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키캣
작품등록일 :
2021.12.19 03:33
최근연재일 :
2022.01.18 10: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565
추천수 :
434
글자수 :
138,214

작성
21.12.29 09:47
조회
111
추천
12
글자
11쪽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DUMMY

마법사가 블리자드로 동굴을 한바탕 휩쓴 뒤.

남은 언데드들을 무찌르며 전진한 원정대가 마침내 보스룸 입구에 도착했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파란색 안내창이 뜬다.


[성 아드리안의 묘실]

[경고! 이 앞은 보스룸입니다.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입장하세요.]

[추정 난이도 : 120]

[최대 입장 인원 : 5인]


"부탁드립니다."


배틀 스태프를 짚은 박태민이 내 곁에 선다.

높이가 10m쯤 되어보이고 웬 글귀가 쓰여있는 석문.

그 위로 불길한 검은색 전류가 치직거리며 문을 따라 감돈다.


'그냥 영기를 쓸까?'


마나로 된 봉인인 만큼 영기를 쓰면 손쉽게 파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나 역시 도굴꾼으로 인식 될 위험이 있다.


'사서 위험을 무릅쓸 필욘 없지.'


나는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문에 쓰여진 글귀를 그대로 따라서 크게 읽기 시작했다.


"성 아드리안의 충실한 종이 만나뵙길 원하나이다. 여기 무릎을 꿇고 간절히 청하나니, 부디 문을 열어주소서."

"진현씨. 그건 저희도 이미 해봤던 겁니다. 어서 영기로 문을......"


박태민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지만 그냥 무시했다.

물론 안해봤을 리 없겠지.

아마 보스룸을 열기 위해 이거 말고도 별별 쌩쇼를 다 했을 거다.

결국 무슨 짓을 해도 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베이스로 귀환했을거고.


당연한 얘기다.

언데드 묘지기들을 쓰러트리며 여기까지 도달한 이상, 저들은 도굴꾼이나 다름 없다.

대놓고 우린 당신의 집을 털러 왔소~ 하는데 현관문 열어줄 바보가 어디 있겠냐고.


결국 이 문을 열 자격은 나를 비롯한 김세준, 김세진 남매 만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내 기도에 부응하듯, 거대한 석벽이 크게 진동하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열린 문 안쪽은 보이지 않고, 대신 문 사이로 또다른 검붉은 게이트 하나가 생겨났다.

던전 내부에 또 보스룸이 따로 있는 방식인가.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박태민 뿐만 아니라 경험있는 86번대 모두가 경악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현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시죠."

"혹시나 될까 싶어 해봤습니다. 보스룸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리 힘 빼면 좀 그렇잖아요. 영기도 무한한 게 아니라서."


내가 봐도 어설픈 핑계지만, 어쨌든 열었으니 상관없다는 걸까.

잠시 미간을 찌푸린 박태민이 입장 인원을 추렸다.

맨 처음 같은 차량에 탔던 플레이어들이었다.


"흥!"


내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간 거한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로 쏙 들어간다. 그 뒤를 닌자복과 피어싱 보라머리가 뒤따랐다.


세준과 세진이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미안하다. 젠장. 내가 좀 더 셌으면 같이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아니에요. 두 분 모두 다치지 말고 계세요.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게이트 앞에 서자 박태민이 생긋 웃으며 길을 터줬다.


"가시죠."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지만,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현씨는 안에서 증명하셔야 할 겁니다."


박태민이 자신의 옆을 지나치던 나를 붙잡듯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증명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정말로 혼자서 마더를 잡을 만한 실력을 가졌는가.


"증명하지 못하면요?"

"또다시 마더를 마주해야할 날이 올 수도 있고......"


박태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오지 않을 수도 있죠."


툭.

그가 게이트 앞에 선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0.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잠깐의 암전 뒤.

나는 처음 보는 묘실에 서 있었다.

박태민도 내 뒤를 따라서 왔는지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대장. 저게 보스같은데?"


거한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묘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석관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말에 반응하듯, 석관이 드르르륵-하고 마찰음을 내며 움직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다들 전투 준비! 진현씨는 중위에서 참전합니다."


박태민의 지휘가 떨어지기 무섭게, 보스의 거대한 상체가 석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성기사였으나, 죽기 직전 빛을 버리고 어둠을 받아들인 데스 나이트.

성 아드리안이었다.


-나의 잠을 깨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네놈들인가? 요즘 것들은 정말이지 예의가 없군. 노크도 할 줄 모르나?


