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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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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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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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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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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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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캐러밴(1)

DUMMY

"으음."


진현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쩐지 막사 같은 곳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힘을 주는 순간 가슴팍에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와 포기했다.


"아. 오빠. 정신이 드세요?"


곁을 지키던 세진이 얼른 다가가서 진현의 상태를 살폈다.

땀을 조금 흘렸지만, 다행히 혈색은 괜찮은 편이었다.

세진이 진현의 손을 꼭 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진아. 아저씨는? 세준이 형은?"

"그게......"


뭐라 대답하려던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그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을 뿐.


"아."


턱. 맥빠진 진현의 몸이 마치 구멍 난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그제서야 현실감이 물 밀듯이 덮쳐와, 의식을 헤집는다.


'군단장이 습격하고. 세준이 형과 세진이가 나를 바이크에 태우고. 아저씨가 슈트를 쓰고......'


석양 아래 날개를 편 불새의 형상.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희생.

자신과 세진이라도 살리기 위해.

한태석이 신화급 슈트로 시간을 번 것이다.

거기에 휘말린 김세준이나 휴즈 대위는 무사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력을 불살라가며 싸웠을 한씨 아저씨는......


"욱. 우욱."


진현은 애써 밀려오는 구토감을 삼켰다.

하나만 남은 손이 입을 막은 채 벌벌 떨렸다.


'내가 거기서 슈트를 꺼내들지만 않았다면.'


아니다.

무의미한 가정이다.

늦든 빠르든, 군단장은 거기 있던 모두를 죽였을 거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내가 더 강했더라면.

적어도 한 번은 버텨내고, 슈트를 내가 입을 수 있었다면.


설령 생명력을 전부 불태운다 한들,

어떤 식으로든 베스는 자신을 살리려 들었을 거다.

스스로 관자놀이에 샷건을 갖다 대었던 그때처럼.


끈적한 후회와 무력감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 당긴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오히려 빠져드는 것만 같다.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


벌써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던 그 날의 기억은.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그 마음의 상처는.

마치 액자에 담아둔 사진처럼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렸던 그땐 버림받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못나서 그런 줄 알았다.

좀 더 착한 아이였다면.

좀 더 똑똑했다면.

좀 더......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그 깊고 어두운 감정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더랬다.

하지만.

또다시 그 익숙한 감정이 몰려와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툭. 진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나 때문이야. 내가. 내가 괜히 그걸 꺼내 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내가......"

"아니에요."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세진은, 고운 손으로 진현의 손을 보드랍게 감싸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랑 오빠는... 그리고 저는. 진현 오빠한테 이미 한 번 구원받은 사람들이에요."


"오빠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얘길 했는지 아세요?"


"언젠가 오빠가 위험한 때가 오면. 그때는 우리가 반드시 오빠를 지켜주자고."


"저는 그렇게 강한 눈빛을 한 아저씨와 오빠를 본 적이 없어요. 아마 저도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가 그 자리에 남았더라도... 아마 저는 후회하지 않았을 거에요. 아저씨도 오빠도 마찬가지 였겠죠."


"그러니까... 자책하지 말아요."


세진의 눈에도 촉촉한 물기가 서린다.

그녀 역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평소 틱틱 대기는 했지만.

뭔가 좋은 게 있으면 항상 동생에게 먼저 양보하고, 챙겨주려 했던 세준.

그는 결국 자신의 소중한 목숨마저 세진에게 내어주었다.


그런 자신의 혈육을 사지에 두고 와야만 했던 세진의 감정은, 진현의 슬픔과 자괴감에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울었다.

진현이 깨어나기 전까지, 울다가 그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진은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만한 이유는 바로 진현에게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빠나 아저씨를 다시 만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진현이 말했던 그의 능력.

그걸 잘만 이용한다면.

어쩌면.


잠깐 위를 쳐다보던 그녀가 손목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진현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녀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욱 굳건해져 있었다.


