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결단 (4)
한편 그 시각, 마포 성당에서 일요일 미사를 드리고 있던 까바렐로 신부와 신자들은 별안간 성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 외치는 고함에 깜짝놀랐다.
"신부님! 큰일났습니다! 큰일났다구요!"
까바렐로 신부는 인상을 살짝 구기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을 처다보았다.
"우리 베드로 형제님 아닙니까? 대체 무슨 일이길래 미사를 방해할만큼 호들갑을 떤단 말입니까?"
그러자 베드로라 불리는 사내가 답했다
"신부님! 지금 미사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임금님께서 청나라에 끌려가신단 말입니다!"
"예? 지금 사제왕 요한께서 어디로 간다 하셨습니까?"
까바렐로 신부가 크게 놀라 되물었고, 사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신부님! 임금님께서 지금 청나라로 끌려가신다고요! 지금 도성 사람들이 모여서 막고 있습니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임금님이 누구던가. 스스로 십자가를 들고 이 조선 땅에 천주님을 모셔온 성자 그 자체가 아니던가?
신부들에겐 사제왕 요한이자, 신도들에게는 성자이자, 가난한 백성들에겐 구빈원을 세워 굶지 않게 한 구원자였고 박해를 피해 찾아 키리시탄 왜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강림 그 자체 였으니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때 일본에서 건너 온 키리시탄 셋이 일어나서 외쳤다.
"주군께서 위험에 빠져 계신데 어찌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목숨을 던져서라도 주군을 수호해야합니다! 주군께서는 그리스도 그 자체이시니 드디어 이 한 목숨을 기쁘게 버릴 때가 왔습니다!"
하며 셋은 환호성을 지르며 대체 언제부터 갖고 있었는지 모를 칼을 꺼냈다.
"주군 그리스도를 지킵시다! 주군 그리스도를 지킵시다!"
왜인 키리시탄들의 외침은 순식간에 열병을 퍼뜨렸고, 여기에 베드로가 가세했다.
"저 왜..아니 우리 일본인 형제들까지도 저러고 있는데 어쩌 우리 조선 사람들이 가만있겠습니까!
임금님께서 십자가를 들여와 비로소 복음에 의해 개안하게 되었는데 어찌 그 은혜를 갚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란 말입니까! 나갑시다 여러분! 임금님을 지킵시다!"
그러자 까바렐로 신부가 외쳤다.
"여러분 폭력은 안 됩니다! 폭력은 안 됩니다! 칼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폭력은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실천해야 합니다. 현실 정치에 간섭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때 성당 문이 부서져라 활짝 열리며 다른 신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다.
"아이고 신부님! 아이고!"
"오늘 대체 무슨 날입니까? 바울 형제! 진정하세요!"
"요한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십니다! 신부님! 사제왕 요한께서 십자가를 짊어진 채 청나라로 가고 계신다구요!"
순간 까바렐로 신부는 그 자리에서 휘청하며 쓰러지니, 신도들이 부축하여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리더니 입을 열었다.
"여러분, 내가 순간 어리석어 지난 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묶여 로마의 병사들에게 끌려 가셨을 때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이 될 뻔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서 까바렐로 신부는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신도들에게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우리의 사제왕, 우리의 그리스도를 지킵시다!"
그러자 성당 안이 떠나갈듯이 함성으로 가득찼다. 이윽고 신부와 신자 이백명이 광화문 인근 육조거리에 달려갔을 때 이미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임금님을 지킵시다! 임금님을 지킵시다!"
"청나라는 물러가라! 청나라는 물러가라! 청나라는 물러가라!"
"우리 임금님을 잡아가지 말라! 잡아가지 말라!"
숫자를 세어보아도 무의미 할 만큼, 대체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함성을 지르는지 모두가 벙벙했지만 이내 모두의 마음은 하나로 모였다. 그저 이 광경을 바라보며 영섭은 아무 말 없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칙사와 청병들은 시시각각 모여드는 사람들에 크게 놀라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될지 혼란에 빠져 버렸다.
청병들은 서로 어쩌면 좋습니까, 어쩌면 좋습니까 하며 병장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 채로 칙사만을 바라보니, 칙사가 다급히 영섭에게 외쳤다.
"조선국왕은 어서 백성들을 집으로 돌아가라하십시오! 국왕이 의도한 바가 이것이소이까?"
그러자 영섭이 모여든 사람들을 쳐다 보면 말했다.
