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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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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872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1.05 10:00
조회
18
추천
4
글자
11쪽

249. 고양이귀머리띠

DUMMY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냥?”


재촉하는 어흥선생 때문에 더는 미소로 일관할 수 없었던 현과장. 그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잊혔던 사람들의 염원을 풀어줬다랄까.”


어흥선생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현과장이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사실, 그가 이렇게 대답한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가상 현실 데빌 위딘 안에서 주고받은 작은 약속.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하나하나 손으로 영혼을 새기는 것 밖에 없어.”

“하나하나? 별로 어렵지도 않네.”


난 자신이 있었다. 포기 안 할 자신이. 하지만,


“영혼을 새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현과장. 자신의 영혼을 깎아가며 하는 행위라고.”


미냥은 그런 날 걱정하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영혼을 새겨 넣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얼굴 가득한 걱정과 불안함.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견고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그래도 할 겁니다.”

“현과장, 다시 생각해. 당신은 원더랜드를 지켜야 한다고.”


그녀의 말이 맞다. 난 원더랜드를 지며야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도 원더랜드의 일부잖아요. 그러니 여기도 지켜야죠.”


데빌 위딘도 지켜야 한다. 그게 맞다. 설령 모두가 반대를 한다 할지라도.


“...좋아. 그럼 그렇게 해.”


내 마음이 통한 것일까. 반대만 하던 미냥이 나지막이 내 의지를 인정해 주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고되지만 보람찬 노동의 시간. 농사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바로 그때였다.


“그런데 현과장.”


잔뜩 마음의 준비를 먹고 있는 나에게 다시금 말을 거는 미냥. 난 순간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흥선생님께 말하지 않았으면 해.”


그녀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표정도 긴장한 듯 딱딱했다. 그녀가 품고 있는 감정은 어흥선생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미안함. 여자의 심리를 모르는 나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데빌 위딘이 만들어진 건 전부 내 욕심 때문이었어. 끈기 있게 노력하고 나 자신을 믿었다면 이런 도박은 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마치 지난날의 과오를 전부 인정하듯이.

난 더는 묻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던 그녀의 기억은 그녀에게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말해 주었지만, 본인이 언급하지 않는 이상 내가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이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죠, 뭐.”

“고마워, 현과장.”


내 대답에 그녀는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 그리고 편안함. 그녀의 미소를 뒤로 한 난, 그대로 영혼 새기기에 몰두했다. 가끔 어지럼증이 달려오고, 시야가 멀어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기에.




“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 봐라냥.”

“별일 아니야, 별일. 것참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실까.”


현과장은 이내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포기할 줄 모르는 건 어흥선생도 마찬가지. 그는 집요하게 현과장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말을 걸었다.


“궁금하다냥! 말해 줘라냥!”

“아니, 강아지야? 뭘 그렇게 졸졸 따라와?”


현과장이 윽박을 지르면서까지 그를 멀리하려 했지만, 당사자인 어흥선생은 여전히 막무가내. 현과장은 어쩔 수 없었다. 약간의 정보를 흘리는 수밖에.


“영혼이 없는 덤프 파일들에게 영혼을 새겨 넣어줬어, 됐습니까, 어흥선생님?”


현과장의 말에, 뒤꽁무니를 쫓아오는 걸 멈춘 어흥선생. 현과장은 드디어 그를 떼어 놓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능력은 어떻게 알았냥? 영혼을 새기는 방법 말이다냥.”


어흥선생은 여전히 현과장의 곁에 있었다. 그것도 무척 놀란 얼굴을 한 채.


“그거? 그게...”


현과장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데빌 위딘 안에서의 기억. 어떻게 영혼을 새겼던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는 영혼을 새겼다는 기억만 있을 뿐, 그 과정이나 방법은 아무리 노력해 봐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 봐야겠다냥.”


어흥선생은 현과장을 내버려 둔 채, 곧장 침대에 가 몸을 뉘었다. 고양이귀머리띠를 벗더니 서둘러 자신의 머리에 여러 기기들을 연결한 어흥선생. 그의 비장감 가득한 눈동자가 점점 눈꺼풀 뒤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안다!”