"아직 완전히 죽은 게 아니잖아요."


진현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물으려던 그때.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다시 놀이공원으로 돌아가서... 유품이라도 얻으면. 다시 볼 수 있을테니까."


세진의 말에 진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 세계에서의 죽음은.

어쩌면 완전한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플레이어를 상대로 실험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마더였던 시은의 영혼은 로스트 에덴에 그대로 남아, 자신에게 들러붙은 모양새로 정착했다.

그러니 만일 놀이 공원으로 돌아가 한씨 아저씨와 세준의 유품을 거둘 수만 있다면.


'만날 수 있어.'


어두웠던 진현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당장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얼른 돌아가 찾지 않으면......


"크윽."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하자 가슴을 가로지른 상처가 격통을 일으킨다.

하지만 진현은 아랑곳 않고 계속 배에 힘을 주었다.


"오빠, 안돼요! 지금은 몸이......"

"당장. 당장 아저씨랑 세준이 형 찾으러 가야해. 너무 늦으면 사라질지도 몰라."


바로 그때.

펄럭, 하고 막사의 문이 젖혔다.


"음? 아니!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막사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황급히 진현에게 다가갔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까무잡잡한 남자는 약병이나 붕대 따위를 양손 가득 들고 있었다.


"아직 치료가 끝난 게 아닙니다. 진정하세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 진현을 간신히 말린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마일스톤. 이 캐러밴을 이끄는 수장입니다."

"캐러밴?"


진현의 눈이 일순 날카롭게 변해 마일스톤을 노려보았다.

레이더들과 노예를 거래한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오. 아닙니다. 아까 세진 양께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는 플레이어 분들이 아시는 그런 캐러밴과는 맥을 달리하거든요."


마일스톤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현이 세진을 향해 눈을 돌리자,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믿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군단장에게 습격당한 날.

세진은 혼절한 진현을 태우고 곧장 바이크를 몰아 86번 베이스로 향했다.

하지만 결국 베이스에는 도착하지 못했다.

아니.

정정하자면 도착은 했지만, 도저히 들어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벌레.

익숙한 개미는 물론, 풍뎅이나 벌 등 수많은 벌레 모습의 괴물이 군단을 이루어 베이스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방어선이 뚫렸는지, 방벽의 부서진 틈으로 벌레들이 떼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커다란 돔 위로는 불길과 연기로 자욱했다.

그리고.

세진은 로스트 에덴에 떨어지고 나서, 그만큼 커다란 괴물을 본 적이 없었다.

거의 베이스 전체와 맞먹을 만한 신체를 지닌 벌레.

벌레들의 여왕.

퀸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퀸이 자신의 거점을 버리고 86번 베이스를 침공했는지.

그런 건 세진이 알 바가 아니었다.

쌔액.쌔액.

당장 진현의 숨이 넘어갈 듯이 위태로웠다.

결국 세진은 핸들을 돌려, 벌레들이 보이지 않는 안전한 황야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 바이크에 매단 백팩에는 몇 달은 거뜬히 버틸만한 물자와 의약품이 들어 있었다.

그러니 당장은 안전을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밤낮으로 진현을 돌보며 황야를 떠돌길 이틀 째.

세진은 마침내 하나의 기다란 행렬과 마주쳤다.

낙타처럼 생긴 동물에, 거대한 트레일러를 수레처럼 달아 물자를 움직이는 사람들.

말로만 듣던 신비의 상인집단, 캐러밴이었다.


세진은 곧바로 캐러밴에 도움을 요청했고.

캐러밴의 수장 마일스톤은 흔쾌히 그들을 받아들였다.


"저희는 현재 84번 베이스 근방으로 이동중입니다. 그 주변에 마을이 많거든요."

"마을이 있다고요?"

"예. 당신들은 아웃랜드라고 부르는 그 척박한 땅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지하로 피신하긴 했지만요."


