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청 근위척탄여단 (1)
“근위척탄여단!”
“대대!”
“중대!”
“행군 정지!”
영섭이 손을 들자, 여단 전체가 척! 하는 소리에 멈췄다.
척탄병의 노래를 부르던 군사들은 표정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입을 다물고 낮은 하늘만 바라보았다.
“1, 2, 3 대대는 대 보병 대형으로! 신속 전개한다!”
영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수가 어기를 들어 힘차게 흔들자, 군악중대의 북이 심장 뛰는듯한 느낌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영섭은 각 대대장들과 중대장들이 그동안 훈련받은대로 움직이는지 하나 하나 지켜보았다. 지난 생에서 영섭의 경험과 신식 무기인 수석총과 소진천뢰로 무장한 그들이었지만 남한산성에서 배우고 구르는 것과 실제로 나와서 구르고 싸우는 것은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으리라.
훈련과 실전의 차이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훈련은 땀을 흘리지만 실전은 피를 흘린다는 간단한 차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임하는 마음 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영섭은 처음 월남에 파병간다 했을때 화천에 있던 파월교육대에서 받았던 훈련이 생각났다.
선과 선이 맞붙는 정규전에서는 전투의 승패가 선을 구성하는 소부대의 역량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선 자체를 지탱하는 힘에 있다고 했다.
그 지탱하는 힘이란 선을 구성하는 군사 개개인이 사기가 될 수도 있고, 전투에 투입되는 병사의 숫자 일 수도 있지만 적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압도적인 화력과 상위 부대에서 지원 할 수 있는 지원 화기의 유무로 결정이 난다 했었던가.
걔중엔 소부대간 전투시 압도적인 화력 지원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하라 했다. 실제로 영섭이 마주했던 전투들이 그러했다. 짜빈동에서도 그러했고, 짜빈박에서도 그랬다.
작전이 투입되기 전 미국 수병놈들 - 엥그리코맨이라 했던가 - 자기들이 호출 한번만 한다면 지옥의 화염불이 베트콩 위로 떨어질꺼라 했었지만 그 의기양양한 수병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월남의 진흙 깊숙히 처박혔다.
그랬기 때문에, 영섭은 화력 지원이라는 성탄절 선물보다는 당장 내가 방아쇠를 당겨 쏠 수 있는 에무십육 소총이나 경기관총, 그리고 수류탄이 전부라 생각했다.
때문에 처음 이완과 머리를 맞대 근위척탄여단 창설을 고민했을 때 훗날 등장하게 될 서양의 전열보병들 처럼 단순히 총검과 수발총으로 무장시켜 내보내는게 아닌, 문종화차라 불리는 총통기 화차 두 문과 그 쓰임과 생김새가 박격포와 비슷한 소완구 한 문을 중대마다 지원토록 하여 이 시대에서 만큼은 압도적인 화력을 갖도록 했더니 당시 이완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전하, 문종대왕 화차를 포수 일백 오십인에 두 문을 배치하라 하심은 지나칩니다!”
“어찌하여 그런가?”
“일찍이 북방을 수비할 적에도, 문종대왕 화차는 1개 사 (600명) 규모에 한 문이 배치될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겨우 일백 오십인에 두 문이라 하면..”
“그래서,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은가?”
“그것은 아니지만..”
“병판은 말해보라. 적의 수백 수천 철기가 땅을 울리며 돌격해오는데 이를 막아내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마땅히 목책과 함정을 파서..”
“아니다. 말 한 마리에 탄환 백 발을 쏘면 제까짓게 버티겠느냐.”
그러자 이완이 영섭을 무슨 미친놈 보듯이 바라봤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분명 전하의 하교는 일리가 있사온데..”
“병판. 저 문종대왕 화차가 둘이, 넷이, 여덟이 한데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느냐?”
“예? 어떤 일이라 하심은..”
“아까 목책이라 했지. 문종대왕 화차가 둘 넷 여덟이 한데 모여 서로 교차하여 방포하게 된다면 감히 들이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허면 그 자체로 불뿜는 목책이 되겠습니다.”
“바로 그렇다.”
“소신,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소완구는 왜 직접 중대장 군교가 지휘하여야 하겠습니까? 화포장이 따로 있을 터인데..”
“병판의 말에 일리가 있으나, 화포를 다루는 이가 아니라 화포를 어디에 쏠 지 결정하는 이가 지휘해야 더 많은 적을 참할 수 있다.”
이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영섭에게 모르겠다는 듯 가르침을 청했다.
“병판은 고개를 들어 보라. 자, 포수 일백 오십이 다가오는 적에게 방포를 하고 있다. 그대가 적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신, 방패가 있으면 최대한 총화를 견뎌낼 것이며, 이후 적이 장전하는 틈을 타 일격에 들이쳐 참살하겠습니다.”
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 허면 총화를 견뎌냈는데 문종대왕 화차 둘이 불을 뿜는다면?”
“문종대왕 화차는··· 찰나의 순간에 탄환 수백을 방포하니, 일격에 들이친다면 어육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여 탄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거나 바위 같은 것이 있으면 몸을 가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영섭이 박장대소를 하며 이완의 어깨를 쳤다.
“병판! 자넨 죽었네!”
“전하! 소신이 죽었다니 무슨 뜻인지..”
“그대는 소완구를 잊었는가?”
“예? 아···아! 맞습니다. 소완구.. 그 놈에게서 진천뢰를 맞는다면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은 성치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있는 적에게 포를 쏠 것을 지휘하는게 화포장이 하는게 옳느냐 아니면 중대장 군교가 하는게 옳느냐?”
