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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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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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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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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12.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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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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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DUMMY

멀리 비포장도로 위 뿌연 흙먼지를 본 부셰는 길 옆 수풀로 뛰어들어 몸을 은폐하고 빠르게 짐과 군장을 해체했다. 그리곤 MSG-90[저격총]을 꺼내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댈 때, 맞은편 낮은 둔덕에 올라 한 발 먼저 망원경을 꺼내서 앞을 살피던 앵그르가 커다란 손으로 대머리를 쓸어 넘기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부셰, 아무래도 신은 우리 편인 것 같아. 그냥 계집애 하나야!”


망원경에서 눈을 뗀 앵그르는 부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차량이랑 같이 납치해서 이동하는 동안 재미 좀 보자.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더니..”


그의 두 눈은 뒤틀린 성욕으로 차올라 희번덕거렸지만, 부셰는 망원스코프에서 눈을 떼지도 광기를 흘리지도 않았다. 흙먼지가 유효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조용히 방아쇠에 검지를 걸쳤을 뿐이다.


‘랭글러라.’


흙먼지의 정체는 흰색 랭글러였다. 운전석에는 앵그르의 말대로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 타고 있었는데, 외모나 무장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아직 먼 거리였다.


‘저 바보는 언제나 덤벙거리니까,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해.’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찬찬히 호흡을 가다듬을 때, 흥분한 동반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부셰, 이 정도 거리라면 너도 대충은 확인했을 거 아냐. 그냥 계집애 하나라니까?”


이제 곧 벌어질 질펀한 유희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을 푼 앵그르가 괄괄한 목소리로 떠들어대자 부셰는 그를 힐끔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스코프에 집중하려다, "이번에는 나도 오입질 좀 해야겠어!” 라는 앵그르의 뜬금없는 말에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 병신아, 여기는 전장이야! 그리고 부대 내 계집 중에서 괴물 아닌 년이 하나라도 있었어? 제발, 생각부터 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 너 지금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진짜 몰라? 여기는 전장이라고, 전장!”

“아니, 부셰..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도 알긴 아는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어차피 한 명이잖아? 저 계집이 적이라고 해도..”


덩치에 맞지 않게 움츠린 앵그르가 어눌한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자 부셰는 분통을 터뜨렸다.


“아, 이게 진짜.. 학살 5조장도 여자였잖아! 우리가 그때 무슨 꼴을 당했었는지 기억 안 나?"

“아니, 그때는 내가 실수를.. 하지만, 그런 괴물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너도 그때 나보고..”


떨떠름한 표정이 된 앵그르가 주저리주저리 말을 꺼내자 부셰는 냉정하게 잘라버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전투준비나 해! 저게 그 짐승 같은 년이면 너 어쩌려고 그래?”

“뭐? 그..년이라고?”


언제나 믿고 따르는 동반자의 일갈에 악마를 떠올린 앵그르는 사색이 돼 안절부절못하다가, 아예 제블린을 장전해서 랭글러를 조준했다. 그리곤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알지도 못하는 기도문까지 읊어대다 결국에는 다시 동반자를 불렀다.


“부셰, 아무리 그래도.. 설마하니 그..년이아니라 우리 5조장님이겠어? 학살조 간에는 어떤 간섭도 하지 못하는 거 너도 알잖아?”


대답없는 파트너의 모습에 “설마, 설마..”를 연발하던 앵그르는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랭글러를 주시했다. 한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건, 홧김에 말을 던진 부셰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설마, 설마..”하고 있다는 거다. 저들은 그년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몇 번이고 이를 악물던 부셰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아, 씨팔.. 사실은 그냥 해본 소리인데, 혹시 또 모르는 거잖아? 지우개에 학살 1조가 포함돼 있다면 그 악마 같은 년 정도는 와줘야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막상 들어보니 그럴듯한 의견이라 앵그르는 땅이 꺼지라 숨을 내쉬었다.


“설마..”


지난 2년간 부대의 임무를 수행하며 몸으로 겪은 학살조장은 5조장뿐이었다. 1조장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은 사실과 한 다리 건너들은 소문을 가릴 줄은 알았다. 유희에 뇌가 절어 판단력이 흐려졌다곤 해도, 사실관계가 결여된 추측이 자살행위라는 것 정도는 잊지 않았으니까.


“에이, 그래도 설마..”


합창이라도 하듯 중얼댄 둘은 5조장이라면 1조를 포함한 추적대 전체를 홀로 몰살시킬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겪은 여자라는 탈을 쓴 그 괴물은, 인류라는 종족 자체를 벗어난 괴생명체, 외계인, 아니.. 악마가 실존한다면 바로 그년일 게 분명했다.


‘뭐가 됐든 인간은 아니야.’


그 압도적인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과 잔혹함이 눈앞을 스치자 둘은 랭글러를 탄 여자의 얼굴이 확인될 때까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스코프와 망원경에 집중했다. 만일 저 붉은 여인이 그녀라면 자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라고 부셰는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동반자는 조금 생각이 다른 듯하였으니..


“그런데 있잖아, 정말 그..5조장님이라면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분이 우리를 혐오스러워 하기는 하지만, 전에도 죽이지는 않았잖아? 전우애 같은 것도 있는 분이니까, 쳐맞으면서 빌면..”


언제나 멍청한 동반자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고함칠 힘도 없어진 부셰는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앵그르, 지금이 어떤 상황이냐?”

“지금? 그거야 지우개.. 아, 맞다.”

“이런 씨팔, 맞기는 뭐가 맞아? 이제 좀 닥치고 그냥 집중 좀 해!”

“미안, 내가..”

“앵그르!”


