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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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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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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8,214

작성
21.12.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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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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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로스트 에덴(1)

DUMMY

"차......찾았다---------!!!!!!!!!!!!!!!!!!!!!!!“


나는 공동묘지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하나뿐인 소중한 삽이 저 멀리 날아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열쇠.‘


파낸 구덩이의 흙 묻은 유골 사이로 반짝이는 청록빛 열쇠.

내가 삼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공동묘지를 파가며, 애타게 찾고있던 바로 그 열쇠였다.


"크흡..."


눈물이 핑하고 돌며 앞을 가렸다. 이놈을 찾기 위해 매일 밤 얼마나 많은 삽질을 해야 했던가.

이 빌어먹을 게임 속 세상, 로스트 에덴으로 넘어와서 86번 베이스에 정착한 지 어언 삼 개월.


지구에서 넘어온 거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베이스 안팎을 오가며 목숨을 걸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땅을 파거나 묘지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마나 불감증].


그것도 이 어처구니없는 특성 하나 때문에 말이다.


맨처음 이 특성을 확인했을 땐,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가 싶었다.

로스트 에덴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총 87개의 베이스를 모두 개방해야 한다.

그리고 개방되지 않은 베이스들은 모두 이계에서 온 적들에게 점령되어 있다.

즉, 적들과 싸워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딴 특성 하나 때문에 제대로된 전투도 못하고,

이대로 최후방 베이스에 처박혀서 모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고?


'안돼. 그래선 다 같이 죽는다.'


무임 승차가 가능하다면 기꺼이 현실을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이 게임을 직접 만들었던 나는 안다.

주인공과 심장에 박힌 열쇠가 없으면, 뭔 짓을 해도 몰살 루트라는 걸.


'행성 자체가 초신성 마냥 뻥-하고 폭발해버릴 테니까. '


어디 섬이나 대륙도 아니고, 행성이 터진다는데.

살아남을 자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단 나는 없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구의 인간들이 로스트 에덴에 넘어오기 시작한 게 벌써 5년 전.

도대체 왜, 누구에 의해 넘어오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나는 그나마 전여친의 얼굴을 한 누군가가 꿈에 나타나 알려주기라도 했지.

다른 이들은 죄다 자신이 지구에서 무슨무슨 경위로 죽었다는 사실까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내게만 알려줬던 건 원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뭐 그런 건가? 어차피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건 다들 알아차린 거 같던데.

눈앞에 상태창이니 레벨이니 그딴 게 잔뜩 있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1번 베이스까지 개방해야 할 플레이어들이 여태까지 탈취한 베이스의 개수가 고작 16개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71번 베이스를 끝으로는 벌써 3년째 아무런 진전이 없단다.

말 그대로 참혹한 진행속도.

이래서야 수년 안에 핵피엔딩으로 다 죽고 만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내가 만든 로스트 에덴이라는 게임에서.

주인공이 외신을 꺾고 용사가 될 수 있었던 건, 놈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이 열쇠 덕분이지.


이건 사실 《사용 효과:소멸》이라는 빛속성 스킬을 담은 사기 아티팩트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열쇠를 제 심장에 품고 태어난 놈이다.

80레벨만 넘기면 이걸 써서 신이고 나발이고 적이란 적은 죄다 소멸시켜 버리는데,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이제 이걸 찾았으니, 대충 실력자를 엄선해서 쥐어주기만 하면 된다.

제대로된 사용법만 안다면 막힌 베이스 공략들을 팍팍 풀어나가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을테니까!


"후우... 드디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몸을 수그려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흡?!“


열쇠를 잡은 그 순간.

장식에 박힌 붉은 보석이 난데없이 강한 빛을 뿜어내더니, 나의 손에서 모습을 감췄다.


"어어, 열쇠! 내 열쇠 어디갔어?!"


혹시 빛에 놀라서 떨어뜨렸나?

황망히 바닥을 훑던 중.

갑자기 알림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메시지가 눈앞에 주루룩 올라왔다.


띠링. 띠링. 띠링.


[히든 업적 달성!]

