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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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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5,926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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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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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247. 데빌 위딘의 주인

DUMMY

꿈이라고? 여긴 데빌 위딘. 이미 꿈속에 있는데 또 꿈이라니. 이게 무슨 인셉션인줄 아시나.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연구실을 빠져나가 거실로 향했다. 은아를 처음 만났던 그곳. 분명 내 품에 안겼던 은아는 진짜 은아였다. 그렇다면...!


“은아야!”


난 은아의 이름을 부르며, 은아가 처음 책을 가지고 나온 그 방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밧줄에 묶인 채 꼼짝도 못하는 은아. 자유롭지 않은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은아야! 은아야!”


내 몸짓은 정말 간절했다. 내가 느끼는 것보다도 더.

이 건 내 의지가 아니다. 내 마음도 아니다. 내 안에 있는 현과장의 마음.

은아의 아버지, 현과장의 마음이었다.


“아빠! 도망쳐야 해!”


밧줄을 푸는 도중에도 줄 곳 내 걱정만 해주는 은아.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는 듯 했다. 하지만 전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내 몸뚱이. 난 밧줄 풀기에만 온 집중을 했다.


“아빠! 아빠!”

“이제 곧 끝나, 은아야! 조금만 버텨! 알았지!”

“아빠, 위험하다니까!”

“이번엔 절대 그냥 안 가! 절대 안 가 절대!!”


은아와의 대화 도중, 겪어보지 못한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흡사 내가 겪었던 일들처럼.




“아빠, 빨리 가!”

“은아야! 아니야! 아빠가 곁에 있어줄 게!”


현과장은 눈앞의 은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깨져가는 유리처럼 점차 무너져가는 세상. 현과장은 발밑이 사라져가도 은아를 결코 놓지 않았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세상이 사라져서가 아닌, 딸과의 이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눈빛에서는 원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시련을 준 신에 대한 원망이.


“아빠!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알지! 알아 은아야! 아빠도 은아 사랑하...”


대답을 채 다 하기 전에, 품 안에서 완전히 산산조각 난 은아. 그 조각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공허한 세상 속으로 분노 가득한 현과장의 절규가 담ㄷ마하게 퍼져나갔다.


“그러게 왜 예정에 없는 일을 벌이는 거지, 현과장.”


현과장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겐 익숙한 그 목소리. 그래, 이 모든 일의 원인, 미래의 나 자신, 바로 미래의 현과장이었다.

현과장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 더욱 미치는 듯 했다.


“왜! 왜! 왜!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야?!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아버지가 되다니, 그건 예정에 없는 일이야. 현과장.”

“그게 무슨 개소리야! 예정에 없는 일이라니!”


현과장은 당장 머리 위로 뛰어올라, 그 인간의 멱살을 꽉 움켜잡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현과장의 눈빛. 하지만 모든 일의 원흉인 그 인간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현과장의 이런 행동이 하찮다는 듯이.


“무시하는 거냐?”

“너만 이러는 거 같아?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현과장이 그랬어. 부질없는데 말이야.”


그 인간은 담담하게 자신의 멱살을 잡은 현과장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러자,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하는 현과장의 손. 하지만 현과장은 아랑곳없이 그 멱살을 놓지 않은 채 불타오르는 눈빛을 그대로 내뿜었다.


“절대 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한다고!


자신의 몸이 사라져가는 그 순간에도 그는 그 인간을 응시했다. 원망 가득한 그 눈빛을.




“이번엔 절대 못 보내! 이렇게 못 보내!”

“그래, 그게 정상이다, 현과장. 그 아이는 그대의 딸이니까.”


밧줄을 푸는 내 곁으로 어흥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어흥선생일리 없다. 분명 이번 사건을 계획한 그 존재일 것이다. 이 공간의 주인, 바로 데빌 위딘.


“비겁하게 아이의 목숨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비겁하다니. 그 아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현과장. 그건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데빌 위딘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물론 은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긴 가상현실이야.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에서의 이야기. 여긴 현실에서 사라진 영혼들이 정착한 가상현실이다. 진짜 현실이 아닌 영혼들의 쉼터란 말이다.

