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몰이 (3)
의주성에서 평양으로 걸음한 지도 벌써 삼백여리. 남은 거리도 삼백여리라.
벌써 중간이나 왔건만 범문정의 마음은 점점 더 급할 뿐이었다. 그는 옆에서 섶불을 솔가지에 옮겨 붙이려는 송가 마부꾼을 불러다 채근했다.
“이보게 송가. 더 걸음을 재촉할 순 없겠는가?”
그러자 마부꾼은 고개를 저었다.
“대인. 말이 벌써 지쳤습니다. 거기에 날이 어둑어둑해졌으니 표범이며 갈범이며 돌아다닐 시간이라 더 가기가 어렵습니다.”
마부꾼이 솔가지를 든 손으로 숲속 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표범? 갈범? 조선에 그런 짐승이 많은 것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런 큰 길가에 놈들이 출몰한단 말인가?”
범문정이 저으기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답하니 마부꾼이 혀를 끌끌 찼다.
“대인께서 조선땅에 오신 것은 처음이니 잘 모르시겠지요. 지금 이 길에 우리 말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마부꾼의 말에 범문정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펴보았다.
마차 한 대가 지나가기에도 좁은 길이었던데다, 지금 이 길 근처에 있는 사람은 자신들 뿐이었다.
짐꾼들도 길이 왜 이리 좁고 투박하냐며 투털대니, 끌고가던 수레도 놓고 가자며 불평들이었다.
좀더 큰 길이 있었겠지만, 마부꾼이 청나라 옷을 입은 자신을 조선 백성들과 마주친다면 골치아플거라며 했다.
하여 그가 아는 길로 가자고 한 것이니 범문정은 그를 따른걸 후회했다. 아니면 의주성에서 호위 군사들을 물리지 말던가 해야했음을.
저 길 너머 숲속엔 벌써 어둠이 가라앉았다. 불그스레 한 햇살은 자주빛으로 바뀌고 있었고 하늘엔 하나 둘 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범문정은 저 숲 너머에서 나즈막히 여인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순간 오싹함을 느끼고 마부꾼에게 다가갔다.
“송가! 방금 멀리서 여인 우는 소리를 들은 듯 하네..!”
“대인 진정하시지요. 진정으로 사람우는 소리라면 온 숲속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울리기 마련입니다. 대인께선 아마 호식총 창귀 우는 소리를 들으신 걸 겝니다.”
“호식총 창귀 우는 소리?”
“예 호랑이가 덮쳐 죽은 사람의 원혼인데,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호랑이 밥이 되게끔 해야 비로소 성불 할 수 있어 어떻게든 사람을 유인하려 하지요. 이런 곳에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마부꾼의 말에 범문정과 따르던 짐꾼들은 크게 동요했다. 안그래도 호랑이가 많다던 조선이다. 그런데 귀신이라니?
“아니! 귀신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는 말게!”
“청나라는 어떨 지 모르지만, 조선에서 창귀 때문에 죽은 이가 한 해에만 수백이 넘습니다.”
범문정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에 크게 놀랐다. 호랑이야 그렇다 치자. 청나라에서도 북경같은 곳이 아니라면 작은 성읍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경우야 있었으니 하물며 조선은 어떠하겠는가.
게다가 호랑이에 물려 죽은 귀신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범문정은 처음부터 큰 길 대신 이 좁은 길로 자신을 안내하며, 호랑이며 귀신이며 자기를 겁주려는듯 한 마부꾼에게 일갈했다.
“송가!! 그대는 체격이 월등하고 힘이 장사인듯 하니 저 호식총을 부수고 오라!”
범문정이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며 송시열에게 주문했더니, 송시열의 입에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대인. 아무리 귀신이라 하여도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는 원혼이라면 소인도 무사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저 멀찍이 떨어진다면 스스로 기가 쇠하여 사라질 것이니 그 때 호식총을 부수어도 될 일입니다.”
답을 든은 범문정은 아까보다 더 큰 오싹함을 느꼈다. 저 말은 지난날 송산과 금주에 나아가 홍승주의 군사를 맞아 싸울때 태종 홍타이지와 나누었던 말. 대체 이 자가 그 말을 어찌 안단 말인가?
