에 안 파니, 그게 원인이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적어. 아무래도 잘 상하는 것들은 아니니까. 게다가 걘 오늘 아침부터 활기차게 지랄하고 다녔다고. 아픈 기색이라곤 아예 없었어.”


“뭐, 티내지 않는 걸 좋아한다든가···”


“뭘. 걘 아프면 무조건 지 친구들한테 질척거리면서 질질 짠다고. 약간 뮌하우저 신드롬 같다니까. 어쨌든 아팠다면 걔가 그걸 티내지 않고 다닐 리가 없고, 무엇보다 걔가 아프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


“뭔데?”


“제육볶음이야.” 가인이 표정을 찡그리는 걸 보자 세민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미안, 미안. 그렇지만 생각해 봐. 조금이라도 속이 메슥거리는 사람이, 굳이 그런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겠어? 아예 안 먹는 게 정상이지. 그 말은 걔는 체육 시간을 지나, 점심시간까지 완벽하게 멀쩡했다가 겨우 30분 이내에 화장실에 갈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한 구토가 시작됐다는 이야기야.”


“···그렇다면···”


그 순간 진동벨이 울렸고, 세민은 일어서서 음식을 받아왔다.


“마들렌은 오늘 팔고 남았는데, 서비스래.” 트레이를 내려놓으면서 세민이 말했다. 파란색 테두리의 흰 도자기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케이크와 샛노란 마들렌, 그리고 유리잔에 담긴 음료를 보자 가인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잘 먹겠습니다···” 체크 무늬 냅킨 위에 놓인 포크 중 하나를 집어든 세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담긴 크레이프 케이크를 푹 찍었다. 세민에게 있어서 케이크를 먹기 전에 뾰족한 부분을 도려내는 것은 반숙 달걀 후라이의 노른자를 터뜨리는 것처럼 중요한 의식이었고, 가인은 항상 그 부분만은 세민에게 양보해주었다. 세민이 첫 입을 즐기는 동안 가인은 길쭉한 유리 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들어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쌉싸름하지만은 않고, 차처럼 고소했다. 갈아달라고 요청한 얼음이 사각사각 씹혔고, 꿀꺽 목으로 넘기자 아주 미세하게 초콜릿 향기가 입 안에 기분 좋게 맴돌았다. 역시, 커피도 최고였다.


세민이는 흰 머그에 담긴 녹차 라떼를 호록 마신 뒤, 입을 닦았다. “어쨌든, 난 누군가가 걔에게 해꼬지를 했다고 생각해. 상한 걸 탔든, 약을 어찌저찌 구해서 집어넣었든.”


가인은 마땅한 대답을 생각해낼 시간을 끌기 위해, 아주 천천히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야, 뭐해. 말 좀 해봐.” 세민이 재촉했다.


“아니···어, 좀 너무 간 거 아니냐?”


“뭐가?”


“뭐···솔직히 최소연 걔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구토 유도제까지 먹여가면서 하는 건 좀 비현실적이지 않냐. 게다가 솔직히 지금 겨우 만났는데, 아무리 싫어도 한 달 반 만에 얼마나 원한이 쌓이겠어.”


가인은 커피로 목을 축인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엇보다···애초에 멀쩡한 사람을 어떻게 토하게 하는지가 제일 문제잖아. 최토제는 특수 약품이라서 의사가 아니면 구하기가 어렵고. 상한 걸 먹이면 구토가 아니라 설사를 할 확률이 더 높고. 거의 냉장고에 코끼리 집어넣기 아니냐.”


주눅든 세민은 대답을 하는 대신 크레이프 케이크를 한 입 가득 집어넣었고, 녹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가인은 마들렌을 집어 베어물었다. 밝고 상큼한 레몬과 포근한 바닐라가 뒤섞인 감미로운 단맛이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레몬 마들렌의 뒷맛은 항상 “그리움”이었다. 분명 어딘가서 먹은 단맛이었는데···어디였을까.


계속되는 침묵에 참다 못한 가인이 말을 다시 꺼냈다. “야, 게다가 무슨 추리 소설도 아니고, 누가 진짜로 걜 암살하겠냐. 우리 유서 깊은 소령중학교를 뭘로 보는 거야.” 가볍게 웃으면서도 가인은 세민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세민은 뾰루퉁한 표정을 미소로 누그러뜨렸다.


“그러면 그래도 재미는 있을 텐데.” 세민이 한숨을 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거기에 휘말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 거야? 인기 많은 내가 누군가의 질투를 사서 표적이 되는 스토리는 충분히 있을 수 있잖아.” 가인이 반쯤 장난으로 말했다. 의외로 세민의 경멸에 찬 눈초리도 오랜만에 받으니 좋았다.


