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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디온 님의 서재입니다.

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기디온
작품등록일 :
2019.12.14 13:01
최근연재일 :
2019.12.19 00:31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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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추천수 :
0
글자수 :
114,431

작성
19.12.1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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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4장. 첫 피(2)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DUMMY

“헐, 뭐임?”


“야, 쟤 괜찮냐?”


“너 괜찮아?”


방금의 소란에 반응하는 소리들이 귓속에서 한데 녹아내렸다. 둔탁한 고통이 뱃속 깊숙한 곳에서 심장소리에 맞춰 요동치기 시작햇다. 그나마 모서리가 둥글둥글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소령중학교 개학 한 달 만에 벌써 사상자가 나오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세워졌을지도 몰랐다.


“세민아, 일단 보건실 가자! 누우면 좀 나을 거야.”


누군가가 세민의 팔을 어깨 위에 억지로 두르게 했다. 눈을 감고 목구멍 뿌리에서 차오르는 욕지거리를 꾹 눌러담는 데만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에 세민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명치를 직격으로 맞은 모양이었다.


보건실은 다행히도 1학년 교실들과 같은 3층에 있어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리자 약품과 소독약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무슨 일이니?”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보건실 선생님이었다고 생각했다. 세민이는 인사라도 건네려 입을 열었지만, 서서히 잠잠해지던 메스꺼움이 이때다 싶었는지 훅 치고 올라왔다. 신 위액이 목 뒤를 태웠지만, 입을 닫은 탓에 가까스로 토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세민이가 책상에 배를 부딪힌 것 같아요.”


선생님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딱히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래? 일단 얘 좀 눕혀봐.”


얇은 매트리스 위에 덧댄 병원 침대 특유의 빳빳한 천이 귓가에 바스락거렸다. 확실히 서 있지 않고 누워 있으니 구역질을 참기가 쉬웠다. 세민은 그제서야 숨을 입으로 몰아쉬는 것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세민아, 잠시 옷 좀 걷을게?”


손이 바지에 끼워넣었던 블라우스를 빼내, 가슴 밑까지 걷어올렸다. 양호실의 찬 공기에 노출된 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여기 누르면 아파?”손가락이 그 명치 자리를 눌렀다. 다시 치고 올라온 메스꺼움과 둔통에 신음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에고, 심하게 멍들었나 보네. 일단 아이스팩 좀 얹고 누워 있어. 성훈아, 너희들다음에 무슨 수업이지?”


“체육이요.”


이제 들어보니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성훈. 그런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가···있었던 것 같았다.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그래. 그럼 보건실 쪽지 써줄 테니까 체육 선생님에게 좀 갖다드려.”


세민은 그제서야 눈을 힘겹게 떴다. 보건실의 등은 다행히도 백색 형광등이 아닌 은은한 오렌지색 빛이라 눈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갑자기 커튼 사이로 그 애가 고개를 슥 들이밀었다. “야, 괜찮아?”


성훈은 의외로 키가 컸다. 아직 중학생이라 세민 같이 평균 키라도 남자애와 거의 비슷비슷할 나이였는데, 성훈은 마주보면 머리가 턱까지 겨우 닿을 정도의 키였다. 햇빛에 그슬린 피부, 큰 코와 두꺼운 입술이 어쩐지 외국인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도 김예원처럼 비열한 가자미 같은 인상이 아니라, 거대한 말라뮤트나 털북숭이 강아지처럼 순박해보였다. 그 점은 나름 마음에 들었다.


아직 자신의 목구멍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는 세민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성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변성기가 어느 정도 지났는지, 삑사리가 없는 깊은 동굴 같은 목소리였다.


“괜찮은가 보네? 다행이다. 난 이만!”


성훈은 손을 흔들며 다시 커튼 사이로 사라졌다. 세민은 빛이 새어나오는 커튼 사이의 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어느 정도는 호의적인가. 아직까지 김예원네 패거리에 세뇌당하지 않은건지, 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아니, 역시 전자임에 틀림없었다. 성훈이 자신을 굳이 두둔해줄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있었고, 세민은 지금까지 반 애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안 했으니까. 아무리 그들을 미워해도 그 부분만큼은 그 패거리 탓으로 돌릴 순 없었다.


세민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커튼을 더 단단히 여민 뒤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공부 생각을 안 하고 눈을 붙일 수 있는 이 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하교할 때까지 지낼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세민은 눈을 감고 서서히 선잠에 빠져들었다.


*~*


“야, 괜찮아? 너가 웬일로 여기 오냐?”


익숙한 목소리에 잠을 깬 세민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가인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걸 보았다.