“폐하,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는 곰을 잡으려면 희생이 뒤따르니, 쇠잔하게 하여 스스로 쓰러질 때 주워오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거둘수 있사옵니다···”
이 말을 이 곳에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닌게 아니라 어제는 송나라의 손적을 빗대어 자기가 명을 배신한 간신이라고 하질 않나,
오늘은 저 말같지도 않은 귀신을 빗대어 자기를 비꼬지를 않나.. 분명 이 마부꾼이라는 자는 자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자의 행태가 너무나도 수상했다. 일개 마부꾼이라 하기엔 머리가 비상한 것도 그랬고, 온 몸에 흉터도 그랬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범문정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송시열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송시열은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인은 어제도 고했지만 그저 속세로 돌아온 승려이자 마부꾼 입니다만..”
“아니다! 네 놈은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게 틀림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날 내가 송산에 나아가 싸웠을 때 태종폐하께 고한 것을 그대로 되풀이 하느냐? 이놈! 송가라 하였지? 혹 네놈이 태조의 능을 모멸한 송시열이라는 놈이더냐!!”
그제서야 범문정은 수상할 정도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경전에도 해박하며, 당시 사건을 조사할때 들었던 범인의 모습과 마부꾼의 모습이 비슷했음을 깨달았다. 순간 분노가 터져나오자 범문정은 있는대로 없는대로 고함을 질렀다.
“이 역적놈아!”
그러자 마부꾼의 표정이 굳어졌다. 범문정은 그 표정을 읽으며 확신이 들었다.
이 놈이다. 이 놈 때문에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가 악화되고, 의정대신 아오바이가 무리하게 원정하며 군사를 낭비한 것 까지! 모든게 이 놈의 소행이었다!
“쳐라!”
범문정이 짐꾼들을 향해 소리치자, 조총을 들고 있던 짐꾼들이 당황하며 화승에 불을 붙이려 다급히 움직였다.
-팟! 퍼펑!
어디선가 화약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짐꾼 하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적이다!”
노련한 짐꾼 하나가 외쳤지만, 그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절명해 버리니 순식간에 둘을 잃은 짐꾼들은 크게 동요했다.
“몸을 수레에 숨기고 적의 화승을 찾아라! 어서!”
범문정 또한 전장 이곳 저곳 산전수전 겪은 자. 노구의 몸이었지만 수레 뒤 쪽으로 몸을 날린 뒤 짐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간에, 그것도 숲속에서 조총과 조총이 맞붙는다면 먼저 적의 타들어가는 화승을 발견한 자가 유리하다.
반대로 아군의 화승은 숨길수록 유리한 법이니 정예한 군사들이었다면 진작 화승을 어떻게든 가렸을텐데 짐꾼들은 그런 군사들이 아니었다.
짐꾼들은 허둥지둥대며 화승에 불을 대려 횃불로 가려다 총탄에 맞아 거꾸러지거나, 겨우 화승에 불을 대었더니 숨기는 것을 까먹어 총탄에 맞아 피를 뿌렸다.
범문정이 화승을 숨겨라! 적이 화승을 본다!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적의 총탄이 잦아들었다.
“헉..헉..허억..”
방금 전 교전으로 안그래도 긴장한 범문정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도 총탄 하나가 귓가를 스쳐가며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니 온 몸이 얼어붙은 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자는 몇이냐!”
“대인! 무사하시옵니까! 다섯이 남았습니다!”
“이런! 일단 적을 참살하는게 먼저다! 화승을 발견하면 즉시 쏘아라!”
“예! 어..어어! 적 화승입니다! 쏘겠습니다!”
살아남은 짐꾼 하나가 숲 속에서 순간 튀어오르는 불씨를 발견하고는 조총을 쏘니, 뒤이어 네 정이 차례로 방포되었다.
지릿한 오줌냄새와 함께 축축한 숲 공기가 화약과 섞여 내려앉으니, 한참동안 연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해치웠는가!”
“나아가 살펴보겠습니다!”
