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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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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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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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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DUMMY

"거기... 그렇게 깨는 거 아닌데."

"......예?"


박태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차차. 속으로 말한다는게 그만.


"아. 세진이한테 말한 겁니다. 하시던 말씀들 계속 하시죠."


커다란 쿠키를 부숴먹던 세진을 팔았다.

세진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지만 애써 외면했다.


"아... 예. 어쨌든 선택권은 세준씨가 아니라 진현씨께 있습니다. 진현씨 판단에 따르도록 하죠."


김세준과 박태민이 동시에 시선을 돌린다. 세준은 작게 고개를 젓고, 태민은 가만히 날 응시한다.


'자. 어떻게 할까.'


성 아드리안의 영묘.

86번대가 목표로 정한 그 유적에는 하나의 핵심 기믹이 숨겨져 있다.

그것만 알면 호로록 날로 먹는게 가능한 수준. 찬밥을 물에 말아서 들이키는 것보다도 쉽다.


'괜히 최후방인 86번 베이스에 위치한 유적이 아니지.'


그런 곳을 무식하게 힘으로 뚫으려고 하니 과거와 같은 일이 벌어진 거다.


전투원이 되고나선 언제고 한 번 들리려 했던 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86번대와 동행하지 않는 쪽이 더 편하다.

클리어도 쉬운데 쓸 데 없이 보상만 나눠 먹는 꼴이지 않나.


'아냐. 잠깐만......'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어떤 생각.


"혹시 보스방에는 몇 명이 들어갑니까?"

"인원 제한은 다섯 명입니다. 저를 포함한 86번대 넷과 진현씨가 들어가게 될 겁니다."


역시.


"왜 하필 접니까?"


생초짜 전투원을 굳이 보스방 안까지 데리고 들어갈 이유가 있나?

게다가 내 역할은 단순 열쇠일 뿐이다.

영기로 문을 따주고 나면, 그다음은 필요가 없다는 소리지.

그런데 데리고 들어간다고?


대체 왜?


"그건....."


박태민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뒷말을 질질 끌었다. 그러다 결국 한숨을 쉬며 속마음을 뱉는다.


"진현 씨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덜컹. 세준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박태민을 향해 삿대질했다.


"이 새끼들 어쩐지 수상하다 했다. 어? 제 한 몸 바쳐서 사람들 살리고, 마더까지 처치한 애를 두고 뭐? 의심을 해? 이거 지금 박태준 죽었다고 이러는 거 아냐! 당신 말야. 솔직히 박태준하고 연 끊은 거 아니지?"

"말 좀 가려서 하시죠. 김세준 플레이어."


박태민이 김세준의 말을 자르고는 안경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마더는 추정 레벨이 100에 달하는 괴물입니다. 예. 생긴 것만 괴물인 저기 잡몹 개미들과는 달리, 진짜 괴물이지요. 그런 괴물을 고작 20짜리 플레이어가 홀로 잡았다고 하면. 오히려 믿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이게 진짜!"

"됐어요. 형."


나는 길길이 날뛰려는 세준의 어깨를 잡으며 억지로 앉혔다.

그리고 박태민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증명해드리죠."


여기서 꽁지를 빼면 박태민이 오히려 더욱 달라붙을 지도 모른다.

한 번 불붙은 의심은 쉽게 꺼지지 않는 법이니까.

결국 언젠가 한 번쯤은 부딪혀야 할 거다.


그리고..... 사실 기믹을 이용해서 클리어 하는 것보다, 다 때려잡고 클리어 하는 쪽이 더 보상이 좋다.

그렇게 설계한 던전이다.

누가? 내가.

그렇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


"갑시다. 성 아드리안의 영묘."


물론 공략법을 공유하진 않을 거다. 날 데려가려는 의도에서부터 이미 심하게 구린내가 풍기니까.

일이 틀어지면 공략법으로 협상을 하거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간다."

"저도요."