[망자의 유품을 흡수한다. 1/1]

[보상 : 새로운 스탯, '영기'가 개방되었습니다.]


[□□□의 열쇠가 플레이어 '이진현'에게 귀속되었습니다.]


'흡수? 영기? 귀속?‘


"이건 또 뭔...“


개소리지?




* * *




밤늦게 묘지 관리소에 돌아온 나는 지푸라기 침대 위에 그대로 몸을 던졌다.


"후우. 십 년 감수했네."


열쇠는 다행히 금방 되찾았다.

시스템 창에 '영물함'이라는 항목이 새로 생겼는데, 바로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열쇠를 얻으면서 개방된 '영기' 스탯.

이 세상을 삼개월간 겪어본바, 원작에도 없던 디테일을 살려놓은 게 굉장히 많았는데. 아무래도 영기 또한 그중 하나인 모양이다.

아마도 묘지기 클래스를 위해 안배해놓은게 아닐까 싶다.

딱 봐도 이름부터 묘지기라는 직업 명칭과 잘 어울리지 않나.


'덕분에 예상치 못한 신분 상승도 덤으로 딸려오게 됐고.'


이 로스트 에덴은 아포칼립스가 배경인 만큼, 힘이 곧 진리이며, 권력이요, 정의인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사회적 격차는 자연스레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져 있었다.

실제로 전투원이 비전투원과 NPC, 아니 원주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완전히 하인이나 노예 정도 수준의 취급이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놈들이 날 두들겨 팰 때도 가만히 맞고만 있는 이유가 이거다.

원래 성질머리라면 수작을 부리는 즉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대로 들이 받았을텐데, 이놈들은 정말로 나를 죽일 것 같았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베이스는 못본 척 덮어주겠지.

왜? 난 비전투원이니까.


확증편향 아니냐고?

놈들이 원주민들에게, 그중에서도 여자들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알면 절대로 그런 소리는 안 나올 거다.


아무튼.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렇고.

마구간인지 사람 사는 곳인지 구별도 안 되는 이 묘지 관리소도 얼른 어떻게든 하고 싶다.

아무리 틈새를 막아도 바람이 들어오는 건 기본이고, 목재에 흙대신 똥을 처발라 덧대놨는지 뭔짓을 해도 돼지우리 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묘지주변이라 잠자리가 사납다. 거기다 이런 식으로 삶의 질마저 계속해서 떨어지니 없던 불면증과 우울증마저 생길 지경.


"일어나면 바로 부서에 가서 보직 변경 요청하고. 지원금으로 장비도 좀 사고..."


흐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만큼 자연스레 웃어본 게 진짜 얼마 만인지.

나는 지푸라기로 엮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어쩐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저기요.]


유령이 말을 걸어왔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직 아무도 안 왔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나는 대충 앉을만한 곳을 찾아 자리 잡았다


영기를 얻은 다음 날.

간단한 신체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단숨에 전투원이 되었다.

[묘지기]가 단순 생활직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전투원이 된 날 보며 놀란 눈치였지만,

여태 날 괴롭혀온 놈들은 '그게 뭐? 어쩌라고?'라는 느낌이 여전했다.

억울하진 않다.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남자는 한 번 얕잡아 보이면 끝'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이 기를 쓰고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하고 뽐내며 허세를 떨기도 하는 거고.


이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둘 중 하나다.

얼른 실적을 쌓아서 인식을 바꾸거나, 아니면 이쪽 세계의 생리대로 찍어 누르거나.

사실 선택지로 보여주고 고르라면 무조건 후자다.

이래 봬도 당하고 사는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내가 누구냐? 굴지의 게임계 대기업 NT에 들어가서는, 자꾸 시비를 거는 팀장 놈한테 죽빵을 꽂은 놈이다.

그리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함께한 내 유일한 친구는 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침착한 분조장.'


물론, 이쪽으로 넘어와선 어쩌다 보니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니라 '분노 조절 잘해'가 되고 말았지만...


