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562
추천수 :
434
글자수 :
138,214

작성
21.12.31 09:38
조회
115
추천
9
글자
12쪽

불타는 석양 아래(1)

DUMMY

라스의 기합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오는 한적한 오후의 묘지 관리소.

나는 침대에 누워 시스템 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뭘 그렇게 보니? 눈 빠지겠다."


시은이 혼자 있기 심심했는지,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살랑거리며 다가왔다.

대답이 없자, 그녀가 대뜸 창 앞으로 머리를 쑥 들이민다.

은백색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내 얼굴을 덮었다.


"아이, 야!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풀썩.

말없이 쓰러진 그녀는 기어코 좁은 침대에 낑겨 눕더니, 나를 구석으로 밀었다.


"몸뚱이 생긴 게 그렇게 좋냐?"

"물을 걸 물어야지. 영체 상태로 둥둥 떠다니면 얼마나 서글픈지 알아? 내가 진짜로 죽은 거 같아서."


이미 죽은 거 맞는데......라는 말은 굳이 덧붙여서 좋을 게 없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정 내내 영물함에 들어가 있어서 답답한 줄은 알았지만.

그게 상상 이상으로 심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소녀가 착 달라붙어 있는데 오히려 감사해야지."

"그건 원래 네 모습도 아니잖아."


시은은 들은 체도 않고 시스템 창을 훑는다. 얘도 이게 보이는 걸까?


베이스 사령부에서 스테이터스 창을 스캔할 때를 제외하면,

시스템 창은 보통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은은 똑바로 시스템창을 인지하고, 읽고 있었다.


"너 시스템 창이 보여?"

"그럼 보이니까 읽지. 너 바보야?"

"하......"


참자 참아.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참고로 이시은의 나이는 스물 넷. 겨우 한 살 위인 세진은 그렇게 어른스러운데 얘는 어째......


"뭐? 불만 있니?"

"아니. 잠깐 딴 생각좀 했다."


시은에게 상태창이 보이는 건 내 권속이라서 그렇다던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뭐 스마트폰 마냥 남에게 보인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고.


"뭐가 그렇게 문제길래 계속 붙들고 있는 거야?"

"어떤 걸 골라야 될지 고민 중이라."


원정이 끝나 묘지 관리소로 되돌아온 뒤.

나는 줄곧 딱딱한 침대에 누워 시스템 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성 아드리안의 묘소를 클리어하며 얻은 보상인 스킬 선택권.

원래 보상은 성 아드리안의 검이어야 했지만, 베스가 특전으로 넣어둔 것이었다.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 것인가.

선택권이라고 해도 원하는 스킬을 아무거나 집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은 세 가지 선택지 중에 단 하나.

게다가 오래 묵혀두고 결정하지도 못하게, 기한이 설정되어 있다.


[22:09:17,16,15......]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타이머가 보이는가. 정말 악질이 따로 없다.


결국 선택권을 개봉한 내 앞에 창 하나가 떠올랐다.


《영기 친화(F)》

《근접전의 대가(F)》

《궁극: 영기 폭발》


이 안에서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데, 상세 설명을 보면 하나하나가 내게 필요한 것들 뿐이다.


[《영기 친화(F)》]

[영기를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또한 영기 흡수량과 회복량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 스킬은 성장형 스킬입니다.]

[성장 효과: 영기 친밀도 증가]


《근접전의 대가(F)》

[전투 시, 적과 근접할수록 강력한 피해를 줍니다. 반대로 적과 멀어질수록 입히는 피해량이 줄어듭니다. 이 스킬은 성장형 스킬입니다.]

[성장 효과: 피해 증가량 상승, 거리에 따른 페널티 소폭 감소]


《궁극: 영기 폭발》

[영물함에 소지한 모든 영물의 힘을 끌어내 전투 능력을 강화합니다. 10분간 모든 스테이터스가 일시적으로 대폭 상승하지만, 이후 전투 불능 상태가 됩니다.]


어느 하나 갖고싶지 않은 게 없다.


가장 먼저 《영기 친화》.

성능 자체는 수수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효과를 준다.

당장 마력석 하나 물들이지 못해서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마당에, 저 스킬을 갖게 되면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게다가 성장형 스킬이다.

어쩌면 내가 더욱 레벨업한 훗날. 천수관음이라도 된 것 마냥 수십 수백개의 팔에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라스나 이시은 등등 앞으로 모으게 될 영혼들의 실체화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노력으로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발목을 붙잡는다.