세준과 세진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박태민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펜을 건넸다.


"어차피 이번 원정대는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모을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시면 저희야 좋죠."


잠시 임무 제안서를 내려다 보던 세준과 세진이 내 눈치를 본다.

뭐, 내가 함께 가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장담할 수 잇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펜을 집어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

두 사람이 뒤로 서명을 마쳤다.


종이 세 장을 건네받아 잘 갈무리한 박태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임무 내용이나 세세한 지시 사항은 따로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주 뒤에 뵙죠."



* * *



임무 당일.

내가 탑승한 차량은 보스 공략조가 모두 탑승한 험비였다.

상의 대신 징박힌 가죽벨트를 X자로 교차해서 두른 민머리 근육맨.

보라색 머리에 입술을 까맣게 칠한 여자.

그리고 무슨 닌자처럼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고 새까만 도복으로 몸을 칭칭 감싼 남자.


하나하나가 눈에 띄고 개성이 강한 파티다.

어디 고인물 커마도 아니고.

86번대에선 이 정도 존재감은 있어야 고인물로 인정받고, 뭐 그런 분위기가 있나?


"흥."


눈이 마주친 근육 돼지가 코를 풀고는 눈을 돌렸다.

이들은 처음 차량에 올라탈 때부터 일관적으로 날 공기 취급했다.

신경쓰이진 않는다.

딱히 저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플레이어 분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셨군요.]

[쟤들이 이상한 거야. 보통 사람들은 안 저래.]


나도 시은의 말에 백 번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시은은 상반신만 모습을 드러낸 채 팔짱을 끼고 둥둥 떠있다. 저런 요령은 또 언제 익혔대.

놀이공원에서 주는 헬륨가스 풍선 같다.


[너 방금 나 보고 이상한 생각했지?]


얼씨구. 눈치도 좋으셔라.

괜히 반응했다간 피곤해질 것 같아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풀 한 포기 없이 을씨년스런 황무지가 눈앞으로 휙휙 지나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시 한가운데 있는 기분이었는데......]


시은의 시무룩한 듯한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도착까지 남은 시간동안 눈을 붙였다.


라스, 말동무는 네가 좀 해줘라.



* * *



험비와 장갑차 행렬이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차량에서 내리자 새삼 원정대의 규모가 실감이 났다.

폐허가 된 도시 유적.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던 도로가 차량과 사람들로 온통 북적거렸다.


"퐁퐁단하고 호빈이와아이들 팀은 이쪽, 3팀입니다!"

"분홍쩰리 팀! 참이슬 팀! 여기로 모여주세요!"

"백골단, 하나회는 이쪽으로--"


지난 영묘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팀장이 되어 흩어진 파티들을 불러 모았다.

그 중에는 세준과 세진도 있었다.


"진현아."

"어. 형도 선발대로 오셨네요."

"얌마. 너 때문에 왔는데 다른 팀을 가면 어떡하냐."

"오빠는 걱정마세요. 우리가 지켜드릴게요."


크. 괜히 코끝이 찡하고 시려왔다.

세준과 세진은 로스트 에덴에 떨어진 뒤로 줄곧 86번 베이스에 있었지만, 쉬지않고 임무를 이어왔다고 한다.


덕분에 그들의 레벨은 60이 넘어간다. 아마 한태석 때문에 눌러앉은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상위 베이스로 넘어가고도 남았을 베테랑들.


그들이 지켜준다며 눈에 불을켜고 감싸주니, 반갑지 않을 리가.


'박태민은 믿을 수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86번대는 위험하다.


기믹으로 깨야할 유적을 레벨과 힘을 이용해 억지로 찍어누르려는 녀석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게 가능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강한 놈들이 왜 86번 베이스에 남아 있는 걸까.'


사실 생각해볼 것도 없다.


86번대는 스스로를 베이스의 자치 경찰 쯤으로 생각하는 녀석들.


