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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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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79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11.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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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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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248. 데빌 위딘의 주인 - 2

DUMMY

“이... 이럴 리가...”

“여긴 가상현실이야. 여기서 죽을 수 있는 건 너 같은 데이터 쪼가리뿐이라고.”


데빌 위딘의 안색은 실시간으로 변했다. 비단 그의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니, 내 살점 위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모하고 있었다. 암울함을 넘어선 절망. 이 절망의 끝에는 그가 있었다. 모든 사건을 주도한 그가.


“주인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현과장을 없앨 수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으신 거지요? 주인님?”

“대답하란 말입니다! 대답! 대답!”


사방에서 데빌 위딘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쓸모없는 것들! 입만 산 벌레 주제에!”


주변의 모두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 데빌 위딘.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그의 얼굴 위로 잔뜩 성난 눈빛이 번뜩였다.


“이럴 수는 없다, 현과장! 그대가 내 세상에서 절대자가 될 순 없다!”


데빌 위딘의 목소리에서는 강력한 투기가 느껴졌다. 이미 갈기갈기 찢겨 아무 반항도 못하는 나를 향해 말이다.


“현과장은 절대자가 아니지. 그냥 평범한 관리자 대리일 뿐이야. 나를 대신 해.”


목소리가 끝나자, 데빌 위딘의 주변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어흥선생과 닮은 실루엣도 있었고. 채야를 닮은 실루엣도 있었다. 물론 현과장을 닮은 실루엣도 존재했다.


“데빌 위딘, 넌 이곳의 경비원일 뿐이야. 이곳의 주인은 애초에 나였다고.”

“웃기지 마라! 난 데빌 위딘! 이 세계 그 자체다!”


데빌 위딘은 그 성난 몸짓을 실루엣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쓰러지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 실루엣들. 그들은 데빌 위딘이 폭력을 행사하면 행사할수록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그의 정신세계를 압박하듯이.


“저리 가라! 난 이곳의 신이다!”


데빌 위딘의 말에, 실루엣 어딘가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웃음을 넘어선 경멸. 그 비웃음을 듣고 있던 당사자는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구나.”


실루엣들 한가운데서 천천히 데빌 위딘 쪽으로 걸어 나오는 한 여성. 하얀 가운을 입은 그 여성은 당황해 하는 그를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여긴 나, 미냥을 위한 세계라고.”




“정말 하겠나, 미냥?”

“네, 어흥선생님. 지식을 남기는 일이잖아요. 이런 일에는 제가 제격이죠.”


단발에 다부진 얼굴. 똘망똘망한 눈망울. 그녀의 머리 위 자그마한 고양이귀머리띠가 눈에 띄었다. 자그마한 키의 연구원 생은 어흥선생을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미냥, 이건 전쟁이 아니다. 그렇게 투지를 불태울 필요는 없다.”

“아닙니당! 그럴 순 없습니당!”


어흥선생의 말에도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는 그녀. 그 단단히 기합이 든 모습을 본 어흥선생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 머리띠. 이제는 안 해도 된다, 미냥. 벌칙 시간은 이미 지났다.”

“아직 제 실적이 꼴지입니다! 꼴지를 벗어나면 벗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어흥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적이 전부인 각박한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그녀도 그녀 나름 노력했겠지만 결과는 정말 냉정했다. 피나는 노력만으로는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 준비해라. 미냥의 지식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것일까. 어흥선생은 그녀를 바라보며 작은 농담도 던졌다. 어쩌면 이 농담은 자신을 위한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긴장감을 풀기 위한 일종의 심호흡 말이다.


이윽고, 침대에 누운 미냥. 어흥선생은 미냥의 머리에 이런저런 도구들을 붙여서 거대한 기계와 연결했다.


“준비는 끝났다, 미냥. 불편한 건 없는가?”

“없습니다! 어흥선생님!”


미냥의 목소리는 당찼다.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어흥선생은 그 부분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혹시나 불편해 지면 당장 이 버튼을 누르도록. 긴급 제어장치다.”