“아니다! 움직이지 마라!”
범문정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짐꾼들을 제지했다. 지금은 최대한 몸을 피할 때다.
“대인! 저기! 적 화승입니다!”
짐꾼 하나가 비명을 지르자, 범문정도 화승을 발견하곤 외쳤다.
“뭐하느냐! 쏘아라!”
짐꾼들이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나 화승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틱 티티틱.
“아차.. 장전을!”
처음 겪는 극한의 긴장 상황이었던 터라 짐꾼중에 그 누구도 조총을 장전한 이가 없었다. 처음에 피를 뿌린 군졸 출신 짐꾼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사소한 실수는 없었을 터.
모두가 당황하여 허둥거릴 때, 적은 이들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거리는 불꽃과 함께 천둥이 치니, 짐꾼 다섯 모두가 총탄에 맞아 허우적 거렸다.
“아아악!”
누군가 비명을 지르자 범문정은 승산이 없을을 깨닫고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 의주성으로 간 다음, 의주 부윤에게 청하여 군사를 대동해야 했다. 이렇게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 순 없..
“그대로 멈추어라.”
범문정은 얼음같이 차가운 것이 뒷목에 닿자 온 몸이 굳어졌다. 상대는 조선말로 외쳤지만, 그 의미는 통변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자를 포박하게!”
다행히 그는 자신을 쏘지 않았다. 분명 송시열이라는 놈이겠지. 말이 통하니 어떻게든 설득이 될 터. 범문정은 입을 열었다.
“송시열이라 했는가! 그대는 지금 대국의 관료들을 참살했다! 네놈이 그러도고 무사할 줄 아느냐!”
그러자 반대편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대인께서 뭘 모르시나 본데, 우리는 이미 오 년 전에 죽었소이다. 사람들이 우리더러 뭐라 하는지 아오? 자그마치 송귀라 합디다.”
“우..리? 그렇다면..?”
“이런 자리에서 통성명 하기가 민망하나, 본관은 송준길이라 하오. 반갑소이다.”
하며 송준길이 권총을 거꾸로 들어 범문정의 머리를 후려치니, 범문정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이보게 준길이!! 동춘당!!”
“우암! 성공했네! 성공했어!”
“이제 비로소 지난날 억울함을 풀수 있게 되었네!”
하며 송시열과 송준길은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송시열이 청 사신을 유도하고, 송준길이 미리 길목에 나아가 조총 다섯 자루로 이들을 제압하니 공명이 아닌 이상 단단히 벼르고 벼른 함정을 피할 수 없었다.
“청국의 사신을 포박했으니 어찌 큰 공이 아닌가! 전하께서도 분명 지난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복권하시지 않겠는가!”
“그렇지! 아아! 지난 오년여간 귀신같이 사느라 어찌나..”
송준길의 눈에 눈물이 맺혀 떨어졌다. 이를 바라보던 송시열도 찡한 무언가가 북받쳐 눈가가 매워졌다.
그 순간, 정신을 차렸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범문정이 밧줄을 풀려 애쓰며 외쳤다.
“이..이 역적놈들아!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아느냐! 응? 지금 대청국의 사신에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말이다!!!!”
드디어 공신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순간을 축하하던 송시열과 송준길은 얼굴을 찌푸렸다.
송준길이 범문정에게 다가가려 하자 송시열이 그를 말리더니, 매고 있던 봇짐에서 주자어류소분(朱子語類小分) 이라는 책을 꺼내어 범문정의 얼굴을 후려쳤다.
-쩌억!
별안간 책으로 후려맞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아프기는 어찌나 아픈지, 범문정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송시열은 핏대가 가득 올라온 상태에서 책을 고쳐 잡고는 범문정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빌어먹을 청나라 돼지놈아! 이제부터 네놈에게 주자의 높은 덕과 밝은 경전으로 정신수행을 시켜주겠다!!”
정신.. 수행? 책으로..? 범문정은 본능적으로 뭔가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안돼!”
그로부터 며칠 뒤, 평양에서 날아온 급보는 영섭의 뒷목을 잡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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