마력석을 물들이는 작업도 조금씩이지만 진도를 내고 있다.

2주 만에 30% 정도는 부수지 않고도 변환하는 데 성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한 달 정도만 계속하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근성이 필요한 이런 류의 노력에는 이미 익숙한 편이다.

내가 1인 제작으로 한땀한땀 도트를 따며 로스트 에덴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 햇수로만 5년이 넘는데 뭐.


그리고 다음 스킬. 《근접전의 대가》.


컨셉 직업인 묘지기는 삽과 샷건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이외의 무기는 휘두르더라도 스테이터스의 보정을 받지 못해, 그야말로 무용지물.

그리고 삽과 샷건은 모두 근접 무기다.

즉, 내 대부분의 공격은 《근접전의 대가》 스킬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상승폭이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지만, 내가 만든 스킬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만든 것중에 남아있는 게 세계관이나 뼈대말고 있기나 한가?

이건 완전히 다른 게임이나 다름없다. 이진현 괴롭히기의 일환일까.


베스.

그 음흉한 년의 속은 아직도 깜깜한 무저갱마냥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의도는 드러내지 않은 채, 나의 행동을 유도한다.

간간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면... 이 짓거릴 계속 이어가다보면 알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다.

지금은 눈앞의 과제에 집중해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궁극: 영기 폭발》.

간략히 말하자면 드래X볼에 나오는 초사이어인 마냥 강해지는 스킬이다.

스테이터스가 얼마나 상승하는지에 대해 적혀있진 않은데, 궁극이라는 말이 붙은거보면 결코 적을 일은 없을 것이다.

고정치가 아니라 배수로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


다만 맘에 걸리는 건 저 10분 페널티다.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도 아무때나 쓸 수 없다는 건 꽤나 큰 단점.

10분간 열심히 싸우다가 방전된 장난감처럼 픽 쓰러져서 리타이어 하는건 사절이다.


'그래도 단기전에서 가장 좋은 스킬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


그렇게 계속 앓는 소리를 내고 있자, 시은이 손가락을 스윽 올린다.


"?"


그리고 내가 반응하지도 못하는 찰나의 순간.

띠링.

항목 하나를 눌러버렸다.


[특전 아이템 [스킬 선택권]을 사용했습니다.]

[《근접전의 대가》 스킬이 메인 시스템에 등록되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걸 두고 몇시간이나 혼자서 끙끙대고 있었단 말야? 바보같이."

"야 이시은! 너, 너 지금 뭐하는거야!"


이게 얼마나 소중한건데!!!

당장 이야기를 들은 세준이 형이나 한씨 아저씨만 해도 베이스를 점거한 보스쯤은 잡아야 나올까 말까한 특전이라며, 고심해서 결정하라고 신신당부 했었다.

그런걸 제멋대로 결정하다니?


"너 이거 어쩔거야. 어? 아니, 상의도 없이 그냥 눌러버리면 어떡하잔 건데?"


내가 따지고 들자 시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턱 엎으며 물었다.


"내 말 들어봐. 너, 영기 컨트롤에 자신 없어? 이미 전보다 많이 능숙해졌잖아?"

"그리고. 니가 저 영기 폭발이란거 배워봐야 어디서 써먹을건데? 생각나는 거 있어? 없지?"

"그리고 너 싸움 잘해? 개못하잖아. 당장 저 콧수염 아저씨가 시키는 기본 자세도 제대로 못 따라 할 거면서."


-콧수염이 아니라 아드리안이다!


바깥에서 라스에게 검술 지도를 하던 아드리안이 크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시은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당연히 싸움에 도움 되는 스킬을 골라야지. 게다가 영기 관련 스킬이라면 나중에도 배울 기회가 있을 거 아냐? 너 게임 제작자였다며? 그런 간단한 생각도 못해?"


시은이 조목조목 읊어가며 내 멘탈을 긁어 내린다.

다 아는 말이다. 나도 이미 다 생각한 것들인데... 막상 결정하려 하니까, 나머지가 버리기 아까웠던 거지.

즉, 매몰 비용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걸로 잘못되면 뭐, 내가 책임질게. 근데 그럴 일은 없을걸?"


