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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89,577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16 20:35
조회
610
추천
24
글자
11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결착 : 혼돈의 시대]

DUMMY

“이거 하나는 약속하지. 네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나도 거기에 있을 거야. 그때가 네 마지막이 될 거고. 믿기지 않는다면 시험 해봐도 좋아. 나는 사냥을 준비할 테니까.”


절로 욕설이 터져 나오는 협박에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이대로 가서 놈과 생사투를 벌이고 싶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고민하고 또 고뇌했다.


‘뭐 저런 개.. 빌어먹을, 이제 어쩌지?’


만약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출까지 밖에 시간이 없었다. 이 나라는 전화에 휩싸인 사막의 대지 아프가니스탄이었기에, 볕과 적을 동시에 피할 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앞으로 사흘이면 일가의 추적대가 움직일 텐데 저런 괴물까지 따라붙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진혈이 메마르는 듯했다.


‘어쩌지? 어쩌지? 이런 개 같은 거, 이제 어쩌냐고!’


상황은 최악이었고 홀로 맞을 아침은 암울하기만 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내린 사형선고가 귓전을 맴돌며 사냥꾼의 다짐과 함께 필멸을 속삭인다. 밀실 천장으로 스미어 1층으로 향하던 피안개는 층과 층 사이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덧없이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때 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바토리, 나는 답이 필요할 뿐이다.”


고저가 없는 것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목소리라 그녀를 더 고민하게 했다.


‘젠장!’


욕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 그야말로 개 같은 기로에 서 미칠 듯이 생각하던 그녀는 문득 명확한 진실 하나와 대면하게 됐다. 오랫동안 외면한 본능의 진솔한 속삭임을 듣고 자신이 왜 일가를 등지고 홀로서기를 천명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구나. 나는.. 나는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지금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어린 왕족의 주검을 보고 깨닫지 못했다면 그녀는 싸웠을 거다. 가주의 손으로 지상명령을 이행하고 일가와 자신의 명예, 이면에 선 전사로서 긍지 따위를 위해 소멸의 순간까지도 사투를 벌였을 거다.


‘미친 짓이지.’


뭐,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궁지에 몰린 거 화끈하게 불태워 버리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나는 그냥 살고 싶어.'


단순히 숨만 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신념을 세우고 마음껏 세상에 알릴 만큼 강해지고 싶었다. 그를 관철하기 위한 전장 위에서 화려하게 스러지는 그 날까지, 반드시 살아 있고 싶었다.


‘살아남을 거야,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속절없이 맴돌던 피안개가 소리 없이 모여들더니, 중력을 이기지 못한 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를 본 학살조장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고맙군, 나는 단지 답이 필요할 뿐이다.”


완연한 형태를 갖춘 바토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요, 나는 당신이 그 말을 지키실 거라고 믿어요.”


재미있게도 그녀는 혈인화 했을 때의 위엄찬 모습이 아니었다. 색욕과 욕정이 넘치는 염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마치 애인에게 속삭이듯 다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제게, 학살조장 님의 의문을 일거에 해소시킬 만한 방법이 있답니다. 어때요?”


그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새빨간 혀를 내밀어 도톰한 입술을 적셨다.


“이 거래가 끝나면 저는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는 거예요.” ”약속하지

“당신을 믿을게요.”


은밀한 어투로 속삭인 그녀가 살짝 몸을 움직이자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풍만한 굴곡을 애무하곤 은밀한 부위를 가린다. 그것은 미세한 변화였지만, 그녀의 육감적인 나신과 어울려 무르익은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암컷의 맛을 아는 수컷이라면 눈앞의 농익은 과실을 보며 군침을 삼켰겠지만, 학살조장의 유리구슬에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질 않았다. 고저가 없는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그 방법이 확실해야 할 거야.”


