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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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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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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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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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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6.12.16 18:12
조회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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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1쪽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DUMMY

‘죽이긴 할 건데.. 참, 이상한 놈이야.’


이 정도 거리라면 파리의 날갯짓까지 감지할 수 있어야 했는데, 상대의 움직임이 감각에 잡히질 않았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생명력도 느끼건만, 무슨 유령처럼 느껴졌다. 주인이나 부셰처럼 강대한 존재감은 아니더라도, 저 멀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아이, 주인의 진혈을 품은 소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작은 게 아니라 정말 희미했다.


‘이걸, 알려야 하나?’


그는 밀실 안에서 주인을 지키고 있을 부셰에게 습관적으로 상황을 보고하려다가, 곱상하게 생긴 부셰만 편애하는 아름다운 주인의 냉대가 떠오르자 생각을 달리했다. 거기에다가 구울이 된 이후로 처음 먹게 될 싱싱한 살결이 너무 탐났다.


‘저 뜨끈뜨끈하고 신선한 피와 연한 살결, 쫄깃한 근육과 사탕 같은 뼈가 얼마나 맛있겠어?’


혼자 먹어 치우는데 잘해야 1분도 안 걸릴 테고, 부셰와 나눠 먹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양이었다.


‘그래, 아까 그 일 때문에 삐친 건 아니지만, 부셰는 나보다 두 개나 많이 먹었으니까 배부를 거야. 저놈은 무기도 없고 혼자인 걸 봐서는 생존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냥 내 선에서 해결하는 게 좋겠어. 그래, 삐치거나 혼자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게 맞는 거야.’


삐치고 허기진 자는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 모습이 마치 욕망 앞에 선 인간의 자기합리화 같았으니, 자신을 움직이는 자아의 일부분이 인간의 것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걸까? 그런데 이 어리숙한 자는 왜 그들이 모를 거라 여길까?

구울은 주인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왼손이 느끼는 걸 머리와 오른손이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거야 원..’


부셰는 앵그르가 불청객을 감지했다는 걸 알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인이 뭔가 특별하고 다른 존재라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이건 정말로.. 말로만 듣던 성녀가 바로 저분 일지도 몰라!’


그의 몽롱한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직도 피부 여기저기가 꿈틀거리고 한쪽 눈은 자신의 것과 같은 혈안이라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그로테스크한 여인이 서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성스럽구나.’


그는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나도 먹고 싶긴 하지만, 앵그르가 토라졌으니 혼자 먹게 놔두자. 혹여 불청객이 암살조라고 해도 지금의 앵그르라면 가뿐히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주인을 더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이게 맞는 거야!’ 그렇게 부셰는 아름다운 주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갔다.


부셰와 앵그르, 둘은 죽어 구울이 되었음에도 스스럼없이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 분명했다. 주인이 정신없는 상황에 각기 다른 욕망을 합리화하며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 꼴이 얼마나 우스우면 피의 포식자가 지닌 최고의 권능이라고 칭송받는 방패를 처음 마주한 불청객이 웃음을 다 흘리겠는가?


‘이들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군.’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둠을 뚫고 전신을 훑는 적의 눈빛이 재미있거나 신선한 일은 아니었다. 그를 미소 짓게 한 장면은, 문지기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의지가 전사로서 가져야 할 전의나 투지가 아니라 강한 식욕이라는 점이었다.


‘그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여태 자신이 잡아먹은 자들을 잠시 떠올려본 학살조장은 끈적하고 섬뜩해 절로 거부감이 드는 감정들을 찬찬히 음미하다가, 시선을 어둠 속에 두고 이동 속도를 반보 더 늦췄다.


‘그러니까 나를 먹잇감으로 보고 있단 말이지.’


그는 속도를 조금 더 늦췄고 앵그르는 뜨거운 콧김을 뿜었다.


‘빌어먹을, 왜 또 헤매는 거야?’


어둠 속을 더듬더듬거리는 먹잇감을 본 앵그르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빌어먹을, 명령만 아니었으면 그냥..’


문지기가 되라던 주인의 명을 감히 어길 수 없었기에 그는 저 느려터진 먹잇감이 가까워지기만 간절히 바랐다.


‘그래, 어서, 조금만 더!’


따박따박 한 걸음씩 거닐 때마다 복장이 터졌지만, 덫을 친 사냥꾼의 마음으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고이다 못해 흐르는 침을 슬그머니 훔쳤다. 참으로 멍청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이니 적도 나를 보지 않을까?’ 따위의 우둔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놈이 이런 어둠을 뚫고 나를 인지한다면 먹잇감이 아니라 전투력 미상의 적이지.’


그정도 상황은 인지하고 있으니 추적대의 요원으로 뽑힌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급격히 강력해진 무력에의 자만과 식욕이 하필이면 왜 지금 이곳에 적이 나타났는지를 염두에 두지 못하게 하였으니, 첫 번째 잘못이었다.


‘설혹 네놈이 지우개를 위한 암살조라고 해도 내게는 상대가 안 돼.’


그리고 불청객이 처음 이 복도를 디뎠을 때의 걸음걸음에 묻어나던 여유를 보지 못한 게 두 번째 잘못이었으며, 아무런 제약 없이 벌써 10여 미터 안으로 들어온 먹잇감을 보며 위화감이 아니라,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한 번 더 억누른 게 최악의 실책이었다.