“..중대장 군교가 하는게 옳겠습니다.”
영섭이 설명한 것은 지난 삶에서 경험했던 일이었다. 첫 전투를 치를때, 소총과 경기관총으로 베트콩을 모두 때려잡겠노라 했지만 총탄을 아무리 퍼부어도 정글 숲속에 숨어 총을 쏘아대는 그들을 잡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베트콩들도 감히 빗발치는 총탄 앞으로 나오진 못했다. 얇은 전선이 서로 사격에 의해 고착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피리부는 소리와 함께 베트콩들이 있던 자리가 연달아 폭발하니, 중대장이 지휘하는 박격포에 의해 베트콩들이 떼로 죽어나가버렸다.
그러한 경량 곡사 화포는 소총이나 기관총과는 다른 차원의 쓰임이었으니 영섭이 이를 배치하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영섭을 깨웠다.
“어서 대 보병 대형으로 전개하라! 중대장들은 뭐 하느냐! 어서 훈련받은대로 움직이지 못하느냐! 네놈들이 그러도고 조선제일이라 떠들 수 있느냐?”
척탄 1대대장 파총 김체건(金體乾)이 악을 쓰며 척탄병들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왠만한 조총 터지는 소리에 버금가는 그의 고함에 휘하 중대장 군교들이 또 시작이라며 질린 표정이었지만, 어쩐지 대대장 처럼 똑같이 고함을 질렀다.
“1중대! 앞에 보이는 능선에 전개한다!”
“2중대! 1중대 좌측 날개에 전개한다!”
“3중대! 가도를 점령한다! 신속 전개하라!”
“화포중대는 척탄중대 전개 후 전진한다! 제 자리에서 대기하라!”
“중대는 신속히 전개하란 말이다! 네 놈들 전개가 너무 느려서 오랑캐들이 말 타고 돌격하다 낮잠을 자겠구나!”
대대장 김체건이 아예 칼을 뽑아 휘두르기 시작하자 칼에 맞을라 군사들의 발걸음이 더 바쁘게 움직였다. 저 김체건이라는 자가 누군가.
자존심 높은 함경도 호랑이 사냥꾼들이 김체건을 우습게 여겨 칼 좀 쓴다는 자들이 죄다 붙었다가 팔병신 다리병신이 되어 낙향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따라붙은 자가 아닌가.
그 후로 1대대 군사들은 적과 싸우면 죽을 수 있겠지만, 김체건 대대장하고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망갈 정도로 뜀박질을 하며 각 척탄병 중대는 오십 명씩 한 개 열을 삼아 세 열로 하여 전개했고, 총통기 화차 둘은 척탄병 대열 끝과 끝에, 진천뢰를 쏘는 소완구 한 문은 중대장 옆에 전개했다.
“대대장 어른! 1중대 전개 완료했소이다!”
“2중대 전개 완료했사옵니다!”
“3중대도 전개했습니다!”
“화포중대 배치 완료했소!”
약 반 각 (7분)도 안되어 1대대가 낮은 능선에 전개를 완료한 것을 시작으로, 2대대와 3대대 까지 전개를 완료하여 도합 일천 삼백 오십의 척탄병과 총통기 화차 열여덟문, 소완구 아홉 문이 대 보병 진형을 완성했다.
“병판이 보기에 여전히 지나치다 생각하는가.”
“송구합니다 전하. 이토록 정예하니, 저 청나라 군사들이 감히 상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이 경거망동 안했으면 하네. 이리로 들이쳐봐야 돌아오는건 총탄일 터. 얌전히 항복하는게 좋겠지만..”
일말의 화평을 기대하는 영섭과는 달리 척탄여단의 각 대대장들과 중대장들은 먹잇감을 눈앞에 둔 호랑이 마냥 튀어 나가려 신속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영섭은 잠시 생각했단 화평책은 잠시 접어두고 각 대대의 군사들의 움직임을 다시 관찰했다.
첫 출전에 이 정도면 훌륭한 움직임이라 생각했지만 아직 더 많은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 이완이 영섭을 찾았다.
“전하! 척탄 대대를 앞으로 진격 시키겠습니다!”
“아닐세! 그대로 두게. 너무 급히 대응 할 필요 없네. 적을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데.”
“전하, 그렇다면 화포 중대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저 능선을 따라 방포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영섭이 고개를 저으며 이완을 나무랐다.
“아직 적의 화포 위치를 모르지 않은가! 적 화포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 쏘아야 하네 지금은 굳이 모습을 드러내 적 화포의 이목을 끌 필요가 없네.”
“알겠습니다 전하.. 다만 각 대대들이 방진을 전개했지만 저들이 순순히 이쪽으로 군사들을 진군시키겠습니까?”
“나라도 그러지 않을 것이지. 병판 기억나나? 지난날 감자 농사를 지을 때 거름을 넉넉히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일세.”
“예? 그.. 거름이라 하심은.”
“적이라는 감자를 수확하려면 거름을 넉넉히 주어야 하지 저 놈들도 조선왕을 거름으로 쓴다 하면 마다하지 않고 감자뿌리 내리는 것 마냥 달려들 터.”
하며 영섭이 휘날리는 어기와 수어청 깃발을 번갈아 보았다.
“전하!”
“괜찮네. 척탄병들이 근처에 있으니. 여차하면 정찰대와 십자군들도 있으니 뭐 죽기야 하겠느냐.”
“전하! 그렇지만!”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지만 위험 없이 무언가 해낼수는 없는 것이다.”
하며 영섭은 직접 어기를 들고 정찰대 군사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