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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성 님의 서재입니다

요리하는 9서클 대마법사, 사이버펑크에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진흙성
작품등록일 :
2024.05.08 12:54
최근연재일 :
2024.06.02 07:3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49
추천수 :
6
글자수 :
155,970

작성
24.05.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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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인연

DUMMY



이루칸은 정문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빤히 봤다.


뒤따라 총총 지면을 튀어오르는 샛노란 병아리 한 마리.


'저건 또 뭐야.'


로봇이 아니다.


진짜 병아리다. 크기가 큰 걸 보면 바이오공학의 산물이리라.


다리의 노란 피부와 발톱, 온몸을 뒤덮은 샛노란 솜털, 그리고 정수리에 우뚝 솟은 깃털 한가닥.


가슴에 존재하던 액정은 더 이상 없었다.


박태준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문 열어. 멀뚱히 보고 있지 말고."


"어? 어어. 알겠다."


이루칸이 쪽문을 활짝 열었다.


"저거, 이제 말 할 줄 아는 거냐?"


삐얏!


그때 삐약이가 우렁차게 울었다. 그리고 가슴의 솜털위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문구.


> 저거라니. 죽고 싶으냐?


"크, 크흠."


"목소리도 달기 싫고, 가슴에 모니터도 싫다길래 기술자랑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모른다. 어후, 말도 마. 저 고집쟁이."


푸드득.


날개를 푸득이는 바람에, 옆에 가만히 있던 코비가 얼굴을 얻어맞았다.


"푸악!"


삐약 삐약.


>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자빠져있던 코비가 일어서며 눈을 부라렸다.


"저게···!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탁!


"악!"


오랜만에 박태준의 바람회초리가 코비의 등을 후려쳤다.


하지만, 코비는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박태준을 본다.


"잡생각 안 했는데요? 이제 습관이 돼서 잡생각 안 납니다! 진짭니다!"


탁!


"으앗!"


"새로운 숙제다. 살기를 품지마라. 어떤 경우에서도 타인을 해하려는 생각을 떠올리지 말아라."


탁! 탁!


"아앗! 그, 그게 어떻게 됩니까. 타인을 해할 생각을 떠올리지 말라는 말 자체가 떠올리게 만들잖습니까!"


탁!


"악!"


"내 말을 가슴에 품지 말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라."


"그, 그걸 어떻게 합니까."


탁!


"악!"


"내 말에 감각을 죽이는 대신 집중해라. 네가 잡초에 집중했듯이."


"아."


작은 감탄사. 이번에는 회초리가 날아오지 않았다.


뭔가 알 것 같았다.


이 어려운 걸 대번에 이해한 코비를 보고 박태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놈 이거, 재능이 특출나구나. 천만 명에 하나 날까 말까하는 재능이었다.


마력만 쥐여준다면 쭉쭉 뽑아내서 당장 꽃이라도 그려낼 놈이다.


그건 그렇고, 일단 처리해야될 일이 있었다.


"이루칸. 부하를 모두 소집해라."


"지금? 오전 일과에서 대충 큼직한 과업은 끝낸 상태다. 조금 더 쉬게 두지 그러나."


"모두 불러라. 자고 있는 당직자가 있다면 모조리 깨워."


코비가 이루칸에게 눈치를 줬다. 뭔가 사달이 난 게 틀림 없었다.


그는 두말 않고 용병단을 총집합시켰다.


모인 인원은 어제 자진해서 떠난 이들을 제하고 총 서른 네명.


박태준은 앞뒤없이 말했다.


"오늘 점심으로 또 양파스프를 할 계획입니다. 어떻습니까?"


"오! 좋습니다!"

"좋죠. 아직 질리려면 백번은 더 먹어야겠습니다!"


와하하. 폭소를 터뜨리며 용병단은 웃어젖혔다.


여느 때와 같은 분위기. 급히 모으라더니. 대체 이게 뭐냐며 이루칸이 코비를 봤다.


여전히 코비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한바탕 불쑈가 벌어졌다.


귀한 세계수로 키운 호박양파가 헬파이어로 노릇노릇 볶아진다. 그렇게 뚝딱 완성된 양파 스프.


입을 데여가면서도 한 그릇이라도 더 먹으려 허겁지겁 흡입했다.


마지막 몇 그릇을 놓고 다툼이 일어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 추억으로 회상할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비로소 식사가 끝나고, 용병단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이 됐다.


선선히 부는 바람. 비스듬히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


그리고 닭과 소, 염소 우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정겨운 평화로운 낮시간.