어쩐지 말투가 저렴한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다들 멍한 표정으로 데스나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이건 얘기가 틀리잖아! 대장! 어떻게 된 거야?"


아. 아니다. 그들은 데스나이트의 말투를 보고 당황한 게 아니었다.

눈앞에 뜬 보스의 정보창.

그 안에 쓰인 수치를 보고 얼어붙은 것이었다.


[성 아드리안]

[레벨 : 476]


입장하기 전에 보였던 설명창에는 분명 120의 난이도라 쓰여 있었다.


120이라면, 평균 레벨이 110에 달하는 박태민 파티 네 명이 충분히 해볼 만한 수준.


하지만 476이라니?

이건 그냥 사기잖아!


그렇게 얼빠져있는데, 데스나이트가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날 지목하며 까딱거렸다.


-어이, 묘지기. 이리 오너라.


'묘지기?'


직업이 묘지기라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보스는 날 자신이 잠든 영묘의 묘지기라 인식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거...... 이용해 먹을 수도 있겠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데스나이트가 박태민 일행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물었다.


-이 도굴꾼들을 불러들인게 그대인가?


그리고 마침내 데스나이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머리 속으로 이미 모든 계산을 끝마친 뒤였다.


철퍼덕.


"잘못했습니다요, 어르신!"

"?!"

"저, 저새끼 저거!"


오체투신하며 그 앞에 엎드리자, 가랑이 사이로 삿대질하는 거한의 얼굴이 보였다.

씨익 웃으니 더욱 길길이 화를 낸다.


"이거 봐! 나중에 죽일게 아니라 입장하자마자 저새끼부터 죽여야된다고 했지? 씨발! 박태준이도 저새끼한테 죽은게 틀림없어! 젠장. 인류의 배신자 새끼!"


뭐야.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이었구나.

거한의 말을 들으니 일말의 양심의 가책마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소인은 평화롭게 해결하려 노력하였으나, 계속 반항하면 영묘를 통째로 무너트린다며 협박하였나이다! 그래서 소인은 어르신이라면 이들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 생각하여 이들을 이끌고--"

-됐다, 그만. 거 이상한 말투는 어디서 배워왔나?


두개골의 관자놀이 부분을 긁던 데스나이트가 결국 완전히 석관을 빠져나왔다.


신장이 3m쯤 되어 보이는 거구의 데스나이트.

그는 관에 함께 잠들었던 자신의 애검을 두어 번 휘둘러본 뒤.


-예의 없는 아이들에겐 쓴맛을 좀 보여줘야지. 덤벼라. 애송이들아.


앙상한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박태민 일행을 도발했다.


데스나이트가 박태민 파티를 곤죽으로 만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한은 척추째로 목이 뽑혀서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림자에 숨은 닌자는 강제로 끄집어내진 뒤,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흑색 입술의 피어싱녀는 손발이 모두 잘려서 널부러졌다.

그나마 숨이 붙어있는 건 박태민 뿐이었다.



* * *



-자... 그러면.


삽시간에 전투를 마친 데스나이트, 아드리안이 텅 빈 두개골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을 겨눈다.


-이번엔 네 차례다.


이런 젠장! 어째 잘 풀리나 했는데.

나는 곧바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야삽과 샷건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를 바보로 아나? 이 묘소를 지키는 묘지기들은 이미 다 썩어 문드러진 지 오래다.


베스.

그 미친 여자는 베이스의 NPC들 뿐만 아니라 괴물들에게도 자아를 심어놓은 모양이었다.

아드리안은 내가 저들과 한패라는 걸 이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럼 왜 마지막까지 살려둔 거지?

이해 안되는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수준을 조금 맞춰 줘야 겠군.


[성 아드리안의 혼이 스스로를 봉인합니다. 격이 하락합니다.]

[성 아드리안의 혼이 스스로를 봉인합니다. 격이 하락합니다.]

[성 아드리안의 혼이 스스로를 봉인합니다. 격이 하락합니다.]

[성 아드리안의 혼이 스스로를 봉인합니다. 격이 하락합니다.]


"어?“


갑자기 눈앞에 메시지 로그가 쭈루룩 올라오더니, 데스나이트의 정보창 내용이 바뀌었다.


[성 아드리안]

[레벨 : 119]


어째서인지 입장할 때 떴던 난이도와 비슷한 레벨까진 내려왔지만.


'난 아직 20레벨인데...?'


아직도 격차는 까마득하다.

일단 영물함에서 라스와 시은을 바깥으로 불러냈다.