그의 무감정한 눈빛을 본 바토리는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는 살짝 고개 숙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살짝 떨며 나체로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청순하고 가련해.. 당장 옷이라도 벗어주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소녀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가냘픈 소녀는 마치 당신을 위해서 모든 걸 하겠다는 듯, 조금 떨리고 청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각성한 포식자가 그들의 시초에게 이름을 내려 받을 때,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의지도 전승받는답니다. 기초적이고 조금은 단편적인 지식이라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그녀는 슬쩍 눈을 들어 학살조장을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능력을 탐낸 인간은 신비의 창조자답게 그와 흡사한 술을 만들어냈어요.”

“술이라면, 주술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입술을 달싹이던 순백의 소녀는 간단히 말을 맺었다.


“거래가 성사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더는 할 말이 없는지 그녀는 맑은 눈망울을 반짝였고 그는 고민했다.


‘술을 내게 사용하겠다는 말이겠지?’ 이 거래를 받아들이는 건 모험이었다. 불과 10여 분 전까지만 해도 둘은 서로의 목을 노렸으니까.


그는 적의 핏빛 눈동자를 마주보며 조금 더 생각했지만, 상대의 본심을 읽기 위해서 행동이나 표정의 변화 등을 분석하려 들지는 않았다. 인간을 대상으로 습득한 기술이 그녀에게도 통할 거라 믿는 건 그야말로 우행이었으니까.


‘전장에서의 거래라.’


아군과도 해선 안 될 약속을 적과 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냥 전투를 재개하거나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옳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평생을 괴롭혀 온 물음이 어쩌면 해결될지도 몰랐기에 그는 숙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자신의 근원, 정체성 등을 알아낼 기회가 10년, 20년 뒤에나 온다면 오늘을 얼마나 후회하겠는가? 혹여 사신이 먼저 찾아오면 또 어쩌고?


‘나는..’


답을 향한 갈망이 큰 만큼 고뇌도 깊었으나 결정의 순간은 짧았다. 여전히 담담하지만, 확고한 의지가 바토리의 귓가에 닿는다.


“시작하지.”


미련 없이 눈을 감는 그를 보며 잠시 딴생각을 품었던 바토리는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곤 그에게 다가갔다. 부드러운 가슴골 사이로 새겨진 혈문에서부터 뻗어나간 붉음은 순식간에 순백의 나신을 휘감아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는 선홍빛으로 물들어 신비로운 광채를 뿜어내며 서서히 혼돈에게로 스며들었다.


'진심으로 나를 받아 들이세요.' 치열했던 전투가 일단락된 전장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직은 어두운 하늘과 붉은 지평선 그리고 본래의 빛깔을 되찾아가는 대지가 있어, 하루의 모든 시간이 공존하는 또 다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밤이 품은 특유의 적막 속에서 으스스한 사기를 풍기던 폐허는, 인간의 손이 닿기 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자연에 동화되었고 따스한 햇볕은 그를 축하하듯 비춘다.


한바탕 시끌벅적했던 피의 축제가 끝났음에, 본디 자연이 가진 고요가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절규를 품어 위로하려 했지만, 대지가 머금은 혼돈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거대한 푹풍우가 찾아드는 듯 요란한 천둥소리가 침묵을 깨뜨린 것이다.

그 육중한 굉음은 대기가 아닌 땅을 떨어 울리며 폐허 전체를 뒤흔드는 순간, 마을 유일의 콘크리트 건물과 그 주변이 터져 나가며 거대한 소용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 모든 걸 휩쓸어버린 초대형 토네이도는 순식간에 세를 불려 농장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학살자들에 의해 상처 입었던 농장은 아예 초토화 되었고, 자연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소용돌이가 미치지 않은 장소도 무사하진 못했으니.. 흙에 뒤섞인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거대한 농장을 통째로 쓸어버리는 이 초월적 규모의 파괴력 앞에 세상 무엇이 있어 견딜 수 있으랴? 한데 그 중심에 누군가 있었으니, 저곳은 태풍의 눈인 걸까?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하게 단련된 육체의 소유자가 공중에 떠 있고, 땅에는 피눈물을 흘리는 붉은 여인이 있어 그를 올려다보며 찬양하듯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사자를 위한 대 미사[Grande messe des morts]의 일부분인 듯한 음률에 실린 어머니와 아이들의 기이한 이야기였다.






