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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동굴

종이 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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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눈썹
작품등록일 :
2014.03.26 13:42
최근연재일 :
2017.06.26 11:19
연재수 :
54 회
조회수 :
33,794
추천수 :
274
글자수 :
17,506

작성
14.12.17 21:54
조회
746
추천
4
글자
3쪽

요즘 세상에

DUMMY

먼 무지개를 좇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렸어.

휘청거렸지만, 간신히 넘어지진 않았지.

문득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을 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빛깔 없는 보도블럭을 걷고 있었어.


그들 모두 구김없는 옷을 입고 단정한 차림새를 했지만

창백한 얼굴에 축 처진 어깨를 숨길 수 없었지.

마치 걸어다니는 충충한 먹구름이

날 빨아들이는 것 같아

잽싸게 도망갔어.


그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았어.

내 맘속에 난

화려한 무지개이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씨앗처럼

희고 자유로운 영혼이었어.


그러나 내 키가 커갈수록

하늘은 왜인지 더욱 더 멀게만 느껴졌고

다급한 마음에 내 다리는 더욱 더 빨라져만 갔지.


그러다 다시 한 번 돌부리에 걸렸을 때

난 바닥에 넘어졌고,

처음 느껴보는 아픔과 흘리는 피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비를 피해 먹구름 같은 군중 속을 휘젓다가


검은색 우산을 쓰고, 회색 양복을 입고,

처진 어깨에 한 손에 가방을 들고,

표정 없이 멍한 눈길로

[아들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아프단다.]

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끌어

그늘진 무색의 보도블럭으로 데려가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그때서야 먹구름 저편에서 지는 태양빛에

주홍빛 물들여진 내 맘이 아련해

시린 눈을 끔뻑끔뻑 깜빡이며


[아, 시간이 흐르고

상처는 아물었지만

난 눈 앞에 돌부리만 신경 쓸 뿐이었구나.]

내가 되기 싫어했던 그들과 같아져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던 것이지.

그렇게 노을을 먼 발치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


그들도 그들 자신이 되길 원치 않았어.

빌어먹을 돌부리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하지만 넘어지면 일어서면 되는데

그리고,

사실은 돌부리가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 길을 덮어 포장하고

양복과 가방을 건네주면서

달리질 못하게 하고


그들 맘속에 민들레 씨앗은

지금은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서 자라며

그저 스치는 깨달음에 마음쓰린 누군가의 눈을 시리게 만들 뿐인거지.


누군가가 노래해.

한때는 저마다의 돌부리가 있었지만,

눈에는 무지개가 피어나고 있었다고.

쓰라린 무릎에는 흉 투성이었지만,

달리는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고.


그러나 지금은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고

쏟지 못한 눈물이 어깨를 적시고

그 마음 속 순수는

보도 블럭 아래 깔리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 사이서 피어난 민들레는

씨앗을 날리기 보단

서서히 시들어 죽는 편을 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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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황혼이 흐르는 허드슨 강 17.06.26 78 0 1쪽
53 슬픔 17.01.06 132 1 1쪽
52 자아 16.11.15 376 1 1쪽
51 본질 16.10.28 490 1 1쪽
50 Elim +2 16.08.11 521 2 1쪽
49 그 날 밤의 교통사고 +2 16.07.05 579 3 1쪽
48 2011.06.30 16.05.15 573 2 1쪽
47 신자유주의의 왕 +3 15.12.24 711 3 1쪽
46 무제 +2 15.11.19 561 3 1쪽
45 슬픈 공제선 +1 15.11.03 626 2 1쪽
44 어른 +2 15.09.18 557 6 1쪽
43 사랑 +5 15.09.16 514 2 1쪽
42 기다림 +4 15.06.09 626 5 1쪽
41 요즘 세상에 - 2 +2 15.03.27 592 4 2쪽
40 +2 15.02.16 627 8 1쪽
39 +3 15.01.21 796 3 1쪽
38 눈물 +2 15.01.20 757 4 1쪽
37 내 안에 페인트칠을 하다. +3 15.01.19 723 3 1쪽
36 아기의 눈 +1 15.01.12 641 4 1쪽
» 요즘 세상에 +2 14.12.17 747 4 3쪽
34 그의 12월 14.12.16 702 3 1쪽
33 시민의식? +2 14.10.20 710 5 1쪽
32 게임이 끝난 뒤 14.10.08 753 3 2쪽
31 짝사랑 14.09.18 629 4 1쪽
30 근황 14.09.16 669 2 2쪽
29 노을 +1 14.09.04 701 2 1쪽
28 마침표 +1 14.08.26 755 6 1쪽
27 +2 14.07.25 901 4 1쪽
26 천둥 +1 14.07.18 722 4 1쪽
25 나무 +1 14.06.29 859 4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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