“어우, 자뻑 진짜. 게다가 그럴 것 없이 우리가 사건을 일으키면 되잖아.” 익살스런 웃음을 머금고 세민이 받아쳤다. 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원래 그런 소설에선 악역은 어떤 방식으로든 망한다니까. 쓰레기 한두 명 처리하는 것 치곤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하긴. 우리 학교의 모든 쓰레기들을 척결할 수 있다면 내가 좀 납득할 수 있는데, 고작 몇 명은 좀 심하다.” 세민이 수긍했다. 마들렌을 먹고 입맛이 돋워진 가인은 녹차 케이크를 포크로 떼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달콤함은 좋았지만, 그 쌉싸름한 맛이 혀에 감도는 것은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디 세스코 같은 방역 업체라도 없으려나.” 케이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가인이 물었다.


“세스코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차라리 청부살···아니, 청부살인은 좀 심하다···청부살인업자인데, 살인은 안 하고 애들을 괴롭히는 그런 건 없으려나.”


“있었으면 내가 당장 이용하지 않았을까.” 가인이 한숨을 쉬면서 이마를 지그시 손뒷꿈치로 짓눌렀다. 세민은 동정하는 듯 가인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렇게 애들이 싫어? 애들은 널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랑?” 가인이 천천히 되물었다.


“그래도 애들은 너가 없으면 찾잖아. 있으면 같이 놀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정도의 관심을 받을 만한 대상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흰 머그컵을 양손으로 감싼 세민은 한 모금 마시더니,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야.”


그 서글픈 눈에 고추냉이 한 튜브를 통째로 삼킨 것처럼 코가 찡해지면서, 뜨겁게 녹아내린 응어리가 가슴을 꽉 채웠다. 세민이···세민이는 정말.


어쩜 저렇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었을까.


그깟 얄팍한 관심. 솜사탕 마냥, 자존심이고 시간이고 뭐고 전부 녹여서 만든 설탕실처럼 얄팍한 관심. 그것이 구름처럼 가인을 둘러싼 것이, 세민의 눈에는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조금만 더워도 추워도 녹고 얼고, 아무리 잘 먹으려 해도 결국엔 손과 가슴에 찐득하게 후회만 달라붙을 뿐인데. 그깟 관심이 도대체 뭐라고 저렇게 슬퍼 보였을까.


그것조차 갈망하게 만든 건, 이야기라도 할 친구 하나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도록 만든 건 가인이었을까? 머리에 떠오를 대답이 두려워 가인은 벌떡 일어서서 트레이를 집어 카운터로 가져갔다. 세민은 일어서서 무거운 가방을 또다시 등에 지고 가인을 따라나왔다.


"야...그래도 대단해. 한 번에 두 명이나 집에 보내다니." 세민이 웃었다. 가인도 덩달아 웃으려 했지만,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잠깐만, 오늘 종례에 없던 애는 네 명인데? 너하고, 최소연, 이라온...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손가락에 하나하나 꼽으면서 가인이 물었다.


"응? 글쎄...또 우리 반 남자애들이 땡땡이친 거 아니야?" 세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근데 선생님이 말했잖아. 빠진 사람 없다고. 그렇다는 거는 적어도 네 명의 행방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 아니야?"


"흠...오늘 빠진 애가...누구였더라. 자리 어딘지 알아?"


"음...아, 창가 쪽에 뭉쳐 있던데. 비어 있는 두 개의 책상 바로 뒷자리..."


"아, 그거라면 김은지일걸. 생각해보니 걔도 토하기 사건이 있고 나서 조퇴했네." 세민이 바로 대답했다. 엄청난 속도에 가인은 놀라 세민을 돌아보았고, 세민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왜? 자리 배치도를 외워놔야 누가 나한테 지우개를 던지더라도 바로 방향을 계산해서 응징할 수 있잖아." 세민이 대답했다. 얼굴은 장난기로 가득했지만, 가인은 갑자기 커피가 아니라 납덩이를 삼킨 듯 배가 무거워졌다.


"그러는 놈 있어? 누구야?"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쥐면서 가인이 물었다. 예상 외로 심각한 표정에 놀란 세민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여기는 대체로 냅두는 분위기라서. 가자. 배고파."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세민을 보면서 가인은 마음이 다시 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고 그 뒤를 좇았다.




댓글과 선작, 추천을 먹고 살아요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0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3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3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0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0 0 11쪽
7 4장. 첫 피(2) 19.12.14 53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4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8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8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6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