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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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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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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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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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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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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7]

DUMMY

과거 수세에 몰린 전장에서 조장이 보여준 악마적 모습과 경이로운 회복력을 목도하였기에 도살자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가 조장이 지닌 회복능력의 절반만 가지고 있어도, 10여 분이면 체력과 상처를 상당히 복구한 채 나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1조의 마지막이 되겠지. 시간이 없어.’


구원자와 폭탄마가 숨을 헐떡이며 지프에 탑승하자 그는 평소보단 빠른 어투로 말을 꺼냈다.


“화력 상태 보고.”


지프의 짐칸에 올라 바로 자세를 잡고 건물 전체를 스코프 안에 둔 구원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배럿과 총알 여덟 발이 전부다. 그리고 적은 오른쪽 어깨와 왼쪽 눈에 치명상을 입었고 얼굴을 비롯한 몸 전체에 이르는 데미지를.. 아니, 이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걸 봐서는 그냥 잔상처에 불과했던 것 같다. 주의 뜻이 정녕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룸미러로 힐끔 본 도살자가 운전대를 폭탄마에게 건네주며 눈짓하자 그는 신경질적으로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


“제블린 한 발에 구원자한테서 받은 글록이 전부야. 그런데 이런 빌어먹을, 조장보다 더 단단한 괴물이 있다는 게 믿겨?”


그의 한탄에 모두가 나름의 답을 떠올렸지만, 적의 정체를 어설프게 추측하면서 쓸데없는 분석을 하려고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관계가 결여된 망상에 신경쓰는 것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생존율을 높인다는 사실을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다.

보조석에 둔 사냥개의 배럿을 들고 구원자의 옆으로 이동한 도살자는 자세를 잡고 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모든 작전은 실패했다. 지금부터 우리 임무는 조장이 올 때까지 생존하거나, 탄창을 비우는 것뿐이다.”


그의 차분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들려오는 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구원자의 입에서 역시나 흘러나온 기도문이었는데, 폭탄마가 기다렸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신의 시련이라니 듣기는 좋은데, 정금이 아니라 빌어먹을 시체가 될 것 같거든. 그러니까 그놈의 위대하시다는 분에게 조장이나 좀 빨리 불러달라고 애걸해봐. 물론 이번에도 못들은 척하시겠지만 말이야.”

“물론, 그가 오면 상황이 해결되겠지. 하나 오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이 상황 자체가 그분의 계획 아래 일어난 일이니까. 너 같은 우민이 이 지극한 원리를 이해한다면 못들은 척한다는 말의 어폐도 깨달을 텐데, 그저 애처롭구나.”


구원자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변치 않는 마인드를 여지없이 확인한 폭탄마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신이 아니라 조장이 와야지 된다는 건 인정해서 다행이네. 자아가 없는 건 아니었어.”


여지없이 이죽거리는 폭탄마조차 조장을 찾는 게, 저 덩치만 큰 괴물에게 그가 당했을 거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는 듯했다. 상대적 비교이긴 했지만, 조장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면 이미 몰살당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대체 학살 1조장의 무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가 곁에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라 한숨만 쉴 때, 인간의 머리를 뜯어서 통째로 씹어 삼키던 짐승 역시 마찬가지로 한탄하는 중이었다.


"이건 아닌데.."


그는 수많은 시체를 앞에 두고도 조급해 하고 있었다. 만족할 만큼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적이 멀어지니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고작 인간 3명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패배자가 세상과 홀로 싸워 왕좌를 거머쥐었다는 절대자에게 어찌 이름을 내려달라고 하겠는가?


‘빌어먹을!’


해야할 일이 명확했기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어깨의 총상도 제법 회복된 상태였고 터져 나간 왼쪽 눈은 겉모양새 정도는 갖춰지고 있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이런 정도로 가능할까?’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지만, 이대로 적을 추격해서 전투를 벌일 자신이 없었다. 삼생의 권능을 가지고도 그꼴이 났는데, 또 패배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소멸하겠지.’


죽음에의 공포는 언제나 그렇듯 등골을 서늘히 훑어 내렸다. 하나 그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뇌까리며 걸음을 옮겼다.


“소멸의 순간까지 전의를 불태워라. 위대한 일족의 이름을 적의 뇌리에 각인시켜 두 번 다시 떠올리지 못할 악몽으로서 새겨져라.”


왕과 선대에게 들었던 일족의 전언이 그에게 단 한 가지 답만을 강요했다.



“가서 싸운다. 놈들을 이대로 보내면 패배자로 남을 뿐이다.”


손에 들린 핏덩이를 입 안에 털어 넣은 짐승은 성큼 걸어 건물을 나섰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감은 채 전장의 묵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적을 떠올렸다.


‘놈들은 강하고 집요하다.’ 그래서 두려웠다.


내가 가진 힘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겪게 되리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워야 해.’


그는 몇 번이고 크게 심호흡하며 왕이 전승해준 의지 속 선대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그들의 곁에 서리라. 내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전사로서 제왕과 함께 하리라.’


상처 입은 짐승의 초라한 행색이 위대한 전사들의 형상과 겹쳐지는 순간, 그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던 잡념을 한데 모아 길게 포효를 터트렸다. 외눈을 부릅떠 패배만을 안겨준 전장을 노려보며 효후를 흘렸다.


