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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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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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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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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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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16 18:48
조회
584
추천
12
글자
11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DUMMY

‘세상에, 진짜 괴물이었어?’


눈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 핏물이 인체해부모형이 된 소녀의 얼굴을 흥건히 적시건만 그녀는 피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해 진혈을 회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선에 초점이 없는 걸 보니 일련의 상황을 되짚어 보는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천운이 닿아 만든 방패가 그토록 허무하게 부서졌으니, 그럴 만도 하리라.


적의 유리구슬 같은 흑안이 권속의 탐욕 어린 적안을 직시하는 순간, 다섯 번째 아이는 혼돈이 품은 시꺼먼 무저갱을 마주했다. 그 포악한 어둠의 일부를 잠시 훔쳐본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달아나! 놈은..”


권속을 향한 경고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고통 어린 신음으로 끝을 맺었다. 구울의 심장이 파괴되며 전해져 온 충격이 피의 결속을 부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녀의 동공까지 터트린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안 그래도 부담 갔던 움직임이 이제는 공간과 공간을 압축하는 순간이동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영[靈]을 강제하는 타격이라고? 신비를 품지 않고도 저런 게 가능했다고? 거기에다가 놈은 구울의 약점을 바로 공략하기까지 했어. 설마, 정말로 왕의 검들 중 한 명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악몽의 공격은 순수한 물리적 타격이었다. 혼주인 자신과 권속의 결속을 깨뜨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서 그녀는 벌써 몇 번이고 되뇐 의문을 다시금 뱉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녀의 머리가 뒤엉킬 때, 기꺼운 괴물은 포만감에 웃음을 흘렸고 자신의 욕구에만 오롯이 집중해 있던 권속은 주인의 한쪽 눈알이 터져 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주인님?”


바토리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놀라 주위를 둘러본 부셰는 방안의 음습하고 끈적했던 기운이 으스스한 위화감에 잠식돼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습관적으로 동반자를 찾았다.


“앵그르?”


어떠한 대답도 없었기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지만,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 바보가 뭐 하는 거야? 앵그르, 앵그르!”


이미 느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언성을 높인 그가 문으로 걸음을 옮길 때, 주인의 건조한 답변이 미칠 것만 같은 혼란을 깨뜨렸다.


“부셰, 앵그르는 죽었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바닥의 시체나 가지고 와.”


혼주의 명이 뇌리를 울리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육체가 먼저 움직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와 내장을 대충 추슬러 잡은 채 주인의 곁으로 달려가자, 바토리는 그와 시체의 가슴으로 불쑥 손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손은 부셰의 가슴을 진흙처럼 파고들었고, 다른 한 손은 시체의 가슴 쪽 상처를 서슴없이 헤집었다.


“주인님?”


놀란 부셰가 물었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차고 뜨거운 심장들의 감촉을 느끼며 법과 술을 동시에 발현하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스미어 나온 핏물이 기묘한 문양을 만들어 그들의 심장에 동일한 혈문을 새겨 넣자, 그녀는 주문을 외듯 의지를 뱉었다.


“미숙해 가리지 못한 결점을 나의 피로써 옮기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종과 전이의 술이 일어나며 시체의 심장이 부셰의 심장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자신의 육신을 매개체로 하여 심장과 심장을 잇는 왜곡된 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신비로운 음성이 이어진다.


“비로서 너는 나의 권능이자 무한의 방패로 적과 싸우리라.”


발현하고 시전한 자가 그렇게 선언하는 하는 순간, 놀랍게도 시체의 심장이 부셰의 심장박동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인류가 외면하고 망각한 무기는 이토록 놀라워서 자연의 법칙마저도 뒤트니, 그녀가 손을 빼내자 구울의 가슴이 순식간에 복구된다.


“앵그르를 잃은 아픔이 커서 이렇게까지 하니까, 너는..”


말끝을 흐린 주인의 뜻을 알아들은 부셰는 동반자를 잃은 아픔을 복수심으로 화해 뱉었다.


“나는 다를 겁니다, 이 부셰는 앵그르와 다를 겁니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되어 당신 앞에 서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핏물로 가득한 눈동자에 새파란 전의가 차올랐지만, 그녀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이딴 상황에 저런 괴물이 나타나서..’


솔직히 억울했다. 홀로 설 거라 천명하긴 했지만, 당장 내일도 장담키 어려운데 말도 안 되는 괴물까지 만나서 고전을 면치 못 하는 건 무슨 놈의 개팔자란 말인가? 심지어 그녀는 저 빌어먹을 자식이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도 몰랐다.


‘이러다가 정말로 봉인을 해제해야 할 상황까지 몰리는 건 아니겠지? 가문이 아니면 다시 봉인할 수도 없는데..’


재미있게도 그녀는 적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에의 공포보다 앞으로의 일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잠시나마 약점이 사라져서 불사신이 된 구울과 법의 조화가 강력하긴 했지만, 이런 믿음을 줄 정도는 아닌데 저 자신감의 근원은 뭘까?


모를 일이다. 그때 마침 특유의 쇳소리가 들려왔으니, 우리는 지켜볼 밖에..


문이 움직이는 것을 본 부셰가 적안을 번들대며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며 첨예한 긴장으로 차오른 밀실의 공기를 흩트릴 때,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걷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여유롭게 들어선 학살조장은 적이 아니라 주변부터 살폈다. 벽과 천장에 새겨진 기이한 붉은색 문양들이 그의 눈길을 끈다. 죽은 카냐즈마 부자의 취향이라기에는 피비린내가 짙은 것이 방금 새긴 게 분명했다.