넓고 넓은 공터.

풀 한포기 조차 보이지 않는 삭막한 공터에 어흥선생은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비장함을 넘어선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현과장 참 입이 싸네.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그 누구도 없는 공터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홀연히 어흥선생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역시 그대였나, 미냥.”

“오래간만이에요, 어흥선생님.”


미냥의 목소리에서도, 어흥선생의 목소리에서도 반가움이 느껴졌다. 오랜 친구를 향한 그리움. 그렇게 그들은 한참 서로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 어흥선생은.”


현과장은 누워있는 어흥선생의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데빌 위딘 안에 깊게 들어간 것인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어흥선생. 그의 반응을 확인한 현과장은 이내 두 눈을 번뜩였다.


“그렇단 말이지?”


이어서 그의 눈빛이 향한 곳은 바로 고양이귀머리띠. 그의 입가에도 장난기가 피어났다.


“그럼 이 머리띠는 이제 제 것입니다!”


현과장은 덥석 주워서 자신의 머리 위로 가지고 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움직임. 이윽고 그의 정수리 위에 머리띠가 안착했다.


“이거다냥! 이거다냥! 하하하냥! 하하하냥!”


머리띠의 위력인 것일까. 현과장의 말투도 완전히 바뀌었다. 비단 바뀐건 말투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복장도 마찬가지. 핑크색 맨투맨 티셔츠와 붉은색 트레이닝 복 바지는 핑크색 도포 두루마기와 붉은색 한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 냥!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냥.”


현과장은 지금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얼굴에 가득히 찬 기대감. 하지만,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냥...”


거울을 보자마자 급격하게 떨어지는 자신감. 옷이 멋지고 아름다우면 뭘 할까. 얼굴이 그만큼 따라 주질 못하는데. 그의 평범한 얼굴은 화려한 지금의 옷과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띠를 쉽게 벗어놓을 위인은 아닌 현과장. 그는 다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옷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면, 얼굴을 바꾸는 능력도 있을지 모른다냥!”


심지어 엉뚱한 상상까지 하고 만 현과장. 그는 어흥선생을 그 자리에 내버려 둔 채, 그대로 밖을 빠져나갔다. 이 작은 장난이 엄청난 결과를 몰고올 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데빌 위딘에서 회포를 풀고 이제 막 현실 세계로 돌아온 어흥선생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현과장이 자리를 지키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머리띠가 사라졌다. 그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머리띠가.


“현과장! 현과장 어디 있는가!”


어흥선생은 급박하게 현과장을 찾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공허한 바람소리뿐. 현과장의 음성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느낌이 싸했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없어진 머리띠와 사라진 현과장. 답은 간단했다.


“현과장! 감히 머리띠를 가지고 도망을 가?!”


소중한 물건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고 만 어흥선생. 그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이 된 채 당장 문을 박차고 길을 나섰다.


“본 떼를 보여주겠다! 현과장!”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분노. 눈빛에서는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편, 이 사실을 모른 채, 신나게 밖에서 놀고 있던 현과장.

그는 놀이동산처럼 변해 버린 성밖마을에서 어흥선생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뒷짐까지 진 채,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거니는 현과장.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넘어선 건방짐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거기까지다, 현과장.”


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들려온 묵직한 목소리. 분노 가득한 그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가 올라가지 않는다.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어, 어흥선생이냥 언제 일어난 거냥?”


현과장은 겨우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 위에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현과장을 노려보고 있는 어흥선생. 마른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감히 머리띠를 가지고 나가다니. 그대 제정신인가?”


근엄한 그 목소리 안에서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듯한 분노가 풍겨 나왔다. 이미 그의 눈빛은 현과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말이다.


“내 옷 어떠냥? 옷이 정말 예쁘다냥.”


현과장은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몸을 옆으로 이동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성난 포식자를 마주한 여린 초식 동물의 본능. 하지만,


“동작 그 만. 지금 어디서 발장난이야.”