생전 처음 듣는 정보였지만, 진현은 어쩐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러밴은 베이스와 거래하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배타적이며, 조금만 다가가도 공격적으로 변해 쫓아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황야를 떠돌며 물자를 움직인다는 뜻은.

비단 레이더들뿐만 아니라 또 다른 거래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진현이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일스톤이 새하얀 건치를 자랑하듯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 됐건 84번 베이스 근방까지는 함께하시면 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사례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 괜찮습니다. 이미 좋은 걸로 받았으니까요."


마일스톤은 품에 든 것들을 쟁반 위에 내려놓은 뒤, 세진을 향해 찡긋 윙크를 보내며 막사를 빠져나갔다.


진현이 세진을 향해 의문 섞인 눈초리를 보내자,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가방에 있던 물자를 나눠줬어요. 안 그래도 황금 마차에서 나온 것들이라 비싼 게 많았거든요."


세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그러자 머쓱해진 진현이 괜히 턱을 쓱쓱 긁었다.


"아...미안. 나는 또 혹시나 해서......"

"됐거든요!......그래도 다행이에요. 기분은 좀 나아지신 것 같아서."


그녀의 말대로였다.

한태석과 김세준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뒤.

진현은 조금씩 활기를 찾는 중이었다.


'이것도 네년의 계획이 아니길 빈다. 베스.'


그렇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비호감도는 이미 맥스치를 찍었지만, 거기서 또 천장을 뚫고 솟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 가닥은 잡았다.

제일 우선도가 높은 목표는 일단 레벨업.


잘려나간 팔은... 일단 영기로 어떻게든 때우면 된다.

화르륵.

붕대로 감은 환부에서부터 보라색 불꽃의 팔이 자라났다.

영기는 이미 몸의 일부가 된 양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게 된 지 오래.

하지만 팔의 형상을 만들어서 움직이는 건 아직 마음대로 잘 되진 않는다.

끊임없는 연습으로 해결하면 될 일.


그런 다음 놀이 공원으로 돌아가 아저씨와 세준의 유품을 찾는다.

놀이 공원에도 없다면 86번 베이스를 탈환해서라도 찾는다.

어차피 그정도 난관조차 돌파하지 못한다면, 1번 베이스 탈환은 더욱 요원할 것이다.


머리 속으로 정리한 진현은 일단 영물함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청록색 열쇠와 붉은 보석, 검 모양의 아이콘을 누른다.

띠링.

.....그런데.


"어. 이게 왜 안되지?"

"네? 뭐가요?"


사용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다.

분명 놀이 공원에서, 라스와 시은이 실체화로 자신을 구했던 것 까진 기억하는데......


영기를 끌어올리자 자연스럽게 몸에 보라색 불길이 감돈다.

이리저리 영기를 움직이던 진현은 영기나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지?'


"세진아."


진현은 세진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세진 역시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때.

막사에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여~!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였네. 어? 그 팔. 어떻게 된거야? 벌레 놈들한테 당한 거니?"


어쩐지 익숙하고 활기찬 목소리.

와인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물들인, 멜빵바지 차림의 이국적인 여자.


"아, 그때 그 대장장이분."

"어머. 그때 통성명은 안했던가?"


여자는 침낭이 깔린 자리에 털썩 앉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옐레나 김. 잘 부탁해."

"이진현입니다."

"김세진...이에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세진이 계속해서 겁먹은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통에 제대로 이야길 나눌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천막에 감도는 정적 속에서.

진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화이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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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1) 22.01.18 27 2 9쪽
26 B-84(5) 22.01.17 33 2 10쪽
25 B-84(4) 22.01.15 38 2 10쪽
24 B-84(3) 22.01.14 42 1 11쪽
23 B-84(2) +2 22.01.13 37 2 12쪽
22 B-84(1) +2 22.01.12 46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60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4 6 12쪽
18 캐러밴(2) +2 22.01.07 72 13 11쪽
» 캐러밴(1) 22.01.06 70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2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5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10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20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8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3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6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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