박태준이 말했다.


"떠날 사람은 지금 떠나도록 하세요."


뭐? 깜짝 놀란 이루칸이 미간을 찌푸렸다.


"떠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떠날 놈은 어제 마지막으로 다 털어냈다."


"굳이 집어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끝까지 잡아 떼고 남을 시에는 그만한 감당을 해야 될 겁니다."


눈치를 살살 보던 용병이 하나둘씩 도망치듯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철컥!


이루칸이 총구를 들었다.


"이 새끼들아, 대체 무슨 짓거리를 벌인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대장!"


소리친 용병은 전력질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자를 따르는 무리가 서른 남짓.


"어차피 여긴 팔콘 거점지역이 될 예정입니다. 그 메가코프를 우리가 어떻게 막습니까!"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협박 당했단 말입니다!!"


뒤에 도망치는 놈을 바라보며 이루칸은 분기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이, 이런 망할 것들···!"


타타타타타탕!


총을 난사했다.


"으아아악!

"살려주십시오. 대장!!"


하지만, 총알은 단 한발도 그들에게 닿지 못했다.


허공에 둘러쳐진 배리어가 총알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이곳에 남은 용병은 두 사람. 뉴먼과 알비온뿐이었다.


핏발이 터진 빨간 눈으로 이루칸이 박태준을 봤다.


"왜! 왜 막는 것이냐!!"


"그만해둬라,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랬겠나. 아무리 내 능력을 믿는다 하더라도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뱀의 속삭임에 넘어갈 수도 있지. 팔팔한 나이 아니냐."


"대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건가. 빌어먹을!!"


겨우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놈이 달관한 척을 하고 자빠졌다.


"50년 뒤, 네가 죽기 직전에 이 순간을 떠올린다고 생각해봐라. 지금 저들을 죽이는 게 옳은 선택이었겠나?"


"헛소리 마라!"


"50년 뒤가 아니라 판단을 내릴 수 없겠지.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라."


그러고는 바위에서 엉덩이를 탈탈 털며 일어선다.


그가 알비온과 뉴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고, 축사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다 행복하게 살다 미련없이 떠나자고 태어난 것을."


그러다 문득 실소가 났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조금 어색했다.


지난 차원에서는 모든 상황을 극단적으로 무력으로 해결했었다.


아마 정반대로 살기로 마음 먹어서 이런 모습이 된 걸까.


어쨌든 상관없었다.


삐약, 삐약.


"야. 빠약아, 소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삐약.


> 세계수 주변의 풀을 먹여보려합니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는 채소의 성장에 해로울 따름이죠. 잡초를 먹여서 소의 우유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채소의 성장도 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깊은 생각이 있었나?


"그, 그래. 열심히하는군."


삐약. 삐약.


삐약이는 진짜 깃털과 몸을 가지게 됐다. 물론 인공적으로 배양된 육체라,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한단다. 하지만, 삐약이가 가진 마기라면 아마 거의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리라.


"뉴먼, 알비온. 두 사람은 염소를 끌고 와주세요. 특별히 건강한 놈으로, 한 다섯 마리만요."


"예!!"

"알겠습니다. 준!"


두 사람은 따로 축사를 맡은 터라 배신의 계획에서 배제되었다.


제안이 들어왔다면 과연 거절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기원이 잊혀진 사원에 남은 사람은 코비, 박태준, 알비온, 뉴먼, 그리고 이루칸이 다였다.


세계수 주변으로 양파를 심으며 이루칸이 말했다.


"애초에 입구를 지킬 필요가 없었던 건가."


박태준이 세계수의 이파리 상태를 체크하며 대답했다.


"언제 누가 지켜달랬나? 나나 삐약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침입자의 존재는 바로 감지할 수 있다."


그러다 고갤 돌려 삐약이를 봤다.


삐약, 삐약.


커다란 병아리가 날개를 푸득이며 닭 무리를 인도한다. 뒤뚱뒤뚱 궁뎅이를 흔들며 걷는다.


순간 지면에서 용틀임 치는 거대란 지렁이 한 마리!


삐익! 삑!


빼약이가 부리로 쪼으니, 지렁이가 온몸을 배배꼰다. 아마 이놈도 세계수의 영향으로 덩치가 커진 모양.


그 지렁이는 닭의 훌륭한 영양식이 되었다.


닭무리가 부리로 부지런히 지렁이를 쪼아 먹는다.


토지에 지렁이가 좋다곤 하지만, 곳곳에서 지렁이가 넘치는 걸 보면 몇마리 먹는 것쯤 괜찮겠지.