이런 작은 움직임도 놓칠 어흥선생이 아니었다. 어흥선생은 단번에 내려와 현과장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둘을 중심으로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긴장감. 현과장의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것만 같았다.


“자, 잠깐이다냥!”


뭔가 떠오른 것인지, 갑자기 어흥선생으로부터 살짝 떨어진 현과장. 연약한 초식 동물의 눈동자는 어딜 가고, 비열한 하이에나의 눈빛이 그의 눈가에 맴돌고 있었다.


“더 다가오면, 어흥선생의 비밀을 다 말할 거다냥!”

“내 비밀? 그런 건 없다, 현과장!”


단순한 블러핑이라 생각했던 어흥선생. 하지만, 현과장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이 머리띠냥! 나 다 알고 있다냥!”

“알긴! 어서 이리...”

“미냥! 미냥이다냥!”


현과장의 외침에 순간, 앞으로 내밀던 발걸음을 그대로 멈춰버린 어흥선생. 그의 얼굴 가득했던 분노가 이젠 당혹감이 되어 옅게 퍼졌다.


“그냥 넘겨짚지 마라, 현과장.”


강한 어투였지만, 그 안에는 작은 떨림도 존재했다. 비밀을 들켰다는 불안감이 불러일으킨 떨림 말이다.


“아닌데냥~ 아닌데냥~ 난 다 알고 있는데냥~”

“헛소리!”


어흥선생은 애써 무시하며, 현과장의 머리에서 머리띠를 가져 오려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거 미냥의 머리띠라는 거 다 안다냥!”


머리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만 어흥선생의 비밀을 폭로하고 만 현과장. 순간, 어흥선생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그에게 당혹감이 아닌 공황이 찾아오는듯했다.


“어, 어떻게...”

“난 눈썰미가 좋다냥! 그렇다냥!”


눈썰미는 좋을지 모르지만, 분위기 파악은 전혀 못하는 현과장. 그는 어흥선생이 얼마나 당황해 하는 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 잠시 나 좀 보자, 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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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51. 재도전! 전국 노래 잘함! - 2 23.11.07 16 4 11쪽
250 250. 재도전! 전국 노래 잘함! +2 23.11.06 23 4 11쪽
» 249. 고양이귀머리띠 23.11.05 19 4 11쪽
248 248. 데빌 위딘의 주인 - 2 23.11.04 14 4 11쪽
247 247. 데빌 위딘의 주인 23.11.03 18 4 11쪽
246 246. 딸, 은아 23.11.02 19 5 11쪽
245 245. 메모리 스트림 23.11.01 12 4 11쪽
244 244. 사라지지 않은 위협 23.10.31 14 4 11쪽
243 243. 전세 역전! 23.10.30 15 4 11쪽
242 242. 함정 - 2 23.10.29 16 4 11쪽
241 241. 함정 23.10.28 19 4 11쪽
240 240. 아버지의 결심 23.10.27 24 4 11쪽
239 239. 흑막 - 2 23.10.26 16 3 11쪽
238 238. 흑막 23.10.25 15 4 11쪽
237 237. 걸즈 토크? 응? - 2 23.10.24 13 4 11쪽
236 236. 걸즈 토크? 응? 23.10.23 22 4 11쪽
235 235. 다가오는 귀염둥이들?! 23.10.22 18 4 11쪽
234 234. 현과장 구조대 출동!! 23.10.21 24 4 11쪽
233 233. 데빌 위딘 안에서 23.10.20 25 3 11쪽
232 232. 데빌 위딘의 목표 23.10.19 18 4 11쪽
231 231. 다시금 다가오는 위협 23.10.18 23 4 11쪽
230 230. 비장의 김치 - 3 23.10.17 21 5 11쪽
229 229. 비장의 김치 - 2 23.10.16 2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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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227. 변한 건 현과장... 아니 원더랜드?! 23.10.14 2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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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225. 김장전쟁 - 2 23.10.12 23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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