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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성 님의 서재입니다

요리하는 9서클 대마법사, 사이버펑크에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진흙성
작품등록일 :
2024.05.08 12:54
최근연재일 :
2024.06.02 07:3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944
추천수 :
6
글자수 :
155,970

작성
24.05.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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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2.팔콘

DUMMY


*



박태준의 앞에는 세계수가 있었다.


이파리 끄트머리가 잿빛으로 죽어있던 것이 서서히 생기를 되찾는 중이다.


'마기에 영향을 받는다라···.'


하지만, 리치의 마기에는 멀쩡하지 않았던가.


아마 이 세계에서 메가코프와 손잡은 악마는 세계수에 해가 되는 족속인 모양이었다.


'30년만 어렸어도 토벌하러 다녔을 텐데.'


나도 좀 쉬자. 물론 싸움를 걸어온다면 제압할 생각은 있다.


돔의 한쪽에는 삐약이가 너절해진 채 누워 있었고, 그 옆에 쪼그려 앉은 코비가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준···. 얘 어쩝니까."


하지만, 박태준은 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돔 바깥으로 발길을 옮겼다.


"예방접종 맞혀야지. 방목을 해서 좀 스트레스를 줄여야 우유의 기운도 정순해지겠지."


중얼거리며 병아리는 거들떠도 안 본다.


저 매정한 인간!


자신도 쓸모가 없어지면 저렇게 내팽개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무리 리치라 하더라도, 아무리 지낸 지 며칠 안 된다 하더라도 식구로 받아들였잖아.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세계수를 한몸 비쳐 지킨 게 바로 리치다.


세계수만 아니었더라면 이 지경이 될 일도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악마의 하수인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투도 없었겠지.


한숨을 푹 내쉰 코비는 일단 박태준을 따라갔다.


그가 시키는대로 가축사료 비용, 예방접종료, 축사 자재비 등 지출을 도맡았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났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뱍태준의 웅얼거림이 얼핏 들렸다.


'이 양반이 안자고 뭐하는 거야.'


투덜거린 코비가 자세를 고쳐 눕고 다시 잠에 들려는데···.


"하루 동안 자리를 비켜줬는데, 왜 아직도 머무는 거냐? 너 이제 마기도 얼마 없어서 떠나려면 바로 떠날 수 있을 텐데?"


"······."


"남은 혼은 다 토해내고 떠나라. 그게 너한테도 이로울 것이다. 새로 태어나면 진짜 네 몸을 갖게 되겠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코비는 저 인간의 인외격 능력을 알기에, 대충 짐작했다.


필시 리치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겠지.


리치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박태준의 독백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내 배려를 무시하겠다? 네가 세계수를 지켜줬기 때문에, 널 그대로 보내준다는 거다."


누운 채로 박태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참나. 어이가 없네. 기어이 병아리로 살겠다고? 알겠다. 그럼 널 계속해서 이용하도록 하지. 날이 밝으면 널 살릴 수 있는 기술자를 찾아가겠다."


아. 오해였구나. 박태준이 냉혈한이라는 오해가 풀렸다.


그는 어제 하루 동안 리치에게 떠날 시간을 준 것이었다.


방치나 무시가 아닌 일종의 배려였던 것이다.


'멍청하게 준의 속내도 모르고···!'


고마웠다. 하루 종일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딱히 갈 데가 없었다.


그리고 박태준의 금괴가 경매로 팔리면 수수로를 얻는다. 그의 투명자루에 얼마나 더 금화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난 여기 뼈를 묻을 거야.


코비는 결심했다.




다음 날, 박태준과 코비는 올려다봐서는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 섰다.


메가코프 'FALCON'.


'진작에 떠났어야 했어!'


제정신이 아니야.


이 미친 인간이 제 발로 팔콘사를 찾아올지는 꿈에도 몰랐다.


팔콘사의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주축 세력인 골든챔버의 하운드봇을 4천 기나 증발시킨 장본인이다.


그로 인해 마석 광산을 둘러싼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형국이었던 주축 세력, 팔콘사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는 리치가 담긴 바랑을 어깨에 걸치고서 보무당당히 팔콘사로 입장했다.




*




회의실에서 작은 설전이 일었다.


"아무리 설득해봤자 이번 계획은 변경이 없어요. 여기, 리튼 시티의 팔콘 지부는 거점지역으로 거듭날 겁니다."


상석에 앉은 이의 단호한 말이었다.


한 사내는 회의실에 둘러 앉은 스무 명의 책임자와 간부를 둘러봤다.


이들은 미쳤다. 미친 게 틀림없다.


양팔과 다리가 네크로웨어인 류트는 이마를 턱 짚었다.