[후아. 갑갑해 죽는 줄 알았네.]

[라스, 싸우는 겁니까?]

"어. 어쩌면 나 오늘 죽을지도 모르겠다. 저거 레벨 보이지?"


라스는 데스나이트를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래도 그냥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그래. 우리가 2주간 놀고먹은 건 아니니까. 후회 없이 싸워보자.“

[아. 그 모습은 질색인데......]


툴툴거리는 시은이 보라색 연기로 뭉개지더니,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 낸다.


새하얀 괴물 개미의 몸통에 배 위로는 소녀의 형상.

마더의 모습으로 실체화 한 것이다.


라스 역시 황금색 갑주를 입은 모습으로 실체화한 뒤.

용사답게 제 가슴께에서 황금색 빛의 검을 뽑아낸다.


"후우."


나도 심호흡하며 샷건과 삽을 들어올렸다.

2주간 머리를 쥐어짜며 연습한 실체화 전투법을 선보일 때다.

물론, 내 실체화는 시스템에 스킬로 등록되지도 못했을 만큼 불안정하긴 하지만.


"한 번. 단 한 번만 닿으면 이긴다.“


언데드인 아드리안 역시 단단한 뼈와 갑옷을 마나로 엮은 괴물일 뿐이다.

즉.

영기를 잘만 이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뜻이지.


마더가 된 시은, 그리고 황금색 갑주를 입은 라스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플랜A로 간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승산은 있을 거야.“

[근데. 너는 겁도 안 나니? 나야 이미 죽었으니까 상관 없지만...]


갑자기 궁금했는지 시은이 그렇게 물어왔다.

그러게.

분명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기분은 어쩐지 한없이 차분하다.

뭐지? 이 근거없는 자신감은?


[진현은...... 가끔 믿지 못할 만큼 뒤를 생각않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이죠.]

[아. 이해했어.]


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시은이 다시 데스나이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걸로 납득했다고? 정말?


-잡담이 길구나. 작전 수립은 끝났나?


가만히 서서 우릴 지켜보던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애검을 빙글빙글 휘두르며 물었다.


"예. 가능하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없겠구나. 슬슬 내 본능이 이성을 억누르고 올라오는 중이다. 어디, 한 번 잘 살아남아 보거라.


데스나이트의 텅 빈 눈에서 붉은색 불빛이 점점 크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크으으. 크아아아--!!


데스나이트가 앞으로 포효를 내지른다.

마치 코앞에서 맹수를 만난 듯, 오싹오싹한 기분과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작가의말

스토리 아레나 화이팅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게임 속 묘지기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중단 공지 22.01.19 36 0 -
27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1) 22.01.18 27 2 9쪽
26 B-84(5) 22.01.17 31 2 10쪽
25 B-84(4) 22.01.15 38 2 10쪽
24 B-84(3) 22.01.14 40 1 11쪽
23 B-84(2) +2 22.01.13 37 2 12쪽
22 B-84(1) +2 22.01.12 45 2 12쪽
21 캐러밴(5) +3 22.01.11 59 4 12쪽
20 캐러밴(4) +6 22.01.10 57 7 12쪽
19 캐러밴(3) +2 22.01.08 64 6 12쪽
18 캐러밴(2) +2 22.01.07 72 13 11쪽
17 캐러밴(1) 22.01.06 69 13 13쪽
16 불타는 석양 아래(5) 22.01.05 77 11 11쪽
15 불타는 석양 아래(4) 22.01.04 83 12 12쪽
14 불타는 석양 아래(3) 22.01.03 81 6 12쪽
13 불타는 석양 아래(2) +3 22.01.01 115 9 11쪽
12 불타는 석양 아래(1) +3 21.12.31 116 9 12쪽
11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5) +2 21.12.30 111 12 12쪽
»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4) 21.12.29 112 12 11쪽
9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3) +2 21.12.28 119 12 12쪽
8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2) +2 21.12.27 130 9 12쪽
7 묘지기와 도굴꾼은 한 끗 차이(1) +2 21.12.25 169 9 13쪽
6 로스트 에덴(5) +2 21.12.24 187 12 13쪽
5 로스트 에덴(4) +2 21.12.23 187 8 13쪽
4 로스트 에덴(3) +2 21.12.22 222 16 13쪽
3 로스트 에덴(2) +5 21.12.21 310 57 13쪽
2 로스트 에덴(1) +5 21.12.20 446 68 12쪽
1 Prologue. +19 21.12.20 560 118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