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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elco
작품등록일 :
2009.01.29 13:24
최근연재일 :
2009.01.29 13:24
연재수 :
1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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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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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글자수 :
546,278

작성
08.10.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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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벨로드 에르테르프 - 첫 발자국

DUMMY

“그대의 종(與儓 : 여대) 라드린느 폰 세피넬, 주인님을 뵈옵니다.”


타루엘이 있는 저택에 도착한 건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였다. 라드린느와 앤이 가장 먼저 엎드리고, 그 뒤로 이온과 피리야가 무릎을 꿇고 타루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은 누군가의 명령 때문이 아닌 어디까지나 주변의 분위기에 맞춘 것이었고, 동시에 이온에게 있어선 자신과 피리야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감사의 절이었다.


“오느라 수고 많았네. 오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


30대 초반의 비둘기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 비둘기 종족인 발익족(鵓翼族 : 센트라)의 남자의 모습을 한 타루엘의 질문의 의도는 저택까지 오는 동안 문제가 발생된 적이 없었냐는 소리였고, 그것은 곧 암살자가 이온과 피리야를 습격한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온이 살짝 고개를 들고 타루엘의 발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한 여행을 하였습니다.”


절반의 거짓말이었다. 비행정에 오른 뒤로는 뒤쫓아 오는 추격자가 없었으니 비행정을 타기 전 처음 안전가옥이 기습당한 것이나 여관이 기습당한 것들에 대한 절반은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이미 모든 보고를 받았던 타루엘은 이온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깨닫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흠흠… 그렇군.”


웃음을 지우기 위해 헛기침을 한 타루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온의 성격상 이온이 타루엘에게 숨기려하는 건 자신의 무지함을 감추려는 것보다는 피리야를 지키겠다는 다짐 때문일 것이었다. 지금까지 신나게 놀고먹은 대가로 신나게 쥐어 터졌으니 조금은 제정신을 차렸다고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 확신할 순 없었다. 그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일 뿐이지만, 만에 하나 타루엘의 생각대로라면 굳이 말을 끌어 이온에게 무안을 줄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자네와 피리야 양을 위한 훈련이 준비되어 있네.”

“…꼭 받아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라는 식으로 타루엘의 눈빛이 변화했다. 애초에 이온이 훈련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거란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적풍의 이온이라며 이름을 날리던 그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다소곳하게 ‘알겠습니다.’ 라고 하진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네.”

“…….”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훈련] 이라는 이 단어가 자존심에 불을 지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타루엘도 타루엘 나름의 자존심이 있었다. 꼭 자존심이 아니라 해도 이온을 이대로 두는 건 그의 죽음을 방조하는 꼴밖엔 되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이온과 피리야가 암살자와 싸울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라드린느와 앤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들이 약해서는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앤을 상대로 자네와 피리야가 전력으로 대결해보는 게 어떤가?”

“2대 1로 말입니까?”


타루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온은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 엎드려 있는 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겠는가?”


다시 물어오는 타루엘의 눈에는 확신이 심어져 있었다. 2대 1로 싸워도 앤 한명 상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온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물론 타루엘이 의도한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순순히 덤벼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긴다면 그 훈련이라는 것도, 당신과의 이 인연도 끝낼 수 있습니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게.”


타루엘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신감이었다. 결국 이온은 낚여들 수밖엔 없었다.


“좋습니다. 하죠.”


타루엘의 입가엔 만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


동방에 자리한 거대 제국 중 하나인 쥬신 제국…

그 제국의 수도인 주논 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에 세 명의 남녀가 도착했다. 그들의 이름은 준성과 바네사, 그리고 무명의 인도자 엘린 세스타였다. 서양 대륙인 셀렌 대륙의 북부를 통치하는 신들 중 한명인 빛과 미의 여신 레이지스가 이들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준성의 두 가지 요구 조건 때문이었다. 하나는 더 이상 쫓기지 않고 조용히 살 수 있는 곳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지구의 한국과 비슷한 곳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과 가장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태백국과 쥬신 제국 사이에서 갈등하던 준성은 쥬신 제국을 선택했다. 역사상 신화로 남아있는 나라… 그 나라를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복수가 필요 없냐는 말에 준성은 복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것은 더 이상 그 어느 것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곁에 있던 누군가가 죽는 것도… 그렇다고 죽여야 하는 현실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 살인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곳이 앞으로 당신들이 지내게 될 곳이에요.”


엘린 세스타가 안내한 곳은 그리 나쁘진 않지만, 적어도 생활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리라 예상되는 집이었다. 기다란 상자 모양에 그 외벽을 나지막한 돌담으로 집이라는 경계를 해놓은 보안문제를 따지자면 밑도 끝도 없이 위험해 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그러나 왜일까. 애초에 도시에서 태어나 친가나 외가 쪽 모두 서울… 추석이나 설에도 시골이라곤 내려가 본 적이 없는 준성이지만,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물론 정말로 그런 건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집이었으니까.

준성은 먼저 걸음을 떼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오는 곳인 만큼 왠지 자신이 먼저 들어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첫 발을 내딛어 들어간 대문… 돌 담 안에 자리한 집의 풍경도 담 밖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늑해보이지도 그렇다고 포근해보이지도 않는… 말 그대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라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집이, 괜찮군요.”