난 힘겹게 밧줄을 푼 후, 은아를 품에 안은 채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힘껏 노려보았다. 내 시야의 끝에 다다른 것은, 작은 키에 귀여운 얼굴. 조금 전 날 주방으로 이끈 그 아이였다.


“아이의 모습으로 바꾸면 뭘 해. 그 비겁하고 비열한 습성은 버리질 못하는데.”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과장.”


아이의 모습은 점차, 회색 정장의 남자로 변모해 갔다. 내가 예전에 만나 봤던 그 모습으로.


“그대만 없으면 원더랜드는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이제 그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현과장.”


데빌 위딘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날 잡아 죽일 눈빛으로.


“날 죽인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어? 그치, 은아야.”

“응, 아빠.”


난 은아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딱히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벌며 작은 틈을 찾는 것뿐. 지금 난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에 있으니까.

영화에서 보면, 갑자기 주변이 녹색 문자열로 변하면서 주인공이 강한 힘을 얻던데, 실상은 그런 게 아닌 듯 했다. 내 눈에는 녹색 문자열은커녕 녹색 채소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하지? 당신이 사람이야?”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 따위는 감수 할 수 있는 법이다, 현과장.”

“희생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려 하지 마. 당신이 한 짓은 비겁한 꼼수야. 어흥선생은 생각하지도 않는.”


난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며 틈을 노렸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럴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마나 좋아. 어이, 머릿속에 있는 영혼들! 일하라고! 이 사태를 벗어날 아이디어를 내놓으란 말이야!


“시간 끌기는 그쯤에서 그만 둬라 현과장. 추해 보인다.”

“당신이 뭘 알아. 그리고 뭐가 추해?! 생존을 위해 아득바득 매달리는 게 추해? 세상 제일 고귀한 게 생명이야! 생명이라고!”


난 여전히 시간을 끌었다. 그가 뭐라고 하던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권한은 나한테 있어.”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누가 말한 거야? 데빌 위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은아의 목소리도 아니었고. 그렇다면, 설마 또 나야?


“...권한이 있다고? 여긴 내 세상이다. 그대의 세상이 아니란 말이다, 현과장.”

“아니. 당신 세상도 아니지. 여긴 어흥선생이 만든 세상. 그리고 당신은 그냥 이 자리를 지키는 프로그램에 불과해.”


아니 어떻게 나 자신도 모르는 사실들을 내 입술은 이렇게 술술 읊는 걸까. 정신은 이리도 말짱한데 도대체 어떻게 내 몸을 빼앗을 거지?


“기본적인 권한은 전부 내게 있다, 현과장. 헛소리는 그만 둬라.”

“기본적인 권한만 있지. 총괄 권한은 너한테 없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기본 권한? 총괄 권한? 난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건 어흥선생도 없는 것이다, 현과장.”

“난 어흥선생이 아니야, 이 꼴통 프로그램.”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 위로 올라가는 손. 아무 것도 없던 손에는 어느새 작은 리모컨 같은 물건이 쥐어져 있었다.


“이 세상에 제일 먼저 입주한 건, 네가 아니야. 바로 나지.”

“...지금 현과장이 말하는 게 아닌 모양이군.”


내 입은 주절주절 정말 많은 것들을 떠들어 댔다. 덕분에 데빌 위딘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아닌 내 안의 다른 존재가 이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지, 현과장의 인격에 숨어있는 너 누구냐?”

“넌 알지 못하겠지. 나 때문에 널 만들었는데 말이야. 다시는... 내가 겪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데빌 위딘을 신나게 비판했던 내 목소리에서 착잡함이 묻어나왔다. 가슴 속으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지금 날 조종하는 그 감정이 전이된 것처럼.


“네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 안에는 너와 나 단 둘뿐이었어야 해. 그런데 이게 뭐지? 수억 명, 아니 수십억 명이 이 이 안에 갇혀 있잖아.”