‘조금만 더!’ 적과의 거리를 가늠한 학살조장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지기가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적에 대한 흥미, 설렘, 호기심과 잠시 피식자가 되며 느낀 묘한 감흥까지도 전의에 녹였다. 그리곤 강인한 정신력과 냉철한 이성으로 억제했던 증오와 광기를 꺼내 투지를 자극하고 사지육신에 소용돌이를 품어 전투준비를 끝냈다.


‘감히 나를 먹잇감으로 봐?’


그는 으스러지라 이를 악물며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뎠다. 몸의 근육을 적절히 이완시키고 신경 하나하나가 완벽히 통제 아래 있음을 확인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뚫고 새빨간 적의 눈을 직시했다.


“이런!”


적과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진 앵그르가 전투를 준비하려 들 때, 디딘 앞발로 대지를 밀어 가공할 운동에너지를 일으킨 학살조장은, 폭발적인 압력을 이기지 못한 콘크리트 바닥이 원형으로 깨져나가는 순간 이미 적에게 도달해 첫 번째 타격을 쑤셔 넣었다.


강자이기에 가지는 약한 적에 대한 아량.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이해와 존중.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힘이 있음에도 사회의 기준과 정의에 어긋나면 쓰지 않는 눈물 어린 양심, 그리고 용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약자의 공격에 맞춰주는 호탕한 전투 스타일.

적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십 원짜리 만족을 위해 정면승부를 벌이는 미친 짓 등등..

이 모든 짓거리는 전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살방법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적의 취약점을 집요하게 발견한 뒤 가장 효율적인 기술로 적의 약점을 일거에 꿰뚫어 철저하게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학살 1조장이 생각하는 전투란 놈이었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일격은 적의 인지능력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그 결과는 항상 치명적이었다.


그가 대지를 밀 때 발생한 에너지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지나며 증폭되었고 허리의 회전력에 배가되며 가슴과 어깨의 육중한 근육이 뿜어내는 힘과 합쳐졌다. 그렇게 증폭된 에너지가 팔을 통해 다듬어져서 주먹으로 뿜어져 나가자, 섬뜩한 파괴의 소리가 욕망으로 가득했던 정적을 부수며 울려 퍼진다.


“말도 안..돼.” 앵그르는 일격에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유일한 약점인 심장까지 파괴한 팔을 불신의 눈으로 내려다봤다. ‘어떻게?’ 놈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어찌 이런 공격이 가능하단 말인가?


주인의 은덕 아래 붉게 물든 세상이 뿌옇게 흐려지자, 유일한 친우요 가족이었던 동반자의 얼굴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부..셰.”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무한 숨결이여.


백여 구가 넘는 시체를 먹으며 축적한 생명력이 파괴자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메말라갔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학살조장이 거칠게 팔을 빼낸다.


“실망스럽군.”


언제나처럼 모든 생명체의 약점 중 한 곳을 공략했는데 이토록 허무한 결말이라니. 미라처럼 말라붙어버린 시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기려던 그는 일순 작게 탄성을 뱉었다.


“이건, 놀랍군.”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진다.


생명을 이루어내는 근원적인 힘, 뚜렷한 실체가 없음에도 존재할 거라고 믿는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혹자는 마음의 축, 정신의 근원, 또는 그냥 생명력이라고 칭한다. 물론 그것을 망상이라고 치부하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절대다수는 그를 영혼이라고 부르며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바로 그 에너지야말로 이 허기진 짐승의 먹잇감이었으니..


여태 전장을 떠돌며 그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먹어 치웠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통스러운 허기를 느꼈는데, 방금 먹어 치운 영혼은 그에게 난생처음으로 포만감을 선사했다.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성취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도 먹어 치우는 건데.’


조원들에게 죽은 힘만 센 어린아이가 문득 떠오르자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건 남들과 같은 인간의 얼굴이 분명하건만, ‘괴물.’ 그의 머릿속에는 흉악한 야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간으로도 모자라서 이런 괴물까지, 내게는 모두가 다...’


평생 동안 전장을 헤매며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여겼는데, 알고 보니 그냥 허기진 괴물이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했던 거다.


‘동족은 아니더라도 동류일 줄 알았는데, 고작 먹잇감이었다니.’


천천히 손을 뻗어 강철문의 손잡이를 잡아가던 그는 쓴웃음을 흘렸다.


“뭐, 그것도 나쁠 건 없겠지.”


유달리 차갑게 느껴지는 문고리를 돌리자, 원래 그렇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이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특유의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그를 듣고 본 바토리가 이를 악문다.


작가의말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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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16.12.17 00:12
    No. 1

    오타가 있네요. 앵그르에서 부셰로 처음 시점이 이동하는 부분에 부셰가 토라졌다고 되어있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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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1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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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37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2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2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08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3 14 11쪽
50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18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28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4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0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6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7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2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27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2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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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4 11 12쪽
39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5] +1 16.12.01 552 13 12쪽
38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4] +1 16.11.30 666 13 12쪽
37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격돌] +1 16.11.29 662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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