“너야말로 웬일이냐? 친구들이랑 어디 땡땡이치고 담배 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너지, 날 뭘로 보는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너가 싫어한다는 그 애하고 드디어 옥상에서···”


“만약 그랬으면 나 대신 걔가 여기 누워있지 않겠니. 문도 부쉈는데 갈비뼈라고 안 부서질까.”


세민은 친한 언니들과 함께 합기도장에 다니는 것이 취미였다. 체구는 작았지만, 날렵한 체구와 뼈를 갈아 만든 칼날 같은 발은 한 번 채이면 며칠이고 피멍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잠긴 음악실 문을 부수고 나온 걸 본 이후로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놈들은 없었다.


“너 근데 점심 안 먹었어?” 세민이 물었다. 점심시간에 같이 앉지는 않았지만, 세민은 가인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항상 가인이 앉는 문 근처 테이블에 가인이 없었던 것이 기억났다.


가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선거 유세 해야 해서 일찍 먹었어. 잠깐 애들한테 양해 구하고 빠져나온 거야.”


세민은 코를 찡긋거렸다. 점심도 허겁지겁 먹고 싫어하는 애들에게 실실 웃으면서 한 표를 구걸하는 모습은 생각만으로 싫었다. “굳이 할 필요 있어? 어차피 넌 단상 위에 올라가서 30분 동안 무정부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설교해도 뽑힐 텐데.”


가인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뭔 소리야, 진짜. 전교회장은 걍 운빨이라니까. 내가 뽑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세민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갔지만,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웃기고 있네. 사람들은 널 좋아해. 단순히 너가 잘생겼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성실하고 착하고 딴 후보들보다 백 배 나으니까 그런 거야.” 누가 들어도 달콤한 칭찬의 말이었지만, 세민의 입에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차마 입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뒷말이 혀에 녹아내린 탓이리라.


“그러니까···넌 하늘이 두 동강 나도 될 거야.”


그 말을 한 순간, 가인은 세민이 가장 싫어하는 크고 동정심 어린 눈으로 세민을 바라봤다. “아냐. 솔직히 너가 하는 게 훨씬 나을걸. 넌 똑똑하잖아. 아마 너라면 금요일 급식에 잡탕도 안 나오게 할 수 있을 거야.”


“인아,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교장 선생님을 갈아치울 수 있느냐의 문제잖아.”


가인은 자신도 그건 무리수였음을 인정했는지 피식 웃었다. “어쨌든. 너가 출마하면 내가 뽑아줄게. 친구들까지 다 동원해서라도—“


묘한 짜증이 올라온 세민은 혀를 찼다. 정말···학교에선 누구와 비교도 안될 만큼의 인기와 관심을 누리는 주제에 가인은 가끔 보면 더럽게 눈치 없는 녀석이었다.“필요없어. 애초에 내가 뭐하러 노예부에 들어가냐? 난 너처럼 공부를 버리지 않았거든?”


“나도 안 버렸어! 너보다 화학은 잘 보거든!”


“아이고, 예비 문과보다 화학 잘 해서 좋겠수다.”


시덥잖은 말싸움을 계속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민은 이 학교에 있는 누구보다 즐거웠다. 친구 따위, 뭐가 그리도 필요하다는 건지. 친구 백 명보다 가인이 훨씬 재치 있고, 다정하고, 함께 있을 때 편했는데.


어차피 배신당하면 끝인 게 친구였다. 가인도 그걸 알면서 저렇게까지 하는 게 약간 신기할 정도였다.


이윽고 5교시 종이 울리자 세민은 극구 말렸지만—학교에서 또 너랑 나랑 관련해서 이상한 소문 나면 어쩔 건데? 지금 전교 회장이 될 사람이 이러는 거 아냐—가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민을 1-2반까지 데려다줬다.


“야, 이래야 대외적 이미지에 좋지 않겠냐. 우리의 약자를 돕는 전교 회장.”세민의 반으로 내려가면서 가인이 농담스럽게 말했다.


“와···이 대중을 기만하는 위선자 새끼.” 세민이 경악한 표정으로 타박했다. “나중에 쿨에이드 먹이고 집단 자살하는 거야?” 세민 특유의 난해한 농담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지만, 의식의 흐름이 어디로 튀었는지 파악한 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난 위선자지, 사이비 주교가 아니거든.”