세상의 지배자, 만물에 이름을 붙인 오만한 어미는 증오를 잉태 하였네.


잔혹한 어미는 땅속 심연의 구덩이 속에 아이를 산 채로 매장하였네.

잔혹한 어미는 바닷속 심해의 끝에 아이를 산 채로 가두어 버렸다네.

첫째와 둘째는 저 하늘과 땅에 닿았으니 어미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으리라.

영원히 고통받으리라.

영원히 저주하리라.


무서운 어미의 눈을 피해 아이는 육신을 버렸네.

무서운 어미의 눈을 피해 아이는 인두겁을 뒤집어썼네.

셋째와 넷째는 어미의 눈은 피했지만 버리고 뒤집어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영원히 고통받으리라.

영원히 저주하리라.


서로 다른 일곱 욕망을 가진 어미는 다시 증오를 해산했네.

자신과 꼭 닮아 찾을 수 없는 아이에게 어미는 끔찍한 저주를 내렸네.

내 아이야 너는 어둠속에서만 살아라, 태양 아래 나오면 불태워 죽이리라.

영원히 고통받으리라.

영원히 저주하리라.


어미는 자신과 다섯 아이를 증오하여 남몰래 혼돈을 품었다네.

내 아이야 너는 홀로 살아라, 혐오와 증오를 잡아먹어라.

어미는 자신과 다섯 아이를 혐오하여 모두를 죽이고 싶었다네.

내 아이야 너는 홀로 설 테니, 우리가 너를 잡아먹으리라.

모두 고통받으리라.

모두 저주하리라.


격변이여 시대여 혼돈을 품어라.

행복한 어미와 아이들은 서로를 먹고 또 먹을 테니.






홀로서기를 천명한 바토리는 끊임없이 읊고 또 읊었고, 또한 홀로 설 것을 다짐한 다프네는 그를 지켜봤으며, 홀로 서야 할 운명인 자는 그를 찾았다. 그것은 방황하던 짐승의 각성이요 여섯 번째의 등장이었음에, 오롯이 홀로 설 포식자로서의 진정한 자각이었다.







<여섯 번째 아이가 정체성을 찾았음은 대격변의 전조이니, 이는 곧 혼돈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이다. -서[書]->


작가의말

드디어 [제1장] 아프가니스탄이 끝났습니다.

이제 공지를 하고 몇몇 에피소드를 연재한 뒤에,  [제2장] 엽인들을 시작할 겁니다.

당분간 학살조는 볼 수 없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들.. 남명진, 송광극 등이 등장할 테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생각보다 조회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지만, 소수정예 님들이 끝까지 읽어 주셔서 위안을 삼습니다.

부족한 글이라도 재미나게 즐기셨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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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6 도리도
    작성일
    16.12.16 21:33
    No. 1

    감사합니다. 좋은주말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16.12.17 00:48
    No. 2

    하늘과 땅에 닿았다.. 얼마나 컸기에 ㄷㄷ; 신비라는 것은 그 이름에 걸맞는 역사를 지니고 있었군요.
    그런데 선지자가 보는 것은 바알제불이 알게된다는 뜻이겠죠?
    왕가까지 소식이 들어갈 필요도 없고, 하나의 가문만 움직여도 불안요소를 없앨 수 있겠지만..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있나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3 Designer..
    작성일
    17.03.10 08:22
    No. 3

    예전부터 읽고있던 독자입니다. 리메이크판 정주행 시작했습니다. 재밌는 글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g2******..
    작성일
    17.08.23 09:55
    No. 4

    대단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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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결착 : 혼돈의 시대] +4 16.12.16 611 24 11쪽
62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1 16.12.16 616 15 10쪽
61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5] 16.12.16 602 16 12쪽
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1 11 12쪽
59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4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0 12 11쪽
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1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1 10 14쪽
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36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2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2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08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3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18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28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3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0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6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7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2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26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2 14 13쪽
4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2 16.12.01 642 11 11쪽
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4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2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5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2 15 11쪽
3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3] +2 16.11.29 772 11 15쪽
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27 13 12쪽
3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1] 16.11.28 653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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