시은의 말에 딱히 반박할만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 얌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뭐, 멋대로 결정해서 미안하긴 한데. 잘생긴 놈이 계속 옆에서 끙끙대는 거 보고 있자니까 좀 안쓰러워....서?"


그렇게 말하던 시은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볼을 빨갛게 붉혔다.

자신이 뭔 말을 하는지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워낙 피부가 새하얗다 보니까 달아오른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아, 아무튼! 무슨 선택을 해도 어차피 후회할 거면 그나마 제일 합리적인 쪽을 고르고 빨리 치워버리란 말이야. 알았어? 아~ 라스는 잘하고 있나 보러 가볼까~?"


시은이 딴청을 피우며 오두막을 나갔다.

똑부러진 것 같다가도 금세 감성적으로 변하질 않나.

역시 여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체와 허리에 좀 더 힘을 실어라! 검은 팔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나. 손잡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

"예 스승님! 하나! 둘!"


오. 역시 선생님이 있으니까 모양새가 다르네.

시은을 뒤따라 나온 묘지에선 실체화한 라스가 아드리안의 검술 지도를 받고 있었다.


내가 개미들에게 둘러싸여 맥없이 붙잡혔던 때.

라스는 자신의 성장에 대한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단다.


그래서 개발한 기술이 바로 대 아드리안 전에서 썼던 《심판의 빛》.

하지만 《심판의 빛》은 영물에 담긴 영기를 단번에 모조리 소모해야 하는 오리지널 기술이다.

그것에만 의존하면 영영 제 몫을 못 할 거라는 부담감도 있었던 모양.

내가 영기 폭발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와 비슷했다.


결국 실체화한 상태로 최대한 영기를 적게 소모하면서 싸우기 위해, 라스는 검술을 선택했다.

스킬에 의존해 싸우는 것보다 몇배는 영기 효율이 좋으니까.


하지만 따로 가르쳐줄 사람도 없어서, 결국 혼자서 아무렇게나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게 전부.

실력 상승은 요원한 일이었다.

라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님 상태에서 모기를 잡는 것 같다고.

그러던 도중에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쁠까.

실제로 라스는 훈련하는 내내 싱글벙글 웃으며 검을 휘두르고 있다.


"다행이네."

"그러게. 심적 부담이 컸던 모양인데."


나와 라스의 대목표는 같다.

1번 베이스의 해방과 게이트 사태의 종식.

즉, 이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손놓고 구경할 때가 아니지.


삽을 꺼내들고 라스의 옆에 서자,은색 갑옷을 입은 영체 상태의 아드리안이 물었다.


[음? 자네도 하는 건가?]

"물론이죠. 아드리안이 말했잖아요. 영기도 만능은 아니라고."

"그렇지. 내가 스스로를 봉인하지 않았다면, 아마 갑옷에 그을음조차 생기지 않았을 거다."


처음엔 단순 허세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아마 마지막에 항복을 외쳤던게 부끄럽다던가 해서.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당연한 말이었다.


영기도 마력이나 근력처럼 스탯이 생성되어 있다.

현재 영기 스탯의 랭크는 D-.

상급 플레이어의 문턱이라고 불리는 게 B랭크다.

그런 주제에, 레벨 400이 넘어가는 보스의 마나 실드를 한 방에 부순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


"핫!"


그리고 영기만큼 중요한 건 체술이다.

아직까진 전투 중에 제대로 삽을 휘둘러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난전이 되면 분명 파티원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낮에는 체술, 밤에는 영기. 이렇게 나누어 수련하면 되지 않을까. 이따 저녁에는 한씨 아저씨가 불러서 가봐야 하겠지만......


[수련 중에 잡생각 하는거 아니다!]


잡념을 귀신 같이 알아챈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온 묘지에 울려 퍼졌다.


그래. 일단은 수련이다.


작가의말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길!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2.01.19 36 0 -
27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1) 22.01.18 27 2 9쪽
26 B-84(5) 22.01.17 31 2 10쪽
25 B-84(4) 22.01.15 38 2 10쪽
24 B-84(3) 22.01.14 40 1 11쪽
23 B-84(2) +2 22.01.13 37 2 12쪽
22 B-84(1) +2 22.01.12 45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59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4 6 12쪽
18 캐러밴(2) +2 22.01.07 72 13 11쪽
17 캐러밴(1) 22.01.06 69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1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5 9 11쪽
»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1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19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29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7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2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09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6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