그렇게 두 변태가 투덕거리는 사이에 훌쩍 다가온 랭글러의 모습이 확연히 스코프에 잡히자, 부셰는 손을 들어 앵그르에게 침묵하라는 수신호를 보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야?’


그의 시선에 잡힌 건, 피처럼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것도 파티에서나 볼법한 흑적색 드레스를 입은..


“뭐지?”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곳은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죄 없는 여인이 얼굴이나 몸의 극히 일부분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투석형을 당하는 나라말이다. 아무리 외지인이라고 해도 저런 옷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에게 윤간당한다 해도 그녀의 잘못인 곳이었다.


‘뭔가 이상해.’


상상조차해본 적 없는 상황에의 위화감 때문에 생각이 복잡해질 때, 그에게 야단 맞고 풀이 잔뜩 죽어있던 앵그르가 역시나 흥분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 더러운 년이, 뒈지고 싶어 안달이 났구만.”


바로 그 말이 정답이긴 해서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번에는 현명했던 동반자에게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앵그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부셰, 너는 매사에 너무 신중해서 탈이야. 보통은 네가 다 옳지만, 이렇게 특수한 상황에서는 나처럼 동물적 감각을 믿어야 되거든. 동물적, 오케이? 너도 잘 알다시피 내가 그 언제냐, 아프리카 어림에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앵그르의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지레 겁먹고 설레발 쳤던 게 미안해서 쓴웃음을 흘리고 만 부셰는 다시 스코프에 집중했다. 기분 같아서는 아주 문화충격까지 준 저 미친년을 저격해버리고 싶었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이 전복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기에 기다렸다.


‘조금만 더 가까이..’


그는 타깃이 200m이내로 들어오면 움직이자고 앵그르에게 수신호를 보낸 뒤 치밀어 오르는 살의를 가라앉히려 목에 걸린 아름다운 트로피를 쓰다듬었다. 투명한 줄에 꿰인 손톱들이 부딪히며 내는 운율이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낸 여인들의 절규와 비명으로 화해 귓가를 간질인다.


‘그래, 잊지 않을게.’


들뜬 미소를 흘리다가 갑자기 인상을 굳힌 그는 여인을 노려보며 뒤틀린 분노를 씹어 뱉었다.


“너도, 너도 날 평생 잊지 못하게 될 거야, 이 음탕한 년아!” 음욕이 한 번 일기 시작하자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일정했던 호흡은 대번에 거칠어지고 사타구니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지만, 붉은 여인의 머리를 타겟팅 한 스코프의 조준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목이 달아나는 곳이 전장이라는 걸 망각하지는 않았기에 그는 앵그르가 언급한 신중을 한 번만 더 기하기로 했다.


‘근육 하나 없는 몸이나 옷차림을 봐서는.. 농장에서 부른 창녀쯤 되는 것 같은데? 잠깐만, 여기가 뉴욕도 아니고 창녀가 저런 옷차림으로 랭글러를 몬다고? 말이 안 되잖아? 이런 씨팔, 저년은 도대체 뭐야?’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뿌연 흙먼지를 뒤로하고 질주해오던 랭글러가 벌써 200m 안으로 들어섰기에 그는 차의 이동경로에 수류탄을 던졌다. 길 한중간에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일자 차는 속도를 줄였지만, 이상하게도 멈추지를 않았다.


‘안 멈춰?’ 부셰는 알 수 없는 위화감 속에서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저 차에 탄 붉은 여인이 정말 창녀였다면 굉음에 놀라 급정거를 했을 것이고, 훈련받은 요원이라면 그나마 거리가 있을 때 스핀 턴이라도 걸어서 차를 돌렸을 텐데.. 여인은 별다른 동요 없이 기어만 살짝 바꿨을 뿐, 미소까지 머금었다. 스코프로 그를 지켜본 부셰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호흡을 조절했다.


‘아무래도 심상찮아.’ 그는 붉은 여인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모래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 사이, 여인의 미간에 조준점을 잡고 검지를 부드럽게 당기려는 순간, 피식자와 포식자의 눈이 마주쳤다.


‘아니, 왜 손가락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아 어쩔 줄 몰라할 때, 매력적인 속삭임이 귓불을 핥았다.


"이리 나오렴."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이 그를 칭하는 순간, 언제나 뒤틀려 있던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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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부셰] 16.12.16 531 11 12쪽
59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4] +1 16.12.16 586 12 11쪽
58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앵그르] +1 16.12.16 622 12 11쪽
57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3] +1 16.12.16 591 15 11쪽
5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구울] +2 16.12.14 723 10 14쪽
5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2] 16.12.13 638 10 12쪽
54 아프가니스탄 [바토리 vs 학살조장..1] +2 16.12.13 624 13 13쪽
53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바토리, 인연] 16.12.12 692 11 13쪽
52 아프가니스탄 [붉은 여인.. 전운] 16.12.09 508 11 14쪽
51 아프가니스탄 [Soulmate..유린] 16.12.09 563 14 11쪽
» 아프가니스탄 [Soulmate..붉은 여인] +1 16.12.08 619 13 10쪽
49 아프가니스탄 [Soulmate..3] 16.12.08 528 11 12쪽
48 아프가니스탄 [Soulmate..2] +1 16.12.07 635 11 12쪽
47 아프가니스탄 [Soulmate..1] 16.12.07 620 13 13쪽
46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의지] 16.12.06 626 16 15쪽
45 아프가니스탄 [바토리..성역] 16.12.06 587 14 15쪽
44 아프가니스탄 [학살조장..괴물] +2 16.12.05 633 13 14쪽
43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허무] +1 16.12.02 628 16 13쪽
42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8] +1 16.12.02 65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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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6] +4 16.12.01 574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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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프가니스탄 [The Beast vs 학살조..2] +1 16.11.28 629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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