"하운드봇 4천 기를 단숨에 쓸어버린 마법사에게 목줄을 채우겠다고?"


아무리 현장과 동떨어진 변방에서 굴러먹고 있다지만, 이다지도 위험한 아집을 부리는 걸까.


그래. 상석에 앉은 저놈이 부회장의 처조카라 그런 것이겠지.


새파랗게 어린 놈이 씩 웃는다. 입고 있는 수제양복과 턱을 괴며 손목에 찬 값비싼 시계가 보였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딜을 걸었다가 안 될 것 같으면 적절한 대처를 해야겠죠."


미모의 여성이 생기있는 입술을 호선으로 당겨 웃었다.


"실패한 적이 없어요. 남자의 호의를 사는 건, 제게 숨쉬는 것보다 쉬우니까요."


그녀가 자리서 일어서자, 딱 달라붙는 양복이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지부장님."


하. 말이 안 통하는 작자들이군.


턱! 류트가 책상을 짚고 일어섰다. 거친 몸짓에 몇몇이 인상을 구겼다. 그중엔 지부장도 속해있었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서 쉬세요. 몸도 편찮은 분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헛심 빼지 마시고."


그에 몇몇이 시선을 돌리며 은근히 조소했다.


'몸도 편찮은 인간이.'


네크로웨어로 끌어다쓴 마기의 반동으로 자신의 마력회로는 오염되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오염이라, 감히 웨어를 가동시킬 엄두도 못 내었다.


하지만, 어제 박태준의 양파스프! 그래, 그것 때문이 분명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마력회로에 불이 붙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뜨거운 기운은 마력회로에 똬리를 틀었던 마기를 불사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기를 태워 정화시킨다!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실제로 겪었고 전성기 때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폼이 돌아오고 있었댜.


결코 그자와 척을 져선 안 된다.


"지부장님, 저 오늘부로 은퇴하겠습니다."


힘 빠진 범, 그저 경험 많은 맹수는 교육이나 그외의 활동으로 스케줄을 돌린다.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은 기약없이 미뤄졌다.


공식적으로 류트는 회사에 매여있는 몸에 아니었다.


"그러세요."


흔쾌히 그러라 말하는 지부장.


고갤 끄덕여 합의를 확인하고 류트는 회의실을 나섰다.


그가 떠난 회의장에선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쯧쯧. 아직도 자기가 필드에 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니까요, 지부장님."


"지부장님, 그러지 말고 저놈 저거 확 블랙리스트에 넣으시죠? 소일거리도 못하면 돌아와서 무릎이라도 꿇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대꾸없이 실실 웃던 지부장이 말했다.


"일단 협상을 하러 갔으니 기다려봅시다. 이 주변에서 리치를 이식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요. 선택지가 없을 겁니다. 늘씬한 사이보그의 몸뚱아리로 바꿔준다는데, 그걸 거절한다면 우리 정보통 문제로 봐야겠죠."


"하하! 역시 지부장님이십니다!"


장내 분위기는 언제나처럼 지부장의 혜안과 아부로 귀결되었다.


그때 문을 밀고 사무보조 직원이 들어왔다. 식당에서 만난 그녀는 지점장이 얼굴만 보고 채용한 직원이었다.


그녀가 해사하게 웃으며 서류를 건넸다.


"지점장님, 오늘도 젠틀하십니다."


"하하. 일은 할만해요?"


"다 지점장님 덕분입니다. 항상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잘해봐요."


그녀가 나가자, 다시 시끌벅쩍해졌다.


"지점장님한테 꼬리치는 거 봤어요? 여우가 따로 없네요."

"참, 지점장님 노리는 여직원이 어디 한둘인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지점장은 직원이 놓고간 서류를 집었다.


'응? 본사로부터 들어온 긴급통신?'


서류를 펼쳤다.


00번? 본사 직통라인 중에서도 긴급할 때만 쓰는 극히 드문 라인이었다.


[ 긴급 통신문(L-00)


기원이 잊혀진 사원에 거주 중인 신원미상의 남성에게 접촉 하지 말 것.

부회장께서 직접 리튼 시티 방문 예정.

자사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사항이므로 전 직원과 계약 용병 전원에게 위 지시사항을 빠짐없이 하달할 것.

끝. ]





*




박태준에겐 씨알도 안 먹힐 말이었다.


"나와 전속계약을 맺자는 말입니까? 이놈에게 새로운 신체를 선물해주겠다?"


또각 또각


빨간 구두로 요염하게 걸어 간 그녀는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옷을 가리기엔 심히 작은 스커트와 조끼가 나타났다.


향수를 얼마나 뿌렸는지, 박태준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어후, 덥네요. 네. 공화국 내에서 네크로웨어에 관한한 우리 팔콘사가 가장···."