“하···이딴 놈이 우리의 전교 회장이라니.” 세민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미닫이 문 앞에 도달했기에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인은 그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세민의 차가운 눈빛은 그럴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야, 그만 따라와. 내가 애냐. 그리고 너 주변엔 맨날 똥파리가 꼬인단 말이야.”예상 외로 심한 말에 가인은 말이 아닌 발로 걷어차인 듯 움찔거렸고, 죄책감이 밀려온 세민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인의 손을 꼬옥 잡았다가 놓았다. 가느다란 손가락 밑의 따뜻한 피부는 자신의 손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깨닫게 했다. “끝나고 봐. 오늘 6교시에 수행평가 다 끝나고 보충도 없으니까, 우리 나르샤에 가서 차나 마시자.”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가인은 웃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온 세민은 서둘러 자리에 앉아 공책과 수학책을 폈다. 괜스레 가인과 노닥거리느라 헛되이 보낸 시간이 양심을 찔러대며 못살게 굴었다. 이러면 안되는데···외고에 갈려면 벌써부터 이렇게 풀어지면 안되는데. 안 그래도 이 반에만 세 명이 같은 외고를 노리고 있었는데···


분명 자신을 자극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똑같은 말을 다른 단어로 되풀이할수록 무기력과 절망이 마음에 갈고리를 집어넣고 끌어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햇살이 밝았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약간 쌀쌀한 봄바람이 들어왔다. 옆에서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교탁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아마 점심시간에 옆반에 놀러가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그러고 있겠지. 도대체···왜 남들은 저렇게 행복해 보여도 되는 것일까. 세민은 벌써부터 여기, 이 자리에 이 지긋지긋한 책과 이 망할 놈의 도형들과 씨름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가인은 얼마나 좋을까. 수학을 잘 하는, 이과 머리로 타고나서. 자신의 진로와 자신의 재능이 일치해서. 어딜 가든, 가인은 취업도 잘 되겠지. 돈도 잘 벌고. 그러니까 저렇게 놀아도 자신이 있는 거겠지.


그 반면에, 세민은 철저히 문과 머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국어나 언어 같이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는 학문은 꽤 쉽게 했지만, 수학처럼 숫자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머리가 새하얘졌다. 누가 이 머리를 물려줬는지는 모르겠지만···세민은 그 사람을 찾아내 따지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딴 머리로 낳아줬냐고. 쓸데도 없는 재능을 줬냐고. 최고가 아니면 먹고도 살 수 없는 거대한 짐을 손수 등에 노끈으로 묶어줬냐고.


아, 야단났다. 또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앞에 애들한테 들켰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꼭 반에는, 평소에는 살아 있는 줄도 모르는 주제에 조금만 울었다 싶으면 호들갑을 떨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는 할 짓 없는 애들이 있었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이유에 대해 신경을 쓸 정도로 친한 사람 마냥.


세민은 피곤해서 드러누우는 척 하며 눈을 소매에 꾹 눌러 눈물 도장을 찍었다. 이제 곧 쌤도 들어오겠지···그때까지만 쉬자.


“저···세민아?”


누군가가 앞에 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루였다.


“뭐야?”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말이 신경질적으로 나와버려, 토끼를 항상 생각나게 하는 동그란 눈이 더 휘둥그레져, 완벽한 원을 그렸다.


“그···쌤이 상담 때문에...”


세민은 수습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하루는 자리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정체모를 무거운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탓에, 애초에 쟤랑 친구가 될 마음도 없었으며 이미 김예원 때문에 쓰레기가 된 마당에 뭘 더 바라나며 한동안 자신을 꾸짖어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댓글과 선작, 추천을 먹고 살아요


작가의말

캐릭터 짜투리 설정: 준이 평소 하고 다니는 코롱은 주현과 같은, 라벤더향 “빨간 머리 앤 향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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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영혼 계약을 멈춰주세요(마법 탐정 가문 1)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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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4장. 준의 실종 19.12.19 10 0 14쪽
18 13장. 뱀 눈의 남자(2) 19.12.18 9 0 11쪽
17 13장. 뱀 눈의 남자(1) 19.12.18 10 0 12쪽
16 12장. 폴록의 복수 19.12.17 9 0 14쪽
15 11장. 토끼굴에 빠지다 19.12.15 12 0 16쪽
14 10장. 예술가의 고뇌 19.12.14 12 0 14쪽
13 9장. 병문안 19.12.14 23 0 15쪽
12 8장. 복수의 클럽 19.12.14 14 0 15쪽
11 7장. 폭풍의 언덕 19.12.14 18 0 13쪽
10 6장. 케이크와 커피와 가십 19.12.14 16 0 17쪽
9 5장.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19.12.14 11 0 17쪽
8 4장. 첫 피(3) 19.12.14 11 0 11쪽
» 4장. 첫 피(2) 19.12.14 54 0 13쪽
6 4장. 첫 피(1) 19.12.14 13 0 14쪽
5 3장. 사랑의 학교 19.12.14 14 0 12쪽
4 2장. 그림자 도서관 19.12.14 29 0 15쪽
3 1장. 쌍둥이의 자리(2) 19.12.14 29 0 12쪽
2 1장. 쌍둥이의 자리(1) 19.12.14 119 0 11쪽
1 프롤로그. 바다에서 걸어나온 남자 19.12.14 8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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