준성은 그렇게 말하며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보인 방안의 풍경은 한국과 닮은 구석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 점이 인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준성의 뒤를 따라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 이레인도 들어왔다. 그러나 준성의 예상을 깨고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는 감탄은 고사하고 오히려 긴장한 기색으로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명의 인도자 엘린 세스타가 작은 옷가방 두개를 허공에 띄운 채 방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만족했다면 다행이에요.”


엘린은 짐을 모두 내려놓고 집 구조를 준성에게 설명해 준 뒤 다시 돌아갔다. 무명의 인도자 엘린 세스타가 돌아가자 집 안에는 준성과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 이레인만 남았다. 준성은 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아 한참을 씻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엘린이 집 구조를 설명할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침묵하고 있던 바네사 이레인이 그때서야 고개를 들어 준성을 쳐다보았다.


“정말… 괜찮은 거야?”


준성은 축축이 젖은 머리에 수건을 덮어 이리저리 탈탈 털다가 손을 멈추고 뭐가 괜찮냐는 표정으로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 이레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코웃음을 쳤다. 준성은 머리를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 한손에 쥐어들었다.


“용서… 할 수 없지.”


수건을 쥐고 있는 준성의 손이 떨렸다. 그에 못지않게 얼굴도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끓어오르는 분노… 혹은 슬픔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강렬하게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살의(殺意)를 살기(殺氣)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 준성의 입에서 신음소리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모님을 죽인 그놈들을…”

“준성아…”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준성을 조용히 불렀다. 바네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거짓말처럼 준성이 내뿜던 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성은 들고 있던 수건을 펼쳐 옷걸이에 건 뒤 문 뒤에 붙어있는 고리에 걸었다.

온화의 순례자 바네사는 준성의 행동 하나하나를 마치 감시하듯 눈동자를 굴려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러려면 제일 먼저 널 노리게 될 거야. 그게 두려워. 너마저 잃고 나면…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준성은 그렇게 말하며 겉옷을 걸쳐 입었다. 자연스럽게 바네사의 얼굴엔 미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며 고개도 함께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준성의 말이 맞았다. 처음 임무라 해도 준성의 의견이라던가, 그의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배려해주지 않은 채 이 지옥에 던져놓은 게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바네사는 고개를 숙인 채 윗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무언가 결정한 듯, 바네사는 고개를 들고 이불을 꺼내기 위해 옷장으로 걸어가던 준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날… 죽이고 싶니?”


준성은 그 말에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것엔 표정 변화조차 없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했다. 그러다 준성은 한숨소리와 함께 그 굳어있던 몸을 푼 뒤, 옷장의 문을 열고 이불을 꺼냈다. 단조로운 흰색의 이불들이었다. 누군가 흰색이 아니면 죽을 만큼 흰색에 목숨을 걸었던 것일까? 라는 웃긴 생각이 들 만큼 너무나 공통적인 색으로만 도배되어 있었다.

준성은 이불을 꺼내 침대에 던진 뒤, 이불을 깔기 시작했다. 바네사가 불안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마치 목숨이라도 걸은 듯 오로지 침대에 이불을 까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십여 분의 시간이 흘러갔고, 드디어 준성의 마음에 들도록 이불이 완벽하게 깔렸다.


“…내가…”


준성은 새하얀 눈처럼 침대위에 깔려있는 이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바네사는 준성이 갑자기 말을 하자 놀라면서도 동시에 집중하려는 듯 준성의 입만 쳐다볼 뿐이었다.


“내겐, 이제 내게 남은 건, 너 뿐이야.”


준성은 한숨을 내뱉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


잡설 1.

소설에 대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잡설 2.

이번화부터는 글 쓰는 방법을 바꿔봤습니다만,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바뀐 게 뭔데? 라고 하신다면... 좌절이지만요. 허허허...


잡설 3.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올리고 갑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집에 대청소가 있어서 소설 쓰기가 힘들었었다는 게 핑계입니다. 죄송합니다;;;


잡설 4.

러브라인! 인 건 아닙니다. 사랑이 피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준성의 고백은 사랑 고백이 아닙니다. 안식을 찾을 곳... 준성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가 바네사인 겁니다. 이유는 유일하게 지구, 그리고 한국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잡설 5.

부모가 죽었는데 복수하지 않는 게냐! 라고 하실까봐 미리 선수칩니다만...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결단을 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대부분 이게 운명이다 하며 순응하고 살아버리죠. 준성도 그런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복수가 없다. 라고 단정짓지도 않겠습니다. 앞으로의 전개에서 준성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가... 복수를 한다와 하지 않는다로 갈라질 테니까요.


==========


제 머리 아프게 굴려서 만든 설정들입니다.


제 자식을 당신의 자식이라 하는 분이 없었으면 합니다.




갱신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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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4 천누
    작성일
    08.11.01 18:45
    No. 1

    난 바네사 싫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으, 준성아.......너 너무 착해에에에.............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Delco
    작성일
    08.11.02 11:41
    No. 2

    천재누피님 :
    ㅎㅎ... 명색이 히로인인데... 미운털 제대로 박혔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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