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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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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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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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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불타는 석양 아래(2)

DUMMY

한씨 아저씨가 펄펄 끓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퍼올리며 물었다.


"진현아. 다음 베이스로 갈 거냐?“


여기는 한인 구역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김치찌개 집.

어떻게 한국에서 먹던 것과 똑 닮은 김치를 만들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맛은 썩 괜찮았다.

나는 뜨거운 찌개를 후후 불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여기 이대로 남아있다간 다 같이 죽는다니까요.“

"허허. 어디로 갈지는 정했고?“

"일단은 81번 베이스요. 어차피 87번부터 82번까진 보급 베이스라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내 물음에 한씨 아저씨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고만고만하지. 그래도 넘버가 낮은 베이스일수록 임무 수준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야. 지금 레벨론 81번은커녕 85번 베이스 문턱도 못 들어가.“


아저씨의 말은 타당했다.

86번 베이스가 비정상적으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전투, 혹은 이 세상 자체에 적응하지 못해서 눌러앉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베이스는 수시로 울타리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적어도 세준이, 세진이 정도로는 성장해야 한다. 비록 레벨은 40대까지 올라왔다곤 하지만...... 전투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잖냐.“


끄덕. 한씨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보스 토벌을 두 번이나 했지만, 둘 다 요행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베스, 그 이상한 여자의 안배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요행이 계속될 것이라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말인데. 한동안 회수반에서 일하는 건 어떻겠냐?“

"세준이형이나 세진이 처럼요?“

"그래. 반드시 군인이 될 필요는 없어. 원한다면 길드를 통해서 임무 주선도 해주마.“

"음... 길드원 아니면 수수료를 엄청나게 떼가지 않나요?"

"아는 사람이 길드에 있거든. 어느 정돈 봐줄 수 있어. 어차피 보급이 매일같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전투직 플레이어들이 레벨업하며 공적치를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베이스에서 임무를 하달받는다.

둘째. 헌터 길드의 임무를 받는다.

얼핏 비슷하게 들리지만,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완전히 맥락이 다르다.


베이스에서 내리는 임무는 보통 베이스 외부에서의 정기적인 순찰과 괴물 퇴치.

즉, 베이스의 안녕을 위해 일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군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나 바깥에 보낼 인력이 부족해 플레이어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터 길드의 임무는 주로 파티를 주선 받아서 유적이나 던전 등을 탐사, 전리품을 획득하는 일.

등급이 높은 아이템을 얻어서 일확천금을 노릴 수도 있고, 수수료는 파티 중개 수수료 정도만 내면 그만이다.

공익을 위한 베이스 임무와는 달리 플레이어 개개인의 소득에 집중되어 있는 편.


그리고 나는 사령부와 길드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무를 병행할 수 있다.

길드에서 중개 수수료를 심각하게 많이 때리는 게 문제긴 한데, 그걸 해결해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나?


"이렇게 편의를 봐주셔도 되는 건가요?“

"뭘 우리 사이에. 우리 깐부잖아, 깐부. 크하하하!“


아저씨가 침을 튀기며 크게 웃었다.


'참 좋은 사람이야.‘


마더 사태를 계기로 알게 된 한씨 아저씨.

그는 스스로 내 멘토를 자청하며 여러 가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널 돕는 이유는 물론 목숨을 구해줘서도 있지만, 너한테서 희망을 봤기 때문이야.“

"희망이요?“

"그래. 난 네가 했던 말들이 거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솔직히 뭐...... 난 이미 철근에 깔려 뒤진 놈이라,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한씨 아저씨가 조그만 술잔에 소주를 쪼로록 따르며 말을 이었다.


"로스트 에덴에 떨어진 사람들 중엔 죽음의 기억이 없는 놈들도 있어. 난 네가 그 사람들을 지구로 돌려보내 줬으면 한다.“


크으. 소주를 단번에 비운 아저씨가 이번엔 내게 잔을 건넸다.


