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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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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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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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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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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캐러밴(2)

DUMMY

"저 여자가 오빠를 데려가겠다고 했어요."

"뭐?"


진현은 아연한 표정이 되어 옐레나를 보았다.

저 여자가 왜?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옐레나는 딱히 부정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맞아. 사실이야."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신거죠?"

"막말로."


옐레나가 세진을 위아래로 쓱 훑었다.

무례하다 항의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왜인지 기가 죽은 세진은 시선을 바닥으로 깔 뿐이었다.


"이 여자애랑 네가 84번 베이스에 간다고 쳐. 그럼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다니요. 당연히......아."


옐레나의 지적에, 진현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팔 한짝을 잃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스와 시은, 아드리안마저 봉인되어 버렸다.

저 여자가 이런 사실까지 알고서 말한건 아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은 전력 외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세진은 어떤가?

세진의 레벨은 어림잡아 60대 초반.

86번 베이스에서는 나름 중상위권에 속하긴 하지만.

다음 단계인 85번 베이스만 해도 60레벨 정도 플레이어는 수두룩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그보다 높은 84번 베이스는?

85번 이후로는 베이스간 격차가 확연히 좁아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평균 레벨의 격차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84번 베이스에, 60레벨 남짓되는 세진이 설 자리가 있을까?

만일 있다고 한들.

그건 결코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을 보니 스스로 깨달은 모양이네. 그래. 너는 팔 한 쪽이 없고. 쟤도 84번 베이스에 정착하려면 한참 바닥을 굴러야겠지. 아니. 애초에 84번 베이스 입장료가 10만 공적치야. 너희들 그정도도 없지? 베이스 바깥에서 몸이라도 팔 셈이야?"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십니까."


진현과 세진이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옐레나는 여전히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조금 심한 소리라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게 현실인걸 어떡하니? 실제로 많은 파티에서 레벨이 낮은 여성 플레이어들을--"

"그만. 이 이상 세진이를 욕보이면 더는 듣지 않겠습니다."


결국 진현이 참지 못하고 옐레나의 말을 잘랐다.

어쨌거나 진현은 이제 세진과 운명 공동체와 같은 상황.

이제는 친동생처럼 가까운 사이이니 만큼, 세진이 저런 소리를 듣는 게 결코 반가울 리 없었다.


"흐응. 난 사실을 얘기해주는 것 뿐인데. 어쨌든. 그런 애들과는 정 반대로, 나같이 능력있는 기술자는 어딜가나 환영 받게 마련이야. 게다가, 나라면 네 팔도 어떻게 해줄 수 있고."


옐레나가 붕대로 감긴 진현의 어깨 아랫부분을 살짝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러니까. 누가 더 잘 보살필 수 있을지는 자명한 일 아니겠어?"

"왜 저한테 관심을 가지시는 거죠?"

"어머. 꽤 당돌한 질문이네. 물론 네 외양이나 성격도 내 취향에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옐레나가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너의 영기. 그게 내 개척혼을 들끓게 하거든."

"그리고......"


옐레나는 괜히 팔을 그러모아, 풍만한 굴곡을 만들어냈다.

눈앞에서 벌어진 옐레나의 대담한 어필에 당황한 진현이 주춤해서 목을 뒤로 뺐다.

사실 성적인 어필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단순히 펑퍼짐한 멜빵 바지에 가려져 있어서 몰라보았던 탓에 놀란 게 더 컸다.


"네가 원한다면 난 뭐든 해줄 수 있는데?"

"제가 단물만 빨아먹고 도망치면요?"

"오빠?"


세진이 순간 아연한 표정이 되어 진현을 쳐다봤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진현이 허겁지겁 손을 내저으며 해명하려는 순간 옐레나가 말을 이었다.


"흠. 그러게. 사전에 노예 계약이라도 해야 할까?"

"당신의 장난감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 싸늘해라. 물론 농담이지. 노예 계약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난 너같은 눈을 한 남자들을 잘 알거든."


옐레나가 상체를 앞으로 숙여 진현의 턱을 어루만진다.

멜빵 바지가 아래로 쳐지는 바람에 눈을 둘 곳이 없어진 진현이 시선을 애써 옆으로 돌렸다.


"맹수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지. 그렇다고 해서 묶어놓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금방 죽고말아. 그러니까 최선의 방법은."


'이 미친 여자가 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전보다 싸늘해진 시선이 날아와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니까.


"울타리를 만들고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하되. 밖으로 나오지만 못하게 하는 거야."


게다가 어쩐지 으스스한 소리를 하고 있다.

결국 참지 못한 진현이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만 하시죠. 애 앞에서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아차.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럼 우리, 어른들의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오케이?"


씨익. 고혹적인 미소를 던진 엘레나가 쓱 상체를 뒤로 물렸다.


'하마터면 혹할 뻔했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그만큼 옐레나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리고 멜빵 바지가 저렇게나 위협적인 아이템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저런 번뇌에 시달릴만한 여유가 없다는게 천만 다행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머리는 한없이 차갑다.

로스트 에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대목표는 로스트 에덴 탈출.

베스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믿을 순 없지만, 일단 1번 베이스를 탈환하면 게임은 클리어된다.


하지만 내가 알던 로스트 에덴과는 이미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세상이다.