“내 이곳에 두 번 다시 떠올리지 못할 악몽으로서 새겨지리라.”


연이은 패배, 죽음과 함께 몇 번이고 무너졌던 전의를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운 짐승은 바닥을 박찼다. 서서히 차가워지는 저녁 바람에 실린 적의 냄새를 쫓아 몸을 날리자 역사 속 전사들의 외침이 귓가를 맴돌아 그의 사기를 충만케 했다.


‘비겁한 생존보다는 명예로운 이름을! 치욕적인 패배보다는 전사로서의 죽음을!’


적을 빠른 속도로 추격해가던 짐승은 비포장도로가 농장 밖 무성한 숲으로 이어져 있다는 걸 발견하곤 중요한 점 하나를 깨달았다. 여태껏 적에게 자신을 너무 드러낸 상태로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이었다. 적이 예상치 못한 동선에서 접근해 자신의 반경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투를 치를 수 있지 않겠는가?


‘왜 이제야?’


전장의 유불리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진리를 참 어렵게도 깨닫는 순간, 농장 밖 우거진 숲이 그를 실천하기에 굉장히 좋은 장소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좋아, 그렇게만 된다면 필승이다.’


아직은 미숙하나마 전술을 체득하기 시작한 전사는 괜히 신명이 나서 질주에 속도를 더했다. 적의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지는 것을 감지하지 않았다면 한바탕 포효라도 터트렸으리라.


‘갑자기 왜 멈춘거지, 설마 알아차린 건가?’


혹시나 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해져서 걸음을 늦출 때, 막 농장을 벗어나려던 지프가 정지하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켰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브레이크를 밟은 폭탄마의 물음에 정지명령을 내린 도살자는 별다른 대답 없이 차에서 내렸다.


“시동 꺼.”

“아니,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인상을 찌푸린 폭탄마가 설명을 재촉하자 도살자는 짧게 답했다.


“놈은 지프보다 빠르고, 마을 밖은 은폐물이 너무 많다.”


짧고 배려 없는 답변이었지만, 둘은 즉시 농장 밖에서의 전투를 그려낼 수가 있었다.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적이 숲이나 언덕 등에 매복해 있다가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차량을 급습하는 장면이 떠오르자 절로 욕설이 흘러나온다.


“개죽음이잖아.”


말없이 끄덕인 구원자가 배럿을 들고 차에서 내리자, 두말없이 시동을 끈 폭탄마도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은 마을 입구에 설치된 방벽, 모래주머니를 얼기설기 쌓아서 만든 곳에 자리 잡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도살자는.. 사냥개의 배럿을 구원자에게 건넨 뒤, 일행으로부터 약 7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로 가 걸음을 멈췄다.

우두커니 선 그의 오른손에는 날 선 제버가, 왼손에는 등 뒤 허리춤에서 꺼낸 데저트이글 한 정이 들려있었다.


‘나는.. 강하다.’


저물녘 노을을 휘감은 채 가만히 적을 기다리는 전사의 모습이 제법 운치 있었는지, 제블린 발사기에 시동을 걸던 폭탄마가 그를 보곤 담백한 미소를 흘렸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어. 이왕 가는 거 한바탕 멋지게 놀고 가자는 거잖아? 무식하게 칼질만 한다 싶더니 미학도 있네? 그 괴물 놈과 한 번 멋들어지게 놀아봐, 내가 역사에 남을 작품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언제나 굳건하고 강인했던 자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소리 없이 낄낄대기 시작한 광인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 흔들던 구원자는 이내 조용히 뇌까렸다.


“저 방법 밖에 없는 것 또한.. 주의 뜻이리라.”


잠복해있던 사냥개의 위치를 알아내 공격하고, 2km밖 저격수의 위치와 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해낸 적을 상대로 은신이나 기습은 불가능했다. 거기에다가 도망조차 갈 수 없으니, 도살자가 선택한 방법.. 스스로 미끼가 돼 마지막 제블린의 먹이가 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해법이 없었다.


위대하고 절대적이며 유일무이한 그분이 아니라 도살자의 희생만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것이다.


한데, 하나는 그를 죽일 생각부터 하고 다른 하나는 기도부터 하는 걸 보니 이딴 게 최정예 요원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재미있는 것은, 눈앞에 닥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에 나름의 전투를 준비하는 광인들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겐 승리와 죽음, 두 가지면 충분했다. ‘패배했지만..’ 이라는 변명은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의 배부른 소리라 여겼기에 늘 그랬듯 진중하게, 기도하며, 이죽거렸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도살자는..


-전투준비 완료. 하지만 계획이 성공해도 도살자 너는..

이라는 구원자의 흐린 목소리에,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면 충분하다.

라는 유언을 남겼겠지.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최악의 적을 기다렸다.




‘나는.. 강하다.’


작가의말

드디어 The Beast vs 학살조의 전투가 종장에 이르렀습니다. 재미있게 감상하셨기를..


정금 :  신의 지혜, 소중한 존재 등으로 성경에서 쓰이는 단어 입니다. 순금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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