"자. 지구에서 먹던 이슬보단 맛이 좀 덜하지만, 꽤 마실만 해.“


"크하아. 진짜 소주네요. 이런 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

"이것도 다 보급품이다. 전에 회수 임무할 때 금속으로 된 캡슐들 있지?“

"예. 기억나네요.“

"그걸 사용하면 안에서 물자들이 퍼버벙! 하고 튀어나와. 나오는 물건들은 뭐... 별의별 게 다 있지.“

"아.“

"그래서 보급품을 가지고 싸움도 자주 일어나고 그래.“

"괴물들도 보급품을 노리나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분명 개미들이 습격하긴 했지만, 보급품을 노리는 듯한 느낌은 없었는데.


"아니. 레이더 들이다.“


한씨 아저씨가 굵직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이며 말했다.


"로스트 에덴에는 여러 가지 세력들이 있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게 사령부 직할군, 헌터, 그리고 레이더다.“


언젠가 지나가듯 들었던 기억이 있다.

베이스에 소속되지 않고, 바깥에 살며 자신들만의 거점을 건설해 살아가는 사람들.


"어떻게 드랍 위치를 아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보급 스팟에서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 놈들이라면...... 협상같은 건 씨알도 안 먹히겠네요."

"당연하지. 그놈들은 사람이길 포기한 깡패 새끼들이야. 여성 플레이어를 납치하고, 남자들은 모조리 죽이거나 노예로 부린다. 요즘은 레이더들끼리 인신매매까지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원래부터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치게 만든 건지.

아저씨는 쯧하고 혀를 차며 다시 소주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대인전도 많이 경험해두라고. 위로 올라갈수록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명심해 둬. 아, 너무 꼰대같았나? 허허허.“

"큭큭큭. 아닙니다. 스스로 의식하는 사람은 꼰대 아니래요."

"그거 다행이구만!"


그 뒤로 몇 번이나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길 나눈 뒤.

나는 한씨 아저씨의 제안을 따라 한동안 회수반 임무와 길드 임무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임무는 일주일 뒤 오전에 출발이다. 접선 장소는 저번과 같은 곳이고. 알지?“

"예. 걱정 말고 들어가세요.“


한씨 아저씨는 그대로 팔을 휘적거리며 건들건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남자는 저렇게 중후한 멋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니?]


영체 상태의 시은이 멀어져가는 아저씨와 날 번갈아 보며 시비를 걸어왔다.

물론 가볍게 무시해줬다.


"어쩔티비.“

[......유치해 진짜.]



* * *



"자, 출발합니다!“


유적으로 향하는 회수반 차량에는 나와 한씨 아저씨, 세준 세진 남매가 탔다.


"그런데 사람이 저번보다 많지 않나요?“


지난번 회수반 인원은 총 8명. 하지만 이번에는 장갑차와 험비만 8대 가량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마더 때와 같은 사고가 또 벌어질까봐 조심하는 걸까?

내 물음에 손수건으로 커다란 망치를 닦던 한씨 아저씨가 대답했다.


"이번 보급 임무는 조금 특별하거든. 군대 나왔으니 알지? 황금마차.“


알다마다요.

속한 대대가 PX와 멀리 떨어져 있던 바람에, 황금 마차는 대체 언제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가 설명을 이어간다.


"그거랑 비슷한 거야. 대충 분기별로 한 번 씩은 엄청난 게 떨어지거든.“

"엄청난 거요?“


되묻자 이번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세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무기나 장비품 들은 거의 일반, 아니면 기껏해야 고급 등급 아이템이잖냐. 근데 황금 마차에선 최대 신화 등급 아이템까지도 나온다더라."


오. 신화 등급!

그렇다면 이만큼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해는 간다.

일반-고급-희귀-영웅-전설-신화.

로스트 에덴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들은 이 등급 내에서 품질이 결정된다.

신화 등급 정도 아이템쯤 되면......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엄청나게 대단한 물건이 아닐까?

원작에서도 신화급 아이템은 엔딩까지 두어 개라도 먹으면 잘 먹은 편이었으니까.