"야, 비켜. 삽질쟁이.“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고개를 돌리자 딱 보기에도 껄렁껄렁한 놈이 발로 내 어깨를 밀고 있었다.

아. 오늘 임무에 이놈도 붙었었나.


'박태준.'


평소에 날 아니꼽게 보던 양아치 패거리 중 리더 격인 놈이다. 나는 박태준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옆에 앉을 곳 많은데, 왜 나한테 지랄이지?"

"뭐? 지랄? 하 참나. 야. 전투원 됐다고 진짜 동급이라도 된 줄 아나 본데.“


박태준이 그리 말하며 대뜸 주먹을 들어 올린다.


"좀 맞자 새끼야."


'아뿔싸.'


실수했다!

아무리 전투원이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박태준을 상대할 정돈 아닌데. 괜히 들떠서 주제 파악도 못하고!

놈의 주먹이 내 안면을 향해 날아온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으려던 그때.


턱.


웬 솥뚜껑만 한 손이 나타나 그의 주먹을 붙잡았다.


"같은 파티원끼리 싸우는 건 엄금이다. 행동 강령은 폼으로 나눠주는 줄 아나?“


평소에 담배를 많이 폈는지, 마치 쇠를 긁는 듯 걸걸한 목소리. 이번 임무의 지휘를 맡은 남자였다.

흰 탱크탑에 아래에는 군복 바지를 입었는데, 팔뚝 두께가 거의 내 허벅지만 하다.


"회수반 소속 한태석 상사다. 니가 그 귀신쟁이냐?"


한태석이 그 커다란 손을 내밀어왔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예. 이진현입니다. 방금은 감사했습니다.“

"그래. 오늘이 첫 임무라고 들었는데, 회수반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시키는 대로만 잘 따르면 된다. 알았나?“


그리 말한 한태석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예.“


한태석 상사라면 86번 베이스에서 '불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죽을 위기가 닥쳐도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아서 붙여졌다나.


한태석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사람들이 한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 정각에 모인 사람은 총 8명.

그중엔 익숙한 얼굴들도 여럿 보인다.


"이야아. 이게 누구야! 어이, 삽질쟁이. 출세했네?“

"이젠 귀신쟁이라던데? 큭큭큭. 가는 길에 심심하진 않겠네.“

"아 시발. 저 새끼 냄새나서 같이 가기 싫은데.“


그럼 그렇지. 저 넷이 따로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박태준 놈만 딸랑 혼자서 왔을 리가 없다.


'개 같은 새끼들.'


빠드득. 놈들이 내게 한 개짓거리들을 떠올리자 자동으로 턱주가리에 힘이 들어간다.


"싫으면 빠져 이년아.“


쯧. 한태석은 그들을 향해 혀를 차고는 리스트를 보며 차례차례 호명했다.


"좋아, 다 왔군. 이미 알겠지만, 우리 회수반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보급 물자와 신병 확보다. 쓸데없이 벌레 놈들 신경 건드리지 말고. 알았나? 특히 늬들 넷.“


한태석이 네 손가락을 펴서 놈들을 가리킨다. 그러자 놈들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꾸했다.


"또 우리한테만 그러신다.“

"니들이 사고 친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이번에도 문제 일으키면 영영 안 데려갈 줄 알아.“

"쳇.“


86번 베이스의 문제아들 답게 이미 한태석의 귀에도 많이 들어간 모양이다.


“우리가 뭐 이런 거나 할 짬인가. 원정 임무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온 거지.”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궁시렁대긴 하지만, 대놓고 한태석에게 반항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86번 베이스에서 한태석의 입김이 강하다는 소리겠지.


'한태석과 붙어 다니면 적어도 얻어맞을 일은 없겠네.‘


"자자. 출발합시다.“


한태석이 공수해온 커다란 장갑차에 사람들이 탑승했다.

그리고.


[전투를 직접 경험해보는 건 처음입니다. 무척 긴장되는군요.]


목소리가 난 곳에는, 차 안으로 머리만 쏙 들여놓은 푸른 눈의 유령이 세상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가의말

스토리 아레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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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6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0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8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7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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