‘놀랍군, 고작 저런 걸 그린다고 생명력과 존재감이 감춰지다니.’ 그는 정보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앞으로 접하게 될 전장은 여태 쌓아온 상식을 부정하는 전투가 될 것이고, 저런 종류의 은폐기술이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었다.


‘역시, 생포해야겠어.’


임무 수행중 가장 힘들고 귀찮은 게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는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학살조에게 생포란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정보를 알려줄 입, 여의치 않으면 깜빡일 눈 정도면 충분했다.


‘일단 정리부터 하고..’


그는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실망스러운 문지기와 모든 면에서 비슷한 덩치가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입가에 흐린 미소를 그릴 때, 마주 선 부셰도 섬뜩한 살소를 흘렸다.


‘저놈이 앵그르를..’


영혼의 반쪽이었던 동반자를 죽인 원수와 드디어 마주하게 된 부셰는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무덤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복수심보다는 자신과 힘이 비슷한 앵그르를 일격에 소멸시킨 적에 대한 투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구울화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한데 잠시 오바했던 걸까?


‘당연히 후자지.’


부셰는 앵그르의 죽음을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웠다. 쓸데없는 복수심은 전투에 방해만 될 뿐, 강적을 향한 투지와 주인의 방패로서 가지는 투철한 충성심이면 충분했다. 혼에 새긴 의지처럼 말이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무한의 방패가 되리라.’


그리곤 적과 나의 간격을 신중히 살피던 중, 적의 걸음이 일순 부드러워지자 이를 악물었다.


‘온다!’


적의 유리구슬 같은 흑안 속 소름끼치는 광기와 마주한 채 온몸의 근육과 신경을 극도로 긴장시키고, 적의 호흡을 읽으려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자 한없이 늘어지던 적의 호흡이 정지하는 게 느껴졌다. 그는 거칠게 효후를 뱉었다.


“나는 다르다. 나는!”


숨막히는 압박감을 이기려 으르렁거림을 포효로 화해 터트리려는 순간, “너무들 급하시네요.” 여전히 침대맡에 서서 둘을 지켜보던 바토리가 빌어먹게도 김을 뺐다. 괜히 헛숨만 삼킨 부셰가 주인의 의지를 읽고 긴장을 풀자, 학살조장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머금었던 호흡을 뱉었다. 그리곤 파투[破鬪]의 주역을 돌아보니 그녀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미처 인사드리지 못했네요. 저는 탐욕의 피를 이은 가문의 엘리자베스 바토리 드 아스모데..”


그녀는 잠시 말을 머금었다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부로 허울을 벗고 그저 바토리라는 이름으로서 이면에 서게 된 다섯 번째 일족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색정적이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허리를 든 바토리는 여전히 말이 없는 불청객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궁금하군요?”


말을 함과 동시에 그녀의 사념이 부셰에게 전해진다.


‘앵그르의 방심이 그를 죽였다. 네가 방금 품은 긴장감 또한 다르지 않을 진데 너는 무엇을 보았기에 그리 얼었느냐?’


주인의 엄중한 질책에 부셰는 이를 악물었다. 적의 광기에 질려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굳었음을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젠장, 하마터면 그 바보처럼 갈 뻔 했잖아.’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슬그머니 몸을 풀었다. 그를 느낀 바토리는 이왕 흐름을 끊은 거,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주제에 상대의 영혼까지 소멸시키는 괴물에 대해 알아보려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종족이나 속한 집단이라도 알게 되면 거기에 따른 권능을 짐작해 대처할 수 있으니, 뜬금없긴 했지만 나쁠 것도 없었다.


“그대는 제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시려는 건가요?”


왕가나 일곱 가문에 속한 자들은 전투 전에 이런저런 인사치레를 하면 받아주고는 했다. 불멸의 세월을 사는 그들만의 유희 같은 거였는데..


“바토리?”


음색이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목소리에서조차 위화감이 느껴지자 바토리는 재빨리 답했다.


“예. 그쪽도 다 아시겠지만, 저는 정욕의 손으로 일가에 봉사하다가..”


학살조장은 약간 언성을 높여 그녀의 말을 끊었다.


“첫 전장에 서는 꼬마로서의 예우는 여기까지다.”

“예? 꼬마요? 그리고 예우라니, 그건 또 무슨 뜻인지..”


학살조에서 신입을 가리키는 은어를 알아들을 리 만무했지만, 예우라는 말에 뜨끔한 바토리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살조장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은 눈망울을 보며 답했다.


“바토리, 나는 네게 정말로 들어야 할 게 많아.”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또 얘기가 풀리는 것 같아서 그녀는 친근한 어조로 맞장구 쳤다.


“제게 듣고 싶은 게 있다면 이런 식으로는 안 되죠. 일단 그쪽부터 소개하시고..”

“소개라, 소개..”


그렇게 중얼댄 학살조장은 무의식중에 한 걸음 디딘다 싶더니 부셰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권속의 긴장을 풀어주려 꼼수를 쓴 바토리가 그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파괴의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16.12.17 00:20
    No. 1

    시초라고는 하나 태어난 지 반백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영락없는 깡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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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1 16.12.16 616 15 10쪽
61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5] 16.12.16 602 16 12쪽
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1 11 12쪽
»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5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0 12 11쪽
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1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1 10 14쪽
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36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2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2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08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3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18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28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3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0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6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7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2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27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2 14 13쪽
4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2 16.12.01 642 11 11쪽
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4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2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5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2 15 11쪽
3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3] +2 16.11.29 772 11 15쪽
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27 13 12쪽
3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1] 16.11.28 653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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