어째서인지 자아를 지닌 NPC들은 급기야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거나 오리지널 스킬을 만들거나 하질 않나.

내가 넣은 오크니 고블린이니 그런 몬스터들은 어디다 꽁꽁 숨겨뒀는지,

필드에는 이상한 벌레같은 놈들이 득실대고 있다.

아직 공적치가 10만도 채 모이지 않아 이용조차 해보지 못한 공적치 상점 같은 특전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도 뒤틀린 점이 많다.


자신이 가진 정보가 과연 어디까지 옳고, 어디까지 도움이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해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1번 베이스 탈환이라는 대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뭔가.


레벨업.

많은 플레이어들이 포기해서 손놓고 있던 상위 베이스를 탈환해낼 만큼, 강한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세력 형성.

베이스 탈환은 기본적으로 공성전이나 다름 없다.

자신 한 명이 아무리 잘났다 한들.

베이스를 점령한 적들을 모조리 퇴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보스를 상대하는 동안 다른 괴물들의 발목을 붙잡아줄 이들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금의 자신은.

이진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세진의 불안에 찬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는게 보였다.

어쩌면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고.

아니면 한씨 아저씨와 세준을 그대로 내버려 둘지 모른다는 불안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버린다는 선택지는,

적어도 이진현에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옐레나."


진현이 입을 떼자, 막 입구의 천을 둘추고 막사를 나가려던 엘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엘레나의 제안은 분명 매력적이다.

게다가 그녀는 유능한 자원.


"시간을 주시죠. 대답은 84번 베이스에 도착할 즈음에 드리겠습니다."

"물론이지. 난 언제든 환영이야. 도착까지 8주 정도 걸린다니까... 그동안 어디 한 번 열심히 고민해봐 "

"오빠......"

"괜찮아. 나만 믿어."

"어차피 주제 파악이 끝나고 나면. 결국 넌 나를 선택하게 될 거야."


그렇게 자신감에 찬 한마디를 남기고.

옐레나가 막사를 떠났다.


"후우."


이미 주제 파악은 끝난지 오래다.

옐레나의 말마따나.

이대로 84번 베이스까지 도착한다면.....

분명 자신은 세진과 함께 밑바닥을 구르거나.

옐레나에게 굴복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84번 베이스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마도 옐레나 단 한명 뿐일테니.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몸값을 올려버린다면?

그건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아웃랜드는 괴물이 득실거리는 땅.

캐러밴이 무장을 단단히 하고 다니는 건, 단순히 레이더나 플레이어를 상대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게 때때로 일어나는 전투에 참가한다.

전투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엔 바이크를 타고 멀리 나가서라도 싸운다.

캐러밴을 거점삼아, 주변의 적들을 자원해서 소탕하는 것이다.

문제는 세진이 그 고된 일정을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저도 할게요."


세진의 결심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러고보니, 비탄에 빠진 자신을 되려 위로해준 것도 세진이었다.

본인이 힘든 상황에도 남을 먼저 걱정하고 보듬는다는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심지가 굳건한 아이다.


"그래. 8주간 군사 훈련 받는다 치자고."


진현이 씨익 웃으며 세진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세진이 굳은 표정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라스와 시은이 도움을 너무 많이 받긴 했어.'


마더 토벌.

그리고 성 아드리안 토벌.

레벨 두자릿 수 대의 초심자에겐 분명 너무나도 굵직굵직한 타이틀이지만.

세운 업적에 비해, 정작 본신의 강함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당장 준비해야겠어.'


시은의 말로는 몸이 전부 회복되려면, 공급받는 치료제로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기다릴 시간은 없는데......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

"음?"

"그러려면 공적치가 조금 많이 필요하긴 한데. 메꿀 수 있을까요?"

"그게 얼만데?"

"10만이요."


공적치는 곧 화폐로서 기능한다.

개미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얻는 공적치는 고작 5.

즉, 개미를 아무리 못해도 2만 마리는 잡아야 메꿀 수 있는 수치다.


"내가 가진 게 8만이 조금 넘고... 세진이 넌?"


진현이 묻자 머뭇거리던 세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0......이요."

"뭐?"

"캐러밴에 들어오는 조건이었어요. 가방에 있는 물자랑 바이크, 그리고 공적치까지 다 내놓으라고 해서......"


'아무리 배타적이라곤 하지만, 이정도일 줄 이야.'


좀 전에 방문했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마일스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쩐지 싱글벙글 웃더라니, 잔뜩 이득을 봤다 이거지.

문득 사업가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간 피를 본다던 직장 상사의 말이 떠올랐다.


"일단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그 방법이란 게?"

"마일스톤의 방에서 고농축 치료제를 봤어요. 상태가 악화되면 10만 공적치로 교환해줄 수 있다고는 했거든요?"

"그렇게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가 놓고, 또 10만을 요구해?"


공미새.

진현은 앞으로 마일스톤을 공미새라 부르기로 결심했다.

공적치에 미친 새끼.

까드득. 이를 가는 진현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좋아. 일단 외상이든 뭐든 받아내서 그걸 쓴다. 하루에 개미 1400마리면 메꿀 수 있어. 자는 시간 4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레벨업에 쏟아 부을 거다. 할 수 있지?"


진현이 짓씹듯이 내뱉은 말에, 세진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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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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