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189,587
추천수 :
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13 21:12
조회
636
추천
10
글자
12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DUMMY

그야말로 찰나 간에 상대를 몰아쳐서 제압한 학살조장은 여전히 변함없는 눈으로 만신창이가 된 적을 살폈다. 눈, 코, 입으로 피를 쏟아내며 때때로 경련하는 게 곧 죽을 듯 보였지만,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튼튼하군. 이럴 줄 알았으면 덩치만 큰 아이하고도 직접 부딪쳐볼 걸 그랬어. 이쪽은 제법 위험한 기술을 쓰고 그쪽은 육체능력이 뛰어나. 이들만 그런 걸까? 아니면 전체가 다 비슷한 성향일까?’


둘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확연히 달랐기에 같은 종족은 아닐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단정 짓지는 않았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직접 들어보면 되겠지. 역시, 내 예상대로야.’


그는 적의 몸에 난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나와도 확실히 다르군.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 같아.’


몸 여기저기를 타고 흘러내리던 핏물이 역류해 새하얀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는데, 자신이나 그 짐승과 달리 인간을 섭취하지 않았음에도 두드러지게 회복하는 걸 보니 한편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 또한 즐거움이라 미소를 더 짙게 그리려다가, 갑자기 작게 한숨을 뱉어내며 얼굴을 굳혔다.


“먹으라고?”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붉은 여인으로부터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리곤 생각에 잠겼는데, 오래전 그 바위 위에서 식을 행하였을 때부터 생겨난 괴이한 능력 중 하나인 심연 속 무저갱이 그에게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먹어라, 고작 먹잇감에 불과한 저 나약한 영혼을 종속시켜라. 죽여라, 그 의문은 귀로 들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앗아라. 먹어서, 죽이고, 종속시켜, 앗아라.’


자신의 목소리가 분명함에도 낯선 울림이 뇌리를 맴돌다 흐려지자,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괴롭힌 본능, 지독한 허기가 그를 자극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뜨거운 열기가 뱉어지고 절로 군침이 돌아 목을 타고 넘어간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입을 악다물고 크게 심호흡하며 삽시간에 덩치를 불려가는 충동을 제어하려 들 때, 애초에 정신을 잃지 않았던 바토리는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수십만 명의 피로 진혈을 다져왔기에 이 정도 데미지는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쉽게 무너진 건 그녀로서도 처음 겪는 기이한 힘 때문이었다.


‘이 기운은 뭐지?’


벌써 몸을 복구했어야 할 회복력이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은 그 어떤 개인화기보다도 강렬했지만, 강화술이 완성되면 버틸 만한 정도였다. 한데 놈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온 기괴한 흐름이 몸 곳곳에 와류를 형성하며 술과 법의 발현을 뒤틀고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뭐야?’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서 흘러야 할 힘이 오갈 곳을 잃고 헤매다 덧없이 흩어진다.

‘거기에다가 놈은 나보다 빠르고 강해. 젠장,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나서..’


어처구니없게도 손에 든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자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 앞에서, 기백 년 만에 막막함을 느꼈다. 또한 그랬기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명징하게 깨달아 실천하려고 기회를 엿보려는 순간, 그 망할 놈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와 등골을 훑었다.


“너무, 시간을 끌었어.”

‘뭐? 뭐라는 거야? 젠장,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시바삐 움직이라는 본능의 비명에 따라 바로 양팔을 휘둘렀다. 사방에 화염을 뿌리고 수인을 짚어 강화술을 발현시키면서 튕기듯 일어섰다. 그리곤 잔뜩 긴장한 채 전방을 살폈는데, 상대를 뒤로 물러서게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긴 공격이 적에게 명중한 게 아닌가? 양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린 상태로 화염에 휩싸이는 적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그렸다.


‘어리석은 놈, 그 정도 공격은 견딜 수 있다 여기고 버텼겠지만..’