"물론 무조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거의 영웅급에서 그치긴 하지만.“

"그럼 그 아이템은 다 판매하는 건가요?“

"어. 공적치 경매에 붙이지. 보통은 상위 베이스로 흘러가게 되어 있어서 아마 86번 베이스에 남는 건 없긴 할 거야.“

"경매라면 그 시스템 창에 있는 경매장이요?“

"그래. 아직 안 열렸지? 공적치 10만부터 열리는 거라, 뉴비들은 못써. 어차피 경매장에 올라가는 건 최소 희귀등급 이상이어서 살 공적치도 부족하겠지만. 아무튼 사령부에서 그걸 판매해다가 운영비로 쓰고 그런다고 하더라.“


듬성듬성한 수염을 매만지며 설명하던 세준이 세진의 환도 두 자루를 가리켰다.


"저거도 황금 마차에서 나온 거다. 그림자 무사 전용 무기인데, 저 바보가 칼을 뽑아드는 바람에 귀속이 되어버려서--“

"오빠! 그 얘긴 하지 않기로 했잖아!“


세진이 얼굴을 붉히며 길길이 화를 냈다. 나는 옆에서 킥킥 웃으며 말했다.


"세진이도 조금 맹한 구석이 있네요.“

"그치? 쟤 억지로 분위기 잡고 다니는 거 보면 내가 아주 기가 찬다 기가 차.“

"흥.“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씩씩대던 세진이 고개를 홱 돌렸다.

차가운 인상에 은근 무표정할 때가 많아 훨씬 성숙한 느낌이었는데, 저러니까 확실히 이십대 초반처럼 보이긴 한다.


"그리고 혹시 몰라. 이번엔 묘지기 전용 아이템이라도 나올지. 여태 본 적은 없지만.“

"나오면 그냥 주나요?“

"그럴 리가. 실수로라도 귀속됐다간 우리처럼 베이스에 묶여서 일하게 될 걸?“


아하.

이 사람들, 단순히 한씨 아저씨와의 관계 때문에 회수반 일을 하는 게 아니었구만.


"저는 한씨 아저씨 때문에 이 일에 매달리는 건 줄 알았어요.“

"뭐, 대장이 옛날부터 여러모로 뒤를 봐줬던 것도 있지. 그치, 대장?“


한씨 아저씨가 어울리지 않게 근엄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푸근한 분위기 속에서 하하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며, 임무지를 향해 전진했다.



* * *



"두목~ 이거, 이거 봐봐!“


삐빗. 삐빗.


당장이라도 툭 치면 고장날 것만 같은 구닥다리 모니터.

그 치직거리는 검은 화면 속에 익명으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금일 오후 1시 20분. 황금 마차 드랍 예정. 상세 좌표는 첨부한 지도를 통해 확인 바람.


"흥.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두목이라 불린 민머리 남자가 입에 문 시가에 불을 붙이며 씨익 웃었다.


"짜식들아! 물고기 잡으러 가자!“

"우와아아--!!“


그가 외치자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울려퍼졌다.


빵빵! 빠아아앙--! 뿌우우!


철판과 스파이크 등을 덧대어 흉물스럽게 개조한 차량들도 클락션을 마구 눌러댔다.


그러자 여기저기 퍼져있는 더러운 텐트를 들추며, 남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땟국물 범벅에, 온몸에는 문신이 가득하다.


또 옷은 입은 듯 만 듯한 주제에, 고철로 만든 가면이나 갑옷 따위로 온몸을 치장한 괴상한 남자들.


생김새는 모두 제각각이나,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광기가 번들거렸다.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지닌 무장 폭력 집단.

다른 사람들은 이 추방자들을 보며 이렇게 불렀다.

레이더, 라고.


작가의말

새해에도 화이팅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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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B-84(3) 22.01.14 42 1 11쪽
23 B-84(2) +2 22.01.13 37 2 12쪽
22 B-84(1) +2 22.01.12 46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60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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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캐러밴(1) 22.01.06 70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6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0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8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6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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