"칙사께서 잘못 생각하신 게 있습니다. 내가 청나라에 가겠다 한 것도, 또 저들이 여기에 나와 함성을 지르는 것도 다 각각의 굳은 의지입니다. 들어가라 해서 들어갈 것이 아니지요."
"정녕 이러실겁니까! 상국과 전쟁이라도 해야겠다는 말입니까!!"
영섭은 아무 말 없다가 입을 열었다.
"칙사께서는 전쟁을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나와 상국 황제폐하께서 하는 것이지만, 그 피해는 여기 있는 이 백성들과 청나라 백성들이 입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칙사께서는 전쟁 이라는 말의 무거움을 깨닫고 부디 주의하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칙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영섭에게 외쳤다.
"감히 소방의 임금따위가 지금 나를 가르치려 하는가? 나는 대청 황제 명을 받고 온 칙사다! 대청 황제폐하의 현신 그 자체란 말이다! 아직 임금이 어려 내가 누군지 잘 모르나본데..."
그러자 영섭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살기로는 벌써 팔십을 넘게 살았습니다. 칙사 당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존재인지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자고로 지도자가 결정했을 때, 민의가 이를 거절 한다면 지도자는 마땅히 민의를 따르는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보자보자하니 조선왕이 이리도 방자할수가 있는가! 뭐하느냐! 총통을 준비하라!"
"예 칙사대인!"
그러자 영섭이 표정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탕! 탕! 탕! 탕!
청병들이 하늘에 대고 조총 스무정을 방포하니 순간 모여있던 군중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가시오! 청병들이 총을 쏘고있소이다!"
"목숨 귀한줄 알거든 어서 도망하시오!"
그때가 까바렐로 신부와 신도들이 육조거리에 도착할 때 였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란 신자와 신부가 움츠러 들었지만 신부는 이내 침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신부님! 저들이 총을 쓰고 있습니다! 얼른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까바렐로 신부는 결연한 표정으로 사내에게 말했다.
"오 베드로 형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평생 저는 이 순간이 오기를 꿈꾸었습니다. 보십시오! 사제왕 요한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모든 조선인의 고통을 구원하려 하는 저 모습을 말입니다!
저는 지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나라 사람들이 교인들을 박해하고 탄압했다지요? 사제왕 요한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틀림 없을테지만, 청나라에도 교회는 있어 요한께서 거짓을 말씀하신 줄로 오해했으나 비로소 오늘날에서야 그것이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들은 카톨릭을 탄압한 프로테스탄트들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찌 신부된 자가 탄압 받는 형제들이 울음과 목소리를 외면 하겠습니까! 내 스스로 나서 청병을 막을것입니다. 저들을 저지할 것입니다."
하며 까바렐로 신부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갔다.
모두가 혼비백산 하여 달아나는 그 와중에 신부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도망가던 사람들도 뒤돌아보며 대체 저 서역에서 온 승려가 뭘 하는지 궁금해 하여 걸음을 돌렸고,
정말 이러다가 큰일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진 마포 성당 신자들이 황급히 신부의 뒤를 이었다.
"물러서지 마십시오 어린 양들이여! 물러서지 마십시오 신도 여러분! 저들에게 탄압 받는 형제들을 우리가 구원 합시다! 저 눈물 흘리는 형제를 구합시다!
아아! 모든 조선인의 원죄를 짊어지고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시려는 사제왕 요한 그리스도를 우리가 지켜 냅시다 여러분!"
하며 걸어 가자 근처에 있던 사대부 여럿이 부끄러워 하며 외쳤다.
"아아, 저 서역에서 건너온 승려마저도 주상전하께 저리도 충성하고 오랑캐에게 기꺼이 맞서는데 사대부로서 총 소리가 무섭다고 도망 하였는가! 부끄럽고 원통하여 저 서역 승려의 모습을 볼 자격이 없다! 어찌 사대부된 도리로써 스스로 물러설 것을 말하는가! 우리가 주상전하를 지키세! 나가세! 주상전하 천세! 천세!"
이번엔 이 둘을 지켜 보던 농협 회원들과 집정이 외쳤다
"아니 서역에서 건너 온 승려들도 그렇고! 우리가 타도 해야 할 지주들도 임금님을 지키겠다 저리 날뛰고 있는데 어찌 임금님께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우리 농협이 물러서는가! 그러고도 진정 우리가 공산이라는 높은 뜻을 품은 농협의 일원이란 말인가? 또 그대들이 농협 회원이란 말인가? 모두 앞으로 나가세!"