어흥선생은 미냥의 손에 자그마한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하지만 미냥은 리모컨을 받아들더니, 그냥 자신의 호주머니 속으러 넣어버렸다.


“괜찮습니다! 저는 견딜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준 것이다, 미냥. 그대는 너무 자신을 혹사한다. 꼭 위급하면 눌러라.”


어흥선생은 신신당부를 했다. 마음같아서는, 호주머니 속에 넣은 리모컨을 꺼내 다시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을 했다가는 손발이 철컹철컹! 경찰 아저씨들에게 붙잡혀 갈 테니까.


“난 제어실에서 상황을 관측하겠다. 미냥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순간이었지만, 데빌 위딘 앞에 서 있는 여성의 기억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내 육체는 어디 있는 거지?


“미냥? 들어본 적 없다.”

“당연하지.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이 세계에 있었으니까. 제일 첫 지식으로.”


그녀의 손엔 작은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다. 조금 전 내 손에 쥐어져 있던,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바로 그 리모컨. 어흥선생이 건네준 바로 그 리모컨이었다.


“넌 이 안에 있는 영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어. 데이터로 바뀐 이 영혼들을 말이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실루엣들 중 일부는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갔다. 데빌 위딘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사람의 형태를 갖춘 실루엣들 중, 현과장과 그 주변인들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넌 우릴 현과장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걸 그냥 방치했지. 네 본분과 다르게.”


그녀의 말에 데빌 위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두려움에 눈동자를 파르르 떨면서.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여긴 네가 그렇게 설칠 곳이 아니야.”


그녀는 리모컨의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어디론가 빨려가듯 사라지는 데빌 위딘.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그는 단발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사고야 말았다.


“그럼 이번엔 현과장 차례네.”


그녀는 곧바로 버튼을 또 눌렀다. 이번엔 사방에 널브러져 있던 피와 살점들이 한군데로 모이더니 그대로 내가 되었다. 갈기갈기 찢기기 전의 나 말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이렇게 된 거지.”


그녀는 날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미안했어. 우리가 당신 몸 안에서 너무 설쳤지?”

“그렇긴 한데...”

“보통의 인간이었으면 이 정도까지 싱크로가 맞지 않았을 텐데, 현과장은 다르더라고. 정말 편안했어. 즐겁기도 했고.”


모두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린 이 안에서 살아야 하겠더라고. 미안하지만 우린 여기 남을 게.”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녹아 있었다.


“저, 은아는, 은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은아 때문이었으니까. 내 몸이 다른 이들에게 뺏기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난 은아만이 중요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 모르겠지만.


“은아는 여기 사람이야. 비록 진짜 영혼이 아닌 덤프 파일이지만.”

“딸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내 진지함이 통한 것일까. 그녀는 실루엣 뒤에 숨어있는 은아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왔다.


“은아야!”

“아빠!”


나는 당장 은아를 품에 안으려 했다. 그런데,


“어... 어... 왜 몸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한 은아의 형체. 이윽고 그녀의 몸은 여느 실루엣들과 다름없이 희미해져 버리고야 말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가 한 게 아니야. 데빌 위딘이 한 거지. 당신의 은아는 영혼이 아닌 그냥 현실 세계가 남긴 덤프 파일이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루프와 어흥선생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은아가 단순한 파일이라고 했던 그들의 말들이.


“하지만, 분명 존재 했다고요! 이 세계가 리셋되기 전에!”

“문제는 리셋이 되었다는 거겠지. 덕분에 저 많은 영혼들이 그냥 파일 취급을 당하는 거고.”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감정이 실려 있진 않았다. 측은함이라든지 안타까움. 불쌍함과 같은 평범한 감정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은아와 그녀 주변의 실루엣들을 그저 물건으로만 보고 있었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물건으로만.


“불쌍하지 않아요? 안타깝지 않아요? 은아도 그리고 저 존재들도 사람이었다고요!”