하지만 베이스에는 따로 치안을 담당하는 사령부 휘하 군인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 베이스에 굳이 남아서 경찰 행세를 한다는 건.


'결국 그들이 잡은 권력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지.'


초보 플레이어들의 안녕?

베이스의 질서?

그런 건 구실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욕심과 허영을 채우기 위해서 남은 것이다.

지배욕이든, 물욕이든, 승인 욕구든.

그게 뭐든 간에, 86번대가 탐욕스러운 집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씨 아저씨 말마따나 군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거다.


그리고...... 당장 나부터 저놈들에게 보호받은 기억이 없다. 박태준이 날 괴롭힌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박태준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도 그 때 이미 반쯤 확신했다.


'사기꾼을 상대한다고 생각해야해.'


저들을 곧이곧대로 따르거나 믿어선 안된다.

막말로 보스방에서 내게 어떤 짓을 저지를 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첫째. 문만 열어주고 곧바로 빠진다.

빠질 핑계야 만들면 그만이고,

신변의 안전을 최대한으로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놈들이 정말로 보스를 잡아버리면?'


원래 이 유적은 초보때 클리어한 뒤 영구적으로 닫힌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더 성장했을 때는 '그때 가만 놔두고 지금 다 잡았어야 했는데!'하며 후회하도록 설계한 던전이다.


그 말인즉.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한 플레이어들은 기믹을 무시하고도 충분히 깰 수 있는 유적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놈들은 기믹을 이용해 클리어했을 때보다 훨씬 막대한 보상을 얻게 된다.


물론, 내 몫은 보스전에 가담하지 않았단 이유로 대폭 빠지겠지.

그래서는 손해가 막심하다.

추가로 얻는 보상을 떠올리자 더더욱 몸을 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보스방에 들어간 86번대 놈들이 개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하면서, 보상도 얻는 방법.


'내가 놈들을 이용한다.'


아직 저들이 내게 뭔 짓을 한다는 확실한 심증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배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그땐......


"긴장되냐? 표정 한 번 살벌하네."


옆에서 걷던 세준이 내 어깨에 툭 하고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생각 좀 하느라."


다행히 도중에 괴물들을 맞닥뜨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근방에 출몰하는 괴물들은 영묘의 힘에 홀려 모조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이건 내가 만든 설정이 아니다. 임무 상세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걷자 영묘의 입구가 보였다.


"자, 여기를 넘어가면 이제 던전의 영역입니다. 5분간 휴식을 취한 뒤에 순서대로 입장하겠습니다."


딱 봐도 지하상가 같은 곳으로 향하는 계단에 타원형 검붉은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다.


"오."

"실제 게이트는 처음 보는 거지?"


세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이제 이 아포칼립스 적인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저 안에서는 또 수많은 괴물들이 우릴 맞이하며 달려들 것이다.


꾸욱. 손에 보드라운 감촉이 들었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세진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 긴장하신 거 같아서..."

"아, 응. 고마워."

"오오-- 뭐야, 김세진? 그거야? 그거?"

"오빠!"


남매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굳게 쥐었던 손을 풀었다.

주먹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새하얗게 핏기가 날아간 손바닥에 온통 손톱자국이 패여있다.


이 긴장은 싸움을 앞둬서 오는 긴장감과는 조금 다르다.


어쩌면 저들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이미 한 번 구했다고 해서 그 목숨의 무게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어째서인지 내가 만든 게임으로 만들어지고, 조금은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한 세상.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나를 향한 악의.


결국 저들은 피해자다.

무고하게 이 상황, 이 세상에 휘말려버린 저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넌 할 수 있다. 이진현.'


마침내 입장 시간이 되었다.

나는 뒤에 바짝 붙은 세준과 세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부터 모든 무장을 해제하세요. 배틀슈트건, 무기이건 간에.

-그리고.

-언데드들을 먼저 공격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게 이 던전의 공략법이에요.


작가의말

아레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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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1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5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1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19 12 12쪽
»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7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2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6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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