하며 '충군 애국 이국 편민'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협 회원들이 대열을 가다듬고 전진했다.
칙사와 청병들은 이제 미칠 지경이었다.
상제를 모신다는 신부들은 이상한 서역 말로 노래를 부르며 무리 지어 오고 있었고, 비단 옷 입은 자들은 주상전하 천세 천세 하며 외치면서 다가가고 있었으며,
헤진 옷을 입은 자들은 깃발을 휘두르며 충군 애국 이국 편민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시각각 자기들에게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 중에 누구도 이들을 지휘하는 자가 없었지만 어느새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딱 딱 맞아떨어져 칙사와 청병들이 느끼는 공포심은 배가 되었다.
"Adeste Fideles...
충군 애국! 이국 편민!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시시각각 거대한 벽들이 눈앞에 휘몰아치자, 칙사는 이제 정신이 나간채로 영섭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조선 왕은 어서 저들을 물러가라 하란 말이다! 진정 모두가 죽어야 만족하는가! 이는 결국 전쟁을 뜻하는 것인가! 어서 저들을 물러가라 하라!"
영섭은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청병 하나가 공포에 질린 나머지 괴성을 지르며 외쳤다.
"다 물러가라고! 다 꺼지란 말이다! 내가 누군질 아느냐! 빨리 썩 꺼지란 말이다!"
하며 조총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에 사람 하나가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칙사가 당황해 쏘지 말라 소리쳤지만 오히려 그 말을 신호로 하여 청병들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탕 타탕! 탕! 탕 탕!
영섭을 향해 걸어오던 신자들, 사대부들, 농협 회원들 몇몇이 피를 뿌리며 눈덮인 거리에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보며, 영섭은 그저 눈을 질끈 감으며 쏘지 말라 쏘지 말라 외칠 뿐이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이는 없었다.
"쏘지 마시오! 백성들을 쏘지 마시오! 칙사는 무얼 하는가! 저들을 말리지 않고!"
"다 조선 왕의 자업자득이요."
"사람을 해하는 일이 어찌 자업 자득이란 말인가! 칙사! 칙사!"
-탕 탕! 타탕! 탕! 탕! 탕 탕!
다시금 백성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영섭은 처음으로 염라대왕이 자신을 조선땅에 전생시킨 이유가 단지 감자 농사를 짓는데 있음이 아님을 깨달았다.
감자농사도, 천주교를 받아들여 신부들을 오게 한 것도, 네덜란드와 무역을 시작하게 한 것도, 토지 개혁을 하고 대동칠조를 반포하게 한 것도 그저 이 조선땅에서 배고픈 이를 없게끔 하려는 그의 의지였지만 그 의지는 결국 이렇게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염라대왕이 자신을 조선에 보낸 이유가 뭘까. 다른 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감자농사를 지어 굶주린 자가 없게끔 하려는게 목적이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영섭은 자신이 누구에게 빙의했는지를 깨닫고는 순간 멈칫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효종대왕이 북벌을 해보지도 못하고 죽었었다. 하지만 지금 조선의 모습을 효종대왕이 본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조선 왕은 뭐라 한거요?"
칙사가 영섭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며 따져물었다.
그러자 영섭은 칙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더니, 저 멀리 우뚝 선 군중에게 서서 외쳤다.
"이 나라 조선의 백성들이여!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 순간 대열이 멈췄다. 청병과 칙사도 영섭을 바라보았다.
"방금, 청나라 군사가 우리 백성을 쏘았다. 보았는가!"
영섭의 목소리가 육조거리에 쩌렁쩌렁 울렸다. 반대편 군중에서는 아무 말 없이 침묵하다가, 누군가 외쳤다.
"보았습니다!"
영섭은 재차 외쳤다.
"분노하는가?"
"분노합니다!"
"그대들의 뜻은 어떠한가!"
그러자 이번엔 우물쭈물 하더니, 이내 강단있는 누군가가 외쳤다.
"저, 저들에게 우리 백성을 해한 저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진정 원하는가!"
"원합니다!"
"원하는가!"
"원합니다!"
“진정 그리하다면! 나 또한 민의를 따르겠다!"
하며 영섭은 품에서 권총을 꺼내 칙사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며 되뇌었다.
"결국, 이루지 못한 운명을 다시 한번 이뤄보라 하는 것인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무너져 내리는 칙사와, 놀란 청병들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제각기 무언가를 쥐고 달려오는 조선인들이었다.
- 작가의말
내용 수정 (8.15)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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