그리고 세계수의 영향으로 거대해진 지렁이를 먹고 품는 달걀은 어떨까.


공장식 우리에서 키우는 것에 비할 수 없이 영양이 풍부하리라.


푹! 푹!


코비가 삽으로 땅을 팠다.


그 안으로 어느새 싹이 난 감자조각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코비가 삽질하고, 감자조각이 든 바랑을 들고서 박태준이 뒤따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삐약아, 이거 감자 언제쯤 수확이 가능하냐?"


뺙!


샛노란 병아리가 정수리 깃털을 휘날리며 고갤 돌렸다. 지렁이를 쪼아먹던 닭 무리도 같이 고갤 돌린다.


명백히 대장으로 따른다는 증거였다.


> 원래 두달에서 최대 넉달 정도가 소요되나, 워낙에 특이한 환경이기에 농부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냐.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읏차.


박태준은 허리를 펴 세계수 주변으로 둥글게 심은 감자를 체크했다.


'감자는 파나 양파처럼 모종이 안 보이니까, 좀 아쉽네.'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줄줄이 솟은 걸 보는 맛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염소가 풀을 뜯어먹고, 삐약이는 닭을 데리고 다녔으며 인간 다섯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성스러운 세계수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무럭, 무럭.


다들 자기 할일을 하는 새 세계수는 순식간에 2센티나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다음 날, 닭이 모두 폐사했다.


이유는 하나같이 계란이 막힌 것.


죽은 닭에서는 타조알만 한 계란을 수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삐약이가 가망이 있다고 여긴 거대 계란 아홉 개를 품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삐약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 너무 뜨겁습니다! 조금만 약하게 하십시오. 따뜻한 것도 좋지만, 적당한 게 좋습니다. 습도도 중요합니다.


이게 잔소리를 하고 있네.


하지만, 박태준은 군말없이 마력을 조정했다.


뭐 농부가 잘 알겠지.


'위대한 드래곤 샤라크, 당신이 이 장면을 봤다면 브레스를 뿜었겠죠.'


무려 드래곤하트를 가지고 계란을 부화시키기 위해 라이트 마법을 부리고 앉았다.


세계수의 옆, 둥지에 가지런히 모인 계란 아홉 구.


그 위로 따듯한 빛구체가 은은히 빛을 발했다.


삐약!


> 멈춰! 딱 좋습니다. 이대로 유지하십시오.


"하십시오? 너 어째, 자꾸 명령조로 바뀐다?"


삐약···.


> 부탁드리겠습니다.


금세 쭈구리가 되어 말을 정정하는 리치.


"그래. 그래야지."


몸을 일으킨 박태준이 뒤를 돌아봤다.


어제 심은 감자에 벌써 줄기가 돋고 잎이 생겼다. 하루만에 괄목할만 한 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야 좀 키우는 맛이 나네.'


일단 눈에 보여야 보람이 있는 법이다.


키가 큰 양파와 대파 때문에 감자줄기는 앞부분 밖에 안 보였다.


"대파랑 양파 수확하자! 어이, 코비!"


"예! 준!!"


오늘도 코비는 활기찼다. 그는 뭔가 기분 좋은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박태준이 자신을 제자 가르치듯 신경을 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부리는 신통한 마법 하나쯤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근데 이루칸 이놈은 어디로 갔냐?"


소와 염소를 돌보던 뉴먼과 알비온이 대신 대답했다.


"잠자리에 누워서 안 일어나던데요. 어디 아파보이지는 않으시던데."

"아무래도 속이 쓰리겠지요. 애들이 죄다 배신을 때려버렸으니."


그렇게 용맹해 보이던 놈이, 속은 여린 모양이었다.


"냅둬요. 마음의 상처에는 시간이 약일 거예요. 뉴먼, 알비온은 이리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대파랑 양파를 수확할 겁니다."


"예! 준!"

"갑니다요!"


두 사람은 신바람이 났다.

다름 아닌 박태준이 그 둘의 임금을 달에 1천만 페이로 보장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면 추가수당까지 줄 수도 있다고 했으니, 열심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박태준은 아공간에 금화가 쌓여 있었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대신 물욕을 버리고자, 또 이전 차원과의 단절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벌이에 맞춰 생계를 꾸려나갈 생각이었다.


경매로 들어올 돈은 혹시 모를 목돈으로 쟁여두기로 결정했다.


그때문에 오늘 금화 경매중단 소식이 들려왔음에도, 박태준으로선 급할 게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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