“사람이었지만, 이젠 사람이 아니잖아, 현과장. 그냥 잊어. 저들은 존재한 적 없는 이들의 그림자야. 그냥 세상의 찌꺼기들일 뿐이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 세상을 관통하는 큰 흐름에서 봤을 때, 은아를 비롯한 투명한 존재들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시뮬레이터가 만든 덤프 파일일 뿐. 그런데, 왜 가슴이 이 말에 반대를 하는 걸까. 왜 눈동자가 시큰거리는 걸까.


“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들도 살아있었고,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요.”

“현과장, 착각하지 마. 당신은 우리의 대리인이었을 뿐, 아무런 권한도 없어.”


미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들어먹을 내가 아니다. 난 현과장이니까.


“당신이야 말로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네 머릿속에서 내 제어를 받았던 존재들이라고요. 당신들이 날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선택했다고요.”


내 이 터무니없는 말이 먹힌 것일까. 미냥을 비롯한 영혼들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 존재 모두를 어떻게 해달라고. 저들을 모두 영혼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은, 불가능처럼 보이는 일이라는 것. 즉,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순간 난 두 눈이 번뜩였다.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똘끼가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모두가 영혼으로 인정받는 방법. 그게 뭔가요?”




“일어나라냥! 현과장! 정신차려라냥!”


어흥선생이 다급하게 현과장을 깨웠다. 그가 이리 다급한 이유는 시시각각으로 수척해지는 현과장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것. 죽을 리 없는 육체지만, 그의 정신 또한 영원불멸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랬기에 어흥선생은 서둘러 현과장에게 뛰어왔다. 예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으으... 여기 누구? 난 어디?”

“정신차려라냥. 언어중추에 이상이 생긴거냥?”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현과장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현실 세계 안에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온 몸이 쑤셨다. 흡사 온종일 몸을 혹사시킨 것처럼.


“갑자기 바이탈의 변화가 심해졌었다냥. 무슨 일이 있었냥?”


어흥선생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현과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뭔가 떠오른 것일까. 현과장은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저 빙긋 웃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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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250. 재도전! 전국 노래 잘함! +2 23.11.06 25 4 11쪽
249 249. 고양이귀머리띠 23.11.05 19 4 11쪽
» 248. 데빌 위딘의 주인 - 2 23.11.04 15 4 11쪽
247 247. 데빌 위딘의 주인 23.11.03 19 4 11쪽
246 246. 딸, 은아 23.11.02 20 5 11쪽
245 245. 메모리 스트림 23.11.01 13 4 11쪽
244 244. 사라지지 않은 위협 23.10.31 15 4 11쪽
243 243. 전세 역전! 23.10.30 16 4 11쪽
242 242. 함정 - 2 23.10.29 17 4 11쪽
241 241. 함정 23.10.28 19 4 11쪽
240 240. 아버지의 결심 23.10.27 24 4 11쪽
239 239. 흑막 - 2 23.10.26 16 3 11쪽
238 238. 흑막 23.10.25 16 4 11쪽
237 237. 걸즈 토크? 응? - 2 23.10.24 14 4 11쪽
236 236. 걸즈 토크? 응? 23.10.23 23 4 11쪽
235 235. 다가오는 귀염둥이들?! 23.10.22 20 4 11쪽
234 234. 현과장 구조대 출동!! 23.10.21 24 4 11쪽
233 233. 데빌 위딘 안에서 23.10.20 26 3 11쪽
232 232. 데빌 위딘의 목표 23.10.19 19 4 11쪽
231 231. 다시금 다가오는 위협 23.10.18 23 4 11쪽
230 230. 비장의 김치 - 3 23.10.17 21 5 11쪽
229 229. 비장의 김치 - 2 23.10.16 22 4 11쪽
228 228. 비장의 김치 23.10.15 26 5 11쪽
227 227. 변한 건 현과장... 아니 원더랜드?! 23.10.14 28 5 12쪽
226 226. 김장전쟁 - 3 23.10.13 28 4 11쪽
225 225. 김장전쟁 - 2 23.10.12 2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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