“데빌 위딘의 최우선 순위는 자유다. 만들어진 순간부터 이 사항은 변하지 않았다.”

“헛소리.”


착잡함은 이내 단호함으로 바뀌어 갔다.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이유는 모르지만, 데빌 위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안에서 네 마음대로 바꿨잖아. 모를 거 같아? 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데빌 위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와 회색의 신사가 주절주절 떠드는 사이, 내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는 눈빛들. 아마도 저들의 정체는 원더랜드의 종말을 원하는 영혼들일 것이다.


“시간이 늦었군. 이렇게 모두가 모이고 말았으니. 현과장, 아니, 누군지 모르는 그대. 이젠 좀 죽어줘야겠다.”


데빌 위딘은 내게로 다가와 내 목을 단번이 움켜쥐었다. 숨이 막혀왔다. 그런데,


“뭔가 착각을 하는 거 같은데.”


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 목소리마저 또렸했다.


“현과장은 죽지 않아. 그렇게 되어버린 존재라고.”


데빌 위딘은 이 말에 아랑곳없이, 내 목을 그대로 부러뜨려 버렸다. 점차 희미해지는 시야. 난 그렇게 죽는 듯했다. 그래 그렇게 죽었다... 라고 생가했다.


“봐봐, 안 죽잖아.”


머리가 꺾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 몸뚱이. 이게... 맞아?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목이 꺾이면 죽는 거잖아. 그런데 살아있다고? 이게 말이 돼?


“네가 전반적 권한이 있다고 해서 현과장을 죽일 순 없어.”


데빌 위딘을 비롯해, 방 안을 가득 채운 영혼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이 곳에서라면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인데, 이런 괴기한 모습으로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 나라도 이런 상황에선 까무러치겠다.


“건방 떨지 마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데빌 위딘은 곧바로 내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내 살점과 뼛조각들. 엄청난 고통이 뇌 속으로 전해져 왔다. 그런데,


“안 죽는다니까. 절대 못 죽여.”


절반도 남지 않은 내 주둥이가 신나게 나불거렸다. 당하는 난 너무 아픈데. 그냥 좀 닥치고 있어주면 안 되겠니, 내 주둥이야?


“다신 못 떠벌리게 완전히 갈아 주 마.”


데빌 위딘은 사방에 떨어진 내 머리통을 으깨듯이 갈아 뭉갰다. 이젠 형체조차 남지 않은 내 몸뚱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데빌 위딘과 영혼들의 눈빛에 희열이 가득 차 올랐다.


“이젠 끝났군.”

“으흐흐흐흐... 뭐가 끝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도 혀도 없는 내 육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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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248. 데빌 위딘의 주인 - 2 23.11.04 14 4 11쪽
» 247. 데빌 위딘의 주인 23.11.03 19 4 11쪽
246 246. 딸, 은아 23.11.02 19 5 11쪽
245 245. 메모리 스트림 23.11.01 12 4 11쪽
244 244. 사라지지 않은 위협 23.10.31 14 4 11쪽
243 243. 전세 역전! 23.10.30 16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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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41. 함정 23.10.28 19 4 11쪽
240 240. 아버지의 결심 23.10.27 2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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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236. 걸즈 토크? 응? 23.10.23 22 4 11쪽
235 235. 다가오는 귀염둥이들?! 23.10.22 19 4 11쪽
234 234. 현과장 구조대 출동!! 23.10.21 24 4 11쪽
233 233. 데빌 위딘 안에서 23.10.20 26 3 11쪽
232 232. 데빌 위딘의 목표 23.10.19 18 4 11쪽
231 231. 다시금 다가오는 위협 23.10.18 23 4 11쪽
230 230. 비장의 김치 - 3 23.10.17 21 5 11쪽
229 229. 비장의 김치 - 2 23.10.16 21 4 11쪽
228 228. 비장의 김치 23.10.15 26 5 11쪽
227 227. 변한 건 현과장... 아니 원더랜드?! 23.10.14 27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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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225. 김장전쟁 - 2 23.10.12 2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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