그녀는 연이어 화염을 쏟아내 상대를 불꽃으로 휘감아 버리고는 보이지 않는 공이라도 잡은 듯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며, 특유의 묘한 어조로 상대를 질책했다.


“전장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란다.”


몸 곳곳에 자리잡은 와류가 여전히 법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고작 거슬리는 정도라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마주 본 손가락 끝이 일제히 터지면서 피를 뿜어 손과 손 사이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농구공 크기로 불어나던 핏빛 구체가 일순 불길에 휩싸이더니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한다.


‘네놈은 피할 수 없을 거야.’


본디 이 정도 법을 발현하려면 합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를 진혈로 대신하였으니.. 이 또한 인간은 결코 따를 수 없는 신속이요 권능이었음에 위력도 배가된 상태였다.


‘이거면 끝이다.’ 그녀는 화염을 부리는 법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였던 화염구를 부드럽게 앞으로 쏘아 보냈다.


기다란 불길을 남기며 유성처럼 쇄도해가는 불덩이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괴물의 눈동자가 처음의 그 유리구슬이 아니라 더 검고 섬뜩하게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예상한대로 결정적인 타이밍에 놀라운 속도로 움직여 화염구를 피하고 순간이동 하듯 눈앞에 나타난 상대가 우측 늑골에 주먹을 틀어박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걸렸다.


‘그래야지.’ 다시금 근육이 터지고 뼈가 부스러지며 모두에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쩍 벌린 입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토한 여인이 몸부림치듯 휘두른 손이 학살조장의 가슴을 스치는 순간, 농장의 어둠을 덧없이 밝히며 흘러가던 화염구가 흩어지더니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와 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봐,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잖아.’


엄청난 열기를 뿜어 학살조장을 아예 구워버린 화염구는 뒤로 쭉쭉 나아가다가 겨우 정신차린 그가 움직이려 하자 즉각 반응하며 덩치를 불렸다. 반경 2m는 될 법한 크기로 확장되며 먹잇감을 집어삼키더니 서서히 수축되면서 안으로, 안으로 폭발해 들어갔다. 이를 처음 시전한 법사가 구에 염화지옥을 담았다 한말이 허언은 아니었나 보다.


“끝났어.”


존재감이나 생명력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상대라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설혹 악몽이라고 해도 뿔 하나는 꺾을 수 있다 여긴 힘이었기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구울도 세 번째 변이를 마쳤다고 신호를 보내오자 입가에 흐릿하게나마 미소가 걸린다.


"스케줄에 없는 싸움은 정말 싫어."


괜히 투덜대던 그녀는 온몸이 쑤셔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저놈이 사용한 힘은 대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종일 리가 없는데.. 혹시 엽인들이 시대의 유물 중 하나를 운 좋게 복원한 건가? 만일 그렇다면 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그렇고, 아직도 재가 안 됐어? 질기네.’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 만큼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을 보며 혀를 찰 때, 용암처럼 불길이 흐르던 구의 표면이 크게 출렁였다.


‘뭐지, 법에 저런 변화는 없었는데?’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져서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데, 불안정하게 일렁이던 화염구가 믿을 수 없게도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답이 정해진 물음이 떠올라 등골을 훑는 순간 화난 짐승의 포효가 농장 전체를 떨어 울리더니, 거대하게 부푼 화염구가 고통에 몸부림치듯 쩍 하니 입을 벌려서 시꺼먼 괴물 한 마리를 토해내고는 그대로 소멸했다.


“말도 안 돼!”


경악한 바토리는 반사적으로 수인을 짚어 다시 강화술을 발현하고 온몸으로 화염을 뿜어 갑옷처럼 휘감았다. 그리곤 어둠 속으로 사라진 괴물의 자취를 다급히 쫓을 때 휘감은 불꽃보다 뜨거운 열풍이 얼굴을 때렸다. 아니, 때린다 싶더니 쾅! 적의 주먹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럴..수가.’