"잠깐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박태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네?"


"혹시 당신네들이 잊혀진 사원이 있는 산 너머에 공장부지를 세우려 시도했던 겁니까?"


잠깐 당황할 뻔 했으나,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로 넘겼다.


"아하. 걱정마세요. 드물게 지하의 높으신 분이 변덕을 부려 몰살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감수해야죠, 뭐. 적지않은 손해지만 산업 전체를 봤을 땐 그또한 도약이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이번에 야심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서 가슴이 아픈 건 사실이랍니다. 본사에서 꽤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였거든요. 마석 광산이 우리의 손으로 넘어오면···."


"그만."


"?"


"듣다보니까, 제가 당연히 그쪽네와 같은 편이라는 가정하에 말씀하시네요."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도도하면서도 요염한 걸음걸이로 박태준에게 다가와 매력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거면 다들 뻑가지.'


"사실 저 그쪽 처음 볼때부터 친해지고 싶었어요. 뭔가 도도한 사자 같아서요."


"그럼 유감이네요. 앞으로 전 팔콘사와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발언은 불가역적인 것이며,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유효할 것입니다."


"아, 아니, 잠깐만요! 그럼 그 소중한 병아리는요? 살려야 되잖아요. 최신 의체를 제공해드린다니까요?"


출구로 걷던 박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굳이? 안 되면 마는 거고."


"아니. 저기요! 정 그러시다면 계, 계약을 분기단위로 체결하신다면···."


그렇게 홀연히 빠져나갔다.


같잖아서 실소가 나왔다.


미인계라, 내가 지난 생에 미인계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었는데.


그리고 삶에 대해 어느정도 초탈한 지금은 그런 데 쏟을 마음의 여력 따위는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코비가 쪼르르 다가왔다.


"준! 어, 어떻게 됐습니까?"


"보다시피."


묵직한 바랑은 그대로다.


"야, 다른 가게로 안내해봐. 여기보다 더 작은 데로 시도는 해봐야지."


"그런 데는 없습니다. 준. 이 동네는 이놈들이 워낙에 독식을 한 터라, 해봤자 구멍가게에 웨어부품이나 깔짝대는 수준이죠. 다른 도시로 가야될 겁니다."


두 사람이 하릴없이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때, 골목길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나타났다.


"다, 당신 뭐야?!"


잔뜩 경계를 한 코비와 달리 박태준은 덤덤했다. 그에게서 살기가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내가 로브를 걷어 얼굴을 모이자, 그제서야 코비가 상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 당신! 유칼립투스 평원에서 밥 먹고 갔던?!"


팔다리가 웨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무쇠로 된 손을 박태준에게 내밀었다.


"오늘부로 프라랜서가 된 류트라고 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로봇을 고치겠다고요?"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 일단 들어나 보자.


박태준이 물었다.


"내게 원하는 건?"


"선생님 덕분에 제 불치병에 차도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양파스프를 먹게 해주십시오."


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리고 손끝을 따라 전해지는 류트의 마력 기운.


"마력회로가 늪에 빠졌군. 양파스프가 당신의 치료제라는 걸 안 이상, 가격을 올려야겠습니다."


"어··· 예?"


"한그릇에 천만 페이. 대신 오늘 도와준 값으로 한 그릇은 무료로 드리죠."


이런 치사한···!


괜히 호의를 베푼다고 했나. 그냥 가게로 직접 찾아가서 먹었다면 백만 페이였을 것을.


끄응.


못마땅하지만 류트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따라오시죠. 일반인은 모르는 지하시장이 있습니다."


코비는 그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그런 데가 있다면 팔콘이 가만히 뒀을 이유가 없을 텐데?"


찌릿한 류트의 시선, 코비는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요오. 해봤자 필립 갱단이 뒤를 봐주고 있는 중소업체. 아?!"


"정확하오."


"하지만, 거긴 기술자라기보다 멀쩡한 걸 대충 겉만 멀쩡하게 만들어서 팔거나, 해체해서 파는 수준 아닙니까? 공학자는 없는 걸로 아는데."


"가 보면 알 것이오. 따라오시오."


그를 따라 걸으며 박태준은 바랑 속을 봤다.


너절한 상태의 병아리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조금만 참아라, 곧 일어날 수 있을 거다.'


네가 일어나야 농사도 시키고, 축사관리도 시키고 하지.


이루칸의 말을 들어보니 삐약이가 일을 썩 잘한다고 했다.


꽤 리더십도 있고. 쓸데없이 닭을 몰고다니는 바람에 몇마리는 밟혀죽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세계수를 지켜냈다.


'내가 리치를 위해 움직이는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류트를 따라 시티의 어두운 지하세계로 숨어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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