붉게 물든 주먹을 쫙 폈다가 다시 거머쥔 학살조장은 그녀의 몸에서 오른팔을 천천히 빼내며 특유의 어조로 속삭였다.


“전장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란다.”


한 움큼 핏물을 토해낸 바토리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몸 곳곳이 아예 녹아서 추악한 몰골이 된 적을 보며 깊은 절망을 뱉었다.


“괴..물.”


망가진 몸과 달리 여전히 흑색 유리구슬 같은 눈으로 붉음을 마주한 학살조장은 섬뜩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처럼 나도 괴물이야. 그리고 결정을 내렸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왼손을 휘둘러 그녀의 오른쪽 귀를 강타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알이 뒤집어지는 걸 보며 오른손으로 반대쪽 귀를 때리고 그대로 머리통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그리곤 착 가라앉아서 알아 듣기 어려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먹어서 죽이고 종속시켜 앗아라.”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선 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지금 인지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심장의 일부를 부순 막대한 데미지에 빌어먹을 놈의 와류가 겹쳐지자 능력의 발현은커녕 손끝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적신 핏방울이 하나도 없었으니..


”놀랍군.” 흥미롭게 그를 지켜보던 학살조장은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가슴의 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던 내장이 진득한 핏물로 화했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소름 끼치기까지 했다. 그래서 적의 머리를 잡고 있던 양손을 찰나간에 휘둘러 적의 양쪽 귀를 강타했다.


“그..만.”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에 본능적으로 신음하는 그녀를 보며 한 번 더, 조금 더 강한 충격에 신경이 뒤틀렸는지 육체가 경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정도로도 안 되는군.’


그래서 다시, 쾅! 조금 더 강하고 빠르게 때려서 방어력과 회복속도를 시험했다.


“심장보다는 뇌를 공략하는 게 더 효과적인가?” 그렇게 중얼대며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찌그러지면서 광대와 턱뼈가 박살 나고 눈알은 터져 나왔으며 두개골에 금이 갔다. 세 번째 타격으로 그녀는 경련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금만 더.’


차가운 이성은 이제 파괴는 그만두고 오랫동안 찾아온 해답의 실마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죽음에의 달콤한 감촉이 그를 단호히 거부했다. 또한 생명을 향한 원초적인 증오가, 오랜 굶주림이, 거대한 욕구의 외침이 더 크고 매력적이었기에 그는 붉게 물든 이를 드러냈다.


“우리는 괴물이잖아.” 볼이 녹아 어금니가 훤히 드러나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저 깊은 곳에 도사린 무저갱이 이 탐스러운 먹잇감을 갈기갈기 찢어 허기진 배를 채우라고 속삭인다.


‘이종[異種]을 먹어서 죽이고 종속시켜 앗아라.’


굶주린 괴물은 먹잇감의 머리를 붙든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무저갱의 어둠을 품어 번들거리는 유리구슬에 어떤 기대가 차오르자, 한낱 욕정조차 이기지 못한 짐승에의 조소가 입가에 걸린다.


‘그래, 이게 바로 나야.’


차가운 달빛 아래 악귀나찰의 외형을 한 악마가, 가녀린 여인의 머리통을 잡아 으스러뜨리며 웃는다. 이 흉악한 대지 위에 선 자들 중, 악은 누구일까? 아니, 이곳에 선악이란 개념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모를 일이다. 저 괴물들의 행태를 잠시나마 지켜본 목격자에게 물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결착 : 혼돈의 시대] +4 16.12.16 611 24 11쪽
62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6] +1 16.12.16 616 15 10쪽
61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5] 16.12.16 602 16 12쪽
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1 11 12쪽
59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5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0 12 11쪽
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1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1 10 14쪽
»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37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2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2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08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3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18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28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4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0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6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7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2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27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2 14 13쪽
41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2 16.12.01 642 11 11쪽
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4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2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6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2 15 11쪽
36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3] +2 16.11.29 772 11 15쪽
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27 13 12쪽
34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1] 16.11.28 653 1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